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김씨

최근 편집일시 :

조선 6대 국반


파일:광산 김씨 종문.svg
光山 金氏
광산 김씨


관향
광주광역시 광산구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비조
김알지(金閼智)
시조
김흥광(金興光)[1]
집성촌
광주광역시 북구
전라남도 담양군·영암군·보성군·나주시·영광군·화순군·장흥군·장성군·진도군
전라북도 정읍시·남원시·군산시·고창군·무주군·순창군
충청남도 논산시·서산시
경상북도 안동시
경기도 포천시
강원도 철원군
평안북도 정주시
황해도 봉산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인구
926,316명(2015년) | 국내 8위
사이트
광산김씨대종중
광산김씨대종회

1. 개요
2. 항렬
3. 실존인물
3.1. 14세손
3.2. 20세손
3.3. 28세손
3.4. 29세손
3.5. 31세손
3.6. 33세손
3.7. 34세손
3.8. 35세손
3.9. 36세손
3.10. 37세손
3.11. 38세손
3.12. 39세손
3.13. 40세손
3.14. 41세손
3.15. 세대 미상



1. 개요[편집]


광주광역시[2]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다.

시조 김흥광에 대해 김씨 분관록에는 헌강왕의 왕자로, 동국만성보 및 조선씨족통보에는 신라 49대 헌강왕의 3자로, 광산 김씨 정유보에는 신라 45대 신무왕의 3자로 기록되어 있는 등 선계를 정확하게 상고할 수 없다. 현재 종친회 측에서는 신무왕 왕자설을 정설로 소개하고 있다.

그 밖에 조선 명종(조선)대 편찬된 야사집인 삼한습유기(三韓拾遺紀)에는 연안 김씨가 백제에서 나왔으며(延安之金出百濟)이며 광산 김씨는 고구려에서 나왔다(光州之金出高句麗)는 기록이 있다.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통일신라 말기 나라가 장차 어지러울 것을 알고 금성(경주시)을 떠나 무진주 서일동(현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3] 평장리)에 은거하였다. 손자 김길은 고려에 귀의하여 무공을 세움으로써 개국공신이 되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고려 태조(고려) 왕건은 김길의 조부인 김흥광을 광산부원군에 봉하였다. 이후 조부의 작호이자 세거지인 광산(光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으며, 후손들 중 평장사(정2품)가 8명이나 배출되자 사람들이 서일동을 평장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명칭은 지금까지도 남아 평장리로 불리고 있다.

조선시대 들어와서 유학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문묘(文廟)에 종사된 현인 중 김장생, 김집 부자를 배출하면서 국반(國班)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또 정치가로서 최고 영예인 종묘(宗廟)에 배향된 김집[4], 김만기와 및 문신 김만중을 배출하면서 으뜸가는 명문가가 되었다.[5]

이밖에도 정승이 5명, 청백리가 4명, 왕비가 1명, 대제학이 8명[6] 나왔다. 또한 문과 갑과 장원급제자 12명, 문과 급제자 263명을 배출했다.

김장생(金長生)의 4대 조부 김극뉴의 묘는 '천마(天馬)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라는 말(馬) 명당으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도 있다. 대표적으로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마리아가 있고 그녀의 삼촌인 김필순도 만주에서 독립운동하다 살해 당했으며 그의 아들이자 김마리아의 사촌동생인 중국 배우 김염도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항일영화 촬영만을 고집했다.

현대에 와서 인구수를 보면 김해 김씨, 경주 김씨에 이어 김씨 본관 인구수로는 3위이다.[7][8] 광주광역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집단이라 수도권을 제외하면 전라도 지역에 거주 비율이 높다. 반면 경상도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적다.[9]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 실상은 전국에서 8번째로 많은 성씨답게 경상도 지역에도 많이 살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도 마찬가지이다.

종가 중에는 남북분단으로 인해 종손과 종부가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사례도 있다. 안동의 유일재(惟一齋) 종가의 종손인 김용진 씨는 해방 직후 좌익 활동 혐의로 수감되었다가 한국전쟁 때 월북을 했고, 종부인 김후웅 씨는 종가에 남았다. 2003년 이산가족 상봉 때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식도 병으로 일찍 죽어서 없고 종가를 김후웅 씨 혼자서 지킨다고. 광산 김씨 유일재 종부 김후웅 “왜 살아도 살아도 끝이 안나노?”


2. 항렬[편집]


대략적으로 근현대에 분포하고 있는 항렬자는 다음과 같다. 항렬자를 철저히 지키는 가문으로 유명한데 보통 37~41세손 항렬자를 쓰는 사람이 많다. 김씨 여자 이름에 중, 용, 환, 규 등의 글자가 들어있다면 십중팔구 광산 김씨.

