춘천시의 연혁
|
선사 시대
|
- [ 펼치기 · 접기 ]
구석기 시대
| 춘천 지역에는 구석기 시대 초기인 약 100,000년 전부터 인류가 생활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 신석기 시대
| 춘천에서는 충적평야가 발달하는 신석기 시대 후기를 기점으로 인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후기신석기문화 요소를 보이고 있으며, 교동혈거유지에서는 한강 유역의 문화요소와는 다른, 동북지방에서 주로 보이는 납작밑토기가 출토되었다.
| 청동기 시대
| 춘천의 청동기 유적은 이전 시기에 비해 훨씬 넓은 지역에 확산되어 분포하기 시작한다. 청동기 시대 초기에는 한강 유역 문화의 영향을 받아오던 춘천 지역은 중기에 이르러서 송국리 문화와 비교되는 독자적인 천전리유형문화를 형성하였다.
| 초기 철기 시대
| 기원전 2세기경부터 중도유형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영서지방은 물론 영동지방과 경기 동북부 지역으로 전파된다. 중도유형문화는 일반적으로 예족 집단의 고고학적 문화로 이해되며, 한성백제의 기층문화로도 여겨진다.
| 원삼국시대
|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영서 지방은 낙랑군의 영향권에 편입되었다. 이후 강원도 지역의 정치체는 반독립적인 자치를 이어가다 30년경 동부도위가 폐지되면서 독자적인 정치체를 재형성하였는데, 그 중 춘천 지역 일대에 성립된 영서 지방의 독자적인 정치체를 맥국, 또는 영서예라 한다.
|
|
삼국 시대 · 남북국 시대
|
- [ 펼치기 · 접기 ]
삼국 시대
| 춘천 지역의 정치체는 이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였으나, 5세기경 고구려가 남하하면서 고구려의 영역에 편입되었고 오근내(烏斤乃) 또는 수차약(首次若)이라 불렸다. '내(乃)'는 고구려 지명 가운데 본래 소국을 뜻하는 말로, 춘천 지역에 독자적인 정치체가 존재하였음을 방증한다.
| 637년
| 신라가 북상하면서 한강 유역을 차지하여, 637년 이곳을 우수주(牛首州) 또는 우두주(牛頭州)로 하고 군주를 두었다.
| 673년
| 우수주에서 수약주(首若州)로 개칭되었으며 주양성을 쌓았다.
| 685년
| 9주 5소경 제도가 시행되며 영서 지방 일대에 당시 춘천 지역의 이름을 따와 9주 중 하나인 수약주(首若州)를 두고, 춘천 지역에 현재의 도청인 치소를 설치, 1소경과 12군 26현을 관할하였다.
| 757년
| 수약주에서 삭주(朔州)로 개칭되었다. 이후 신라 말에 광해주(光海州)로 개칭되었다.
|
|
고려 시대
|
- [ 펼치기 · 접기 ]
940년
| 광해주에서 춘주(春州)로 개칭되었다.
| 995년
| 전국을 10도로 나누며 현재의 강원도 지역에 삭방도가 설치되었고, 춘주에 단련사가 파견되었다.
| 1036년
| 삭방도가 동계로 개칭되었다.
| 1178년
| 동계에서 춘주도가 분리되어, 춘주(春州)에 치소가 설치되었다.
| 1203년
| 춘주에서 안양도호부(安陽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다시 지춘주사로 격하되었다.
| 1263년
| 동주도로 개칭되었던 춘주도가 다시 교주도로 개칭되었다.
| 1314년
| 교주목이 회양부로 격하되면서, 교주도가 회양도로 개칭되었다.
| 1388년
| 회양도와 강릉도가 통합, 교주강릉도로 개칭되었다.
| 1391년
| 교주강릉도가 강릉도로 개칭되었다.
|
|
조선 시대
|
- [ 펼치기 · 접기 ]
1395년
| 강릉도가 강원도로 개칭되었다. 원양도, 강양도, 원춘도라 개칭된 바 있으나 곧 강원도로 다시 개칭되었다.
| 1403년
| 춘주에서 춘천(春川)으로 개칭되었다.
| 1413년
| 춘천에서 춘천군(春川郡)으로 개칭되었다.
| 1415년
| 춘천군에서 춘천도호부(春川都護府)로 승격하였다.
| 1675년
| 춘천을 전란 시 임금의 피난처로 검토하였으나 실행되지 못하였다.
| 1755년
| 임금을 비방하는 글을 쓰는 데 가담한 이가 춘천 출신이라 하여 춘천도호부에서 춘천현(春川縣)으로 강등되었다.
| 1764년
| 춘천현에서 춘천도호부(春川都護府)로 복구되었다.
| 1888년 4월 19일
| 춘천도호부를 기전(경기도)에 이속, 전란 시 임금의 피난처로서 춘천유수부(春川留守府)로 승격하고, 춘천부 진어사를 춘천부 유수 겸 진어사라 하였다.
| 1888년 5월 9일
| 가평의 읍호를 감하하여 춘천유수부에 소속하였다.
| 1890년
| 춘천이궁이 준공되었다. 마무리 공사는 1892년까지 이어졌다.
| 1895년 6월 23일
|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춘천유수부에서 춘천군(春川君)으로 개칭, 영서 지방 일대가 춘천부로 분리되었고, 춘천부관찰부청이 춘천에 설치되어 13군을 관할하게 되었다.
| 1896년 8월 4일
|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시행되면서 강원도관찰부청이 춘천에 설치되어 26군을 관할하게 되었고, 고려 춘주도가 동주도로 개칭된 이후 약 650년 만에 춘천이 강원도의 수부도시로 다시 자리매김하였다.
