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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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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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과거 휴대전화 제조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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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 사업이 아니더라도 휴대전화 제조 이력 기준.
(해체가 아닌 철수의 경우 가능한 당시 로고로 기입)





닉소
Nixxo | 닉소테크놀로지


파일:닉소텔레콤.jpg

기업명
닉소 / Nixxo

(등기상 법인명)
정식: 스탠더드텔레콤 주식회사
영문: Standard Telecom Inc.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대표
임영식 (1대)
김용국 (2대)
설립일
1991년 9월
해산일
2003년 3월
업종명
이동전화기 및 통신장비 제조업
직원 수
196명 (2002년 기준)
규모
중견기업
상장시장
코스닥시장 상장폐지
본사
경기 안양시 동안구 흥안대로 439번길 70 (관양동)
홈페이지
웹사이트[1]
계열사
닉소테크놀로지 (미국 지사)
스탠더드정보통신
스탠더드 SMT
윈텔
화승전자 (합병)

본사 입간판 앞 임직원들의 사진 (1998년)

우리의 무대는 세계시장입니다.

- 임영식 사장 인터뷰 中 -

1. 개요
2. 역사
2.1. 창업 초기
2.2. 전성기
2.3. 휴대폰 시장 진입
2.4. 휴대폰 제품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옛 통신기기 제조업체. 무선호출기와 시티폰, 휴대전화를 생산했으며 2003년 폐업하였다. 1996년 기준 무선호출기로 국내시장에서 약 20%의 점유율을 유지했으며 수출시장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였던 업체다.


2. 역사[편집]



2.1. 창업 초기[편집]


1991년 9월 창업투자회사인 한국기술종합금융의 자금지원을 받아 고명전자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나 이듬해 2월 스탠더드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함과 함께 대외 상호명을 '닉소(Nixxo)'로 변경하였다. 스탠더드텔레콤이라는 이름은 단순 등기상 법인명일 뿐이고, 실제로는 대외 브랜딩/로고, 도메인 주소 등 모든 부분에서 닉소라는 이름을 사명처럼 사용한 회사다. 스탠더드텔레콤은 로고조차 없다. 게다가 미국 지사는 아예 사명을 '닉소테크놀로지'로 설립했으니 사실상 닉소가 사명이라고 보면 된다.

1993년 기업부설 정보통신 연구소의 설립을 시작으로 동년 7월부터 9월까지 자회사 '스탠더드 SMT'와 '윈텔'을 설립했다. 2년 뒤인 1995년에는 화승그룹이 단말기 제조업을 철수하여 시티폰 및 휴대전화 제조사인 화승전자를 인수했으며, 곧 자사에 흡수 합병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2.2. 전성기[편집]


1996년 한 해 동안 무선호출기 하나로 약 1천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려 1997년에 들어서는 인도에서 1천만 달러, 중국에서 2천만 달러의 주문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이에 닉소(스탠더드텔레콤) 측은 "2000년까지 매출의 70%를 해외에서 벌어들일 생각입니다. 세계 최고의 기술수준을 갖고 있는 국산 무선호출기가 앞으로 수출 효자상품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라고 밝혔다.[2]

당시 텔슨전자, 삼성전자, LG정보통신, 와이드텔레콤, 리텍, 델타콤 등 약 60여개의 업체가 뒤엉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던 국내 무선호출기(삐삐) 시장에서 1996년 기준으로 약 20%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한마디로 텔슨전자모토로라에 이어 국내 시장 3위의 점유율을 기록한 무선호출기 업체였다는 것. 이는 4위로 고전하던 삼성전자의 '애니삐'보다 우세한 실적이었으며, 이로인해 당시 언론에서 "5년차 중견기업이 유수 대기업을 점유율로 이겼다"며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1991년 창업 첫 해 19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1993년 120억원, 1994년 280억원, 1995년 350억원을 달성한 데 이어 1996년에는 이미 600억원을 돌파했다.매출액이 5년 사이에 무려 30배이상 증가한 셈이다. 당시 서울신문에서는 "이처럼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는 원동력은 젊은 인력의 창의력을 중시하는 기업풍토에서 비롯됐다"고 평가하며 "스탠더드텔레콤의 창업자들은 모두 엔지니어 출신, 대학에서 항공통신·전자공학 등을 전공한 뒤 삼성전자 등에서 일하다 뜻을 모아 회사를 차렸다. 늘 창의적이고 앞서가는 자세로 기술과 아이디어 개발에 우선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회사의 전략으로 삼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닉소의 직원은 100여명에 불과하지만 미국 실리콘밸리 산타클라라연구소에 15명, 국내에 25명의 연구원을 두고 연구개발에 치중했으며 이와 함께 매출액의 15%정도는 매년 연구개발비로 투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93년에는 무선호출사업자가 공동으로 실시한 수신율 현장시험에서 국내외 대기업의 제품을 물리치고 수신율 1위를 차지해 기술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


2.3. 휴대폰 시장 진입[편집]


2000년에 들어서는 무선호출기가 사양산업으로 전락하고 시대의 흐름이 휴대전화로 바뀌면서 휴대전화 산업에 뛰어들었다. 이와 함께 닉소는 미국 지사인 닉소테크놀로지의 지분 25%(약 17만 주)를 미국 나스닥 상장법인인 캐나다 아이거테크놀로지에 50억원에 매각하였다. #

이후 KT테크(당시 KTFT)와 단말기 납품계약을 체결해 KTF-X1000(에버 모바일뱅킹)을 외주생산 및 납품했다. 이로인해 당시 생산분의 배터리를 분리해보면 라벨에 생산자 정보가 KTFT가 아닌 스탠더드텔레콤으로 표기되어있다. 물론 KTF-X1000의 경우 생산만 닉소가 외주를 맡았을 뿐이고 개발은 KTFT에서 자체 진행한 휴대폰이다. 동년 독일의 하노버 세비트 쇼에서 자체개발 GSM 휴대폰 시제품을 출품, 미국 오디오벅스와 단말기 공급계약을 체결하였다.

이외에도 닉소 자체 휴대전화 사업 또한 충실히 진행하였다. 다만 휴대폰의 경우 국내 업체로서는 이례적으로 자국 내수용 제품은 하나도 만들지 않고 전 기종을 수출하였다. 닉소와 비슷하게 GSM 수출에 주력했던 벨웨이브도 하나의 내수용 제품(BCL-862S)을 출시했던 것에 비해 이는 국내 휴대전화 산업에서 거의 유일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후 2003년 3월 휴대폰 사업에서의 고전으로 인한 자금악화로 발행했던 해외전환사채 3,500만불을 # 갚지 못해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됨과 함께 최종 부도처리되어 폐업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4. 휴대폰 제품[편집]


※ 자료가 부족한 관계로, 사진이 확인된 제품만 서술한다.

파일:닉소폰.jpg
  • NX-3600

  • NXG-7300

  • NXG-9200

  • NXG-9210

  • NXG-9230

  • NXG-9250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4-02-10 19:59:43에 나무위키 닉소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현재 접속이 불가하다.[2] 하지만 그 확신은 휴대전화의 상용화로 인해 무선호출기가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면서 어긋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