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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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평점
2.1. 평론가 평
3. 전쟁 관련 묘사
4. 인물 해석 및 묘사
4.1. 고려 측 인물
4.2. 거란 측 인물
4.3. 호불호 요소
5. 기타 반응


1. 개요[편집]


2023~2024년에 방영한 KBS 대하드라마의 34번째 작품 고려거란전쟁의 평가를 다룬 문서.


2. 평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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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평론가 평[편집]



This well-written Korean historical series will keep you hooked its bloody tale of war and survival.

- 푸아 지웨이 (NME) #[1]}}}


이쯤 되면 시청료는 물론 270억 제작비도 전혀 아깝지 않다.

- 정덕현 (엔터미디어) #[2]}}}


3. 전쟁 관련 묘사[편집]


전작 태종 이방원에서 전투씬의 연출이 너무 처참하다는 평이 많았기에 본작에서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우려가 있었다. 다행히 프롤로그 장면을 보면 전쟁 장면에서는 나름대로 대열을 유지하는 병사들의 장면을 높게 칠만하고, 프롤로그에서 1인칭 시점으로 검차 아래로 적병 다수가 파고드는 장면이나 한국 사극에서 거의 처음으로 검차를 선보인 것도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장수가 전장에서 싸울 때에 투구를 벗지 않는다는 점도 다수의 KBS 대하드라마와는 달리 잘 묘사되었다.[3]

기존 사극에서 잘 지켜지지 않았던 전쟁에서 진형을 갖추고 처절하게 싸우는 묘사[4] 외에 프롤로그에서 중갑기병이 등장할 때의 연출이 크게 호평을 받았다. 특히 중갑기병대의 경우 잠깐의 등장이지만 역대 대하사극 최초로 부대 전원이 찰갑 형태의 갑옷과 면갑까지 갖춰 입고 말에게도 마갑을 입힌 형태로 등장하여, 재현도도 높은 동시에 위엄이 넘치는 비주얼을 보여주었다.[5] 또한 이전 사극에서 잘 묘사되지 않았던 낫이나 쇠뇌를 쓰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였으며, 비록 당시 시대상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지만[6] 중세의 무게추식 투석기 사용법을 정확하게 재현하였다.[7]

전쟁 자체의 묘사와는 별개로 전쟁을 막기 위한 신하들과 현종의 노력이 비중 있게 나온 점 역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본작은 전쟁을 다루면서도 전쟁이 결코 영광스러운 행위가 아니라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명시하였으며, 전쟁이 양국뿐만 아니라 다른 교류국에도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대신들의 발언을 통해 잘 묘사하였기 때문이다. 본작의 고려는 전쟁을 막기 위해 거란에 숙이는 걸 당연시하며, '하늘 아래 부끄럼 없이' 목종은 시해당하지 않았다는 거짓말까지 불사한다. 특히 목종의 사인(死因)을 숨기는 사기는 기존 사극의 한국 묘사에선 거의 금기에 가까운 것이지만,[8] 본작은 이런 뻔뻔하고 비겁한 짓을 해서라도 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는 걸 계속해서 강조한다.

또한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동원령 선언을 통한 군사 징집, 인원 수에 맞는 식량을 비축하는 과정, 검차 등의 무기를 제작하는 등의 장면이 상세하게 나온 점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는 각 분야에서 활발한 준비가 이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이러한 장면을 그동안의 대하드라마에서는 이상하게도 보기 힘들었으며, 그나마 나오던 것도 군대 지휘 정도가 전부였기에 이 또한 장족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9]

프롤로그 장면 한정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뭉개져서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는 한국 영상매체 고질적인 문제의 재발이라고 할 수 있기에 화면에 제대로 자막을 삽입하면 보는 데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10] 5회 말미의 흥화진 전투부터 피드백이 되었는지 고려군과 거란군 장면에서 모두 자막이 삽입되었다. 그 외에 일점사 같은 용어를 해설 자막까지 동원해가며 차용한 것은 현대어투 치고도 다소 어색하다는 반응이 있었다. 극 중에서 일점사가 현대의 사격 분야도 아니고 게임 분야에서 사용되는 뜻으로 나오기도 했고, 사극에서 자막은 당대의 표현을 해설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더욱 그렇다.


