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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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의 대공비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공주
Πριγκίπισσα Μαρία της Ελλάδας και της Δανίας


파일:Princess_Maria_of_Greece_and_Denmark_(Grand_Duchess_Maria_Georgievna_of_Russia).jpg

이름
그리스어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Μαρία της Ελλάδας και της Δανίας)
러시아어
마리야 게오르기예브나
(Мария Георгиевна)
출생
1876년 3월 3일
그리스 왕국 아테네
사망
1940년 12월 14일 (향년 64세)
그리스 왕국 아테네
배우자
러시아의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
(1900년 결혼 / 1919년 사망)
페리클레스 이오아니디스 (1922년 결혼)
자녀
니나, 크세니야
아버지
요르요스 1세
어머니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
형제
콘스탄티노스 1세, 요르요스, 알렉산드라, 니콜라오스, 올가, 안드레아스[1], 크리스토폴로스
종교
그리스 정교회
1. 개요
2. 작위
3. 생애
3.1. 어린 시절
3.2. 러시아의 대공비
3.3. 망명과 재혼
3.4. 말년
4. 가족관계
4.1. 조상
4.2. 자녀



1. 개요[편집]


그리스 왕국요르요스 1세와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의 차녀. 콘스탄티노스 1세의 작은여동생이다.

조지 5세, 니콜라이 2세, 노르웨이의 모드 왕비의 외사촌이자 크리스티안 10세호콘 7세의 친사촌이며,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 공의 고모다.

애칭은 미니(Μίννι).


2. 작위[편집]


  •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Maria of Greece and Denmark (1876년 3월 3일 ~ 1900년 4월 30일)
  • 러시아의 대공비 마리야 게오르기예브나 전하 Her Imperial and Royal Highness Grand Duchess Maria Georgievna of Russia (1900년 4월 30일 ~ 1922년 12월 16일)
  • 이오아니디스 부인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Maria of Greece and Denmark, Mrs. Ioannidis (1922년 12월 16일 ~ 1940년 12월 14일)


3. 생애[편집]



3.1. 어린 시절[편집]



파일:640px-Princess_Princess_Maria_of_Greece_and_Denmark_with_her_parents_and_siblinsg_1880.jpg

요르요스 1세 일가, 1880년대
앞줄에서 맨 왼쪽이 마리아다.
1876년 3월 3일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요르요스 1세의 5번째 자식이자 차녀로 태어났다. 형제 자매들과 함께 다방면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특히 언어 교육을 중점적으로 받아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덴마크어, 러시아어에 능통했다. 부모님의 교육 방침에 따라 부모님과는 영어로, 형제들끼리는 그리스어로 소통했다고 한다.

가족들 중에서는 바로 위의 오빠인 니콜라오스와 제일 친했다. 부모님을 따라 종종 외국에 나가며 친척들을 만났는데, 이때 만난 외사촌 러시아의 크세니야 여대공[2]영국의 빅토리아 공주[3]와는 평생 동안 친구로 지냈다.

3.2. 러시아의 대공비[편집]



파일:Grand_Duke_George_Mikhailovich_of_Russia_and_Princes_Marie_of_Grecce_1900.jpg

러시아의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과 마리아, 1900년
애국심이 매우 강했기에 일반적인 공주들처럼 외국 왕족과 결혼해 고향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4] 한번은 그리스 출신 평민과 사랑에 빠졌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헤어져야 했다.

1894년에 마리아는 크세니야 여대공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로 향했다. 이때 신랑의 형제인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5]과 처음 마주쳤다. 이후 무도회에서 재회했을 때 게오르기는 마리아에게 푹 빠지게 되었고, 그녀에게 청혼했다. 게오르기는 마리아의 어머니 올가 왕비의 친사촌으로, 마리아의 외당숙이었다. 딸 못지않게 고향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올가 왕비는 이 혼사를 매우 반겼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보다 13살이나 더 많고 단조로운 게오르기에게 관심이 없어 청혼을 거절했다. 그날부터 장장 5년 동안 게오르기는 끊임없이 마리아에게 구애했다. 보다못한 니콜라이 2세[6]가 게오르기에게 작작 하고 이제 좀 포기하라고 조언한 1900년 봄, 마리아의 부모는 마리아에게 이젠 청혼을 받아들이라고 압력을 가했다. 마리아는 그리스 왕위 계승 서열과 왕실 내의 지위를 유지한다는 조건 하에 마지못해 게오르기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결혼식은 코르푸에 있는 오래된 교회에서 빠르게 치러졌다.

부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살다가 이후 크림 반도에 집을 짓고 살았다. 러시아에서 마리아는 마리야 게오르기예브나로 불렸다. 부부는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 게오르기는 아내를 매우 사랑했으며, 아이들에게 좋은 아버지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고 러시아에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마리아는 자주 아이들의 건강을 핑계로 아이들을 데리고 그리스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여행했다.

