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시환/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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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여담
2.1. 한동희와의 라이벌 구도?


1. 개요[편집]


한화 이글스 소속 내야수 노시환에 대한 각종 여담을 서술한 문서.


2. 여담[편집]


  • 고향은 울산이지만, 야구를 위해 유년기 대부분을 부산에서 자랐다. 입단 이후 형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아버지는 광주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부산에 거주하면 가족들이 모이기가 어려워 가족들과 함께 아예 대전 야구장 근처로 이사왔다. 광주-서울의 중간이 대전이어서 딱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본인은 이제부터 대전인이라는 인터뷰를 했다. 또한 진정한 대전인이 되기 위해 2군에서 열심히 하여 1군에 자리잡는 것이 목표라며 포부를 드러냈다. '부산 토박이' 한화 거물신인 노시환, "이제 대전인입니다" 대전인이 되겠다는 다짐인지 경상도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는다.[1][2]

  • 월급과 같은 재정적인 부분은 적금 등을 통해 부모님이 관리해주시며, 2022년 기준 매달 80만원의 용돈을 받아서 사용한다고 한다.

  • 노시환의 외모는 어머니를 정말 많이 닮았는데, 성격은 유쾌하고 장난기가 많다는 점에서 아버지와 비슷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뼈대도 굵고, 운동을 다재다능하게 잘하는 편이라 피지컬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닮았다고. 아버지와 형은 야구장에 자주 방문해 경기를 직관을 즐겨하는 반면, 어머니는 종종 욕설을 하고 고함 지르는 사람들 때문에 잘 방문하지 않는다고 한다.

  • 노시환 본인과 노시환의 어머니는 야구 커뮤니티인 엠엘비파크에 자주 접속해 노시환의 이름을 검색한 후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한다. 특히 어머니께서 엠엘비파크 마니아 수준으로 노시환이 경기가 끝나고 귀가하면 엠엘비파크를 보고 계시는데 아들에 대한 좋은 글을 보면 뿌듯해 하시고, 팬들의 작은 의견까지도 즉각적으로 피드백 해주신다고 밝혔다. 본인도 자기 전에 엠엘비파크에서 본인에 대한 글이나 본인을 주제로 논쟁하는 글을 흥미롭게 읽는다고 한다.

  • 과거 팀 선배이자 2군 코치이던 차일목과 얼굴이 꽤 흡사하다. 지금은 살이 10Kg 이상 쪄서 구별이 쉽다.

  • 자타공인 팀 영구결번 김태균의 후계자로 꼽히는만큼 많은 것들이 닮았다. 우타 슬러거라는 점과 주요 포지션, 180 중반의 키와 육중한 몸매, 두터운 하체가 비슷한 것은 물론이고 팀 내에서 분위기 메이커 담당이며 말재주도 좋고 위트가 좋다는 것 등이 닮았다. 때문에 노지진이라는 별명도 있다.

  • 과거 팀 선배인 이범호와도 많은 것들이 닮았다. 이범호와 노시환은 경상도 토박이고, 한화이글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드래프트 역시 2차 1라운더로 지명됐고, 당시 1차지명은 모두 북일고 선수였다[3]. 또한 180 중반의 키와 90kg가 넘는 육중한 몸매 및 두터운 하체를 보유하고 있다. 잦은 실책과 아쉬운 수비를 보였지만, 강력한 송구가 강점이라는 점도 비슷하고, 두사람 모두 이글스 프렌차이즈 스타였던 강석천송광민이 은퇴하는 시점에 등장한 3루수라는 점도 인상깊다. 플레이 스타일 역시 많이 닮아있는데 모두 우투우타이고, 초창기 파워는 가공할만하나 아쉬운 컨택능력과 변화구에 약점을 보여 삼진이 잦다는 점 역시 비슷하다. 다만, 두 선수 모두 연차가 늘어나면서 성적이 개선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실제로 커리어 1년차~3년차 성적을 보면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입단 초기 활발한 SNS 활동으로 팬들이 우려를 샀었지만, 구단에서 신인 대상 SNS 소양교육을 실시하자 곧바로 SNS 활동을 중단했다. 2021년 9월 기준 인스타그램 계정을 다시 만들었으나, 게시물은 올리지 않고 지인들만 팔로우를 맺는 비공개 계정이다. 2022년 12월 기준 전체공개 계정으로 전환하며 본인의 사진을 담은 게시물과 일상을 담은 스토리를 게시하는 등 SNS 활동을 재개하고있다.

