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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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왕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Georg Friedrich Prinz von Preuß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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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
(Georg Friedrich Ferdinand von Preußen)
출생
1967년 6월 10일
서독 브레멘
배우자
이젠부르크의 조피 공녀 (2011년 결혼)
자녀
카를 프리드리히, 루이 페르디난트, 에마 마리, 하인리히
아버지
프로이센의 루이 페르디난트 왕자
어머니
카스텔뤼덴하우젠의 도나타 여백작
형제
코르넬리 체칠리에
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
2.2. 백부들과의 소송전
2.3. 결혼
2.4. 근황
3.1. 조상
4. 여담



1. 개요[편집]


호엔촐레른 가문의 현 수장.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왕위 요구자이며, 사실상 독일 내 모든 작위 요구자들의 대표다. 큰아버지들의 귀천상혼과 후계자인 아버지가 1977년 군 훈련 중 사고로 요절하자 후계자가 되었고, 1994년 할아버지가 사망하고 지위를 계승했다.

독일 초대 황제 빌헬름 1세의 직계 6세손[1]이며, 러시아 제국니콜라이 1세[2][3], 영국빅토리아 여왕[4]의 6세손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파일:루이 페르디난트 주니어의 결혼식.jpg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의 부모인 루이 페르디난트 주니어와 도나타 폰 카스텔뤼덴하우젠 여백작.

1976년 루이 페르디난트 주니어와 도나타 폰 카스텔뤼덴하우젠 여백작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루이 페르디난트 주니어는 할아버지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의 4남 3녀 중 삼남으로 원래는 후계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두 형이 귀천상혼을 하면서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었다.

하지만 1977년 아버지 루이 페르디난트 주니어가 군 훈련 중 사고로 요절하자 게오르크는 어린나이에 다음 후계자가 되었다. 여동생 코르넬리에 체칠리에는 유복녀였고 아버지 사후인 1978년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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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성년이 될 때까지 할아버지 루이 페르디난트와 지냈다.[5]

1994년 할아버지 루이 페르디난트가 사망하자 18살의 나이로 호엔촐레른 가문의 수장이 되었다.

파일:20대 초반의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왕자.jpg
20대 시절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왕자.

2.2. 백부들과의 소송전[편집]


루이 페르디난트의 장남 프리드리히 빌헬름(1939년생)과 차남 미하엘(1940년생)은 귀천상혼을 해서 수장 자리에 대한 계승자격이 없었는데, 결혼 당시에는 자신들의 계승자격이 박탈되는 걸 인정했다가 조카인 게오르크가 수장 자리에 오르고 난 뒤에 귀천상혼이 인간평등에 어긋나는 위헌이라며 독일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 대법원까지 간 끝에 대법원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가 프로이센 왕가의 적법한 수장이라는 것을 인정하였으나, 재산은 그의 백부들에게도 분배되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사실상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미하엘이 패소했다. 애초에 상속권 박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거였으면 승계가 이루어진 1994년 당시에 제기했어야 했는데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미하엘이 너무 늦게 소송을 제기한 것이 패소의 큰 원인이 되었다.[6]


2.3. 결혼[편집]


파일: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의 결혼식.jpg
큰아버지들이 귀천상혼을 하는 바람에 동등결혼을 한 삼남이였던 그의 아버지 루이 페르디난트의 아들인 자신이 할아버지의 뒤를 잇는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 때문에 당주가 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또한 동등결혼을 해야 했고, 2011년 슈탄데스헤어인 이젠부르크 가문의 조피와 결혼했다. 조피의 고조할머니 마리아 루이자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방계인 합스부르크-토스카나의 여대공이며[7], 조피의 언니인 카타리나 또한 합스부르크 가의 방계인 합스부르크-에스테 가의 대공 마틴[8]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장남 칼 프리드리히와 차남 루이 페르디난트 3세는 쌍둥이 형제로 2013년 생이다. 2015년에 장녀 엠마 마리, 2016년에 삼남 하인리히가 태어났다.


2.4. 근황[편집]


파일:도나타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와 코르넬리에 체칠리에.jpg
어머니 도나타, 여동생 코르넬리에 체칠리에와 함께.[9]

2014년에는 네덜란드 도른에 있는 도른 하우스의 소유권을 돌려달라고 네덜란드 정부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10]

2015년 어머니 도나타 폰 올덴부르크가 사망했다. 도나타는 남편과 사별 후 첫째 시누이의 전 남편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올덴부르크 공작과 결혼했다. 어머니와 고모부가 재혼한 것.

