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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식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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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사 건담에 등장하는 지구연방군의 주력전차에 대한 내용은 61식 전차(기동전사 건담) 문서 참고하십시오.
일본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최초로 국산 개발한 1세대 전차. 육상자위대가 운용했다.
2차대전 전후 일본은 일본에 주둔하던 GHQ와 미군에 의해 M4A3E8 셔먼과 M24 채피를 공여받아 경찰예비대(이후 육상자위대로 개편)가 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M4 셔먼과 M24 채피는 이제 성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신형 전차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원래는 미국으로부터 M47 패튼을 들여와 무장하려 했고, 실제로도 연구용으로 1대의 M47 패튼을 도입하기는 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상황에서 M47 패튼을 굴리기에는 교통 인프라를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2] 가 있는데다, 당시 미국은 M47을 유럽의 NATO 회원국들에게 우선 수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M47 패튼의 물량 부족도 우려되어 자위대에서 국산 전차 개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초기 개발 목표는 도로고 철도고 전부 열악했던 당시 일본의 인프라 사정상 무게 25톤에 90mm 포를 사용하는 것으로 요구되었다.[3] 장갑 경량화가 추구된건 당시 열약한 도로 때문이기도 했고 전차의 생산 단가를 줄이기 위한 이유였다.
하지만 25톤으로는 장갑이 매우 얇을 수 밖에 없어서 방어력이 너무 저하된다는 불만들이 나왔고, 당시 운용하던 M4A3E8은 이미 30톤대였기 때문에 새 전차의 무게가 30톤이어도 큰 문제는 없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이후 미국에서 샘플로 공여해준 국군이 운용하던 M36의 개량형인 M36 전차를 베이스로 해서 연구하면서 90mm 주포를 분석한 결과 미국제 90mm M3 주포를 라이센스 생산하여 운용하는게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다.[4]
이후 1955년에는 미국에 의해 신형 전차 개발이 허가되면서, 새로운 중형전차를 개발하려는 계획이 시작되었다. 일본 정부는 2차 대전기부터 전차와 항공기 등 병기 생산 경험이 있던 미쓰비시 중공업에게 신형 전차 설계를 의뢰했다. 개발 기간동안 총 4가지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진 후 1961년 4월에 개발이 완료되며 "61식 전차"라는 이름을 부여받게 된다.[5]
61식 전차가 한창 개발되던 도중에(STA-1, STA-2 완성 직전) 헝가리 혁명이 발생하였고, 이때 T-54를 서방이 처음으로 노획하면서 분석된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서 더 강력한 주포가 필요하다고 의견도 있었지만 시간과 예산 문제로 독자적인 대구경 포를 개발하는 대신에 신형 HVAP와 HEAT탄을 개발하는 것으로 T-54에 대항하는게 결정되었다.
STA-1과 달리 보기륜이 7개 에서 6개로 줄어들었다. 다만 STA-2가 나올때는 신형 엔진이 완성되지 않은 시기라서 STA-1과 STA-2에는 민간 선박용 엔진을 활용한 미쓰비시 DL10T V12 수랭식 디젤엔진이 적용되었다.
원래는 STA-1과 STA-2만으로 요구 사항에 달성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두 차량 모두 요구된 성능에 미달하면서 채택되지 않았다. 다만 차체 레이아웃의 경우 STA-1보다는 STA-2가 더 안정적으로 평가되어 이후 개발된 프로토타입들에는 STA-2처럼 6보기륜 차체를 가진다.
STA-1과 STA-2는 61식 전차의 1차 프로토타입에 해당한다. 이후 개선이 반영된 STA-3와 STA-4는 2차 프로토타입에 해당한다.
