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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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福島第一原子力発電所



지도상 위치
위치
일본 후쿠시마현 후타바군
오쿠마마치[1]·후타바마치[2]
좌표
북위 37° 25′ 22.7″
동경 141° 1′ 58.5″
상태
퇴역 중
착공
1967년 7월 25일
상업운전
1971년 3월 26일
소유
도쿄전력
운영
도쿄전력
원자로 형태
비등수형 원자로(BWR)
원자로 업체
제너럴 일렉트릭, 도시바, 히타치
발전
취소된 호기
2 × 1,380 MW
해체된 호기
1 × 460 MW (1호기)
4 x 784 MW (2, 3, 4, 5호기)
1 × 1100 MW (6호기)
정격 용량
5,306 MW(1979–201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ukushima-1.jpg}}}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의 사고 전 모습

1. 개요
2. 설계
3. 주변 지형
4. 유치와 건설 과정
5. 운영
6. 사건 사고
6.1. 2011년 3월 이전
6.2. 2011년 3월의 사고
6.3. 2011년 3월 이후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福島第一原子力発電所 / Fukushima Daiichi Nuclear Power Plant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일본 후쿠시마현 후타바군 오쿠마마치[3]후타바마치[4]에 위치한 원자력 발전소다. 제너럴 일렉트릭도쿄전력이 최초로 건설하고 운영한 원전이자 도호쿠 지방 최대의 발전소였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원자로 1, 2, 3, 4호기 냉각 기능의 작동이 중단되자 노심용융이 발생하면서 방사능이 누출되었으며 이 사건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알려져 있다. 시간이 지난 뒤 제2 원자력 발전소는 대피령이 해제되었지만 제1 원자력 발전소는 현재도 강한 방사능으로 인해 접근이 불가능하다.

2012년 4월 1~4호기가 폐쇄되었다. 1호기는 4월 20일 자정에 폐쇄되었고 2~4호기는 4월 19일에 1호기보다 먼저 폐쇄되었다. 2013년 12월 도쿄전력은 이후에도 손상되지 않은 호기의 재가동은 없을 것이라고 결정하였다.[5]


2. 설계[편집]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1, 2, 6호기는 제너럴 일렉트릭, 3, 5호기는 도시바, 4호기는 히타치가 공급했다. 6개의 원자로 모두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설계했다.[6] 건축 설계는 Ebasco[7]에서 담당하였으며 공사는 모두 카지마 건설에 의해 이루어졌다.

2010년 9월부터 3호기는 다른 반응로에서 사용되는 저농축 우라늄(LEU) 대신 플루토늄이 약간(6%) 함유된 혼합 산화물 연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5호기는 Mark I 원자로 격납 건물로 건설되었으며 Mark I 격리 구조는 일본 기술자들에 의해 부피가 약간 증가했다. 6호기는 Mark II형 원자로 격납 구조를 가지고 있다.

1호기는 1967년 7월에 건설된 460 MW 비등수형 원자로(BWR-3)이다. 1971년 3월 26일에 상업운전을 시작했으며 2011년 초에 폐쇄될 예정이었으나 2011년 2월 일본 규제 당국이 1호기에 대한 10년 운전 연장 승인을 받아냈다. 1호기는 같은 해 동일본 대지진과 이로 인해 발생한 쓰나미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

1호기는 1952년 발생한 컨 카운티 지진(Kern County earthquake)에 기반한 0.18g(1.74m/s[math(^2)])의 최대 지반 가속도 및 응답 스펙트럼에 맞춰 설계되었으며, 정격은 0.498g 정도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3호기와 6호기의 설계 기준은 각각 0.45g(4.41m/s[math(^2)])와 0.46g(4.48m/s[math(^2)])이였다. 이후 1978년 미야기현 해역 지진 때 지반 가속도가 30초 동안 0.125g(1.22m/s[math(^2)])가 되자 발전소 내 모든 호기들을 검사했지만 원자로의 주요한 피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제1 원전의 쓰나미 설계 기준은 5.7m였다. 즉,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는 본래 내진 설계, 주변 지진 발생 가능성, 쓰나미 가능성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설계를 마친 상태였지만 일본 원자력 규제 당국과 도쿄전력의 관리 소홀로 제1 원전은 동일본 대지진 당시 지진에도, 쓰나미에도 취약한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일본 국회 사고조사위의 보고서가 존재하기도 한다. #

