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1988)/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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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
2. 프로 경력
4. 연도별 성적


1. 아마추어 시절[편집]


파일:external/www.chosun.com/200506070005_00.jpg
신일고 시절 김현수
신일고 시절부터 뛰어난 타격으로 이름을 날리며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혔다. 하지만 AAA대회 당시 멤버중 김현수만 혼자 프로구단에 지명을 받지 못했다. 정확한 이유는 미스터리지만, 발이 느리고 수비를 무성의하게 한다는 평가가 있었던 점, 하지만 김현수를 가르쳤던 한 코치의 증언에 의하면 "현수는 쳤다 하면 2루타여서 열심히 뛸 필요가 없었다."라고 증언하는 것을 보면 스카우터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 하다. 미국으로 진출한 신일고 동기 남윤희에 대한 보복으로 각 구단 스카우트들이 담합하여 지명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지만[1] 1987년생 드래프트를 보면, 남윤희와 김현수 사이에 지명된 신일고 출신인 모상기, 김상수(투수)도 있고 김현수와 남윤희는 태어난 해만 다를 뿐 신일고 동기이다. 2차 지명 회의 다음날 국내/외 많은 구단 관계자들이 김현수의 집을 찾았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롯데 자이언츠에서 김현수를 지명할 예정이라 했으나 김문호를 지명하면서 그만뒀다고도 한다. 대학 진학보다는 프로에서 뛰고 싶어 고민하다, LG 트윈스에는 박병호정의윤이 이미 많은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기에 두산에 신고선수로 들어가기를 선택했다고. 박현철 기자의 기사[2]

다만, 위에 김현수와 김문호 사이에서 고민했다는 건 체면치례용 아니면 면피성 발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김문호는 2006년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에서 지명되었는데, 만약 정말로 김현수와 김문호 사이에 고민을 했다면 다른 팀들이 김현수를 안 뽑는 걸 보고 4라운드에 '이게 웬떡이냐~'며 김현수를 지명해야 하는게 정상이다. 아니면 최소한 그 뒤에 라운드라도. 그런데 김문호를 지명하고도 9라운드 6명을 더 뽑을 동안 지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냥 애초부터 김현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물론 롯데 만이 아니라 8개 구단 스카우트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야구팬들은 농담 삼아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때문에 기피한거 아니냐 하기도 하지만, 8개 구단 프런트들이 전부 저런 저주를 철석같이 믿고서 안 뽑았을 리는 물론 없다. 발이 느리고 수비가 약한 데다가 장타툴이 없는 외야수라는 평으로 다들 기피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3] 어쨌든 결과적으로 김현수는 스카우트들의 보는 눈이 틀렸다는 것을 완벽히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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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로 경력[편집]



2.1. 두산 베어스 시절[편집]



파일:현수우승.jpg

2015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환호하는 모습. 김현수의 두산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현수(1988)/선수 경력/두산 베어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그가 두산을 떠나기 전 까지 두산하면 김현수가 떠오를 정도로, 그야말로 두산을 대표하던 두산 베어스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영구결번 0순위 후보 였다.

2006년 어느 팀에게도 지명을 받지 못하여 결국 두산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이내 타격 잠재력을 뽐내며 단숨에 리그 수위타자로 발돋움 하며 신고선수 신화를 썼다. 꾸준한 성적으로 두산 타선을 책임졌고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팀의 대표 선수가 되었다. 2008~2010 3년연속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2015 시즌에는 마침내 꿈의 한국시리즈 우승 또한 달성하였으며, 이후 FA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였고, 한국 복귀 당시 LG 트윈스로 이적하게 되면서 두산에서의 선수생활은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되었다.

2.2. FA 1기[편집]


2015시즌 전 우승을 한다면 두산에 잔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두산은 2015년에 삼성을 꺾고 정말로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공약으로 두산에 남겠다고 했지만 그건 시즌 전 이야기였고 본인은 현재 신중한 상태이지만 MLB의 호평도 있고 김현수 MLB 관련기사 박병호 역시 해외 진출을 했기 때문에 미국행 티켓을 끊을 것이 유력해 보인다.

프리미어 12가 끝난 후 귀국 인터뷰에서 남는다면 다른 팀은 못갈 것 같다는 말을 해서 두산팬들을 안심시켰다. 팀을 떠나고 싶은게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원한다는 내용이었기에 두산팬들은 안 가면 좋겠지만 가게 되면 잘하라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김현수가 두산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

김현수, MLB 사무국으로부터 신분조회 요청 12월 1일 MLB에서 정식으로 신분조회 요청이 들어왔다. 김현수 본인은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일단 관심이 있는 팀은 분명히 존재하는 듯하다.