4. 인물 해석 및 묘사[편집]


1회부터 세 명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현종, 강감찬, 양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우선 강조나 고려 황실의 묘사부터 먼저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리하게 스토리를 현종이나 강감찬에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목종과 천추태후, 강조의 서사 모두 비추어줬다. 이에 반해 강감찬은 1회에서는 프롤로그인 전쟁 장면에 8분 가량만 출연하였고 현종도 1회에서 반쯤 지나서야 나온다.[11] 주인공들을 포함하여 극의 인물들의 대사가 기존 KBS 사극 같진 않고 대사가 비교적 가벼운 편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점이 오히려 젊은 층을 유입하기에 좋은 점일 수도 있다. 과거 사극들은 그 편수가 길고 내용도 길게 이어가는 편이었고, 당시 시대의 한자나 사자성어를 인용하는 일도 자주 있었던 상황과 지금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12]


4.1. 고려 측 인물[편집]


방영 첫 주에는 현종(대량원군)의 인물 해석에 관하여 그가 자존심만 앞세우며 태후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현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 하는 철없는 모습을 보여주어 좀 아쉽다는 평가가 있었다.[13] 일단 현종은 17~18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이후로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고 누구보다 냉정한 판단을 할줄 아는 인물이었으며, 본작의 큰 관건은 몇 개월 후면 왕위에 올라 엄청난 결정들을 해야 할 현종이 저렇게 저돌적인 성격에서 여요전쟁이라는 시급한 상황을 어떻게 냉정하게 대처하는지를 묘사하는 방식일 것이다.

방영 둘째 주부터는 반응이 더 좋아졌는데[14], 3회까지의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만 하는 철없고 저돌적인 사람이었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승려들까지 입막음으로 죽이려 하는 자객들을 보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각성하고 왕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 나온다. 또한 자신을 죽이려던 최 상궁과 대화하며 누구였는지를 기억해내어 과거에 쫓겨날 때 달래준 일에 대한 감사를 표하였고, 후에 목종의 명으로 그를 지키러 온 군사들이 나타나자 그녀에게 찾지 않겠다고 말하여 빨리 도망갈 것을 재촉한다. 이렇게 본작에서는 현종의 초반부 캐릭터를 아직 미숙하지만 성장이 빠르고, 위기의 순간에 좋은 판단력을 보여주며 적이라도 일단 최소한의 자비를 베푸는 인물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4회에서 현종이 고려와 거란의 관계에 대해 빠르게 배우는 모습 및 비록 즉위 직후에는 계속 밀리지만, 결국 논리정연하게 강조를 질책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의 캐릭터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었다.

백성현이 연기한 목종의 경우 그간 대하사극에서 묘사된 웬만한 암군과는 다르게 재상들을 믿어주는 모습, 황실의 후계만큼은 신경 쓰는 모습, 그리고 의외로 백성들을 사랑하는 면모를 보여 여러 복합적인 캐릭터성으로 인해 많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호감형 캐릭터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대하사극 치고는 천추태후 이후로 오랜만에 1회부터 동성애나 근친, 애정 묘사 같은 게 적극적이라 화제가 된 면도 있다.[15] 또한 그동안 거의 부각되지 않았던 고려 전기의 성문화[16] 및 당시 고려 왕실의 개족보를 어느 정도 조명하였다.[17] 덕분에 초반부에는 현종보다는 오히려 목종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가 극 중 시해당한 이후에도 그의 이른 퇴장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원종이 연기한 강조는 3~4회가 되어서야 권신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서 1~2회에서 묘사된 덕장으로서의 면모와 크게 대조되는 바람에 캐릭터 변화가 너무 빠른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5회에 들어서 현종의 결단을 내리는 태도에 대해 사실상 인정하였고, 그가 후에 부월을 하사하면서 전쟁에서 이기면 아무도 그를 역적으로 매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격려의 말을 전하자 눈물을 흘리며 충성을 바치는 장면은 훗날 강조의 최후에 대한 좋은 빌드업으로 호평을 받았다.[18]


4.2. 거란 측 인물[편집]


거란국 인물들의 묘사에 공을 정말 많이 들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목민족의 부족제와 농경민족의 군현제를 연합한 이원(二元) 체제를 같은 국가 내에 공존하는 거란족 인물들과 한족 인물들을 통해 잘 묘사하였으며, 유목민족으로서의 생활상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몽골을 방문하여 실제 유목민들의 생활상을 촬영한 점 덕분에 호평을 받았다. 갑옷 외에 변발 양식 등도 높은 수준으로 재현되었기에 일각에서는 고려 측 재현보다 더 낫다고 평하였다.