2019년에는 독일 영토 내에 있는 체칠리에 호프 궁전을 비롯한 호엔촐레른 가문의 유산들을 돌려달라고 독일 정부 산하 프로이센문화유산재단에 소송을 걸었지만 기각되었다. 거기다 현 폴란드, 러시아 영토에 있는 2차대전 종전 당시까지만 해도 프로이센 구 왕가 소유였던 성이나 보석, 초상화 등등의 재산들을 2차대전 종전 직후 소련이 불법으로 몰수해갔었다며 소련 해체 이후에 원 주인인 프로이센 왕가가 아니라 현 독일 정부가 소유해간 것에 대해 돌려달라는 소송도 했다. 현 독일 정부에서는 나치 전범이거나 전범의 후손이 아니라면 소련이 동독을 장악하면서 동독 정부에 뺏긴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법률이 있으나 전범이거나 전범 후손이라면 돌려받을 수 없고 독일 정부에 귀속된다는 법이 있는데, 독일 정부에서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의 증조부인 빌헬름 폰 프로이센 황태자가 나치와 친하게 지냈다고 주장하고는 그걸 근거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에게 돌려주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는 히틀러가 사적으로 군주제를 매우 혐오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자신의 가문은 히틀러와 나치와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고 1933년 군사 퍼레이드에 빌헬름 황태자와 히틀러가 나란히 같이 찍은 사진은 히틀러가 초청을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가서 찍은 사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다.[11]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을 성적으로 아주 수위 높게 풍자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의 코미디언이자 ZDF 소속 방송인인 얀 뵈머만 (Jan Böhmermann)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와 그가 속한 프로이센 왕가를풍자하면서 비난했고 여론 역시 평소 독일 구 왕가에 우호적이던 여론들조차도 지금도 여전히 부유한데다[12] 이미 성이며 보물이며 초상화며 기념품이며 온갖 재산들과 문화유산들을 4천 점 넘게 갖고 있으면서 국가에 뭘 더 달라고 요구하냐고 했다.

2023년 봄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왕자는 예술품에 대한 보상을 포기하고 모든 해당 소송을 철회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애초에 2022년 독일 쿠데타 모의로 인해 독일의 구 왕가 전체에 대해 이미지가 안 좋아져서 행동을 사리지 않으면 비폭력적으로 복고를 주장하는 것도 금지되고, 있는 전 재산마저 뺏기고 국외로 추방될 수도 있기 때문. 그래도 아직까진 독일 구 황가에 대한 평판은 대체로는 좋은 편이다.

3. 가족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호엔촐레른 가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 조상[편집]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프로이센의 왕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Georg Friedrich, Prince of Prussia)
프로이센의 루이 페르디난트 왕자
(Prince Louis Ferdinand of Prussia)
프로이센의 왕자 루이 페르디난트
(Louis Ferdinand, Prince of Prussia)
독일 제국의 황태자 빌헬름[13]
(Wilhelm, German Crown Prince)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체칠리에 여공작
(Duchess Cecilie of Mecklenburg-Schwerin)
러시아 제국키라 키릴로브나 여대공
(Grand Duchess Kira Kirillovna of Russia)
러시아 제국의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14]
(Grand Duke Kirill Vladimirovich of Russia)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공녀[15]
(Princess Victoria Melita of Saxe-Coburg and Gotha)
카스텔뤼덴하우젠의 도나타 여백작
(Countess Donata of Castell-Rüdenhausen)
카스텔뤼덴하우젠 공 지그프리트
(Siegfried, Prince of Castell-Rüdenhausen)
카스텔뤼덴하우젠 공 카지미르
(Casimir, Prince of Castell-Rüdenhausen)
벤팅크의 메흐틸데 여백작
(Countess Mechtilde of Bentinck)
졸름스라우바흐의 이레네 여백작
(Countess Irene of Solms-Laubach)
졸름스라우바흐 백작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George Frederick, Count of Solms-Laubach)
졸름스호헨졸름스리히의 요한나 공녀
(Princess Johanna of Solms-Hohensolms-Lich)


4. 여담[편집]


