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회/기타 창작물

최근 편집일시 :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곽회




1. 개요[편집]


정사연의를 제외한 다른 창작물에 등장하는 곽회를 다루는 문서.


2. 게임[편집]



2.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편집]


곽회(삼국지 시리즈) 문서 참조.


2.2. 영걸전 시리즈[편집]


이 시리즈에서는 전체적으로 대우가 좋지 못하다. 후반기 장수의 숙명인 듯하다.

삼국지 영걸전에선 아예 나오지 않는다. 다루는 시대가 곽회가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때보다 좀 앞이기 때문인 듯 하다. 곽회는 한중공방전에서 조홍의 부장으로 나오기 시작하고 이후 서부 전선에서 활약하는 명장이긴 한데 아예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쉽다.

삼국지 공명전에서는 중후반에 장합과 함께 자주 촉군 앞을 막아서는 적군 기병으로 등장하고, 장안 공성전에서는 총대장이다.
장안을 내주면 "책임은 모두 이 곽회가 지겠다" 는 간지나는 대사를 날리지만 화산 전투 이후 증발하여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생사여부도 불확실하다. 그래서 이 게임을 리메이크한 조조전 MOD인 공명전 리파인에서는 낙양 전투에서 마초와의 일기토로 사망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일러는 영걸전 하후은에 수염을 그렸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정군산 전투에서 성채를 지키고 있는 궁병 우군이다. 그런데 촉군이 접근해오자 당황해서 허둥지둥 하는걸 조홍이 진정시키며, 전투가 끝나면 '난 싸우는건 안 맞는거 같다'라고 은퇴할 생각을 하는 겁쟁이가 되는 굴욕을 당했다. 심지어는 전투가 끝나기 전에 퇴각하면 사망 처리된다. 능력치조차도 무지통민운 순으로 72, 54, 58, 56, 86에 불과해서 그나마 높다는 운도 특화 기준에 미치지 못해서 의미가 없다. 지장인데도 지력이 딸랑 54인 건 억울하기도 하다. 역사상 후반에 꽤 활약하는 인물인데 조조전에서는 조조가 죽기전에 삼국 통일을 이루니 활약할 기회가 없다.

정군산 전투에서 퇴각시 사망하는데 거의 40년 가까이 일찍 죽이는 만행(?)을 코에이는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당당히 위나라의 장수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공명전에서의 대우보다 나쁜 대우를 받았다. 사망 대사는 "으악! 역시 장수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 죽고 싶지 않다, 으윽!"

신조조전 기반의 공명전 리파인에서의 곽회는 원작 공명전과 달리 근거리 명장계인 진서장군계를 달고 등장한다. 랜덤하게 상태이상을 거는 보물 반월극+돌진이동(매 칸 이동시 5%씩 데미지 추가)+선제공격의 코드 조합이 시너지를 일으켜 아군에게는 상당히 강력한 적. 그래서 원본과는 달리 한중퇴각전에서 잘못하면 조운이 곽회에게 맞아죽는 상황도 벌어진다. 다만 곽회의 이런 강점도 후반부에 보물이 갖춰져 참사검+항마방패의 이엄(상태 이상을 반사해버리고 고정데미지를 준다) 적토마+청룡언월도(선제공격코드를 씹고 선제공격을 날리며 무반격 공격에 방어력까지 깎는다)+난무(한 턴에 2~4번 공격하는데, 상대의 선제공격코드를 씹을 수 있다.) 책략이 생기고 마초나 관흥이 갖춰지면 보병한테도 두들겨맞는 샌드백으로 전락한다. 최후는 낙양 전투 1에서 마초와의 일기토로 사망한다.

조조전 온라인에서 등장한다. 병과는 보병이며, 등후사재의 패를 통해 개방시킬 수 있다. 그러나 후반기 명장임에도 불구하고 고유 조형이나 고유 음성이 없어서인지 게시판에는 곽회에게 고유 조형과 고유 음성을 달라는 의견이 있다.


2.3. 진삼국무쌍 시리즈[편집]


곽회(진삼국무쌍) 문서 참조.