마리아와 두 딸이 영국 해러게이트를 방문한 1914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마리아는 딸들과 함께 해러게이트에 남아 군 병원을 세우며 전쟁을 지원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그리스에서는 정치적인 문제로 그리스 왕족들이 망명 생활을 하게 되었다. 겹쳐진 악재로 인해 마리아는 금전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마리아는 군 병원을 고모이자 영국의 왕비인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에게 맡기고 딸들과 함께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그러나 막내동생 크리스토폴로스의 약혼녀인 미국인 상속녀 낸시 리즈[7]가 재정적인 도움을 주면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1918년에 게오르기가 볼셰비키에게 체포되었다. 마리아는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와 덴마크 대사관 등 연락할 수 있는 모든 곳에 편지를 보내며 남편을 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1919년 1월, 게오르기가 총살당하면서 마리아는 과부가 되었다.

3.3. 망명과 재혼[편집]


1920년에 그리스 국민 투표를 통해 마리아의 오빠 콘스탄티노스 1세가 재즉위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딸들을 데리고 가족들과 합류해 그리스 함대의 배를 타고 그리스로 돌아갔다. 이때 마리아는 페리클레스 이오아니디스 제독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2년 후인 1922년 12월 16일에 마리아는 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 비스바덴에서 페리클레스와 결혼했다. 부부는 아테네에 정착했다.

1924년에 그리스 제2공화국이 선포되면서 그리스 왕족들은 다시 망명길에 올랐다. 마리아와 페리클레스는 영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망명 생활을 했다. 부부는 처음에는 사이가 좋았지만 점점 문제가 발생했다. 페리클레스는 바람을 피우면서 아내의 보석을 훔쳐 애인에게 갖다주었다. 마리아는 도박에 빠져 큰 돈을 날리곤 했다. 결국 부부는 계속해서 금전 문제에 시달렸다.


3.4. 말년[편집]


1935년에 조카 요르요스 2세가 복위하면서 마리아는 아테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전쟁이 한참이던 1940년 12월 14일, 마리아는 아테네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유해는 타토이 궁전에 안장되었다.


4. 가족관계[편집]



4.1. 조상[편집]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Princess Maria
of Greece and Denmark)

요르요스 1세
(George I)
크리스티안 9세
(Christian IX)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빌헬름

(Friedrich Wilhelm, Duke of Schleswig-Holstein-Sonderburg-Glücksburg)
헤센카셀의 루이제 카롤리네
(Princess Louise Caroline of Hesse-Kassel)
헤센카셀의 루이제
(Princess Louise of Hesse-Kassel)
헤센카셀의 빌헬름
(Prince William of Hesse-Kassel)
덴마크의 샤를로테 공주
(Princess Charlotte of Denmark)
러시아 제국의 여대공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Grand Duchess Olga Constantinovna
of Russia)

러시아 제국의 대공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Grand Duke Constantine Nikolaevich of Russia)
니콜라이 1세
(Nicolas I)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공주
(Princess Sophie Dorothea of Württemberg)
작센알텐부르크의 공녀 알렉산드라
(Princess Alexandra of Saxe-Altenburg)
작센알텐부르크 공작 요제프
(Joseph, Duke of Saxe-Altenburg)
뷔르템베르크의 아말리 여공작
(Duchess Amelia of Württemberg)


4.2. 자녀[편집]



파일:Princess_Maria_of_Greec_with_her_two_daughters_1917.jpg

마리아와 두 딸들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녀
러시아의 공녀 니나 게오르기예브나
(Princess Nina Georgievna of Russia)
1901년 6월 20일
1974년 2월 27일
파벨 알렉산드로비치 차브차바제
슬하 1남
2녀
러시아의 공녀 크세니야 게오르기예브나
(Princess Xenia Georgievna of Russia)
1903년 8월 22일
1965년 9월 17일
윌리엄 베이트먼 리즈 주니어[8]
슬하 1녀
허먼 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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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립 마운트배튼의 아버지다.[2] 알렉산드르 3세의 장녀. 동서지간이기도 하다.[3] 에드워드 7세의 차녀이자 조지 5세의 둘째 여동생이다.[4] 그런데 마리아의 아버지 요르요스 1세는 덴마크의 왕자 출신이고 어머니 올가 왕비는 러시아 여대공 출신이라 마리아에게는 그리스인의 혈통이 전혀 없다. 크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된 마리아는 충격을 받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5] 니콜라이 1세의 막내아들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바덴의 체칠리에의 3남.[6] 니콜라이 2세에게 있어 게오르기는 친당숙이다.[7] 후에 그리스의 아나스타샤 공주 칭호를 받았으나 암으로 일찍 사망했다.[8] 1930년 이혼. 크세니야의 외숙모 그리스의 아나스타샤 왕자비가 2번째 결혼에서 낳은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의 철강왕 윌리엄 리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