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타 테츠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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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타 테츠잔
(なが((てつ(ざん | Tetsuzan Nagata


파일:240px-Tessan_Nagata_2.jpg

출생
1884년 1월 14일
일본 제국 나가노현 스와시
사망
1935년 8월 12일 (향년 51세)
일본 제국 도쿄도
국적
[[일본 제국|

일본 제국
display: none; display: 일본 제국"
행정구
]]

신체
NNNcm, NNkg, 혈액형
가족
이름 (관계)
학력
학교명 학부명 (학과명 / 재학 여부)
종교
종교
직업
군인
소속
일본 제국 육군
황도파통제파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일본제국 육군의 군인으로, 일본 군벌 통제파의 중심 인물이었다. 일본 육군성 군무 국장, 참모본부 제2부장, 보병 제1여단장 등을 지냈다.


2. 생애[편집]


1884년에 지금의 나가노현 스와 시에서 태어났다. 나가타는 일본 육군 유년학교,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모두 수석을 차지하고, 일본 육군대학교도 2위로 졸업한 뛰어난 수재로 군무 관료로서의 길을 걸어 장래의 일본 육군 대신 재목으로 거론되는 인물이었다.

본래는 황도파의 일원으로서 군에 의한 국가개조를 꿈꾸었으나, 황도파의 수장격이었던 아라키 사다오 대장이 육군대신에 취임하고도 변혁 실행에 미온적이었을 뿐 아니라 자파 위주의 인사를 강행하자 이에 실망한다. 장차 다가올 전쟁의 양상을 국가총력전으로 보았던 나가타의 입장에서, 아라키의 파벌인사는 국가의 통일을 저해하는 악행이었으므로, 나가타는 아라키와 황도파를 실각시켜야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도조 히데키 등과 통제파를 구성한다.

이후 군무국장에 취임하여 황도파 거세를 위한 공작에 착수하였으나, 이러한 나가타의 행보에 황도파 측은 격노하였다. 나가타의 입안에 따라 결국 황도파의 중심 인물이었던 육군 대장 마사키 진자부로(眞崎甚三郎)를 교육 총감직에서 경질한 것을 계기로, 군무 국장실에서 일본 육군 중좌 아이자와 사부로(相沢三郎)에게 군도로 참살되었다. 사망 당시 육군성 군무 국장으로 계급은 육군 소장이었으며, 사망 후에 육군 중장으로 승진되었다. 범인 아이자와 사부로는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 도주했다가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재판에서 아이자와 사부로는 '자신이 죽인게 아니라 아마테라스께서 나의 몸을 빌어 나가타를 벌한 것'이라는 주장을 했고, 1936년 5월 7일에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6월 30일에 사형에 처해진다.

나가타의 암살 이후에 통제파와 황도파의 파벌 분쟁은 한층 더 심화돼, 후에 황도파의 청년 장교들이 2.26 사건을 일으키기에 이른다. 그 후에 나가타가 일인자였던 통제파는 나가타의 지위를 도조 히데키가 계승해 일본을 태평양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3. 여담[편집]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이시이 시로가 '각하, 중국 인구는 4억입니다. 총탄 한 발씩만 쏴도 4억 발입니다.' 운운하며 세균전의 필요성을 역설했을 때, '이시이, 자네 뜻을 마음껏 펼쳐보게.' 라며 세균전 연구를 후원해 준 군부 인사가 있다고 나오는데 정현웅의 소설 마루타에서는 그게 나가타 데츠잔으로 나온다. 저 두 가지야 픽션이기는 한데, 저 이야기가 나온 원전을 찾아가면 일본어 중역의 흔적이 다분한 1960년대의 태평양전쟁 논픽션 다큐멘터리가 나온다. 사실이던 아니던 나가타 데츠잔이 이시이 시로를 후원했다는 이야기가 일본 본토에서도 있긴 있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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