4.3. 호불호 요소[편집]


일단 극이 전개되면서 강감찬, 현종이 극의 중심으로 등극하여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기 시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드라마 초반부에서는 호불호가 갈린다는 의견이 존재하는데, 몇몇 시청자들은 아마도 과거의 대하사극들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극의 초반을 이끌어 갔어야 하는 천추태후, 김치양에 노련한 배우를 배치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나름의 위기감을 조성하는 역할을 했어야 하는 천추태후는 연기의 무게감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고, 김치양은 비중이 적어 권신이라는 느낌조차 주지 못했다.[19]

목종의 경우 혼군으로 묘사된 것에 대해 은근히 위화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가 처음 등장하기 직전에 개경을 묘사할 때에 융성하고 풍요로운 시장의 모습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고려의 사정이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시청자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백성들의 삶을 빈곤하게 묘사하거나[20] 차라리 목종이 직무를 유기한 상태에서 재상들이 업무를 보고 판단을 내려 고려를 주도해 나가는 내용을 더 삽입했다면 나았을 부분이라는 의견도 있다.[21] 다만 극 중 목종에 대한 묘사가 마냥 멍청하고 무식한 군주로 그려지진 않거니와, 역사적으로도 민생에 신경을 쓴 덕분에 당대 민심이 호의적이었다는 사실을 볼 때 오류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다.[22]

또한 거란군 엑스트라들은 작위적인 느낌이 대놓고 들 정도로 과장된 연기를 하고 있는데, 특히 6회에서 고려 사람들을 포로로 납치한 거란 병사들을 인간이 아닌 악마적 존재로 묘사하기 위해 야만성을 보여준답시고 뜬금없이 원시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차용하여 동물처럼 소리를 내거나 행동을 묘사하는 1차원적 방식을 동원했다.[23] 물론 한국 사극 특성상 적군 묘사가 완전히 공평할 수는 없지만, 거란 고위층들은 상당히 카리스마 있고 현실적인 악역으로 묘사한 반면, 유독 병사 묘사만큼은 기존 한국 사극들의 그 어떤 적군 엑스트라보다도 과장된 게 아이러니하다.


5. 기타 반응[편집]


각 화가 일정한 분량이 아니라서 1~4회는 60여분 정도의 안정된 분량이었지만 5회부터는 50분 이하까지 떨어지는 등 분량이 약간 일정하지 않은 면이 있고 중간 광고 투입으로 인해 분위기나 긴장감이 갑자기 꺼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느낌도 있다.[24] 특히 5회는 49분이라서 방영 당시에 생각보다 일찍 끝나 놀랐다는 얘기가 있었다.[25]

5회 마지막 장면에서 거란군의 투석기들이 불이 붙은 수많은 화염구를 흥화진 성에 던지고 이에 덮쳐지는 양규가 이걸 멍하니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딱히 어떤 역사 장면을 오마주한 게 아니라 토탈 워: 삼국 DLC 팔왕의 난 트레일러에서 사마영사마옹사마예와 공성전에서 대결하는 장면 중 성에 던져진 화염이 자신에게 떨어지자 사마예가 이를 바라보는 장면을 오마주한 것으로 추측된다는 글들이 있었다.# 두 장면 모두 당시에는 없었던 회회포를 사용한다는 점도 비슷하다.[26]