그리고 12월 15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비트 라이터 댄 코널리의 트윗에 따르면 오리올스가 김현수에게 2년 6~8M의 오퍼를 날렸다고 한다. 같은날 미국 '볼티모어선'은 '볼티모어가 김현수와 협상을 벌이며 2년간 연평균 300만~400만 달러 수준을 제의했다'고 알렸다. 제의가 사실인 것으로 보여 오리올스와의 계약이 진행중으로 보인다. 그 외에 피츠버그 샌디에이고에서도 관심이 있는 듯 하다. 일본의 소프트뱅크 호크스, KIA 타이거즈NC 다이노스가 FA 거취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기사도 떴다. #

그리고 12월 17일 오전 메디컬 테스트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7M 노옵션 계약에 합의했다는 트윗이 떴다!! 국내의 리코스포츠가 김현수의 에이전트 역할을 맡아 주도적으로 움직였는데, 김현수의 이해관계와 딱 맞는 좋은 계약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메디컬 테스트가 끝나고 주말이 지났음에도 정식입단 발표가 나지 않아 고질적인 뼛조각 부상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인터넷에 잠깐 돌기도 했다. 그러나 현지 기자의 주장에 따르면 크리스 데이비스 계약과 연동되어 늦어지는 것이라면서 이는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예전부터 저질러온 짓거리라 한다.

그리고 한국 시각으로 12월 24일 새벽 공식 입단이 발표되었다. 등번호는 25번. KBO 리그 최초로 FA를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야수이다. 배리 본즈의 번호라는 에이전시의 권유로 25번을 달았다고.[4]

2.3. MLB 시절[편집]


파일:/image/117/2015/12/24/201512240056512210_3_99_20151224072203.jpg

2.3.1. 2016 시즌[편집]


파일:external/65.media.tumblr.com/tumblr_o8j59qdJcK1sqk8veo3_1280.jpg

입단식도 못 가는 연습생이었는데, 그런 것도 없는, 이게 진짜 신기해 나는, 전광판이...

ㅡ 볼티모어 입단식에서.## 그가 걸어온 길(연습생에서 메이저리그까지)을 잘 나타내는 말이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현수(1988)/선수 경력/2016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3.2. 2017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현수(1988)/선수 경력/2017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3.2.1. FA 2기[편집]

본인은 빅 리그에 남고싶어 하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은지라 시즌 후반 이후 KBO 리턴설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현지언론 역시 시즌중에도 계속 김현수가 2017년을 끝으로 귀국하리란 전망을 내놓았다. 17시즌의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인해 지난 계약 수준의 빅 리그 잔류 보장 가능성은 어느 팀에 가더라도 매우 적으며 마이너리그 스플릿 계약으로 백업과 AAA를 오가는 고된 생활을 감수할 생각이 없다면 윈터 미팅에서 현실을 확인하고 리턴하리라는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애초에 타격은 물론이고 수비,주루 조차 안좋은 -WAR타자를 영입할 메이저리그팀은 없다.

미국으로 떠나면서 한 말들이 있었기에, FA 시장이 본격화되기 전에 야구 팬들은 김현수가 어느 국내 구단과 계약할것이냐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모기업의 상황이 영 좋지 않음이 알려지고 민병헌에게 오퍼 한 번 넣지 않고 롯데와 계약하도록 그냥 두었음이 알려지면서 김현수의 거취가 2017 스토브리그의 최대 화두로 급부상하게 된다.

객관적인 전력과 모기업의 사정, 신인 육성이 강점인 팀 특성상 민병헌을 잃었다고 두산이 100억을 호가하는 외야수를 사야 할 이유는 크지 않았다.[5][6] 하지만, 김현수는 2008년 베이징 뉴비 유입 시기와 맞물리면서 두산 팬덤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차세대 프랜차이즈 스타였기에 놓칠 경우 구단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실제로 두산 팬들이 팬 페스티벌 등[7]에서 산발적인 실력행사에 나서는 등 김현수를 잃었을 때 팬들이 받을 심리적 타격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었다. 때문에 후일 밝혀지기로 여론을 인지한 두산 구단 프런트 측에서도 모기업에다가 ‘반드시 잡아야 할 선수’로 보고를 올렸다고 한다.

한편 성적을 불문하고 고참 선수들을 대거 정리하며 팬들의 원성이 최고조에 이른 LG 트윈스가 김현수 영입에 관심이 있는 유일한 구단으로 떠오르게 되고. 삼성[8][9] 등 다른 후보구단이 루머 수준에서 모두 정리되면서 김현수에게 오퍼를 낼 구단은 잠실 라이벌인 LG와 두산 두 팀으로 좁혀 지게 되었다. 하지만 김현수는 메이저리그에 미련이 남은 상태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접촉 소식은 없이 일단 김현수의 복귀소식이 윈터 미팅 이후로 예상되었다.

