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스 광산 붕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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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녹스 광산 붕괴.jpg
무너진 광산으로 쏟아져 내려가는 물
1. 개요
2. 사고 내용
3. 사고 이후



1. 개요[편집]


Knox Mine Disaster

1959년 1월 2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녹스 광산이 무너진 사고.


2. 사고 내용[편집]


석탄은 한때 펜실베이니아 주는 물론, 미국 전역에서 잘 나가는 산업이었다. 광산이 발달하면서 일하는 광부들도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인근에 의식주를 차린 사람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전기의 발명과 함께 석탄은 점차 사그라들었고, 1차 세계 대전2차 세계 대전까지 일어나면서 광산 산업은 주춤했다. 폐광하는 곳이 늘고, 광부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폐광하지 않은 채 버티는 광산들도 돈 지출을 줄여야 하다보니 안전에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광부 노조 위원장인 어거스트 리피(Agust Lippi)는 몰래 광산의 보유 지분을 갖고 있었고, 때문에 광부들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닥쳐도 무시하고 다녔다.

리버 슬로프 광산(River Slope)도 이러한 곳 중 한곳이었다. 리버 슬로프 광산은 무연탄을 주로 채광하던 곳으로, 하루에 약 700톤의 석탄이 나오던 곳이었다. 광산에선 150명이 넘는 광부들이 일을 했었다.

사고 날, 광부 81명이 광산에서 근무중이었다. 광부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75명은 광산 내에서 일했고, 6명은 대기중이었다. 서스퀘한나 강(Susquehanna River)과 굉장히 가까운 광산이라 너무 가까이 팔 경우 위험성이 존재했기에 광부들에게 일하는 곳의 한계선을 정했었다. 강과 대략 15m 떨어진 지점 까지만 일 하도록 되어있었다. 하지만 광부들을 관리하던 녹스 석탄 회사(Knox Mine Company)에선 허가를 받고, 10.6m 떨어진 지점까지 광산을 더 확장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녹스 석탄 회사는 욕심을 더 내 아예 강과 48cm만 남겨두고 광산을 확장하기로 했다. 겨울철에 수위가 높아지는 서스퀘한나 강 특성상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오전 11시 경, 이상한 터지는 소리가 들리자 대기중이던 광부 6명 중 3명은 대피했다. 일하던 광부들은 별일 아니겠지 하고 계속해서 일을 했으나, 11시 42분에 강과 지나치게 가까이 확장했던 광산이 무너졌다. 순식간에 무려 8백만 리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들이닥쳤고, 광산을 지탱하던 나무 기둥들을 무너뜨리면서 광산이 계속해서 무너졌다. 광부 33명은 소리를 듣고 급히 대피했다. 하지만 나머지 광부들은 안에 갇혀 버렸다.

갇힌 광부들 중 조 스텔라(Joe Stella)가 이끌던 7명은 조가 평소 광산 지도를 들고 있던 덕에 탈출 경로를 알 수 있어 쉽게 대피했다. 아메데오 팬코티(Amedeo Pancotti)도 사람들을 이끌고, 안 쓰던 15m 높이의 통풍 수직굴로 올라가 구조대원들에게 위치를 알린 덕에 아메데오 본인을 포함해 33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12명은 사망했다. 이들의 시신은 발견되지도 못했다.


3. 사고 이후[편집]


광산에 계속해서 물이 차오르는 가운데, 피해가 커지는 걸 막이 위해 흙과 바위는 물론이고, 광차, 열차까지 동원해 구멍을 막은 끝에 3일이 걸려서야 간신히 구멍을 막았다. 구멍을 막은 뒤엔 펌프 수십대를 동원해 광산에서 물을 빼내고 임시로 막았던 구멍을 공사를 통해 제대로 막았다.

해당 광산 자체는 바로 폐광되지 않고 더 쓰인 뒤에 폐광됐다. 녹스 석탄 회사는 사고를 계기로 파산했다.

사고로 수많은 법정 싸움이 오고 갔으나, 처벌받은 이는 없었다.

아메데오 팬코티는 32명의 목숨을 구하게 해준 보답으로 카네기 상을 받았다.

녹스 광산이 있던 자리엔 추모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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