[1] 영국의 유명 잡지 NME의 해당 기사는 4회까지 시청하고 작성된 리뷰이며, 본작이 여요전쟁 시기를 고전적인 스타일의 사극으로 조명한 점 및 목종 역의 백성현의 연기와 강감찬 대 강조의 대립을 호평하였다. 또한 현종의 성장을 기대하는 듯한 말을 적기도 하였다.[2] 해당 기사는 6회까지 시청하고 작성된 리뷰이며, 문화예술평론가 정덕현은 본작이 묘사하려는 것은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전쟁의 이유와 양상 및 소위 '난세의 영웅들'이 싸우려는 이유라고 평하였다.[3] 이전 KBS 대하드라마 중에서 전장에서 꼬박꼬박 투구를 착용시킨 마지막 작품이 13년 전근초고왕이다.[4] 이런 처절함이 가장 잘 묘사된 초반부 회차가 6회인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심한 부상을 입으면서 싸우는 양국의 병사들, 화살을 너무 많이 쏘아 시위가 망가져서 피범벅인 손으로 다시 각궁을 재정비하는 양규, 틈틈이 물을 마시고 밥을 먹다가 입에 묻은 밥풀을 뗄 시간도 없이 분전하는 고려군, 피로 물들어진 성벽 아래에 쌓인 거란군의 시체 등의 여러 장면들을 통해 잘 묘사하였다. 거란군이 고려 사람들을 포로로 잡은 다음 방패막으로 삼아 성벽을 올라오려고 할 때에도 고려군이 고뇌 끝에 결국 화살을 쏘는 묘사 역시 비슷한 평을 받았다.[5] 위기의 순간 전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뿔나팔을 불며 언덕 위에서 나타난 대규모 기병대의 모습이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의 로한 구원군을 연상케 했다는 평가도 많다.[6] 작중 등장한 무게추식 투석기는 망고넬에서 트레뷰셋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과도기적 형태로, 무게추와 인력 밧줄 꾸러미를 함께 사용하는 모습이다. 이와 같은 무기는 동양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주로 인력이 모자라 최소한의 인력으로 더 큰 돌을 날리려 했던 서양에서 발달했다. 이후 여기서 최소한의 인력마저도 배재하고 무게추만으로 투석하는 무기가 바로 트레뷰셋으로, 몽골군이 이 트레뷰셋 전문가를 중동에서 고용하여 중국의 양양성 공격에 사용하였다. 회회포(回回砲)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무기는 동아시아에서 인력식 투석기가 아닌 다른 종류의 투석기가 사용된 유일한 사례다.[7] 이 투석기가 처음 나온 5회는 빛과 색감을 잘 활용한 세련된 영상미로 찬사를 받았는데, 특히 양규가 낀 깍지에 불길이 비치며 거란군이 투석기로 화염을 두른 돌을 던진 다음, 관측병이 거리조절을 하며 군사들이 다시 돌을 여럿 던지면서 어두운 하늘이 점차 밝아지고 양규가 지키는 흥화진을 향해 날아오는 장면이 인상적이라는 평이 많다.[8] 심지어는, 거란에 진실을 이실직고한 여진족을 고려가 적반하장으로 '여진은 신의를 모르는 종족이니 믿지 말라'라며 매도하기까지 한다. 단순 사실관계 공방에서는 사실 고려 외교야말로 뻔뻔함의 극치이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작품 메시지가 오히려 강조되고 있다.[9] 이런 고려거란전쟁의 성향을 상징하는 대사가 강감찬의 입에서 나오는 '한 사람의 능력으로 막을 수 있다면 전쟁이라 부르지도 않는다. 온 고려가 총력을 다해야 하기에 전쟁이라 하는 것이다'이다.[10] 실제로 임진왜란한산도 대첩을 다룬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전쟁 장면에서 자막을 동원하기도 했다.[11] 양규 같은 경우에는 (프롤로그로 나온 강감찬을 제외하면) 세 인물 중 가장 먼저 등장했고, 천추태후에 비해서 등장이 굉장히 빠른 편이기는 하다.[12] 대본의 투박함과는 별개로 각 인물의 감정선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고 기록을 적절히 반영하여 각색하였기에 이런 스타일에 의외성을 느끼는 반응도 있다. 그래도 덕분에 다각면에서 목종, 강조 등의 조연들을 조명하거나 현종, 양규 등의 주연들을 실제 역사에서의 행적에 맞게 적절히 빌드업을 진행하였다는 평을 받았다.[13] 사실 현종이 아예 야심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 궁에서 쫓겨나 강등된 시절에 작은 뱀이라는 시를 지어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며 나름 와신상담하는 모습도 보여주고는 했다. 본작의 현종이 황제가 되어서는 그 무게에 짓눌려 갈팡질팡하면서 흔들리는 모습이 나오는 캐릭터라는 걸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엔 황족이라는 자신감만 가득 차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캐릭터로 해석되어도 이상하진 않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선 당연히 그럴 수 있어 보이지만, 그게 '여요전쟁을 승리로 이끈 강인한 명군 현종'이라는 대다수 한국인의 실제 역사 인물 감상과 꼭 일치하는 캐릭터 해석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평도 있다.