포구제퇴기의 변경,[6] 엔진 출력 증강, 휴대 기관 총탄 증가, 제한 중량까지의 여유가 생겨 방어 장갑을 추가하고 리볼버식 자동 장전 장치의 채용 등이 이루어졌다. 이 때부터 광학 거리 측정기를 해치부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포탑 위의 해치부분이 M48 패튼의 것과 비슷하다. 포탑 뒤의 튀어나온 부분은 STA-3부터 있던 자동장전장치 장착을 고려했던 흔적인데, 결국 자동 장전 장치가 취소되면서 다시 수동 장전식으로 변경되었다. 제 2차 제식차량의 테스트 결과 STA-4를 기반으로 더욱 장갑을 강화, 포탑을 후방으로 밀어 조종석에 여유를 만들고, 다른 세부 사항의 변경도 추가했다. 이것이 쇼와 36년인 1961년 4월, 61식 전차로서 제식화되어 양산 및 배치가 시작되었다.
1961년에 채택되어 일선 부대에 배치가 시작되었고, 1975년에 생산이 종료될 때까지 총 560대가 생산되었다. 후속 전차인 74식 전차와 그의 후속 전차인 90식 전차가 배치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해당 전차들의 생산량 부족으로 장기간 현역에서 사용되었고, 모든 차량이 퇴역을 마친 것은 2001년 3월이 되어서였다. 일본제 무기이므로 평화헌법에 따라 수출실적은 있을 수가 없다.[7]
1976년 9월 6일 빅토르 벨렌코 중위가 MiG-25를 조종하여 하코다테 공항에 착륙한 망명 사건 당시 하코다테시에 주둔한 육상자위대 북부방면 제11사단 제28보통과 연대가 주둔지 행사용으로 준비한 61식 전차들을 소련군의 하코다테 공항 급습시 투입할 예정이었다.
애매한 성능 문제 때문에 당대의 다른 전차들보다는 성능이 모자르다고 까이는 부분도 있지만 일단 무리하게[8] 만들어진 부분들도 있던 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 전차들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룬 셈이다. 일단 61식 전차의 성능이 다른 나라의 전차들보다 다소 애매하기는 했지만 일단 전후 처음 자체 개발한 기갑차량임에도 대다수의 부품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하고, 양산이나 부품 수급도 안정적으로 진행하는데는 성공했다. 덤으로 61식 전차를 개발하며 쌓은 경험과 기술들이 74식 전차를 만드는 토대가 되었으니 현대 일본 전차 개발사에선 나름 의미있는 전차라고 볼 수 있다.
61식 전차는 2001년 3월에 최종적으로 모두 퇴역되었는데 40년 가까이 운용하면서 거의 순정 상태 그대로 운용되었다. 물론 운용되는 동안 연막탄 발사기와 적외선 서치라이트를 다는 등 일부 전투력을 개선을 위한 개조는 이루어졌지만, 다른 1세대 전차들이 급변하는 전장에 대응하기 위해서 수많은 개조를 다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개량을 처음부터 아예 안하려고 한것은 아니었다. 60년대 중반에는 화력 증강을 위해 신형 전차를 만들 것이냐, 기존 61식에 105mm 로열 오드넌스 포를 다는 등의 업그레이드를 할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61식 업그레이드를 포기하는 대신에 105mm L7으로 무장한 신형 전차를 만들기로 결정되면서 74식 전차가 개발되었다.
미국제 M3를 라이센스 생산한 90mm 주포를 장착해서 대전차 능력 부분에선 어느정도 괜찮은 수준은 나왔다. 새로 개발한 성형작약탄을 사용하면 당시 소련 극동군구의 전차들은 무난하게 격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9] 다만 헝가리 혁명 이후 당시 미국과 서유럽의 우방국들은 105mm 로열 오드넌스 L7으로 갈아타기 시작하고 있었고 소련에서는 T-62를 시작으로 115mm 활강포가 배치되고 있던 상황이라 60년대 중반 기준으로는 다른 우방국이나 적성국 소련에 비하면 화력이 조금 빈약한 수준이었다.
장갑은 당시 1세대 전차들과 다를게 없이 평범한 단일 균질압연장갑과 주조장갑을 사용했다. 다만 35톤이라는 무게 제한 덕분에 두께는 대체적으로 얇은 편이었다.