그리고 윈터 미팅 결과 김현수가 보낸 에이전트는 구단 관계자들의 차가운 반응 속에[10] 만족할만한 오퍼를 받아오는 데 실패하고, 김현수의 리턴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다.

12월 18일 원 소속팀 두산과 협상이 최종 결렬되었다는 기사가 났으나#, 몇 분 후 사실 무근이라는 반박 기사가 나왔다. 두산 팬들은 여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지만 다음 날 김현수가 LG와 계약했음이 발표되면서 2017 스토브리그 최대어 김현수의 소속은 두산이 아닌 라이벌 LG로 확정되었다. LG가 두산 소속의 FA 선수이던 김현수를 영입한 것은 지난 2007년 박명환 이후 11년 만에 이뤄진 계약이었다.

이후 엠바고가 풀렸는지, 두산과의 계약 성사가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었음에 힘을 싣는 기사와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얄궂게도 지난 10년간 두산을 대표하는 간판타자였고, 하필 프랜차이즈 스타라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김현수의 행방이 걸린 중요한 해였지만, 하필 이 때에 모기업이 야구단에 돈을 전혀 쓸 수 없는 상황에 몰렸고, 짜기로 유명한 프런트까지 그럼에도 꼭 잡아야할 선수라며 보고를 보내며 적극적인 소요제기를 하였으나 결국 사정상 모기업 측이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온갖 루머와 달리 구단측에서 기자들에게 “올해 FA 시장은 조용히 지나갈 것입니다”라고 언급했다거나, 김현수가 수차례 두산 구단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협상 해달라며 무언의 항의를 했다거나, 그럼에도 두산이 사정상 김현수에게 전혀 오퍼를 하지 못하여 두산이 아닌 타팀으로 가야 할 상황이 되자 김현수가 에이전트와 함께 울었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김현수입니다. 오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라운드에서 뛰고 싶다는 희망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경기를 뛰고 싶었습니다. 신고선수로 출발한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응원해주신 두산 베어스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제 이름을 외쳐주시던 팬들의 함성은 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저를 응원해주신 두산 팬 여러분의 사랑을 절대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정말 고맙습니다. 제 고민의 시간을 기다려주신 LG 트윈스 구단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LG의 승리를 위해 선수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LG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현수가 2017년 12월 19일 계약 후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친필 메시지를 남겼다.
파일:김현수 LG 이적 후 메시지.png

2.4. LG 트윈스 시절[편집]



파일:어린이날김현수.jpg

LG 트윈스 시절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현수(1988)/선수 경력/LG 트윈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친정팀인 두산을 떠나, 이제는 라이벌팀 LG 트윈스의 간판타자로 활약중인 김현수. 김현수의 영입 이후 LG는 간신히 5강 싸움만 하는 팀에서 우승 경쟁을 하는 팀으로 성장하며 윈나우를 노리는 중이다. 홀수해 성적은 상당히 아쉬웠지만, 어쨌든 LG에게는 최고의 영입이 아닐수없다.

2.4.1. FA 3기[편집]


4년간 정규시즌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539
2032
649
134
5
70
338
399
241
208
36
7
0.319
0.393
0.494
0.887
캡틴 잔류 기원하는 LG 선수들 "현수형 꼭 잡아주세요"
"다른데 가지 말아주세요" KBO 출루왕이 FA 캡틴에게
LG 선수들이 말하는 "LG에 김현수가 필요한 4가지 이유"

LG가 꼭 잡으려고 하겠지만 이번 시즌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하기에 얼마를 받을지는 알 수 없다. 득점권 타율이 확연히 떨어졌고 수비 범위도 줄었다. 다만 이는 햄스트링 부상을 참고도 뛴 걸 감안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4년 전체로 놓고 봐도 기복이 꽤 있다. 짝수해에는 성적이 최상위권이었지만, 홀수해에는 빼도박도 못할 먹튀. 2018, 2020시즌의 기록을 합해 계산하면 .345/.406/.554 OPS .960으로 최상급 성적이나, 2019, 2021시즌 기록을 합해 계산하면 .295/.374/.436 OPS .810으로 누가 봐도 김현수가 낸 성적이라기엔 상당히 저조한 성적이 나온다. 김현수의 명성과 4년 115억이라는 미친 금액으로 FA 계약을 했다는 걸 생각하면 2019년과 2021년 성적은 부진했다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그가 있었기에 LG는 2019년부터 포스트시즌에 매번 진출하는 상위권 팀으로 도약할 수 있었고, 당장 위의 링크된 기사를 보아도 LG 선수들 모두가 김현수의 잔류를 원하고 있다. 특히 홍창기는 김현수를 엄마이자 아빠 같은 존재라고 했을 정도로 김현수의 팀 잔류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또한 홍창기 외에 LG의 간판타자라고 할 수 있는 채은성도 LG라는 팀을 바꾼 사람이라며 구단에게 김현수를 꼭 잔류시켜 달라고 말했으며, 추가로 본인 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도 원한다며 선수단 차원에서의 의견임을 피력했다.

