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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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정체
3. 극중 행적



1. 개요[편집]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배우민지환.[1]


2. 정체[편집]


실존인물로 아는 사람들이 많으나 가공의 인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사료 중에 김행선이라는 사람에 대한 내용은 없다.

다만 극중 묘사된 내용은 김행선과 동시대를 살았던 김행도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행도는 동주(황해도 서흥군) 출신이며[2] 김행선과 마찬가지로 시중을 지냈다. 그 밖에는 김행선이나 김행도에 대한 단서가 없으니, 나머지는 모두 작가 이환경이 그려낸 '드라마적 상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굳이 야인시대와 비교하자면 최동열 기자 포지션과 비슷하다.

이 드라마에서는 김행선이 오래도록 시중을 한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고려시중조선영의정처럼 빈번히 교체되는 재상직인지라 실제와 부합하지 않는다.[3] 이러한 묘사로 인해 공산 전투 당시 실제로 시중을 역임했고, 일리천 전투에도 참전한 강공훤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지 못했다.

전술한 사정들로 인해, 후술할 내용은 드라마상 묘사된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대체한다.


3. 극중 행적[편집]


궁예 때부터 관직에 있어온 신하로, 패서 지역 인물이다. 궁예 정권 말기, 왕건을 음해하려는 종간의 계획으로 들어온 고경참문에 관하여 최응이 먼저 뜻을 알았으나 궁예에게 직접 말하기 그러해서 학자들이 있는 부서인 금서성에 고경참문의 해석을 하자 하였고 학자들은 뜻을 알지만 해석하기 난감해 하는 모습을 보인다. 왕건에게 유리하게 적혀있는 글을 최응의 기지로 궁예에게 유리하다는 거짓 해석으로 올려서 위기를 넘긴 이후 한동안 등장이 없다가 궁예 정권이 몰락하고, 왕건의 고려가 들어서면서 시중 자리에 앉게 된다. 이후 광평성의 원로들 중 한 명이 된다.

시중이라는 높은 자리에서 왕건을 보좌하고 아래의 신료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등 역할을 하지만, 오히려 이 자리 때문에 사실상 고려 왕실 최고의 동네북이 되어 버리는 인물이다. 왕조가 들어선 이후 후계자 문제가 생길 때는 패서 지역에서 후계자가 생기지 않아 영향력에 문제가 생길까 같은 패서 지역 신하들과 논의를 하는 등 이해관계에 따른 분열의 한 축에 서 있었다. 이때, "빠르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최응의 이야기를 들은 왕건은 후계 구도와 조정 내부의 분열을 막기 위해 김행선과 자기 장인들 두 명(오다련, 유긍달)을 모조리 불러놓고 담화를 하는데 사실상 그 담화 내용은 자기 장인들을 본래 고향으로 좌천시키는 내용이었고(더 이상 조정 내부의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 "시중께서도 이젠 나이가 지긋하시니, 이제 좀 쉬셔야겠지요?"하며 왕건이 묻자 "아..아니옵니다! 신은 아직 펄펄하옵니다! 거뜬히 일 할 수 있사옵니다!"하며 깨갱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도 이때까진 잘 수습되었지만, 조물성 전투 이후 왕건이 백제에 인질로 보낸 왕식렴의 동생 왕신으로 인해 전투를 주저하자 전쟁을 해야 한다고 들고 일어난 무신들의 등쌀에 시달려야 했다. 김행선은 기본적으로 왕건의 뜻에 따라 잠시 전쟁은 보류하자는 입장이었지만 주전파인 무신들의 수가 많아 할 말을 잘 못했고, 홍유나 배현경은 아예 회의때 김행선이 말 하는 와중에 중간에 끊고 자신의 할말을 하기까지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왕건에게 무신들의 입장을 이야기 하러 가게 된다.