| 1906년
| 춘천의 속현이었던 기린면이 인제군으로 이관되었다.
|
|
일제강점기
|
- [ 펼치기 · 접기 ]
1914년 3월 1일
| 18개 면 191개 리를 통폐합하여 12개 면 103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 1917년
| 춘천군 부내면을 춘천면과 동내면으로 분면하고, 남산외일작면을 남면으로, 남산외이작면을 남산면으로, 동산외일작면을 동면으로, 동산외이작면을 동산면으로, 북산외면을 북산면으로 개칭하였다. 춘천면이 지정면 제도 도입과 동시에 지정면으로 지정되어 최초로 도시로 인정되었다.
| 1931년 4월 1일
| 읍제 도입과 동시에 춘천면이 춘천읍으로 승격하였다.
| 1934년
| 춘천군 서상면과 서하면을 서면으로, 남산면과 남면을 남면으로 통합하고 남면 의암리를 신남면에 편입하였다.
| 1935년
|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도평리 일부가 춘천군 사내면 맹대리로 편입되었다.
| 1938년
| 춘천읍 전역과 신남면 칠전리 일부를 포함하는 시가지 계획이 최초로 실시되었다.
| 1939년 10월 1일
| 신북면 우두리와 마산리, 동내면 석사리와 후평리, 신남면 퇴계리와 칠전리 일부를 춘천읍으로 편입하였다. 춘천읍제가 실시되며 리(里)를 정(町)으로 구획하였으며, 신남면과 동내면을 통합, 신동면으로 개칭하였다. 이 해에 경춘선이 개통되었다.
|
|
현대
|
- [ 펼치기 · 접기 ]
1945년 9월 2일
| 38선을 기준으로 이북에는 소련군이, 이남에는 미군이 진주하면서 사내면 전역과 사북면 4개리, 북산면 1개리가 소련군정에 편입되었으며, 이후 김화군과 화천군에 나뉘어 편입되었다. 이외의 지역은 미군정에 편입되었다.
| 1946년 6월 1일
| 강원도 최초이자 남한 12번째로 춘천읍이 춘천부로 승격하였다. 왜색동명을 정리하며 정(町)과 정목(丁目), 통(通)을 동(洞)과 가(街)로 개칭하였다.[1] 본정1~3정목 → 중앙로1~3가, 소양통1~4정목 → 소양로1~4가, 대성정1정목 → 교동, 대성정2정목 → 운교동, 대화정1정목 → 조양동, 대화정2정목 → 죽림동, 봉의정 → 봉의동, 화원정1정목 → 요선동, 화원정2정목 → 낙원동, 단양정 → 옥천동, 욱정 → 약사동, 마산정 → 사농동, 우두정 → 우두동, 영락정 → 근화동, 일출정 → 후평동, 수정 → 효자동, 상반정 → 온의동, 퇴계정 → 퇴계동, 석사동 → 석사동 잔여 춘천군 지역은 춘성군(春城郡)으로 개칭되었다.
| 1949년
| 춘천부를 춘천시(春川市)로 개편하였다.
| 1954년 11월 17일
| 춘성군의 수복지구 중 사내면이 화천군에 편입되었다.
| 1964년 2월 1일
| 신동면 신촌출장소를 설치하였다.
| 1967년 12월 5일
| 남면 발산출장소를 설치하였다.
| 1970년
| 춘천시 효자1동을 분리하여 효자3동을 신설하였다.
| 1973년
| 춘성군 동산면 북방리가 홍천군 북방면에, 풍천리가 홍천군 화촌면에, 북산면 수산리가 인제군 남면에 편입되었으며, 신동면 칠전리, 삼천리, 송암리와 서면 금산리, 현암리의 각 일부 및 신북면 신동리가 춘천시에 편입되었다.
| 1986년
| 춘천시 후평동을 후평1, 2동으로 분동하였다.
| 1989년
| 신동면 신촌출장소가 동내면으로, 남면 발산출장소가 남면으로 승격하면서 종전의 남면을 남산면으로 개편하였다.
| 1990년
| 춘천시 효자동의 일부가 후평동에 편입되었다.
| 1992년
| 춘성군이 춘천군(春川郡)으로 개칭되었으며, 춘천시 석사동의 일부가 효자동에 편입되었다.
| 1994년
| 춘천시 후평2동을 후평2, 3동으로 분동하였고, 석사동의 일부가 후평동에 편입되었다.
| 1995년 1월 1일
| 춘천시와 춘천군이 통합, 도농복합 형태의 춘천시가 출범하였다.
| 1997년
| 서면 용산출장소가 폐지되었다.
| 1997년
| 동면 상걸출장소, 서면 덕두원출장소, 사북면 용산출장소, 북산면 조교출장소가 폐지되었고 중앙동과 소낙동, 소양동이 소양동으로, 근화동과 호반동이 근화동으로, 약사명동과 죽림동이 약사명동으로, 온의동과 삼천동, 칠송동이 강남동으로, 사우동과 우두동, 사농동, 신동이 신사우동으로 통합되었다.
| 1999년
| 신동면 정족리와 온의동의 각 일부를 칠전동에 편입하였다.
| 2023년 6월 11일
| 강원도가 강원특별자치도로 개편, 강원도 춘천시에서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가 되었다.
|
|
갑오개혁 이전의 날짜는 음력을 기준으로 함.[참고자료] 개관 / 연혁 / 삼국시대 / 고려시대 / 조선시대 / 개화, 일제강점기 / 해방 이후 / 현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