  • 같은 해 입단한 변우혁과 시너지가 상당한 편이다. 서로 안타와 홈런 경쟁을 하면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실책을 하면 함께 실책을 하곤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운동능력이 우월했던 노시환 쪽이 훨씬 기회를 많이 받았고, 선구안이 더 좋을것이라 생각됐던 변우혁이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먼저 상무에 입대하면서 군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변우혁이 2군에서도 헤매면서 현장의 눈이 정확했음을 보였다. 어쨌든 변우혁이 전역하고 1군에 어느 정도 적응할 즈음 둘이 교대하는 방식으로 병역을 해결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KIA로 트레이드 되는 바람에 둘의 조합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 팬서비스가 매우 훌륭한 편으로 사인요청을 하면 자신의 사인과 팬의 이름까지 써주고 하트까지 붙여준다. 본인의 어린 시절에 사직야구장에서 캐치볼을 하던 카림 가르시아 선수가 던져준 공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 때가 생생하게 기억날만큼 기분이 매우 좋았다며 '어린이 팬들한테는 특히 잘해줘야겠다' 라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한다.

  • 사인은 자신의 이름을 흘려쓴 후 하단에 #을 다시 흘려쓰고 등번호를 적으며, 이는 37번을 달았던 신인 때부터 같은 사인 스타일을 유지해오고 있다. 정자로 이름을 쓰다 흘려쓰게 된 이정후와 달리 준비된 신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 눈치가 빠르고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평소 말재주가 좋고, 고교시절 인터뷰를 많이 해봐서 그런지 인터뷰 스킬도 뛰어난 편이다.

  • 동기인 롯데 서준원의 공은 쉽다고 인터뷰를 하는 식으로 경남고 동기와 후배들에게 어그로를 끌어서 경남고 출신 투수들이 삼진을 잡겠다는 인터뷰가 많이 나타난다.[4]

  • 역대 3루수 선수들 중에 신인 시절 수비는 제일 나은 편이다. 2019년 미야자키 교육리그에서 맹활약을 하면서 일본만 가면 잘한다는 공식이 생겼다.

  • 2020년 초반, 경기에 잘 출전하지 못할 때, 김태균에게 스파이크와 배팅장갑을 받았다. 그 결과 2경기 연속 홈런을 쳤다.

  • 김태균의 은퇴식에서 우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후 수훈선수 인터뷰 때 롤모델로 김태균을 언급했다. 더그아웃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는 “신입으로 입단했을 때 베테랑 선배님으로서 잘 챙겨주신 덕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김태균 선배님처럼 한화의 중심타선을 책임지고 한화 프랜차이즈의 길을 걷고싶다.“ 라고 밝히기도 했다.

  • 팀 사정상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2019년 4월 6일에는 최재훈의 부상으로 인해 포수로 출전[5]했고, 2020년에는 3루수 송광민의 자리를 위해 전반기엔 유격수로 자주 나왔다.[6] 한편, 같은 해 6월 5일에는 패색이 짙은 9회초 불펜을 아끼기 위해 투수로 출전해 1이닝 2자책을 기록했다. 최고 구속은 145km/h.

  • 한화 이글스에서 하주석 이후 7년만에 1라운드로 뽑힌 타자이다. 1차 지명의 경우는 김주현변우혁이 존재하지만, 상대적으로 팜이 빈약한 충청팜에서 선택된 선수인 만큼 타자 최대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또한 한화에서 선택되는데 행운이 컸던 만큼 팬들의 무수한 기대를 받고 있다. 이 4명 중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 노래 실력이 상당히 좋다. 전상근의 사랑이란 멜로는 없어를 무리 없이 완창할 정도.# 멤버쉽 전용으로 공개하는 뉴노멀독마 선공개 영상에선 김범수의 끝사랑을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영상이 연습경기 자체 중계 중간 광고마다 나오면서 노시환의 노래 실력은 알고 가는 타 팀 팬들이 있을 정도다. 본인이 밝힌 바로는 야구를 잘한 뒤에 복면가왕에 나가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2021년 6월 10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홈경기에서 우천 중단 동안 뉴노멀독마 때 노래 영상이 나오면서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04:55~ 그래서 생긴 별명이 싱어송 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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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료 야수들과 함께 딩고뮤직 킬링보이스에 출연했는데, 우수한 가창 실력을 보여준다. [7]

      •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초등학교 때로 돌아가서 야구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주 재미있게 야구를 했고 기본기를 많이 배웠는데 그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프로에서도 경기를 잘 뛰고 있는 것이라며, 본인 야구 인생에서의 봄날과도 같았다고 비유했다.