한참 후인 유금필을 두고 왕식렴과 홍유 등이 걸고 넘어져 벌어진 논쟁[4][5]에서는 '이게 왜 문제가 되나' 하는 입장이었지만, 이번에도 '이건 불충한 일이다'라고 주장하는 왕식렴과 홍유의 등쌀에 난처해 했다. 왕건이 유금필을 삭탈관직 하고 곡도로 유배를 보낸 이후에는 박술희가 찾아와서 김행선과 광평성 원로들에게 소리를 치고 꼬장을 피워대자 "아 왜 늙은 우리에게만 이러냐"라고 진심 섞인 짜증을 내기에 이른다. 아예 이후 왕건에게 유금필의 복귀를 청하러 갈 때, 이 사실을 알게 된 왕건이 "박술희 장군이 시중부에서 난리를 쳤다고요? 이런 못된 것이 있는가! 연세도 많으신 시중께 결례를 저질렀다는 말입니까!"하며 혀를 차는데 '젊은 사람들 투정도 들어주고 해야죠'라며 체념한 모습을 보인다. 이 자리에서 물론 김행선과 광평성 원로들의 주장은 왕건에게 퇴짜를 맞는다.

그래도 극중 후반에 가서 내분이 생기지 않게 되어 좀 편해진 듯하다. 경보대사를 만나기 위해 최지몽과 함께 다녀오기도 하고, 견훤의 귀순 이후에는 견훤을 모시는 일의 총 책임자로 임명되었으며 그의 마지막에는 견훤의 임종 때 신검 형제들이 처형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는 등 소소하게 등장하였다.

드라마에서는 동네북으로 묘사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인물이다. 살벌한 궁예 시기와 후백제와의 국가 존망을 건 전쟁이 일상이던 왕건 시기까지 쭉 고위직을 역임한 것만으로도 보통이 아니다. 시중 자리에서 동네북마냥 위아래에서 치이며 피곤한 일을 겪은 건 사실이지만, 달리 말하면 시중으로서 고려 정부의 온갖 갈등을 잘 중재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권력을 휘두른다는 묘사는 없어도 시중으로서 존재감이나 발언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왕건과 독대한 적도 많고, 어전 회의를 할 때도 대부분 가장 먼저 의견을 내는 등 당시 고려를 대표하는 신하 중 한 명으로 묘사된 건 분명하다. 또 견훤이 고려에 투항한 후 왕건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왕건은 견훤에게 자신의 부인(황후)들을 먼저 소개하고, 그 다음에 김행선을 따로 불러내어 소개시켜 주었으며, 그 다음에는 '김행선을 제외한 모든 신료들과 장군들'을 함께 소개했다. 실권과는 별개로 김행선이 당시 고려 신료들 중 단연 으뜸가는 지위와 위상을 가졌음을 잘 보여주는 연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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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워에서 보천대사로 나온 그 분이다.[2] 이마저도 사실 이름이 유사한 동주 사람 김행파와 가족일것이라는 추론에서 나온것에 불과하다.[3] 후백제 쪽도 능환이 건국 당시부터 멸망 때까지 이찬을 지내는 것으로 나오며, 최승우 역시 건국 당시부터 목숨을 잃을 때까지 파진찬 직을 유지했다. 아무래도 극의 내용이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것을 피하고자 다소 비현실적인 일을 감수하기로 한 듯.[4] 왕건이 유금필, 왕식렴, 복지겸 등과 서경(평양)을 방문할 때, 오랑캐 부족들이 마중나왔는데 이들이 유금필에게 만세를 외쳤다며(만세는 오로지 황제만이 받을 수 있다) 불충하다 걸고 넘어진 것. 물론 계기는 이거지만, 그 이면에는 화려한 전공을 쌓는 유금필을 우대하는 왕건에게 쌓인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5] 왕식렴의 경우, 왕건에게 서경(평양) 천도를 생각해보시는 것도 어떻겠냐고 말했는데 유금필이 북방이 안정되지 않았다고 강하게 반발하자 앙심을 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