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월

최근 편집일시 :

蒯越
?~214년
1. 개요
4. 미디어 믹스



1. 개요[편집]


후한 말의 인물로 유표조조 휘하의 문관을 지냈으며, 자는 이도(異度). 형주 양양군 중로현 사람으로 한신의 부하 괴철의 후손이라고 하며, 매우 잘생겼다고 한다.

연의에서는 괴량의 동생으로 나오지만 정사에서는 그런 언급이 없다.


2. 정사[편집]


하진 휘하에서 환관들을 죽일 것을 권하나 듣지 않자 '이놈은 가망이 없구나.' 라고 판단, 여량현령에 봉해달라고 하여 유표 휘하에 들어가서 활동한다.

유표가 채모, 괴량, 괴월에게 족당의 도적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냐고 묻자, 괴량은 "인의면 모든 게 해결 됩니다. 군사 돌릴 생각 마세요." 라고 한 반면, 괴월은 "그놈들 꼬셔서 유인한 다음 나쁜 놈은 죽이고 아닌 놈은 군사로 활용해서 강릉을 정복하고 양양은 지킨다면 격문만 돌려도 형주 8군이 평정될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유표는 괴월의 계책을 따르기로 하고, 적의 두목 15명 혹은 55명을 부른 다음 몽땅 다 죽여버린다(…) 그러자 잔당의 거의 대부분이 항복을 하는데 장호와 진생이라는 녀석만 저항을 하니 괴월을 보내 설득시켰다고 한다.[1]

정사 삼국지 촉서 선주전에 주석으로 달린 위진세어에 따르면 괴월과 채모가 유비의 목숨을 노렸다. 눈치챈 유비가 화장실에 간다며 연회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유비는 적로를 타고 달아나다 물에 빠졌는데 적로를 날게 하여(?) 무사히 도망쳤다.

199년에 유선, 한숭과 함께 조조에게 항복하자고 건의했다. 이 일의 사자로 뽑힌 한숭이 "나를 보내면 난 이미 조조의 부하가 되어있을 겁니다"라고 주의를 줬고 진짜 한나라의 직위를 받아온다. 결국 유표가 분노하며 무산.

208년에는 장릉 태수였고, 유종에게 한숭, 부손과 함께 항복을 권하고 이 공으로 광록훈이 된다. 여기서 조조는 순욱에게 "형주를 얻은 것은 기쁘지 않으나 괴월를 얻은 것은 기쁘오" 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썼다.

214년에 죽을 때 자기 집안을 조조에게 부탁했다.


3. 연의[편집]


첫 등장은 유표원소에게 편지를 받고 채모와 괴월을 보내 손견을 치게 할 때 나타난다.

유표적로를 얻었을 때에는, 자기의 선형(先兄) 괴량한테서 말 보는 법을 배웠다고 하며 그 말은 위험한 말이라고 조언한다. 덤으로 선형(先兄)의 의미가 죽은 형이기에 괴량이 죽었다는 것도 알려준다.

채모유비 암살 계획을 세웠을 때는, 문빙왕위를 이용하여 조운을 유비로부터 때어놓는 계책을 세운다. 그후 조조가 형주로 진격해오자 조조에게 항복할 것을 유종에게 권하기도 한다. 유종이 결국 조조에게 항복한 후에는, 조조로부터 강릉태수 번성후에 봉해진다. 여기서도 조조는 '나는 형주를 얻은 것 보다 괴월을 얻은 게 더 좋다' 라고 한다.


4. 미디어 믹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괴월/기타 창작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그리고 이 장호와 진생은 삼국지연의에서 장호는 한당에게 진생은 손책에게 죽는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2-12-25 11:44:02에 나무위키 괴월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4 03:52:52에 나무위키 괴월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