설계상 제1 원전의 비상 디젤 발전기와 DC 배터리는 정전이 발생한 비상 상황에서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설비로써 발전소의 터빈 건물 지하에 위치하도록 되어 있었다. 본래 제너럴 일렉트릭이 제공한 원자로 설계 계획에는 상기된 비상 디젤 발전기와 DC 배터리를 상기된 바와 같은 위치에 배치하도록 했으나 발전소 건설을 담당한 중간 기술자가 이러한 설계가 홍수에 취약하다는 점을 우려했음에도 도쿄전력은 원자로 건설에 있어 제너럴 일렉트릭이 제공한 설계를 엄격하게 따르기로 결정했다.[8]


3. 주변 지형[편집]


파일:Fukushima_1975.jpg}}}
1975년 단지의 조감도
5, 6호기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부지는 원래 해발 35m인 절벽 위였지만 발전소 건설 중 도쿄전력은 절벽의 높이를 25m로 낮췄는데 그 이유에는 두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지진의 위협으로 인해 원자로의 기반을 단단한 기반암 위에 건설할 필요가 있었으며 둘째는 절벽의 높이를 낮추면 해수 펌프의 운영 비용이 낮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1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을 계획할 때 도쿄전력은 쓰나미 위험 분석을 통해 방파제가 설계상 감당 가능한 최대 쓰나미에 대해 적절한 보호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에 낮은 고도도 안전하다고 판단했지만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원전 부지를 더 낮은 고도에 건설한 것은 설계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쓰나미에 대한 취약성을 더 큰 폭으로 증가시켰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그룹은 총 두 개로 나뉘며 왼쪽에 있는 그룹[9]에는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4, 3, 2, 1호기가 있다. 오른쪽 그룹[10]에는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5, 6호기가 존재한다. 거대한 방파제 덩어리가 바다로 돌출되어 있으며 중앙에 취수구가 있고 양쪽에 배수구가 있다.

7호기와 8호기는 각각 2012년 4월2013년 4월 착공해 2016년 10월2017년 10월에 가동될 예정이었으나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사실상 취소되었다. 이 계획은 후쿠시마 지역 당국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2011년 3월에 발표된 2011년 공급 계획에서 자신들이 여전히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서 2011년 4월 도쿄전력에 의해 공식적으로 취소되었다. 도쿄전력은 이에 대해 7, 8호기 계획이 지진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초안이 작성되었다고 밝혔다.

제1 원전은 500kV 후타바선(双葉線), 275kV 오쿠마선(大熊線), 66kV 요노모리선(夜の森線)의 4개 라인으로 전력망에 연결되며 후쿠시마(신후쿠시마) 변전소를 이용한다. 신후쿠시마 변전소는 도미오카선(富岡線)을 통해 후쿠시마 제2 원자력 발전소와도 연결된다. 북쪽과의 연결을 담당하는 주요 선은 도호쿠 전력 소유의 이와키 선(いわき幹線)이며 이 선은 신이와키(新いわき) 변전소를 통해 남서쪽으로 2개의 연결이 존재한다.


4. 유치와 건설 과정[편집]


1960년대오쿠마마치후타바마치는 지역 내 활발한 이주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오쿠마마치와 후타바마치의 행정 당국이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키무라 모리에에게 지역 진흥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원자력 발전소가 좋은 것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보다 이전인 1950년대에는 당시 후쿠시마현 의회 의원이었던 아마노 미쓰하루가 당시 도쿄 전력 간부였던[11] 키카와다 카즈타카와 친해진 뒤 원자력 발전소의 유치를 제안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흐름을 타 당시 사토 젠이치로 후쿠시마현 지사가 키무라 모리에와 동조해 원자력 발전소의 유치를 결정했는데 이것이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건설의 시작이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은 위에서 언급된 나카도리후쿠시마시 출신인 사토 젠이치로(佐藤善一郎) 후쿠시마현 지사, 나카도리의 야나가와 출신인 키카와다 카즈타카(木川田一隆) 도쿄전력 사장, 하마도리의 나가쓰카 출신인 아마노 미쓰하루(天野光晴)[12], 하마도리의 요쓰쿠라 출신인 키무라 모리에(木村守江)[13]의 총 4명에 의해 공모되었다.