1950년대 중반 당시에는 발전한 성형작약탄의 등장이 시작되면서 서유럽을 중심으로 장갑 무용론이 대두되던 시대라 AMX-30이나 레오파르트 1같은 장갑은 얇지만 기동성이 좋은 전차가 개발 트렌드 중 하나여서[10] 방어력 관련해서 유난히 튈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포탑 장갑은 헐 다운 전투를 상정해서 미국의 중형전차와 1세대 전차들처럼 어느정도 두께를 뒀기 때문에 레오파르트 1이나 AMX-30보다 더 두꺼웠다.
하지만 차체 방어력은 레오파르트 1이나 AMX-30과 별로 차이가 안나는 반면 항속거리 문제를 빼고 봐도 조종 자체가 어려운데다 톤당 마력비도 레오파르트 1이나 AMX-30보다는 낮아서 기동성은 앞서 언급한 전차들보단 부족했다. 그러나 당시 육상자위대에서 더 가벼운 전차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황이라 앞의 내용대로 M41 워커 불독 경전차 146대를 들여와서 잘 운용했다.
일부 밀덕들 사이에서는 61식 전차의 측면이 90식이 쏜 점착유탄(HESH)에 과관통 당했다는 소문이 만연한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선 90식 전차는 HESH탄을 운용하지 않는데, 정확히는 운용할 수 없다. 애초에 90식 전차가 사용한 라인메탈 120mm 활강포용 HESH(HET) 탄약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11] . 또한 120mm HESH이 있다고 치더라도 원리상 61식 전차의 측면에 과관통이 날 수 없다. 왜냐하면 HESH는 표면에 달라붙어서 터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탄이다. 신관이 탄 후방에 달려있어 목표에 착탄한 뒤 신관이 표적에 딱 달라붙을 때까지 격발되지 않으니 장갑이 뭉게지면서 과관통날 수 있다고 말할 수 도 있지만, 아무리 61식 전차의 측면장갑이 약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12.7mm 기관총은 막을 정도의 완전한 종이 장갑이 아닌데다가 HESH는 탄의 특징상 착탄 시 장갑이 충격만 버틸 수만 있으면 무조건 신관이 작동하면서 폭발로 장갑 구조물에 피해를 준다. 그러니 과관통을 내는 탄이라면 더이상 HESH가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말이다.[12]
민간용 엔진을 사용한 기존의 장갑차와는 다르게 61식부터는 전용의 새로운 엔진이 장착되었다. 이 엔진은 대전기 일본군 전차에 장착되었던 엔진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개발되었고 레이아웃과 배기량이 미국제 콘티넨탈 AV1790과 흡사하다. 이후 공랭과 수랭, 2행정과 4행정 사이에서 연구를 지속했고 극한환경에서의 작동성 추구와 2차대전 때 공랭식 엔진을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4행정 공랭식 엔진으로의 개발로 결정했다. 시제품 제작시절엔 엔진의 개발이 끝나지 않아 임시로 동사의 선박용 엔진이었던 V형 12기통,500hp / 2,000rpm 짜리 DL10T를 장착했다.
기술적인 문제로 파워팩을 채용하지 못하여 엔진은 차체 뒤에, 변속기를 차체 앞에 두고 변속기로의 접근을 위해서 M24 채피처럼 전면 커버를 볼트로 접합했다. 이러한 엔진과 변속기 접합 방식은 M4 셔먼 등의 2차 대전 시기 미국 전차에서 전면변속기 볼트체결은 흔히 쓰인 방식으로 전차 장갑을 볼트/리벳으로 접합하면 피격시 볼트의 머리가 파손되어 분리에 애로사항이 생길 수도 있고, 볼트 자체가 파손되어 장갑이 탈거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변속기가 앞에 있는 경우 사실 정비하기 위해서는 이 이외의 방법은 없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은 변속기 교체용 장갑을 천장에 달았지만 그에 따른 정비성 문제점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일본 기술자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있었기에 처음엔 아예 미국처럼 크로스 드라이브 방식 변속기를 포함한 파워팩 장착으로 계획을 잡았으나 기술력 부족으로 실패했고, 이후 스웨덴제 토크 컨버터를 구해와서 자동변속기의 개발을 시도했으나 출력손실이 컸던데다가 고장도 빈번하여 수동변속/조향으로 재변경이 이루어졌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변속, 조향장치는 전진 5단 / 후진 1단의 이중 차동 인더블 디퍼렌셜식 수동 변속조향 방식으로, 60년대 기준으로도 구형 방식이라 조종이 어려웠다.