      • 고등학생 시절, 가까운 후배인 롯데 최준용과 함께 부산 경성대 번화가 인근의 노래방에 가서 자주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최준용은 노시환이 버즈가시를 편곡해서 부른 버전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아서 자기 전마다 생각이 날 정도였다고. 최준용도 출중한 노래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노시환이 한수 위라 최준용이 약했던 고음을 많이 연습했다고 한다.

      • 전반적인 끼가 많아 성대모사도 잘하고 춤도 곧잘 추는 편이다.

      • 쉬는 날엔 주로 집에서 게임을 한다고 밝혔다. 특히 여름에 집에서 에어컨 켠 방에서 게임을 하는 걸 제일 좋아하는데 이나 서든 어택을 비롯한 웬만한 게임은 다 한다고 한다. 롤은 플래티넘일 정도로 잘한다. 그래서 KBA에도 출전했는데 그랩 미스로 같이 참여한 야구선수들과 (전)롤 게이머, 인플루언서도 식겁하게 만들어서 같은 팀이었던 갱맘, 매직박으로부터 노동 미사일이란 안좋은 별명을 얻었다.

      • 한 네티즌이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 등의 야구 커뮤니티에서 "노시환 고맙다" 또는 "노시환 갓맙다" 라는 제목의 글을 반복해서 게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노시환을 거르고 뽑은 선수가 롯데는 지역 1차 지명 서준원, 삼성은 2차 1라운드 전체 2번 이학주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롯데는 서준원이 당시 김기훈, 원태인과 고교 투수 트로이카로 평가받았고 그 세 명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지라 놀리는게 덜하지만, 삼성은 당시 6월 지역 1차 지명전후만 해도 노시환을 뽑으려다가 당시 김상수가 너무나도 심각했기 때문에 이학주를 뽑은지라 더욱 놀림당하고 있다. 특히 노시환이 홈런치거나 호수비하면 미친듯이 도배돼서 갤럼들의 맨탈을 흔들어버리는데 반대로 노시환이 실책을 하거나 클러치 상황에서 해결을 못하면 타갤러들이 한화 이글스 갤러리로 몰려와 갓맙다로 도배한다. 결국 그 "갓맙다" 가 밈이 되어 전 구단의 갤러리들을 돌아다니고 있다. 2021년 이후 노시환을 거른 1차 지명 롯데의 서준원은 여전히 헤메다가 2023년 3월 미성년자 약취 혐의로 방출, 2차 1번픽인 kt의 이대은은 갑작스런 은퇴[8], 2번 픽인 삼성의 이학주는 기량과 워크에씩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트레이드 되는 등 전부 고전을 면치 못하자 한화 팬들은 더더욱 갓맙다를 외치고 있다.[9]

      • 유희관을 상대로 10타수 7안타 10타점을 기록할 정도로 매우 강하다. 데뷔 첫 연타석 홈런도 유희관을 상대로 기록했을 정도.

      • 외모가 윌리엄 해밍턴과 흡사하다. 그래서 윌리엄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특히 2023년 어린이날 즈음 본인의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어릴 때 사진은 소름돋을 정도로 윌리엄과 판박이다.


      • 출중한 3루수 수비와 화끈한 장타력을 뽐내는 선수라서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현역 최고의 3루수인 놀란 아레나도의 이름을 딴 시환 아레나도라는 별명이 있다. 주로 야구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별명이다.

