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나케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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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토스 왕국 5대 군주
Φαρνάκης | 파르나케스 1세
파일:파르나케스 1세.jpg
제호
한국어
파르나케스 1세
그리스어
Φαρνάκης
영어
Pharnaces I
존호
바실레프스
가족
미트리다테스 3세(아버지)
라오디케(어머니)
미트리다테스 4세(남동생)
라오디케(누이)
니사(아내)
미트리다테스 5세(아들)
카파도키아의 니사(딸)
생몰 년도
미상 ~ 미상
재위 기간
미상 ~ 미상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폰토스 왕국의 5대 군주.


2. 생애[편집]


폰토스 왕국 4대 군주 미트리다테스 3세셀레우코스 제국의 왕녀 라오디케의 장남이다. 남동생 미트리다테스 4세, 누이 라오디케가 있었다. 언제 통치를 시작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다만 기원전 183년 그리스인항구 도시 시노페를 공략했을 때 왕으로 언급된 점을 볼 때, 기원전 183년 이전에 왕위에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페르가몬 왕국, 비티니아 왕국카파도키아 왕국의 영역을 잠식하여 국토를 확장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팽창 정책에 위협을 느낀 페르가몬 왕 에우메네스 2세는 형제들을 로마 공화국에 사절로 보내 상황을 보고하고 중재를 요청했다. 로마는 폰토스에 사절을 보내 침략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지만, 파르나케스 1세는 아랑곳하지 않고 레오크리토스 장군에게 1만 병력을 맡겨 소아시아를 약탈하게 했다. 180년 봄, 파르나케스 1세는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카파도키아를 약탈했다. 에우메네스 2세와 아탈로스 2세 형제는 반격에 나서 파르나소스에서 에우메네스의 장인 카파도키아 왕 아리아라테스 4세와 힘을 합쳐 폰토스 왕국과 대항했다. 중간에 로마가 중재하려 했지만, 파르나케스 1세가 협상을 거부해서 무산되었다. 전쟁은 기원전 179년까지 4년간 지속되었다.

폰토스 왕국군이 페르가몬-카파도키아 연합군의 공세로 큰 피해를 입고 전쟁을 이길 가망이 없어지자, 파르나케스 1세는 평화 협상에 응했다. 로마의 중재를 통해 이뤄진 평화 협약에 따르면, 그는 시노페와 일부 식민 도시를 제외한 점령지를 반환해야 했고, 파플라고니아와 티온에서 철수해야 했고, 인질을 석방하고 탈영병을 넘겨주고, 전쟁 배상금도 지불해야 했다. 폰토스는 전쟁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무역 활동을 통해 회복되었다.

그 후 파르나케스 1세는 더 이상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외교 수단을 동원하여 주변의 여러 도시들과 우호 관계를 맺었다. 흑해의 남부 해안 지대를 왕국의 영역으로 삼았으며, 수도를 아마시아에서 시노페로 옮겼고, 파르나케이아 시를 새로 지었다. 또한 셀레우코스 제국 군주 안티오코스 3세의 손녀인 리사와 결혼하여 미트리다테스 5세, 카파도키아의 니사를 낳았다.

델로스 비문에 따르면, 파르나케스 1세의 통치 말년에 동생 미트리다테스 4세와 공동 통치했다고 한다. 그가 언제,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다만 사후에 아들 미트리다테스 5세가 아니라 동생 미트리다테스 4세가 왕위에 오른 걸 볼 때, 정상적인 방식으로 왕위 계승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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