아래 항렬자는 최근 광산 김씨 상대 계보를 정리하면서 한 세대씩 위로 올린 것[10]일 뿐, 항렬 자체를 바꾼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현대인물도 모두 기존의 세수에서 한 세대 올라가는 것으로 정정되었다.
33세
○기(箕)
34세
재(在)○
35세
○현(鉉)
36세
영(永)○
37세
○수(洙)
38세
용(容)○
39세
○중(中)
40세
선(善)○
41세
○순(淳)
42세
동(東)○
43세
○환(煥)
44세
규(奎)○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또한 광산 김씨 일문이다. 부친 김용하의 경우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하귀1리 출신이지만 김우중의 경우 출생은 대구에서 했다. 대통령 박정희가 김우중의 아버지 김용하를 사사했다. 당시 김용하씨는 소년 박정희를 매우 총애하여 비가 오는 날이면 귀가시키는 대신 관사에서 숙식시키면서 유명한 박정희의 글씨를 가르쳤다고 한다. 김용하씨는 이후 1940년대 말에 제주도지사를 역임했으나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실제로 36세손이나 조부 대부터 3세 아래의 항렬을 쓰면서 부친, 자신, 아들, 손자까지도 3세 아래의 항렬을 써왔는데, 실제로 제주 지역의 경우 대체로 타 지역보다 항렬들이 2~3세대 높다[11]. 현재 나이로 40대 연배에 33세손인 사람 또한 생존해 있다. 김○중(中) 항렬인 39세손인 경우 원래 토박이인 문정 문간공파인 한 아무리 빨라도(거의 각 가지의 종손 중에도 드물다) 30대 후반~40대 초반 연령이다. 참고로 제주 지역에 광산 김씨가 정착한 것은 문정공 김태현의 3남 문간공 김광재의 2남 김윤조가 신돈 집권기에 제주로 피신하면서부터이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광산 김씨가 항렬자를 철저히 지키는 가문으로 유명한데, 김용(容)○(38세손), 김○중(中)(39세손), 김선(善)○(40세손)을 쓰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까 이름에 김용(容)○이 들어가 있으면 70%[12]가 광산 김씨라 보면 되겠고, 특히 김○중(中)이 들어가 있으면 김대중[13] 등 희귀 사례를 제외한 8~95%가 광산 김씨라 보면 되겠다. 다만 울산김씨도 중자돌림을 쓴다. 그리고 고성 김씨도 게다가 중자돌림이있다 그래서 이걸로는 알수가 없다. 이 중(中)자는 가운데가 오행상 토(土)에 해당하기 때문에 배정된 것이다.

또한 해당 항렬자를 쓰는 사람이 워낙에 많아서인지 세대가 같더라도 나이 차이가 많은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아래에 서술한 인물들은 대부분 가까운 친척 관계가 아니지만.

3. 실존인물[편집]


  • 신분직위에 상관없이 가나다순으로 나열하고, 특정인물 강조표기를 금합니다.


3.1. 14세손[편집]




3.2. 20세손[편집]



3.3. 28세손[편집]



3.4. 29세손[편집]


  • 김집: 문묘 종사와 종묘 배향을 달성한 6대 국반[14]
  • 김만기
  • 김만중

3.5. 31세손[편집]



3.6. 33세손[편집]



  • 김성제 - 의왕시장[15]


3.7. 34세손[편집]




3.8. 35세손[편집]






3.9. 36세손[편집]


이 사이트에서 36세손이라 소개된 경우 본 문서에선 35세손으로 기재함. 이 사이트의 세손수는 그대로 써도 됨.

  • 김덕중 - 교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형[A]
  • 김우중 - 기업인, 대우그룹 창업주[A]
  • 김영광 - 국회의원
  • 김영구
  • 김영동
  • 김영애 - 배우[16]
  • 김영옥 - 배우
  • 김영인 - 배우
  • 김영조 - 야구선수
  • 김영종 - 건축가, 정치인
  • 김병조 - 코미디언
  • 김영삼 - 코미디언, 치과의사[17]
  • 김태년 -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18]
  • 김민지
  • 영빈 - 본명 김영빈, SF9 멤버
  • 김영광 - 배우
  • 이지아 - 본명 김지아[19], 배우
  • 김영규(야구선수)
  • 김영환(야구) - 야구선수

3.10. 37세손[편집]




3.11. 38세손[편집]





3.12. 39세손[편집]


