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원(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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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덕원3.png
[1]
출생
1915년 11월 30일[2]
경성부 공평동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공평동)
사망
1989년 3월 17일
미국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포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8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덕원은 1915년 11월 30일 경성부 공평동(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공평동)의 평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6년경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펼치기로 결심한 뒤 정필성(鄭必成)과 동지적 결합을 맺고 해외망명을 시도하였다.

해외 망명의 뜻을 세운 이들은 당시 민족적 지도자로 명성을 얻고 있던 안재홍과 의견을 나눈 뒤, 장차 독립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항공교육을 받기로 결심하였다. 김덕원은 중국 항저우에 있는 항공비행학교(航空飛行學校)에 입교하기로 결정하고, 안재홍으로부터 입학 소개장을 받아 중국으로 출국하려다가 출국 직전 일경의 검문에 의해 붙잡혔다.

파일:김덕원2.png
1936년 6월 23일 경성부 종로경찰서에서 촬영된 사진.

그는 이 일로 1년 4개월 여의 옥고를 치른 끝에 1937년 10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출옥하였다. 이후 경성에서 조용히 지내던 그는 8.15 광복 후 미국으로 이주했고, 11989년 3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김덕원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3년 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1936년 7월 3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2] 1936년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는 9월 11일생으로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