즉, 사토 젠이치로, 키카와다, 아마노, 키무라 이 4명이 함께 원전 건설을 공모할 수 있었던 요인은 "후쿠시마현"이라는 접점이 큰 영향을 끼쳤는데 후쿠시마현이라는 접점에서 손을 잡고 후쿠시마현 내 소외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명칭이 '오쿠마'가 아니라 '후쿠시마 제1'이 된 것도 이러한 공모 배경에 이유가 있었다.[14]

1961년 2월 1일 후쿠시마 제1 원전 건설사무소 설치 1964년 4월 8일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이 진행되기 이전에 먼저 시추조사와 풍량시험, 해일시험이 진행되었다. 1966년 10월 8일 착공 기원제를 열었다. 1966년 10월 10일 미국제네럴 일렉트릭 사와의 건설 계약이 맺어졌으며 1966년 12월 1일에 착공하여 1967년 9월 1일 원자로 격납용기를 설치하였고 1970년 9월 28일 원자력 압력용기가 현장에 도착하였고 1970년 10월 10일 원자로 제어봉 시험운전을 진행하였으며 1971년 2월 20일 원자력 터빈발전기와 복수기가 현장에 도착을 하였고 1971년 3월 19일 연료 집합체가 발전소에 도착을 하였고 1971년 3월 22일 핵연료 점검 및 장전 개시를 하였고 1971년 3월 23일 시험운전을 진행한 후 1971년 3월 26일부터 상업 운전을 해 왔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가 착공을 한 1960년대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이 한창이었던 시대적 배경이 있다.


5. 운영[편집]


파일:Fukushima_Electricity_generation.png}}}
후쿠시마 제1 원전의 발전

발전소의 원자로는 1970년부터 하나씩 가동되기 시작했으며 1979년에 마지막으로 6호기가 가동되었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는 2002년 말부터 2005년까지 도쿄전력의 데이터 위조 스캔들로 인해 안전 점검을 위해 일정 기간 정지된 원자로 중 하나였다.[15] 2011년 2월 28일 도쿄전력은 일본 경제산업성 원자력 안전보안원에 회사가 이전에 가짜 검사와 수리 기록을 제출했음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원자로의 온도 제어 밸브용 전원 보드와 물 펌프 모터 및 비상 동력 디젤 발전기와 같은 냉각 시스템들을 포함하여 1~6호기 원자로의 30개 이상의 기술적 구성 요소들을 검사하지 못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008년 IAEA는 후쿠시마 원전이 구식 안전 지침을 사용하여 건설되었으며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일본에 경고했다. IAEA의 이러한 경고를 받아들인 일본 측은 2010년 비상 대응 센터를 설립했으며 이 센터는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 중 요긴하게 사용되었다.[16]

2011년 4월 5일 도쿄전력의 부사장 후지모토 다카시는 당사의 7호기와 8호기 건설 계획을 취소한다고 발표했으며 5월 20일 도쿄전력 이사회는 공식적으로 1~4호기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2013년 12월 도쿄전력은 손상되지 않은 5호기와 6호기도 해체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를 통해 원격 정리 체계(remote clean-up methods)를 제1 원전 내 손상된 원자로에 사용하기 이전에 테스트할 수 있었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발전량(GW·h)
년도
1호기
2호기
3호기
4호기
5호기
6호기
1970년
60.482