      • 번개장터 평점이 1점인 판매자로, 일화로 경남고등학교 재학 당시 중고상품 직거래를 한적이 있는데 “혹시 고교야구 선수세요?” 라는 질문에 “아뇨, 안해요.” 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 롯데의 서준원이 여동생이 있다면 소개시켜주고 싶은 선수로 노시환을 꼽았다. 본인이랑 잘 맞고, 유쾌하고 재밌어서 여동생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이해 각 선수들의 어린시절 사진을 나열해놓고 '''육아가 가장 힘들었을듯한 어린이를 고르는 투표‘’‘에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약수터 바가지를 머리에 쓰고있는 사진으로 영광(?)의 1위를 차지했다.[10] 이를 접한 노시환은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된다며 자신은 지금도 효자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과거 인터뷰에서 밝힌 어린시절 일화는 사고뭉치에 개구쟁이였다며, 집에서 탁구채를 휘두르다가 거실 문짝을 부수거나 실수로 유리를 깬 적 있고, 배트를 휘두르다가 천장의 전등도 깬 적 있다고 언급했다. 성격이 워낙 활발하고 운동을 좋아해 집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 본인에 의하면 첫사랑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고 한다. 걸어다닐 때마다 태양이 빛을 비춰주는 듯 하고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고 느껴질만큼 너무 예뻐서 몇 년에 걸쳐 마음을 계속 고백했으나, 번번히 거절당했고, 이후 노시환이 부산으로 전학온 이후에도 한동안 잊지 못해 첫사랑의 추억은 짝사랑으로 남아있다.

      • 어릴 때부터 편식이 심해서 지금도 채소를 먹지 않으며 전체적인 입맛 자체가 굉장히 까다롭다. 부모님이 어떻게든 먹이려고 많이 노력하고 초등학교 때 부터 코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도 채소 좀 먹으라고 계속 회유했지만, 결국 다들 포기했다고 한다. 단체급식에서 나오는 계란찜에 올라가 있는 쪽파를 걷어내고 먹으며 햄버거에 들어가 있는 양상추, 김밥에 들어있는 당근, 삼계탕에 고명으로 들어간 파, 막국수에 들어있는 야채들을 일일이 빼서 먹을 정도이다. 노시환의 식단을 취재하는 이글스TV 관계자에게 채소에서 아무 맛이 안 나는데 왜 먹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식빵 테두리도 맛이 없다며 가차없이 뜯어낸다. 심지어 고추장도 안먹는다고 한다.[11][12] 반면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BBQ치킨핫윙으로, 혼자 두 마리씩 먹기도 한다.

      • 2022년 자선야구대회에서 호세 미겔 페르난데스의 스윙과 세레모니를 패러디하며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이를 본 페르난데스는 노시환의 패러디를 본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했다. #

      •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소속 배구선수 이다현의 팬임을 밝혔다. 유튜브에서 이번 올스타에서 선보인 띵띵땅땅땅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팬이 되어 하루에 백 번씩 돌려본다며 시구 제의를 하기도 했다. #

      • 어마어마한 삼나쌩이다. 2023년 총 8개의 홈런 중 4개를 삼성 상대로 치며 어마무시한 괴력을 보여줬다. 특히 5월 10일 경기에서는 친구 원태인을 상대로 연타석으로 홈런을 치며 원태인을 제대로 괴롭혔다.

      •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 2023년 8월 12일 기준으로 총 지명타자 출장 5경기로 18타수 3안타 .167 2홈런으로 부진한 편이다.

      • 선술했듯이 고향 팀이 롯데이고, 노시환 본인이 롯데 응원가를 틀어놓고 운동한다던지[13], 롯데 레전드이자 김태균과 함께 본인이 존경하는 선수인 이대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던지 하는 행동으로 인해 2023년 들어 벌써부터 노시환을 자팀 선수로 취급하거나, FA로 무조건 롯데로 올거라는 롯데 팬들이 많아졌다.[14] 단순히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유튜브에도 그런 롯데 팬들이 많은 것을 보고 한화 팬들이 상당히 거슬려하는 중이다.[15]


      2.1. 한동희와의 라이벌 구도?[편집]



      파일:한동희 노시환.jpg


두 명이 모두 호성적을 올린 2020년 경 부터 롯데 자이언츠 3루수 한동희와의 라이벌 구도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라이벌 구도의 주요 요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롯데의 영구결번 이대호의 후계자 한동희 vs 한화의 영구결번 김태균의 후계자 노시환[16]
  • 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 1년 직속 선-후배 관계.
  • 포지션이 3루수로 서로 일치, 타격스타일도 전형적인 우타 슬러거.