조작성도 불편하여 간편했던 미제 전차에 익숙해진 전차병들은 '세계에서 가장 조종이 어려운 전차', '손목시계를 부수는 놈'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말이 씨가 된다."라더니, 실제로 조종간 레버가 튕겨나는 바람에 손목에 찬 손목시계가 박살난 조종병이 나왔을 정도이니 말 다한 셈.[13] 한편 동시기에 미국 원조로 M41 워커 불독 146대가 자위대에 들어왔는데, M41 워커 불독은 61식보다 조종이 편하고 주행 속도도 61식보다 두 배는 빨랐다. 이후 61식은 높은 90mm 주포의 화력에 힘입어 대기갑전력으로, M41 워커불독은 낮은 화력과 방어력 대신 높은 기동성에 힘입어 기갑수색전력으로 돌려졌다.
덤으로 최대 항속거리가 200km정도로 짧은것도 문제였는데, 리터당 주행거리 자체는 디젤 엔진을 쓰는 다른 전차와 비슷했지만 차내 용적이 좁았기 때문에 동시대의 다른 전차와 비교해서 연료탱크의 용량이 내부450L + 외부200L로 모자랐기 때문이었다.[14] 연구 중이던 2행정의 고출력 디젤엔진은 74식 전차에 가서야 완성되어 장착되었다. 혹은 2행정 엔진의 경우 61식이 완성될 무렵부터 개발에 착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강철의 왈츠에서는 2017년 1월 5일 업데이트때 등장하는데 최초의 일본전차다.[15]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서 일본 자위대 유닛으로 등장하는데, 일단 1세대 MBT이면서도 단순한 저코스트 유닛이 아니라 T-34/85나 무반동총 장갑차(...)와 같은 급의 15포인트짜리 스팸 전차로 등장한다. 스팸유닛으로써의 성능을 굳이 비교하자면 재현에 맞게 기동력 방어력 항속거리 모두 형편없지만 90mm 주포 덕분에 스팸 유닛 치고는 괜찮은 화력을 보여주는데, 주포 위력은 어째서인지 M47 패튼보다 강하다.(?!)
1. 개요[편집]
일본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최초로 국산 개발한 1세대 전차. 육상자위대가 운용했다.
2. 제원[편집]
3. 개발[편집]
2차대전 전후 일본은 일본에 주둔하던 GHQ와 미군에 의해 M4A3E8 셔먼과 M24 채피를 공여받아 경찰예비대(이후 육상자위대로 개편)가 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M4 셔먼과 M24 채피는 이제 성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신형 전차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원래는 미국으로부터 M47 패튼을 들여와 무장하려 했고, 실제로도 연구용으로 1대의 M47 패튼을 도입하기는 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상황에서 M47 패튼을 굴리기에는 교통 인프라를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2] 가 있는데다, 당시 미국은 M47을 유럽의 NATO 회원국들에게 우선 수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M47 패튼의 물량 부족도 우려되어 자위대에서 국산 전차 개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초기 개발 목표는 도로고 철도고 전부 열악했던 당시 일본의 인프라 사정상 무게 25톤에 90mm 포를 사용하는 것으로 요구되었다.[3] 장갑 경량화가 추구된건 당시 열약한 도로 때문이기도 했고 전차의 생산 단가를 줄이기 위한 이유였다.
