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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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식
金雲植

파일:김운식_lkj637.png
언론에 공개된 김운식의 유일한 사진. [1]

출생
1894년 12월 11일
전라남도 하의도
사망
1974년 2월 10일 (향년 79세)
본관
김해 김씨
부모
아버지 김제호(金濟浩)
자녀
아들 김대봉(金大奉, 1920 ~ 1971)[2], 김대중
아내
전처 광산 김씨 김순례
후처 장수금(張守錦)

1. 개요
2. 생애
3. 가족
3.1. 선조
3.2. 후손
4. 참고 항목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인 김대중의 아버지이며 장수금(張守錦)과의 사이에서 김대중을 얻었다.


2. 생애[편집]


이하 내용은 아래의 기사에 따라 작성된 내용이다.

일제강점기 시기,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의 이장을 지냈으나, 주민들의 편에 서서 하의도에서 배를 타고 목포, 광주, 서울을 오가며 소작쟁의운동을 주도했다.

김운식은 자신의 신념 때문에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일부러 일본어를 배우지 않았다. 집에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가 우편으로 배달되긴 했으나 이는 구장(이장) 집인 까닭에 의무적으로 수령해야 하는 것이었을 뿐 그는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당시로서는 불온문건에 해당하는 조선 왕조의 계보도를 집안에 숨겨놓고 아들 김대중에게만 보여주며 설명하는 등 남몰래 조선사를 가르쳤다. 이 외에도 판소리에 조예가 깊어 <쑥대머리>를 즐겨 불렀다고 하며, 1930년대 당시 구하기 힘든 축음기를 하의도에서 최초로 구매하였다.

이후 아들 김대중의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목포로 이주했다. 목포시 향동 목포대 1번지에 위치한 영신여관을 매입해 여관 주인이 되었다.

말년에는 정치인이 된 아들 김대중의 경제적 도움을 받으며 여생을 보냈다. 1974년 눈을 감았고 전남 신안군 하의면 선영에 안장되었다가, 1997년 대통령에 당선이 된 아들 김대중에 의해 하의면 선영에서 경기도 용인시 공원묘지로 이장이 되었다 전해진다.

3. 가족[편집]



3.1. 선조[편집]


  • 고조부: 김익조(金益祚) -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지냈다.
  • 증조부: 김겸선(金兼善)
  • 조부: 김태현(金台鉉)
  • 부친: 김제호(金濟浩)

3.2. 후손[편집]


김운식은 생전 광산 김씨 출신의 본처와 장수금과 혼인하였다. 장수금과의 사이에서 김대중을 비롯한 3남 1녀를 얻었으며 광산 김씨와 이혼한 후 김대중을 비롯한 장수금 소생의 자녀들은 적자가 되었다.
  • 전처: 광산 김씨 김순례
    • 아들: 김대봉(1920 ~ 1971) - 3남 1녀를 얻었다.
  • 아내: 장수금
    • 아들: 김대중 -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4. 참고 항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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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대중을 비방하는 내용이라 저런 캡션이 달려있다. 당연히 김운식은 김대중의 친아버지가 맞다.[2] 향년 5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