3. 만화[편집]



3.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편집]


파일:전략곽회.png

50권 이후 제갈량의 북벌에 맞서 이를 저지하는 장수로 자주 얼굴을 보여준다. 촉군을 격퇴하려고 이런저런 계략을 열심히 짜는 편인데 제갈량에게 간파당하고 역관광 당하는게 일. 공명 사후인 249년에는 고평릉 사건으로 정권을 잡은 사마의에 항거하여 하후패가 군사를 일으키자 복병계를 써서 그를 격퇴시킨다. 패하여 퇴각하는 하후패에게 "하후패, 전투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공명과의 전투로 단련된 내 군사들을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느냐"라고 일갈한다. 이후 강유의 1차 북벌을 막아낸다. 사망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3.2. 창천항로[편집]


등장은 하후연의 한중 공방전에서부터다. 여러 양동 작전을 벌이며 양편관으로 공격해오는 유비군 본대의 움직임을 간파한다. 허나 특이한 것은 예측이 아닌 계산이라는 점. 적군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행동을 계산해내는 기재형 참모로 나온다.[1] 처음 등장했을 때는 약간 어리숙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날카롭게 적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는 곽회의 모습을 보며 하후연은 자신의 뒤를 이을만한 재목이라 생각하여 곽회를 신임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후연 전사 후 병력을 추스리며 조조의 본대가 도착할 여지를 마련한다. 그 행적에 법정은 물론 조조마저 높이 평가한다. 이후 번성 공방전 때 다시 등장하나, 예의 그 계산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고, 수염까지 기르는 등 인상이 너무 달라진 탓에 못 알아볼수도 있다. 하후연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크게 작용한 탓인지 예전의 어리숙하고 말을 더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상용 지역의 여러 토착 산적들을 이용해 촉군을 교란시켜, 유봉이 지휘하는 상용의 촉군 병력이 관우의 형주군을 지원하지 못하게 묶어내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2]


3.3. 삼국전투기[편집]


지장이라는 특징을 살리려는 건지 미드 멘탈리스트의 심리 분석가 패트릭 제인으로 패러디되었다. 하지만, 매 전투마다 붉은 두건과 선글라스를 착용한 모습 때문에 독수리 5형제의 주인공 켄의 아버지로 보는 이들도 있다.[3] 첫 등장한 탕거 전투 (1)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탕거 전투 편에서 장합의 부장으로 첫 등장한다. 장비보다 먼저 고지인 탕거를 점거한 장합에게 보급 소식이 전혀 없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이후 겨울까지 계속 대치 상태가 이어지자 병사들이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니 공격하던 후퇴하던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장합에게 말하기도 했다. 이에 장합이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자 상대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공격을 하면 이기던 지던 큰 피해를 입을 터이니 이번에는 후퇴를 하고 다시 기회를 봐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다 적이 느슨해진 틈을 노려 일순간에 파군과 파서를 점령하는 것이 맞다고 제의한다. 장합의 생각도 곽회와 같았지만, 장합은 무조건 파를 먹고 온다고 호언하며 군령장까지 쓰고 왔던 탓에 소득 없이 돌아가게 된다면 장합에게는 다음 기회라는 것 자체가 없을 것임이 자명한 상황이었다.

이에 곽회는 아직 우리 군에는 장합이 필요하니 이기던 지던 치고 내려가야한다고 장합에게 제의했고, 장합은 바로 공격을 선언했다. 그러나 장비의 적절한 전술에 장합군이 전멸하며 상관 장합과 함께 간신히 목숨만 붙이고 퇴각하게 되었다. 도망가는 거냐고 비웃는 장비에게 닥치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한중 전투 편에서는 산적을 토벌하던 서황에게 귀환하고 양평에 대기하라는 명령을 전달할 것을 하후연에게 명령받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하후연 사망 후에는 다른 장수들과 마찬가지로 크게 당황했지만 빠르게 냉정을 되찾고 애도는 잠시 뒤로 미루자고 말한 뒤 현 상황의 중심을 잡을 새로운 사령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장합을 새로운 사령관으로 추천했다.