하지만 25톤으로는 장갑이 매우 얇을 수 밖에 없어서 방어력이 너무 저하된다는 불만들이 나왔고, 당시 운용하던 M4A3E8은 이미 30톤대였기 때문에 새 전차의 무게가 30톤이어도 큰 문제는 없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이후 미국에서 샘플로 공여해준 국군이 운용하던 M36의 개량형인 M36 전차를 베이스로 해서 연구하면서 90mm 주포를 분석한 결과 미국제 90mm M3 주포를 라이센스 생산하여 운용하는게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다.[4]
이후 1955년에는 미국에 의해 신형 전차 개발이 허가되면서, 새로운 중형전차를 개발하려는 계획이 시작되었다. 일본 정부는 2차 대전기부터 전차와 항공기 등 병기 생산 경험이 있던 미쓰비시 중공업에게 신형 전차 설계를 의뢰했다. 개발 기간동안 총 4가지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진 후 1961년 4월에 개발이 완료되며 "61식 전차"라는 이름을 부여받게 된다.[5]
61식 전차가 한창 개발되던 도중에(STA-1, STA-2 완성 직전) 헝가리 혁명이 발생하였고, 이때 T-54를 서방이 처음으로 노획하면서 분석된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서 더 강력한 주포가 필요하다고 의견도 있었지만 시간과 예산 문제로 독자적인 대구경 포를 개발하는 대신에 신형 HVAP와 HEAT탄을 개발하는 것으로 T-54에 대항하는게 결정되었다.
3.1. 시제차량[편집]
3.1.1. STA-1[편집]
1956년 12월에 완성된 61식의 첫번째 프로토타입 모델이다. 이후 나온 버전들과는 다른 모양의 차체를 지녔으며, 전고를 낮추려다 보니 차체 길이가 길어졌지만 엔진룸이 위로 많이 솟았다. 이로 인해 후방 부각이 매우 안좋았고, 이런 상태로도 파워팩을 싣지 못했다.
3.1.2. STA-2[편집]
1957년 2월에 완성된 61식의 프로토타입 모델이다.
STA-1과 달리 보기륜이 7개 에서 6개로 줄어들었다. 다만 STA-2가 나올때는 신형 엔진이 완성되지 않은 시기라서 STA-1과 STA-2에는 민간 선박용 엔진을 활용한 미쓰비시 DL10T V12 수랭식 디젤엔진이 적용되었다.
원래는 STA-1과 STA-2만으로 요구 사항에 달성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두 차량 모두 요구된 성능에 미달하면서 채택되지 않았다. 다만 차체 레이아웃의 경우 STA-1보다는 STA-2가 더 안정적으로 평가되어 이후 개발된 프로토타입들에는 STA-2처럼 6보기륜 차체를 가진다.
STA-1과 STA-2는 61식 전차의 1차 프로토타입에 해당한다. 이후 개선이 반영된 STA-3와 STA-4는 2차 프로토타입에 해당한다.
3.1.3. STA-3[편집]
1959년 1월에 완성된 61식의 프로토타입 모델이다.
포구제퇴기의 변경,[6] 엔진 출력 증강, 휴대 기관 총탄 증가, 제한 중량까지의 여유가 생겨 방어 장갑을 추가하고 리볼버식 자동 장전 장치의 채용 등이 이루어졌다. 이 때부터 광학 거리 측정기를 해치부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3.1.4. STA-4[편집]
1960년 11월에 완성된 61식의 프로토타입 모델이다.
포탑 위의 해치부분이 M48 패튼의 것과 비슷하다. 포탑 뒤의 튀어나온 부분은 STA-3부터 있던 자동장전장치 장착을 고려했던 흔적인데, 결국 자동 장전 장치가 취소되면서 다시 수동 장전식으로 변경되었다. 제 2차 제식차량의 테스트 결과 STA-4를 기반으로 더욱 장갑을 강화, 포탑을 후방으로 밀어 조종석에 여유를 만들고, 다른 세부 사항의 변경도 추가했다. 이것이 쇼와 36년인 1961년 4월, 61식 전차로서 제식화되어 양산 및 배치가 시작되었다.