  • 김해중 *
  • 김가을 - 프로게이머, 감독
  • 김기중 - 야구선수
  • 김남중
  • 김다래 - 유튜버, 스트리머
  • 김대중 - 성우
  • 김대중 - 기자
  • 김상중
  • 김수로 - 본명 김상중, 배우
  • 김아중 - 배우
  • 김우빈 - 본명 김현중, 배우
  • 김원중 - 아이스하키 선수
  • 김원중 - 야구선수
  • 김윤중 - 프로게이머, BJ
  • 김은중
  • 김의중 - 트위치 스트리머
  • 김일중 - 아나운서
  • 김필중
  • 김하중
  • 김화중 - 의료인, 교육자, 정치인
  • 김희중 - 대주교
  • 하정우 - 본명 김성훈, 배우 [22]
  • 차현우 - 본명 김영훈, 배우[23]
  • - 본명 김석진, 방탄소년단 멤버[24]
  • 진이한 - 본명 김현중, 배우
  • 홍중 - 본명 김홍중, 에이티즈 멤버[25]
  • 이기광 - 본명 김대중, 인터넷방송인
  • 김영중 - 야구선수
* 김민중 - 1999년 12월 19일 생

3.13. 40세손[편집]



  • 김선동 - 정치인
  • 김선동 - 정치인
  • 김선진
  • 김상윤(2005) - 학생
  • 김인직 - BJ
  • 김선기 교수
  • 김선권
  • 김선빈 - 야구선수
  • 김선영 (소설가)
  • 김선우 - 야구선수
  • 김선일
  • 김선일 - 래퍼
  • 김선일
  • 김선형
  • 김선재 - 아나운서
  • 김선혜 - 성우
  • 김선홍
  • 김승현 - 배우
  • 김선우 - 가수, 더보이즈의 멤버
  • 선바 - 본명 김선우, 유튜버, 스트리머
  • 김채연 - 가수, 걸그룹 tripleS의 멤버
  • 김선경
  • 김동은 - 야구선수
  • 김선기(야구선수)
  • 김선우(2001) - 야구선수
  • 김선우(1995) - 야구선수
  • 김선우(정치인) - 정치인.[26]
  • 김성은(1999) - 백수
  • 김선중(1995)- 직장인

3.14. 41세손[편집]


  • 현빈 - 본명 김태평, 배우.
  • 짭제성 - 본명 김선빈, 성우.
  • 김규남(정치인) - 족보명 김규순(金圭淳), 정치인.[27]