가정 전투 편에서는 촉의 기산 점령 사실이 알려지기 전 천수 부근에서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가 기산 점령 소식을 듣고 상황이 좋지 않다면서 상규로 돌아갔다. 이후 상황을 관망하다 촉의 가정 진출 소식을 듣고 위수를 통해 빠르게 열류성으로 진군해서 고상을 잡고 열류성을 점거한 뒤 위연의 발을 묶어 가정으로 이동할 수 없게 했다.[4]

기산 전투 편에서는 제갈양의 명을 받은 진식이 음평과 무도를 공격하자 제지하려 했으나 촉에서 음평과 무도에 강한 흡수 의지를 보이자 손익계산을 하고 결국 음평과 무도를 내줬다.

이후 조진이 남벌을 계획했을 때는 기산 방면으로 공격에 나섰다. 집중호우 때문에 다른 방면의 군들은 전부 회군했지만 곽회의 진격 루트인 기산만큼은 길이 망가지지 않고 멀쩡했기에 진격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양계에서 위연의 군세와 맞부딪혔지만 위연에게 쪽도 못 쓰고 탈탈 털렸다.

조진 사망 후 촉이 다시 기산 방면으로 북벌을 진행했을 때는 상규에서 마침 도착한 비요의 지원군과 함께 촉군을 영격하기로 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상규에서 또 위연을 만나게 되고, 이번엔 비요와 함께 위연에게 탈탈 털렸다.

오장원 전투 편에서는 사마의와 함께 대촉 방면 방어를 맡았다. 사마의가 제갈양이 야곡도를 건너도 바로 전면전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자 납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학소가 죽은 이후 촉이 다시 진창 쪽을 공략해 보고자 강유를 북원으로 보냈지만 곽회는 촉이 북원으로 올 것을 예측하여 보루를 만들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묘사된다. 그리고 퇴각하는 척 역습을 가하려는 강유의 작전마저 꿰뚫어보고 막아냄으로써 북원을 완벽하게 사수했다.

작피 전투 편에서는 농서 방면으로 공격을 들어온 강유를 철통같은 수비로 막아냈다.

낙곡 전투 편에서는 조상 일파와 하후현 등이 한중 정벌을 계획했을 때 기산 방면으로 공격을 들어가기로 했으나, 곽회는 가장 큰 병력인 낙곡이 뚫려야 전세가 움직인다고 판단하여 촉의 진영을 보자마자 그냥 그 자리에 진영을 짜고 눌러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국산 전투 편에서는 247년 기준 옹주자사로 실질적인 대촉방면 에이스였다고 묘사된다.[5] 촉과 호응한 강족이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농서로 나아갔다. 부하들이 강족의 집결지인 포한으로 언제 갈 거냐고 묻자 안 간다고 대답하여 부하들을 놀라게 했는데, 곽회는 이에 오합지졸인 강족보다는 촉군의 행보를 주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곽회는 농서에서 그대로 하후패가 있는 위시로 향하여 병력 차로[6] 강유를 물러서게 만든 뒤, 강유가 물러난 것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포한으로 향한다.

포한으로 향한 곽회는 아하[7]와 소과를 베어버렸고[8], 아차새가 버티는 백토로 향한 뒤 강을 끼고 농성하려는 아차새를 보고 도하를 하려는 척하며 아차새를 방심시킨 뒤 몰래 병사를 하류에 보내 아차새의 뒤를 치게 하며 백토의 반란을 제압했으며, 치무대가 있는 무위로 향하는 척하다가 치무대의 가족이 있는 서해로 향하였고, 이에 당황한 치무대가 급히 서해로 향하자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치무대의 군을 궤멸시켰다. 그리고 곽회는 서해에서 돌아오는 길에 석두산에 있는 영거까지 토벌하며 이민족들을 싸그리 제압했다.

강족의 구조 요청을 받은 강유가 요화를 성중산에 심어 놓고 포한으로 향하자 성중산에 있는 요화를 공격하기로 했다. 강유를 쫓는 하후패와 합류하지 않는 거냐고 부하들이 묻자 곽회는 정비도 없이 1년 내내 싸웠는데 또 전면전을 벌일 수도 없고, 거기다 강유와 싸우는 중 강족의 패잔병들이 집결해서 성중산에서 올라오거나 백토, 무위에서 내려와서 포위하면 답이 없다고 답했다. 실제로 곽회군이 요화를 공격하자 강유는 서쪽행을 포기하고 요화를 구해 돌아갈 수밖에 없었으니, 모든 게 곽회의 계산대로였다고 서술된다.

