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수(유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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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魯秀
(? ~ 454년)

유송의 장수이자 반역자. 아명은 천념(天念).

부풍군(扶風郡) 미현(郿縣) 출신으로 유유에 대항하다가 북조로 망명했던 노종지의 손자이자 노궤의 아들로 노상의 동생이었다.


2. 생애[편집]


노수는 지략이 있었고 재능과 무예가 노상보다 뛰어났으며, 북위태무제에 의해 숙위(宿衛)로 선발되었다.

북위의 고양왕(高梁王) 탁발나[1]유연에게 포위당하자, 노수는 태무제의 명을 받아 구원에 나섰고 태무제가 대군을 이끌고 노수의 후속 부대로 출정하였는데, 노수는 태무제가 도착하기도 전에 유연을 격파하고 탁발나를 구출하여 돌아왔다. 태무제는 노수의 공을 칭찬하여 중서랑(中書郞)으로 삼고 광릉후(廣陵侯)에 봉하였다.

이후 업성의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보고가 태무제에게 올라오자, 노수는 업성으로 파견되어 진상을 조사했고 더불어 석호가 지었던 궁전들을 불태웠다. 노수는 이때 병에 걸려서 귀환이 늦어졌기 때문에 태무제의 견책을 받았고 이로 인해 두려워했다. 당시 정천조(程天祚)라는 인물도 북위에 포로로 붙잡혀 있었고 태무제가 측근으로 두고 있었는데, 노수와 만나서 그에게 남쪽으로 귀순하자고 권유했고 노수는 정천조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태무제가 남정을 단행할 때 노수는 노상과 함께 유송으로 귀순할 준비를 마쳤고 수양(壽陽)으로 가서 유송의 남평왕(南平王) 유삭에게 귀순할 뜻을 전했다. 노상 형제의 귀순을 받아들인 문제 유의륭은 노수를 보국장군(輔國將軍), 형양영천2군태수(滎陽潁川二郡太守)로 삼았다. 뒤이어 노수는 유삭의 참군, 여음내사(汝陰內史)가 되었고 보국장군의 직함은 종전과 같이 받았다.

452년, 북위에서 태무제가 중상시 종애에게 독살당하자, 유송에서 다시 북벌을 추진했다. 노수는 노상, 정천조 등과 함께 허창, 낙양 방면으로 출정했다. 이때 노상은 밤에 출정하면서 방비를 하지 않았는데, 노수가 간언을 올려도 이를 듣지 않았다. 그리고 북위의 예주자사 탁발복란의 습격을 받았으나 노수가 분투한 끝에 북위군은 호뢰관으로 달아났다. 노상의 진군은 계속되었으나 왕현모가 확오(碻磝)에서 패배하자 결국 군대를 철수하고 남쪽으로 돌아갔다.

453년, 문제 유의륭의 태자인 유소가 유의륭을 시해하고 스스로 제위에 오르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 노수는 건강에 있었는데, 유소가 노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서담지를 죽인 뒤 그대를 임명하려고 했다.


서담지는 415년 노상, 노수 형제의 아버지 노궤가 전사시켰던 서규지의 아들이었다. 유소의 말을 들은 노수는 유소의 밑에서 우군장군(右軍將軍)이 되어 5,000명의 군사들을 받고 무릉왕(武陵王) 유준이 진을 치고 있던 신정루(新亭壘)를 공격하고자 출정하였다. 노수는 이때 북을 쳐서 군대를 물린 뒤 유준에게 귀순하였다. 무릉왕 유준은 유소를 격파하고 제위에 오르니 이가 제4대 황제인 효무제였다. 효무제가 즉위한 뒤 노수는 좌군장군(左軍將軍)이 되었고 독사주예주신채여남여양영천의양익양6군제군사(督司州豫州新蔡汝南汝陽潁川義陽弋陽六郡諸軍事), 보국장군, 사주자사로 전출되었고 여남태수를 겸임하였다.

454년, 유의선, 장질, 노상이 반란을 일으키자, 노수도 이 반란에 가담하였다. 이때 노수는 유의선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님께서 인사를 그르쳤으니 어리석은 인물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도 올해는 실패할 것입니다.


유의선은 노수에게 부절을 더하고 정로장군(征虜將軍)으로 삼아 유심지(劉諶之)의 후속으로 합류하도록 명했다. 한편 옹주자사(雍州刺史) 주수지가 호응하지 않자, 유의선은 노수에게 주수지를 공격하도록 명했다. 왕현모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수가 오지 않으면 장질은 도모하기 쉽다.


노수지는 양양에서 주수지에게 패하여 돌아갔으나 익주자사(益州刺史) 유수지(劉秀之)가 관군을 이끌고 강릉(江陵)을 공격하자, 이를 격파하였다. 이후 유의선과 장질도 관군에 패배하여 유의선이 강릉으로 달아날 때 노수는 북쪽으로 달아나고자 했으나 부하들의 반란이 잇따른 가운데 성 위의 병사들이 화살을 쏘아 그 화살이 노수에게 명중했다. 노수는 물에 빠져 죽었고 종경숙(宗敬叔)과 강승념(康僧念)이 노수의 목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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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서에서는 아숙니(阿叔泥)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