2022년 현재까지는 두 선수의 성적은 서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해당 라이벌 구도에서 앞서는 선수는 라이벌 경쟁에서의 승자 뿐만 아니라 김동주-최정-허경민의 뒤를 이을 국가대표 3루수이자 베이징 키즈의 핵심 3루수까지 거머쥘 수 있다.

이렇게 한동희와 나란히 언급되는 것에 대해, 노시환은 부담감이나 승부욕이라기보단 중학교, 고등학교 1년 선후배 사이로 친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같이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크다고 말했다. 서로 스타일이 다른 점도 있고 배울 게 많지만 실책을 해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성격과 도루를 할 수 있을 만큼 발이 좀 더 빠르다는 스피드 측면에서는 본인이 더 낫다며, 차후에 국가대표에 뽑혀서도 김태균과 이대호 처럼 함께 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2023년 10월 기준 노시환은 팀과 리그 탑 타자로 성장,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금메달을 획득하고 병역특례를 받은 것에 비해 한동희는 2군에 갔다오기도 하는 등 부진하며 노시환이 우위를 달리고 있다.
[1] 보통 경상도 사람은 타지역에 살아도 표준어 억양으로 고치기 어려워 하는 편이고, 몇 년은 타 지역에서 살아야 없어지거나 아예 못 고치는 사람도 많은데, 노시환은 거의 1~2년차에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많이 줄었고, 현재는 경상도 출신과 대화하지 않는 이상 거의 쓰지 않고 있다.[2] 대전은 사투리를 아예 안쓰지는 않지만 사투리 억양이 많이 없는 지역이다.[3] 조규수, 변우혁[4] 실제로 서준원 상대로 성적이 좋다.[5] 고등학교 시절 잠깐 포수로 출전한 적이 있다.[6] 이후 송광민이 기량 저하로 1루수로 자리를 옮겼고, 주포지션은 3루수를 맡으며 유격수로 거의 나서지 않았다.[7] 패러디가 아닌 딩고와 콜라보한 오리지널 콘텐츠다.[8] 은퇴 과정이 순탄치는 않아 비판받았지만, 동기부여를 잃은 게 컸다.[9] 사실 다 결과론이기는 하다. 당장 롯데의 서준원은 지명 당시만해도 150km/h를 던지는 사이드암 투수였고 그래서 2019년 신인 드래프트때 고졸 투수 트로이카 3인 중 1등으로 꼽혔다. 이대은은 여러 리그에서 뛰었고 역시 150km/h를 던질 수 있던 우완 정통파 베테랑 투수였다. 이학주도 수비로는 메이저리거라는 평을 받았고, 십자인대 부상만 아니었다면 메이저리그 입성도 가능했을 것이라 평가받았다. 그래서 위에 적혀있듯이 김상수의 자리가 너무 심각했던 삼성이 기본만 해주기를 바라면서 이학주를 택했다. 다만 삼성이 이학주와 노시환 중 고민을 했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10] 참고로 2위는 김범수.[11] 한국인이 한국 요리에 많이 쓰이는 양념장을 안 먹는 사례는 정말 드문 사례다.[12] 그래도 같은 장 종류의 쌈장은 좋아하는 편이다. 부산 출신답게 순대도 쌈장에 찍어 먹는다고.[13] 다만 이는 살짝 와전된 것이, KBO 응원가 중 좋은 노래들을 틀어 놨는데 롯데 응원가가 다수 있는 것이다.[14] 사실 이건 라이벌로 꼽히던 한동희의 부진이 상당히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15] 하지만 야구부장 라이브 방송에서 실시간 Q&A 중 한화 이글스는 아예 노시환의 샐러리캡을 비워두고 운영한다면서 구단 자체에서 원클럽맨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강력해보인다.[16] 사실 김태균의 후계자 타이틀은 노시환과 함께 같은 해 1차 지명을 받은 로컬보이-북일고 후배 변우혁과 같이 가지고 있었으나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노시환에게 우위를 내주다가 결국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되어 이적하면서 노시환이 단독 후계자 타이틀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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