12월 14일 LG가 박해민과 4년 60억에 계약함으로서 김현수의 FA에도 커다란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 다만 박해민도 계약 직후 엘튜브에서 김현수의 잔류를 원한다고 밝혔다.[11] 차명석 단장은 박해민 영입과 상관없이 우리는 당연히 김현수를 잡아야 하고, 우리는 김현수만 생각한다고 인터뷰했다. LG는 김현수와 2~3번 정도 만나서 점점 의견차를 좁혀가고 있다고 밝혔지만 결별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 상태라고 한다. 현재 계약 기간을 두고 의견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와중에 지방 구단이 영입전에 가세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김현수의 행보는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한화는 공식적으로 FA 시장 철수를 선언했으며 롯데도 내부 FA들과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빼면 이번 시장에서 그렇다할 행보를 보인게 없고 그나마 박해민을 LG에 빼앗긴 삼성이 나섰을수도 있지만[12] 강민호와의 협상 때문인지 김현수 관련해선 역시 그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후보군은 나성범을 놓친 NC와 자금력을 바탕으로 큰 손으로 군림하고 있는 KIA로 좁혀지는데, NC는 김재환에 집중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며 영입전에 뛰어든 건 KIA일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샐러리캡 논란에서 자유로운데다 나성범 영입이 확정되었음에도 아직 돈이 넘쳐 흐르고, 무엇보다 양현종과의 협상이 미묘해지면서 김현수에게 돈을 더 쏟아부을 가능성도 열려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물론 차명석 단장은 협상도 순조롭게 되고 있고 곧 계약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안 좋은 소문이 도는 지 모르겠다며 이적설을 부인했다.차명석 단장 "김현수 결별설 말도 안된다. 협상 순조롭다"

파일:엘현수2.jpg
12월 17일, 4+2년 최대 115억으로 LG에 잔류하게 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20210804_230508.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현수(1988)/선수 경력/국가대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가을야구에 약한 반면 야구 대표팀에서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4. 연도별 성적[편집]



4.1. KBO[편집]


  •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입상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06
두산
1
1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2007
99
319
.273
87
19
3
5
32
33
5
31
.335
.398
.733
2008
126
470
.357
(1위)
168
(1위)
34
(1위)
5
(3위)
9
89
(5위)
83
(4위)
13
85
(2위)
.454
(1위)
.509
(4위)
.963
(2위)
2009
133
482
.357
(3위)
172
(1위)
31
(3위)
6
(2위)
23
104
(2위)
97
(3위)
6
84
(4위)
.448
(3위)
.589
(3위)
1.037
(3위)
2010
두산
132
473
.317
(7위)
150
(3위)
29
(4위)
0
24
89
88
(3위)
4
84
(4위)
.414
(5위)
.531
.945
(3위)
2011
130
475
.301
143
25
(5위)
2
13
91
(3위)
71
5
77
(4위)
.392
.444
.836
2012
122
437
.291
127
17
1
7
65
47
6
49
.358
.382
.741
2013
122
434
.302
131
23
1
16
90
(5위)
63
2
64
.382
.470
.852
2014
125
463
.322
149
26
0
17
90
75
2
60
.396
.488
.884
2015
141
512
.326
167
26
0
28
121
103
11
109
(3위)
.438
(4위)
.541
.979
2018
LG
117
453
.362
(1위)
164
39
2
20
101
95
1
48
.415
(4위)
.589
1.004
(5위)
2019
140
526
.304
160
37
(3위)
0
11
82
75
3
60
.370
.437
.807
2020
142
547
.331
181
(5위)
35
2
22
119
(3위)
98
0
65
.397
.523
.920
2021
140
495
.285
144
23
1
17
96
70
3
80
.377
.435
.811
2022
141
524
.286
150
25
2
23
(5위)
106
(3위)
78
2
76
.375
.473
.848
2023
133
488
.293
143
22
2
6
88
53
2
59
.364
.383
.747
KBO 통산
(15시즌)
1944
7110
.314
2236
(5위)
411
27
241
1363
1129
65
1031
.396
.482
.878