  • 사업가로 지내고 있으며 본인이 가문 수장으로 있는 프로이센에서 브랜드를 딴 맥주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 여동생 코르넬리에 체칠리에는 발달장애다.
  • 사촌들로는 키라 마리나 비스마르크[16], 파울 블라디미르 폰 올덴부르크 공작[17] 등이 있다.
  • 로마노프 황가의 수장인 마리야 여대공진외당고모-내당조카간이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의 할머니인 키라 여대공이 마리야 여대공의 고모다.
  • 차남에게 할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줬다. 참고로 고종사촌형인 파울 블라디미르 폰 올덴부르크도 막내 아들에게 같은 이름을 물려줬다. 게오르크의 어머니가 사별한 이후 전 고모부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올덴부르크 왕자와 재혼했다.
  • 억만장자 콜롬비아계 미국인 사업가[18]와 결혼한 걸로 유명한 샬롯 웰즐리 부인은 게오르크의 6촌 여동생이다. 샬롯 웰즐리의 외할아버지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가 루이 페르디난트의 막내 남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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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빌헬름 1세(1797 ~ 1888) - 프리드리히 3세(1831 ~ 1888) - 빌헬름 2세(1859 ~ 1941) - 빌헬름 폰 프로이센(1882 ~ 1951) -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1907 ~ 1994) - 루이 페르디난트 주니어(1944 ~ 1977)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1976 ~ )[2] 니콜라이 1세(1796 ~ 1855) - 알렉산드르 2세(1818 ~ 1881) -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1853 ~ 1920) - 빅토리아 멜리타(1876 ~ 1936) - 키라 키릴로브나 여대공(1909 ~ 1967) - 루이 페르디난트 주니어(1944 ~ 1977)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1976 ~ )[3] 니콜라이 1세(1796 ~ 1855) -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1832 ~ 1909) -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여대공(1860 ~ 1922) - 체칠리에 아우구스테 마리(1886 ~ 1954) -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1907 ~ 1994) - 루이 페르디난트 주니어(1944 ~ 1977)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1976 ~ )[4] 고조부인 빌헬름 2세빅토리아 여왕의 외손자다. 이후 계보는 빌헬름 1세와 동일.[5] 어릴 땐 금발이었지만 자라면서 진한 갈색으로 변했다.[6] 아버지인 루이 페르디난트가 살아있을 때만 하더라도 귀천상혼으로 계승권 및 재산상속을 포기한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며, 아무런 말도 못하다가 20살도 안된 어린 조카가 당주 자리에 오르자마자 기다렸단듯이 인간평등을 들먹이며 이의를 제기했으니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7] 토스카나 대공 레오폴도 2세의 9녀.[8] 카를 1세의 차남 로베르트 대공의 3남으로, 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조카이다.[9] 장애로 인해 발육이 더디어 오빠와는 달리 단신이다.[10] 네덜란드는 군주가 존재하는 입헌군주국인지라 왕가 구성원들 개개인들은 같은 왕족들인 프로이센 왕가에 동정적일 여지는 있다. 그러나 프로이센 왕가와 네덜란드 사이에 직접적인 악연은 없다 해도 엄연히 네덜란드도 2차대전의 피해국이어서 프로이센 왕실에 부동산을 반환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 반환을 거절한 것이다.[11] 거기다가 전 총리였던 중도우파 앙겔라 메르켈은 몰라도, 현 대통령인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와 현 총리 올라프 숄츠가 군주제라면 그렇게 치를 떠는 강경 좌파성향 독일 사민당 출신인데 들어줄 리가.[12] 후술하듯 게오르크 프리드리히는 가문의 이름을 브랜드로 한 프로이센 맥주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매출도 쏠쏠한 편. 이것도 능력인 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업을 하겠다고 뛰어들다 경영 수완이 없어 사업을 말아먹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13] 빌헬름 2세의 장남이다.[14] 알렉산드르 2세의 손자이다.[15]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이자 알렉산드르 2세의 외손녀이다.[16] 둘째 고모 키라의 외동딸.[17] 첫째 고모 마리 체칠리에의 장남.[18] 알레한드로 산토 도밍고(Alejandro Santo Domingo), 1977년 생으로 모나코 공녀 카롤린 그리말디의 장남 안드레아 카시라기 부인 타티아나 산토 도밍고의 삼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