강유가 구안을 보내 위시에 성을 쌓게 했을 당시에는 내부 사정이 어수선해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나 곽회 본인이 정서장군[9]이 되고 곽회의 자리를 진태가 잇는 등 내부 사정이 정리되자 위시를 공략하기 위해 준비한다. 처음에는 진태가 자신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처럼 보여 어이없어했지만, 조금 대화를 해 본 뒤에는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걸 읽어내고 진태에게 병사를 줘 위시의 국성을 공략하게 하였다. 진태가 국성을 공격하다가 포위당했을 때는 타이밍 좋게 진태를 공격하는 강유군의 뒤를 끊으려 움직였고, 강유의 촉군을 상대로 또 방어에 성공했다.

신성 전투 편에서는 1년만에 거기장군으로 또 승진했다. 진태가 축하의 말을 건네자 몸 바쳐서 이쪽을 틀어막으라는 얘긴데 축하는 무슨 축하냐며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신성 전투 종료 후 왕릉 일족이 역모 혐의로 전부 숙청될 때 곽회의 아내도 왕릉의 일족이라 죽임을 당할 뻔했지만 곽회가 간신히 구출해냈다고 묘사되기도 했다.

합비신성 전투 편에서는 강유가 적도를 포위하자 진태를 적도로 보냈다.[10] 강유는 진태가 적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바로 퇴각했다.

적도 전투 편 시점에서는 병환으로 앓아누운 상태라 촉이 쳐들어왔음에도 직접 출전하지 못했다.

낙가 전투 편 막바지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고 언급되었다. 죽은 곽회의 후임은 진태가 맡았다고 묘사되었다.

장합과 제법 죽이 맞는 사이로 나오며, 제갈량의 북벌 시즌으로 들어서면서 대촉전선의 얼굴마담 격으로 장합과 함께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기산 전투 편에서 유독 위연과 상성이 안 좋은 상대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전략적으로 분석이 가능한 제갈량이나 강유와는 달리 위연은 계산같은 거 없이 그냥 순간순간의 판단에 따라 싸워서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비유하기를 잘 훈련된 천재 용병과 고릴라의 싸움이라고.[11] 제갈량의 마지막 북벌 당시 북원을 길막하여 제갈량을 좌절시키는 장면도 잘 나와 있다.

2014년 4월 16일자 연재분에서는 강족 대장들을 전부 없애면서 서량을 휘젓고 다닌 후 강유와 요화를 막아내는 등 곽회 무쌍을 보인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미화된 부분이 있으며, 자세한 부분은 삼국전투기/평가와 논란 참조.


3.4. 화봉요원[편집]


잔병의 일원인 곽앙의 아들이었음이 드러났다.


4. 영상 매체[편집]



4.1. 삼국[편집]


파일:곽회(삼국).jpg

배우는 장겸(张歉). 한국 더빙판 성우는 조규준. 드라마 후반부 손례와 함께 위나라의 레귤러 캐릭터. 등장은 2~3차 정벌 때 조진이 대도독으로 복직할 즈음 그 부관인 것으로 시작된다. 처음엔 조진의 심복에 가까웠다. 게다가 아부하며 그 무능한 작전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패 후 엉망이 된 군을 그나마 조율한 것은 곽회 덕분이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저 무능한 장수는 아니었다.

사마의가 온 뒤로는 군기 해이를 문제로 문책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마의를 원망하기보단 그 명령에 충실히 따를 수 있도록 노력한다.[12] 점차 사마의의 지휘 아래에서 위군이 기세를 되찾고 투지를 불태우자 완전히 사마의의 심복이 된다. 때론 사마의의 방침에 간언하기도 하는데 제갈량 사후 추격을 망설이는 사마의에게 "그럼 제갈량이 살아있으면 평생 안 싸울 것입니까?"라고 해서 사마의를 데꿀멍 시키기도 한다. 같이 대촉전선에 종군했고 아내를 구명해준 일도 있어 사마씨와 가깝긴 했으나 전방에서 소임을 다할 뿐 정계와 거리를 두었던 역사와는 달리 고평릉 사변에 직접 가담한다.