[14] 특히 현종을 연기하는 김동준의 경우 1~2회에는 발성이 사극 경험이 풍부한 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처진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점차 발전해 왕위에 오른 4회부터는 힘 없는 소년 군주에서 점차 군주의 위엄을 갖춰가는 성장형 군주의 역할에 잘 맞는 연기를 보여주어 호평을 받고 있다.[15] 4회에서도 사촌 관계인 현종원정왕후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기에 이런 측면에서 또 화제가 되었다.[16] 동성애자인 목종 외에 김치양과 사통으로 아들을 낳았던 태후는 흔히 알려져 있었으나, 태후의 교성 때문에 부처님이 노했냐는 드립과 초반부의 개경 전경을 보여주는 장면의 마지막에 나오는 연인의 키스신 등이 기존 사극과 다른 느낌을 줘서 신선해하는 반응이 있었다.[17] 작품에서 자세히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목종은 태조 왕건의 3대손(증손자)이지만 1/8이 아니라 1/2이 왕건의 피로 친가외 외가 모두 통틀어 증조부가 태조 왕건 단 한 명 뿐이다. 목종의 부모인 경종천추태후사촌간 혼인이었고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도 모두 태조 왕건의 자녀들로 이복남매끼리 혼인하면서 생긴 일이다. 현종의 경우 숙부(1/2왕건)조카딸(2대손, 1/2왕건)의 불륜으로 태어난 사생아로 모계로는 3대손이고 부계로는 2대손이지만 1/2이 왕건의 혈통이며 목종과도 부계(당숙-당조카)와 모계(이종사촌)를 통틀어 모두 혈연으로 엮인다.[18] 동시대를 다룬 JTBC의 다큐멘터리 평화전쟁 1019에서도 현종이 강조에게 부월을 수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해당 작품에서 강조는 부월을 자기 멋대로 부여잡고 왕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오만함을 보인다. 즉위 초기의 현종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해당 다큐멘터리와는 다르게 본작에서는 강조가 부월을 받들고 감개에 젖은 듯한 복잡한 감정을 보이고 있으며, 현종도 왕으로서의 위엄을 차려 오히려 역적을 감복시키고 동기부여까지 해주는 현명한 군주로 묘사했다는 평을 받는다.[19] 특히 이민영의 경우엔 비슷한 시기를 다루는 모 드라마처럼 천추태후를 미화하고 띄울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연기하는 캐릭터의 힘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아들을 휘어잡는 위엄보다는 배우의 미모가 돋보인다는 평이 많다.[20] 흔히 무역 대국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대중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최소 절반을 상회하는 높은 소출 세율과 허술한 구휼 제도로 인해 고려의 중하위 계층 민생은 전성기에도 거의 항상 파탄 수준이었다. 고려도경에서는 고려의 백성들이 은혜를 베푸는 일이 적다(然其爲人寡恩)라는 대목으로 빈곤함을 돌려 말하고 있으며, 다수의 학자 사이에서도 고려의 국가적인 부유함과 별개로 민생은 피폐한 시간이 더 길었으리라는 것은 사실상 합의된 내용이다.[21] 이전까지의 대부분의 사극에서는 묘당(廟堂)과 재상들이 회의와 직무를 하는 것이 묘사되어 시청자들이 국가의 상황을 파악하게 하였다. 고려거란전쟁에서는 회의나 직무수행을 거의 등장시키지 않고, 대부분의 국가 상황 중 특히 거란과의 관계를 변방의 강조와 양규의 대화만으로 때우고 있다.[22] 요컨대 목종 치세에 벌어진 국정 문란과 사치가 나라를 파탄 내는 수준까지 확대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그려냈다고 볼 수도 있다.[23] 사실 거란군이 40만의 대군인데다 다국적군에 출신 성분도 다양해서 개개인마다 규율이 천차만별이긴 했을테고, 실제로 사람을 납치하고 죽인데다 그 과정이 절대로 인도적일 리는 없기 때문에 극 중에서 묘사한 잔혹함 자체는 틀렸다고 볼 수 없지만, 여기에 다소 방향성이 어긋난 희화화가 포함돼서 그러한 반응이 나왔다.[24] 예를 들어 6회에서는 1차 흥화진 전투로 피를 말리는 전투가 벌어지는데 중간에 이걸 딱 끊고 갑자기 성상 폐하께서 등장해서 할미넴이랑 변비약 광고를 진행해 많은 이들이 뿜었다. 거기다 종료 후에는 우측 배너광고로 강감찬의 상조회사 광고도 매회 나온다.[25] 사실 전작 태종 이방원뿐만 아니라 2014년 정도전 이후 KBS 대하드라마는 극 초반부에는 원래 1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50분 정도로 분량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2TV로 방영되기 때문에 전후반+중간 광고까지 포함해야 1시간 정도 진행된다.[26] 무게추식 트레뷰셋 투석기는 11세기를 다루는 본작으로부터 한 세기 후인 12세기에 서양과 중동에서부터 점차적으로 무게추를 사용한 무게추식 투석기, 즉 우리가 아는 형태의 트레뷰셋 투석기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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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9 10:43:34에 나무위키 고려거란전쟁/평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