4. 배치 및 운용[편집]
1961년에 채택되어 일선 부대에 배치가 시작되었고, 1975년에 생산이 종료될 때까지 총 560대가 생산되었다. 후속 전차인 74식 전차와 그의 후속 전차인 90식 전차가 배치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해당 전차들의 생산량 부족으로 장기간 현역에서 사용되었고, 모든 차량이 퇴역을 마친 것은 2001년 3월이 되어서였다. 일본제 무기이므로 평화헌법에 따라 수출실적은 있을 수가 없다.[7]
1976년 9월 6일 빅토르 벨렌코 중위가 MiG-25를 조종하여 하코다테 공항에 착륙한 망명 사건 당시 하코다테시에 주둔한 육상자위대 북부방면 제11사단 제28보통과 연대가 주둔지 행사용으로 준비한 61식 전차들을 소련군의 하코다테 공항 급습시 투입할 예정이었다.
5. 특징[편집]
61식 전차는 배치 당시 기준으로 동시기 다른 나라들의 1세대 전차/중형전차들과 비교해서 성능이 공수주 3요소 중 어느 한쪽으로도 특출나지 않고 어딘가 하나씩 부족했다고 정의할 수 있다. 장갑이 그렇게 튼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만큼 기동력이 뛰어나지도 않았으며 대전차 공격능력은 포 구경이 비교적 작아서 한계가 일찍 찾아왔다. 다만, 2차 대전 당시 구시대적 설계의 일본군 전차들보다는 틀림없이 많은 발전을 이룬 전차임은 틀림없으며, 당시 기준으로 90mm급 주포는 나름 세계 수준을 맞춘 것이기도 했다. 사실 61식 전차의 성능이 당대의 중형전차나 1세대 주력전차들과 비교해서 애매해진 이유로는 당시 일본 교통 인프라에 맞춰서 빨리 양산할 목적으로 개발된 배경과 등장 자체가 다른 1세대 전차들보다 늦었다는 점이 있다.
애매한 성능 문제 때문에 당대의 다른 전차들보다는 성능이 모자르다고 까이는 부분도 있지만 일단 무리하게[8] 만들어진 부분들도 있던 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 전차들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룬 셈이다. 일단 61식 전차의 성능이 다른 나라의 전차들보다 다소 애매하기는 했지만 일단 전후 처음 자체 개발한 기갑차량임에도 대다수의 부품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하고, 양산이나 부품 수급도 안정적으로 진행하는데는 성공했다. 덤으로 61식 전차를 개발하며 쌓은 경험과 기술들이 74식 전차를 만드는 토대가 되었으니 현대 일본 전차 개발사에선 나름 의미있는 전차라고 볼 수 있다.
61식 전차는 2001년 3월에 최종적으로 모두 퇴역되었는데 40년 가까이 운용하면서 거의 순정 상태 그대로 운용되었다. 물론 운용되는 동안 연막탄 발사기와 적외선 서치라이트를 다는 등 일부 전투력을 개선을 위한 개조는 이루어졌지만, 다른 1세대 전차들이 급변하는 전장에 대응하기 위해서 수많은 개조를 다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개량을 처음부터 아예 안하려고 한것은 아니었다. 60년대 중반에는 화력 증강을 위해 신형 전차를 만들 것이냐, 기존 61식에 105mm 로열 오드넌스 포를 다는 등의 업그레이드를 할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61식 업그레이드를 포기하는 대신에 105mm L7으로 무장한 신형 전차를 만들기로 결정되면서 74식 전차가 개발되었다.