주로 손례가 용감하지만 다혈질적인 행동 대장으로 그려진다면 곽회는 침착한 부관의 그것으로 나온다. 드라마는 곽회와 손례가 사마의에게 점차 심복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는 사마의가 정변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군부의 지지를 얻은 것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겠다. 한편으론 위연 때문에 다소 불편한 촉군에 비해 끈끈해지는 위군과 대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4.2. 대군사 사마의[편집]


본격 제갈량이 북벌하던 시점인 2부부터 등장하게 된다. 중앙에서는 이미 명장으로 이름을 날린 장군으로 인식한다. 조진이나 사마의가 전투지시를 하달할때 늘 처음으로 호명된다. 그만큼 야전에서 능력있는 장군으로 인식된다.

처음엔 장합과 같이 수비전략을 취하는 사마의를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억지로 출전을 요구한 노성 전투에서 패배한 뒤로 사마의의 사람이 된다. 제갈량만 있었던 공성(空城)에서 도망친 사마의를 조롱하며 끝내 출전했으나 뒤에서 몰래 사마의가 장호에게 명해 지원해준 덕에 살았기 때문에 지휘관으로서 사마의를 완전히 믿게된다. 나중에 군사회의를 하러갈 때 원래부터 사마의에게 우호적이었던 손례와 함께 다정하게 걸으면서 사마의의 혜안에 감탄하는 모습도 나온다. 장합이 죽고나서 부도독으로 임명된다. 조예는 장합으로 하여금 사마의의 병권을 견제하려고 했으나 결국은 사마의 사람인 곽회가 임명되어 병권견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제 5차 북벌 때 사마소가 독단적으로 군을 이끌고 제갈량의 목우유마를 탈취했을 때 왜 마음대로 판단하냐고 사마의가 혼냈는데 손례는 사마소의 공을 치하하며 용서해달라고 하지만 곽회는 아버지에게 말대꾸하는 사마소를 한심하게 본다. 물론 사마의가 사마소를 군법으로 벌하려고 하자 손례와 같이 구명을 요청한다.

하지만 상방곡 전투 때 사마소가 상방곡을 기습하자는 꼬드김에 빠져 제갈량의 불구덩이에 빠져들게 된다. 뒤늦게 그들의 출병을 알아차린 사마의가 지원을 갔지만 같이 불길속에 갇히게되지만 기적처럼 비가 내려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독단적인 출전 판단을 내린 곽회를 참수하려고 하지만 세운 군공이 많고 황제가 친히 임명한 부도독이라 그러지 못하고 장형 50대로 끝낸다. 하지만 사마소에게는 참수를 명했는데 형인 사마사는 물론 손례를 비롯한 다른 장군들도 구명을 요청했다.[13] 마지막으로 목숨을 건진 곽회가 사마소를 용서해달라고 하자 참수대신 채찍 200대로 형을 낮춰 주었다.

이후 꾸준히 강유에 맞서 손례와 함께 옹량의 땅을 지키는 장군으로 언급된다. 나중에 정치질에서 패배한 사마의가 조상에게 옹량의 병권을 주면서 손례와 함께 중앙으로 오게된다. 그리고 이후엔 등장하지 않는다.

왕릉의 난 때 곽회의 아내도 연루되어 있어 등장하지 않을까 했지만 간단히 언급만 나올 뿐 등장하지 않는다.[14] 사서에선 곽회의 아내가 왕릉의 누이여서 왕릉의 삼족을 멸할 때 같이 죽었어야 했지만 곽회가 사마의에게 서찰을 보내 아내의 사면을 요청했고 사마의가 받아들이면서 곽회의 아내는 살 수 있었다. 그 전까지 사마의와 곽회의 관계를 보면 드라마에서 각색되어 나올법한 이야기였지만 편집되어서 아쉬운 부분.

드라마 삼국에선 손례가 다혈직적이고 곽회가 참모와 같은 침착한 캐릭터로 묘사되었다면 대군사 사마의에선 정반대로 나온다. 물론 둘 다 유능한 장군이라 묘사하는 공통점은 있다.