3.15. 세대 미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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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라의 제33대의 왕인 성덕왕과는 한자까지 같은 동명이인 이다.[2] '광산'은 조선시대 광주의 별호(고을의 별칭)였다. 여기서 따와 훗날 광산군, 광산구가 명명됐다. 광산 김씨 유허비가 있는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는 원래 광산(광주)에 속했는데 1914년 전라남도 광주군 대치면에서 담양군 대전면으로 편입되었다.[3] 대전광역시와는 한자까지 '大田'으로 같지만 서로 무관하다. 다만 1914년 행정구역이 바뀌기 이전에는 전라남도 광주군 대치면이었기 때문에 현재도 '대치'라고 불리긴 한다. 하지만 실제 대전광역시에도 광산 김씨가 은근히 많다고 한다. 인근인 논산 등지에도 집성촌이 있고, 전북 지역에서 가까운 대전으로 이주한 사람도 많기 때문.[4] 김집은 노론과 소론이 갈라지기 전의 마지막 공동스승이다.[5] 문묘 종사와 종묘 배향을 모두 이룬 조선조 인물은 김집 외에 이언적, 이황, 이이, 박세채, 송시열 등 단 다섯 명 뿐으로, 이들을 배출한 집안이 반남 박씨, 은진 송씨, 덕수 이씨, 여주 이씨, 진성 이씨가 국반이다.[6] 흔히 문형으로 불리우는 양관대제학은 7명이나, 예문관 대제학(홍문관 설치이전)을 지낸 김한로를 포함하면 8명이 된다. 또한, 아계 김일경도 대제학을 지냈다는 기록도 있으니 이를 포함하면 9명까지 집계할 수 있으나 확실치 않으므로 제외한다.[7] 다만 본 항목은 김해 김씨경주 김씨는 물론 광산 김씨의 다음 순위인 김녕 김씨구 안동 김씨보다 한참 늦게 생성되었다(...)[8] 반면에 김씨(金氏) 중에서도 신 안동 김씨는 인구가 0.001%도 안 되는 한국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남아있는 귀족 가문이다. 대부분의 안동 김씨(安東 金氏)는 구 안동 김씨로 실제 인구는 수십배가 차이난다. 이씨(李氏) 중에선 연안 이씨가 유일에 가까운 귀족 가문이다. 귀족 가문의 기준은 여왕과 그 가문에 정승 등이 몇 명이 나왔느냐에 따라서 가문의 급이 갈리는데 성씨가 희귀하다고 해서 귀족 가문인 것은 절대아니다. 오히려 희귀한 성씨일수록 평민의 후손이거나 노비일수도 있다. 성씨가 있다고해서 귀족의 후손이 전혀 아니다. 그에 반해서 신 안동 김씨연안 이씨의 가문은 대대로 벼슬을 한 귀족 가문의 후손이며 그 후손은 실제로 보기가 드문 수준이다. 사실상 한국에서는 족보의 의미가 없으나 이 두가문의 후손은 100% 그 혈통이 맞다는 것.[9] 안동시에 예안파 후손들이 거주한다. 이언적의 학설을 지지하고 이황의 가르침을 받은 전형적인 영남 남인 계통이다. 합천군에도 집성촌과 종중이 있다. 전남과 가까운 서부경남은 비교적 많다.[10] 증 동지추밀원사 호부상서 상장군 김주영(金珠永)이 10세손 김체(金蔕)의 아들로 되어 있었는데 이를 9세손 김대균(金大鈞)의 아들로 바꿨다.[11] 다른 가문에서도 서울에서 제주도나 또는 제주도만큼 먼 함북, 평북 지역 집성촌의 항렬이 높은 편.[12] 경주 김씨 상촌공파 17세손이나 김해 김씨 삼현파 21세손이 김용(容)○ 항렬이지만 꽤 높은 항렬이라 청년층이 대부분인 위키러들이 만날 확률은 적은 편이다. 흔히 보이는 김기(基)○, 김○호(鎬), 김택(澤)○ 항렬은 경주 김씨 상촌공파 21, 22, 23세손이고 김○곤(坤), 김종(鍾)○, 김○수(洙) 항렬은 김해 김씨 삼현파 22, 23, 24세손이다.[13] 김대중 형제들은 '대' 자를 돌림자로 사용하며, 이름 끝의 '중'이 겹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이다.[14] 6대 국반은 조선에서 가장 으뜸가는 명문가로 인정받는다.[15] 보명(譜名)은 김성기(金聖箕)다.[A] A B C 이 문중 전체가 3세 위의 항렬을 쓴다.[16] '永(길 영)'자 돌림인데 '姈(영)'라는 희귀 한자를 쓴다.[17] 동명이인인 대통령은 김녕 김씨.[18] 보명(譜名)은 김영남(金永南)이다.[19] 개명 전 이름은 김상은.[20] 장성보에서 38세손으로 나와있고 계보 정리로 37세손이 된다. 출처 사진(파일:김황식 족보.png). 그러므로 미상으로 수정하지 말 것.[21] 아들이 하정우,차현우 이다[22] 차현우가 동생이며 아버지는 김용건이다[23] 하정우가 형이며 아버지는 김용건이다[24] 친형의 이름이 김석중이다.[25] 친형의 이름이 김범중이다.[26] 이전 버전에 취소표가 쳐 있었고 주석에 항렬이 나잇대에 비해 너무 낮다며 이를 의심하는 글이 달려 있었는데, 할아버지 이름이 38세손 용(容)자 항렬을 써서 김용직(金容直)이며, 아버지 이름이 39세손 중(中)자 항렬을 써서 김시중(金時中)이므로 40세손이 맞다. 그리고 큰아들 이름은 41세손 순(淳)자 항렬을 써서 김성순(金性淳)이며, 큰손자 이름은 42세손 동(東)자 항렬을 써서 김동재(金東宰)이고, 큰증손자 이름은 43세손 환(煥)자 항렬을 써서 김주환(金周煥)이다. 벌써 두 번째인데, 40세손이 맞으니 그러므로 취소표 치지 말 것. 동시에 취소표 쳐진 김선태는 광산 김씨가 아니다.[27] 나이에 비해서 항렬이 매우 낮으나 증조할아버지가 38세손 용(容)자 항렬을 써서 김용공(金容恭)이며, 할아버지 이름이 39세손 중(中)자 항렬을 써서 김홍중(金洪中)이고, 아버지 이름이 40세손 선(善)자 항렬을 써서 김선찬(金善贊)이므로 41세손이 맞다. 그리고 큰아들 이름은 42세손 동(東)자 항렬을 써서 김동국(金東國)이며, 큰손자 이름은 43세손 환(煥)자 항렬을 써서 김세환(金世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