5.1. 무장[편집]
미국제 M3를 라이센스 생산한 90mm 주포를 장착해서 대전차 능력 부분에선 어느정도 괜찮은 수준은 나왔다. 새로 개발한 성형작약탄을 사용하면 당시 소련 극동군구의 전차들은 무난하게 격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9] 다만 헝가리 혁명 이후 당시 미국과 서유럽의 우방국들은 105mm 로열 오드넌스 L7으로 갈아타기 시작하고 있었고 소련에서는 T-62를 시작으로 115mm 활강포가 배치되고 있던 상황이라 60년대 중반 기준으로는 다른 우방국이나 적성국 소련에 비하면 화력이 조금 빈약한 수준이었다.
5.2. 장갑[편집]
장갑은 당시 1세대 전차들과 다를게 없이 평범한 단일 균질압연장갑과 주조장갑을 사용했다. 다만 35톤이라는 무게 제한 덕분에 두께는 대체적으로 얇은 편이었다.
1950년대 중반 당시에는 발전한 성형작약탄의 등장이 시작되면서 서유럽을 중심으로 장갑 무용론이 대두되던 시대라 AMX-30이나 레오파르트 1같은 장갑은 얇지만 기동성이 좋은 전차가 개발 트렌드 중 하나여서[10] 방어력 관련해서 유난히 튈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포탑 장갑은 헐 다운 전투를 상정해서 미국의 중형전차와 1세대 전차들처럼 어느정도 두께를 뒀기 때문에 레오파르트 1이나 AMX-30보다 더 두꺼웠다.
하지만 차체 방어력은 레오파르트 1이나 AMX-30과 별로 차이가 안나는 반면 항속거리 문제를 빼고 봐도 조종 자체가 어려운데다 톤당 마력비도 레오파르트 1이나 AMX-30보다는 낮아서 기동성은 앞서 언급한 전차들보단 부족했다. 그러나 당시 육상자위대에서 더 가벼운 전차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황이라 앞의 내용대로 M41 워커 불독 경전차 146대를 들여와서 잘 운용했다.
일부 밀덕들 사이에서는 61식 전차의 측면이 90식이 쏜 점착유탄(HESH)에 과관통 당했다는 소문이 만연한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선 90식 전차는 HESH탄을 운용하지 않는데, 정확히는 운용할 수 없다. 애초에 90식 전차가 사용한 라인메탈 120mm 활강포용 HESH(HET) 탄약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11] . 또한 120mm HESH이 있다고 치더라도 원리상 61식 전차의 측면에 과관통이 날 수 없다. 왜냐하면 HESH는 표면에 달라붙어서 터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탄이다. 신관이 탄 후방에 달려있어 목표에 착탄한 뒤 신관이 표적에 딱 달라붙을 때까지 격발되지 않으니 장갑이 뭉게지면서 과관통날 수 있다고 말할 수 도 있지만, 아무리 61식 전차의 측면장갑이 약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12.7mm 기관총은 막을 정도의 완전한 종이 장갑이 아닌데다가 HESH는 탄의 특징상 착탄 시 장갑이 충격만 버틸 수만 있으면 무조건 신관이 작동하면서 폭발로 장갑 구조물에 피해를 준다. 그러니 과관통을 내는 탄이라면 더이상 HESH가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말이다.[12]
5.3. 기동[편집]
민간용 엔진을 사용한 기존의 장갑차와는 다르게 61식부터는 전용의 새로운 엔진이 장착되었다. 이 엔진은 대전기 일본군 전차에 장착되었던 엔진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개발되었고 레이아웃과 배기량이 미국제 콘티넨탈 AV1790과 흡사하다. 이후 공랭과 수랭, 2행정과 4행정 사이에서 연구를 지속했고 극한환경에서의 작동성 추구와 2차대전 때 공랭식 엔진을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4행정 공랭식 엔진으로의 개발로 결정했다. 시제품 제작시절엔 엔진의 개발이 끝나지 않아 임시로 동사의 선박용 엔진이었던 V형 12기통,500hp / 2,000rpm 짜리 DL10T를 장착했다.