1971년
2024.3





1972년
2589.1





1973년
2216.8
5.949




1974년
1629.7
3670.1
284.7



1975년
0
622.1
2961.8



1976년
1563.9
4191.4
4807.1



1977년
0
49.7
2171.1

875.1

1978년
1497.6
3876.3
2753.7
3163.2
4806.7

1979년
2504.4
2976
4916.3
3917.4
3898.6
3235.6
1980년
1249.5
2889
4287
4317
4282.6
6441.1
1981년
1084.8
3841.8
3722.8
4667.5
4553.9
7418.6
1982년
2355
5290.2
2886.8
5734.7
4061.3
6666.5
1983년
3019.5
3422.7
4034
4818.2
5338.8
5387.8
1984년
2669.761
3698.718
4497.326
4433.166
4691.482
5933.242
1985년
1699.287
4266.285
5798.641
4409.031
4112.429
5384.802
1986년
2524.683
5541.101
4234.196
4315.241
4157.361
7783.537
1987년
3308.888
3851.078
3748.839
5964.048
3995.012
7789.201
1988년
2794.464
4101.251
5122.991
5309.892
5952.712
5593.058
1989년
1440.778
6516.393
5706.694
4232.648
4766.535
5128.362
1990년
2352.405
3122.761
2919.548
4273.767
3956.549
7727.073
1991년
1279.986
3853.054
4491.022
6483.384
6575.818
6948.662
1992년
1794.061
4568.531
6098.742
4082.747
4841.234
5213.607
1993년
2500.668
4186.704
4204.301
4206.577
4059.685
6530.932
1994년
3337.532
2265.961
4202.304
6323.277
4246.206
8079.391
1995년
3030.829
6396.469
5966.533
5485.662
5878.681
6850.839
1996년
2298.589
5192.318
4909.655
4949.891
5666.866
6157.765
1997년
3258.913
4618.869
2516.651
4556.81
4609.382
9307.735
1998년
3287.231
3976.16
2632.682
5441.398
5369.912
6328.985
1999년
2556.93
3158.382
5116.09
5890.548
6154.135
7960.491
2000년
3706.281
5167.247
5932.485
4415.901
1647.027
7495.577
2001년
487.504
5996.521
5637.317
5858.452
5905.13
7778.874
2002년
3120.2
5101.018
3567.314
4687.718
6590.488
6270.918
2003년
0
1601.108
2483.557
0
2723.76
4623.905
2004년
0
3671.49
3969.674
4728.987
5471.325
1088.787
2005년
851.328
3424.939
5103.85
1515.596
2792.561
7986.451
2006년
3714.606
3219.494
4081.932
4811.409
4656.9
5321.767
2007년
610.761
5879.862
4312.845
5050.607
5389.565
6833.522
2008년
3036.562
5289.599
6668.839
4410.285
3930.677
8424.526
2009년
2637.414
4903.293
4037.601
5462.108
5720.079
7130.99
2010년
2089.015


6040.782




6. 사건 사고[편집]



6.1. 2011년 3월 이전[편집]


  • 1975년 - 1~5호기 중에서 1호기만 Mark-1 원자로가 냉각장치와 원자로 격납용기에서 설계결함이 발견이 되었다.

  • 1978년 - 3호기에서 연료봉이 떨어져 일본 최초의 임계사고가 발생했다. 막대를 다시 정상적인 위치에 놓는데 약 7시간 30분이 걸렸으며, 도쿄전력이 이 사건을 은폐했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기록은 남지 않았다. 29년이 지난 2007년 3월 이 사건은 도쿄전력의 경영진이 2명의 전직 근무자과의 인터뷰를 통해 발견해 그 존재가 알려졌다.[17]

  • 2009년 2월 25일 - 시동 작업 중 수동 종료가 발생했다. 원인은 터빈 바이패스 밸브의 차단으로 인한 고압 경보였다. 1,002psi(6,910kPa)의 규제 한계를 초과하는 1,030psi(7,100kPa)에 달하는 압력 증가로 인해 알람이 현지 시간 오전 4시 3분에 울렸을 때 원자로는 최대 출력의 12%였다. 원자로는 0%의 동력으로 감소하여 사건보고가 필요한 5%의 임계치를 초과하였고 압력은 오전 4시 25분에 다시 규제한계 이하로 떨어지게 되었다. 이후 오전 8시 49분 제어 블레이드가 완전히 삽입되어 수동 원자로가 정지되었다. 곧 검사를 통해 8개의 바이패스 밸브 중 하나가 닫혀 있고 밸브의 구동 유체 연결이 불량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원자로는 25회에 달하는 정기 점검 이후 정상적이라고 판단되어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 2009년 3월 26일 - 3호기가 정전 중 제어 블레이드를 과도하게 삽입하는 문제가 있었다. 당시 제어 블레이드의 구동 압력을 조절하는 장비에 대한 수리 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오후 2시 23분 밸브가 열렸을 때 제어 블레이드 드리프트 경보가 울렸다. 이후 조사한 결과 여러 개의 막대가 의도치 않게 삽입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