4.2. MiLB[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16
보위 베이삭스(AA)
2
7
.286
2
0
0
1
2
1
0
0
.286
.714
1.000
MiLB 통산
(1시즌)
2
7
.286
2
0
0
1
2
1
0
0
.286
.714
1.000

4.3. MLB[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bWAR
2016
BAL
95
305
.302
92
16
1
6
22
36
1
40
.382
.420
.802
1.3
0.9
2017
56
125
.232
29
4
0
1
10
11
0
14
.305
.288
.593
-0.6
-0.3
PHI
40
87
.230
20
4
1
0
4
9
0
10
.309
.299
.608
-0.6
-0.9
2017 시즌 합계
96
212
.231
49
8
1
1
14
20
0
24
.307
.292
.599
-1.1
-1.2
MLB 통산
(2시즌)
191
517
.273
141
24
2
7
36
56
1
64
.351
.368
.719
0.2
-0.3

[1] 정근우가 고교 졸업 당시 지명받지 못했을 때도 추신수의 미국 진출에 따른 보복설이 거론된 바 있다. 그와 유사한 소문. 당시 부산고 출신으로는 김백만이 한화에 2차 1라운드로 뽑혔고, 이후 (대졸이긴 하지만) 2명이나 더 지명받았다. 정근우의 미지명 사유는 작은 체구로 인한 낮은 발전 가능성.[2] 손시헌, 이종욱, 김현수 같이 두산에서 신고선수 성공 사례가 많다 보니, 이후 서울 팜 중 두산에 입단하고 싶어한 고교 선수도 많았다고 한다. 허나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가 많이 가는 대신 베테랑들에 대한 예우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3] 사실 고등학교 투수와 프로 투수의 차이는 어마어마해서 고교 때 타격으로 날렸어도 프로에서는 전혀 못 때리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다. 위에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라는것도 사실 전혀 저주가 아닌게, 고등학교때 잘했다고 프로에서 잘한다는 보장이 없는게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장의 고교 성적보다도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지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에는 신인지명에 있어서 타격이나 선구안을 과거보다는 더 중시여기는 편이지만, 이 때는 지금보다 더욱 툴을 중시하던 시점이었다. 게다가 고교 야구 대회 몇개 성적으로 타격을 평가하기에는 샘플이 너무 적기도 하고. 그리고 김현수가 뛰던 당시는 알루미늄배트에서 나무배트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2004년 봉황대기부터 나무배트 적용)[4] 참고로 이 당시 25번을 달고 활약했던 거포로는 배리 본즈뿐만 아니라 마크 맥과이어, 라파엘 팔메이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문제는 셋 다... 다만 이 번호를 단 선수 중에는 짐 토미마크 테세이라앤드류 존스도 있었던 만큼 완전히 약물로 더럽혀진 번호는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 번호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영구 결번이기도 하다.[5] 이미 좌익수에 김재환이 있고 정수빈도 돌아오기 때문에 잡을 가능성은 낮았다. 거기다 김인태조수행, 이우성을 썩힐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6] 이 때문인지 두산 구단도 모기업의 재정과는 별개로 애초에 협상 의지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민병헌을 그대로 롯데로 가게 내버려 뒀다.[7] 대표이사가 참석한 자리에서 김현수를 잡아달라는 어필을 했고,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두산베어스 해시태그에 FA 관련 문구를 도배하려 하기도 했다.[8] 자금이야 충분했지만 내야에 관심이 있다는 기사를 내고 또다른 대어인 강민호를 낚아가며 사실상 철수.[9] 강민호를 잡지 못한 롯데는 말 그대로 팬들에게 큰 비난을 받았다.[10] 메이저리그의 트렌드가 홈런대잔치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교타자의 매력이 떨어진 상황. 하물며 김현수는 잘 하지도 못했다. 때문에 윈터 미팅에서 구단 관계자들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한다.[11] 참고로 박해민은 김현수의 신일고 2년 후배이나 둘이 고교 시절 같이 뛴 적은 없다. 박해민은 원래 한서고등학교 야구부 소속이었다가 1학년을 마치고 팀이 해체하면서 신일고로 전학했기 때문. 박해민이 전학을 간 시점에서 김현수는 졸업해서 두산에 입단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본 적은 없다.[12] 이전에도 LG는 우규민을 삼성에 뺏기자 바로 삼성 소속 FA인 차우찬을 영입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 계약을 양 구단팬들은 보상 선수까지 합친 2:2 트레이드라고 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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