기술적인 문제로 파워팩을 채용하지 못하여 엔진은 차체 뒤에, 변속기를 차체 앞에 두고 변속기로의 접근을 위해서 M24 채피처럼 전면 커버를 볼트로 접합했다. 이러한 엔진과 변속기 접합 방식은 M4 셔먼 등의 2차 대전 시기 미국 전차에서 전면변속기 볼트체결은 흔히 쓰인 방식으로 전차 장갑을 볼트/리벳으로 접합하면 피격시 볼트의 머리가 파손되어 분리에 애로사항이 생길 수도 있고, 볼트 자체가 파손되어 장갑이 탈거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변속기가 앞에 있는 경우 사실 정비하기 위해서는 이 이외의 방법은 없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은 변속기 교체용 장갑을 천장에 달았지만 그에 따른 정비성 문제점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일본 기술자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있었기에 처음엔 아예 미국처럼 크로스 드라이브 방식 변속기를 포함한 파워팩 장착으로 계획을 잡았으나 기술력 부족으로 실패했고, 이후 스웨덴제 토크 컨버터를 구해와서 자동변속기의 개발을 시도했으나 출력손실이 컸던데다가 고장도 빈번하여 수동변속/조향으로 재변경이 이루어졌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변속, 조향장치는 전진 5단 / 후진 1단의 이중 차동 인더블 디퍼렌셜식 수동 변속조향 방식으로, 60년대 기준으로도 구형 방식이라 조종이 어려웠다.
조작성도 불편하여 간편했던 미제 전차에 익숙해진 전차병들은 '세계에서 가장 조종이 어려운 전차', '손목시계를 부수는 놈'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말이 씨가 된다."라더니, 실제로 조종간 레버가 튕겨나는 바람에 손목에 찬 손목시계가 박살난 조종병이 나왔을 정도이니 말 다한 셈.[13] 한편 동시기에 미국 원조로 M41 워커 불독 146대가 자위대에 들어왔는데, M41 워커 불독은 61식보다 조종이 편하고 주행 속도도 61식보다 두 배는 빨랐다. 이후 61식은 높은 90mm 주포의 화력에 힘입어 대기갑전력으로, M41 워커불독은 낮은 화력과 방어력 대신 높은 기동성에 힘입어 기갑수색전력으로 돌려졌다.
덤으로 최대 항속거리가 200km정도로 짧은것도 문제였는데, 리터당 주행거리 자체는 디젤 엔진을 쓰는 다른 전차와 비슷했지만 차내 용적이 좁았기 때문에 동시대의 다른 전차와 비교해서 연료탱크의 용량이 내부450L + 외부200L로 모자랐기 때문이었다.[14] 연구 중이던 2행정의 고출력 디젤엔진은 74식 전차에 가서야 완성되어 장착되었다. 혹은 2행정 엔진의 경우 61식이 완성될 무렵부터 개발에 착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6. 파생형[편집]
- 61식 B형 : 적외선 서치라이트를 달았다.
- 61식 후기형 : 연막탄 발사대 설치.
6.1. 67식 교량전차[편집]
6.2. 70식 전차회수차[편집]
61식 기반의 구난전차.
7. 미디어[편집]
7.1. 게임[편집]
7.1.1. 강철의 왈츠[편집]
강철의 왈츠에서는 2017년 1월 5일 업데이트때 등장하는데 최초의 일본전차다.[15]
7.1.2. 워게임: 레드 드래곤[편집]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서 일본 자위대 유닛으로 등장하는데, 일단 1세대 MBT이면서도 단순한 저코스트 유닛이 아니라 T-34/85나 무반동총 장갑차(...)와 같은 급의 15포인트짜리 스팸 전차로 등장한다. 스팸유닛으로써의 성능을 굳이 비교하자면 재현에 맞게 기동력 방어력 항속거리 모두 형편없지만 90mm 주포 덕분에 스팸 유닛 치고는 괜찮은 화력을 보여주는데, 주포 위력은 어째서인지 M47 패튼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