5. 기타[편집]



5.1. 영웅 삼국지[편집]


군정관으로서는 유능하지만 전투 지휘관으로서는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묘사. 군대의 군기를 잡고 서북 일대의 민심을 수습하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싸움에는 약하다고. 옹주자사로서 대촉 전선에 계속 서있지만, 학소가 진창에서 촉군의 공격을 잘 막아내는 반면에 곽회는 진식을 내세운 제갈량에게 농락당하여 음평과 무도 2군을 싸움없이 빼앗기고[15], 위연의 기습에 농락당하는 등의 일로, 위 군부에서도 한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갈량과 사마의의 처음이자 마지막 정면 대결에서는 위연이 장합의 대규모 공격을 막아내는 동안, 위군 기마대와 위군 본대 사이의 틈을 노린 강유의 기습으로 사마의의 본대가 패퇴할 때 화살을 맞고 부상당한다. 사마의는 그 모습을 보고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고 묘사. 다만 작중에서 사마의는 강유의 기습 때 오줌을 지렸기 때문에 곽회만 한심한 건 아니다.

오장원 대치 기간 중에는 성급하게 결전을 주장하는 젊은 장수들을 제압하면서 그나마 중견 장수의 모습을 과시하지만 작중 분위기상 어째 그건 별로 효과가 없고 사마의의 E가 더 효과가 있는 듯하다. 그걸로 등장 끝. 제갈량의 죽음으로 작품이 끝나기 때문에 이후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5.2. 반삼국지[편집]


위나라 소속 장수로 이전, 학소와 함께 위나라가 망한 이후 조창을 도와서 북방에 정권을 세우는 데 공을 세우지만, 천하 통일 이후 촉의 왕평과의 싸움에서 10여합 만에 목이 달아난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2-12-25 07:28:49에 나무위키 곽회/기타 창작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3 18:41:11에 나무위키 곽회/기타 창작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뭘 생각할 때 마다 뭔 주판 같은 것이 표현된다.[2] 이때 두령들의 전쟁은 천하의 전쟁과 연결된다고 하는데 당시 상황이나 그때까지의 전개를 보면 맞는 말이다.[3] 단, 그쪽과는 디자인이 상당히 다른 데다가, 해당 인물은 이미 다른 인물로 패러디된 전례가 있다.[4] 가정까지의 촉군의 진군 속도는 서량이 길을 열지 않았다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상규가 지금까지 공격을 받지는 않았으니 서량은 촉에 완전히 넘어간 게 아니라 간을 보고 있단 것이고, 그렇다면 상규는 적의 진격 루트에서 벗어났으니 굳이 지킬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서 상규를 버리다시피 하고 바로 열류성으로 치고들어간 것.[5] 관직 상으로는 정서장군 하후현이 에이스였다.[6] 곽회+하후패면 서량에 주둔하는 위군의 거의 전부인데 그에 반해 강유는 비의에 의한 병사 1만 리미트까지 걸려 있어서 전력 차가 격심했다.[7] 본작에서는 이하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8] 아하와 소과가 뒤로 날아가며 붉은 색 글씨로 戰意喪失(전의상실)이라는 한자어가 나오는데, 이는 애니메이션 킬라킬의 패러디. 동음이의어로 말장난을 한 원본과는 달리 이쪽은 진짜로 원래 단어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9] 본편에서는 정장군으로 오타가 나 있다.[10] 사마사에게 군사를 이끌고 적도로 가 강유와 대치하되 싸움은 걸지 말라는 서신을 받기도 했다.[11] 참고로 삼국전투기 전체를 통틀어서 곽회가 패배한 적은 데뷔 전인 탕거 전투와 위연에게 탈탈털린 기산 전투 외에는 없을 정도로 미화되었다.[12] 물론 여기에는 사마의가 혼내면서도 잘 다독이는 등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활용했기 때문도 있다.[13] 물론 사마의가 유도한 장면이다. 계속에서 손례와 후길에게 눈치를 준다[14] 곽회가 연관돼서 복잡하다고만 말했다.[15] 작중에서는 진창 공격 자체가 애초에 위군의 전력을 소모시키기 위한 페이크였고 진짜 목적은 음평과 무도의 흡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