  • 2010년 11월 2일 - 작업자가 제어 블레이드 삽입 패턴을 조정하는 동안 5호기의 자동 긴급 정지가 활성화되었다. 긴급 정지는 원자로의 저수위 경보에 따라 활성화되었으며 전기 생산 터빈은 원자로와 함께 정지되었고 현장 직원들은 방사능에 의한 피해을 입지 않았다. #


6.2. 2011년 3월의 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3. 2011년 3월 이후[편집]


  • 2011년 4월 3일 - 지하 터빈실에서 2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근로자들이 지하 터빈실로 대피했을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18]

  • 2013년 4월 9일 - 저장 장치에서 누출된 방사성 물이 인근 토양과 물을 오염시켰다. 이후 일본 정부의 대응이 이루어져 누출은 통제되었으며 오염 물질들은 격리된 지역에 보관되었다. 오염된 물은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방사성 입자를 제거하기 위한 정화를 위해 원자력 발전소 단지 내에 보관되고 있다. #

  • 2013년 8월 7일 - 일본 관리들이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 물이 하루 300톤의 속도로 태평양으로 누출되고 있다고 보고했으며 이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정부 관리들에게 즉각 개입할 것을 지시했다. #

  • 2019년 9월 10일 -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전소가 파괴된 후 도쿄전력은 원자로가 다시 과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녹은 연료 코어에 물을 계속해서 부었다. 이 오염된 냉각수는 현장 내 수백 개의 강철 탱크에 100만 톤 이상 저장되었다. 대규모 여과 시스템이 이러한 오염수에서 대부분의 방사성 오염 물질을 정화하는 데 사용되지만 수소의 방사성 동위원소인 삼중수소는 제거할 수 없다. 삼중수소로 오염된 물이 계속해서 축적됨에 따라 발전소 관계자는 2022년까지 더 많은 탱크를 건설할 공간이 부족할 것이며 이에 따라 방사성 물을 태평양에 직접 버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전력은 물을 먼저 희석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얼마나 많은 물을 방출할지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 2023년 4월 24일 - 도쿄전력이 3월 하순 1호기 격납용기 안에 로봇을 투입해 원자로 밑바닥을 촬영한 영상을 분석한 결과 원자로 바닥에 구멍이 뚫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다. 이에 붕괴가 우려되니 일본 당국은 위험평가를 지시했다고 한다. #

  • 2023년 8월 24일 - 도쿄전력이 오후 1시부터 발전소의 ALPS로 처리된 오염수(처리수)를 태평양으로 방출하기 시작했다.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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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호기 ~ 4호기.[2] 5호기, 6호기.[3] 1호기 ~ 4호기.[4] 5호기, 6호기.[5] In April 2012, Units 1–4 were shut down. Units 2–4 were shut down on April 19, while Unit 1 was the last of these four units to be shut down on April 20 at midnight. In December 2013 TEPCO decided none of the undamaged units will reopen.[6] 출처[7] 제너럴 일렉트릭의 모회사.[8] The reactor's emergency diesel generators and DC batteries, crucial components in helping keep the reactors cool in the event of a power loss, were located in the basements of the reactor turbine buildings. The reactor design plans provided by General Electric specified placing the generators and batteries in that location, but mid-level engineers working on the construction of the plant were concerned that this made the backup power systems vulnerable to flooding. TEPCO elected to strictly follow General Electric's design in the construction of the reactors.[9] 바다시점 바다에서 볼 때. 육지에서 바다 방향으로 볼 땐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10] 바다시점 바다에서 볼 때[11] 아직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이다.[12] 후쿠시마현 의회의원에서 국회의원으로 전신[13] 국회의원에서 후쿠시마현 지사로 전신[14] 후쿠시마현 이외의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는 '오나가와'나 '카시와자키 카리와'와 같이 전부 도시 이름이거나 도시의 1지구 이름이다.[15] 출처[16] In 2008, the IAEA warned Japan that the Fukushima plant was built using outdated safety guidelines, and could be a "serious problem" during a large earthquake. The warning led to the building of an emergency response center in 2010, used during the response to the 2011 nuclear accident.[17] 즉, 은폐한 것은 도쿄전력의 선배 세대들이며 후에 이를 세간에 알린 것은 도쿄전력 내 후배 세대들이다.[18] 2 bodies were discovered in the basement turbine room, most likely because the workers ran there during the tsuna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