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쏘 머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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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쏘의 항공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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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14일에 파리 샤를 드 골 국제공항에서 촬영된 생산 2호기 F-BTTB.[1]

1. 개요
2. 역사
2.1. 개발
2.2. 출시와 상업적 대참패
2.3. 최후
3. 매체에서
4. 참고 링크



1. 개요[편집]


Dassault Mercure

1971년다쏘에서 출시한 쌍발 제트기.

당시 잘나가던 중단거리 항공기였던 보잉 737 오리지널의 라이벌격으로 제작되었지만, 1971년부터 1975년까지 겨우 12대밖에 생산되지 못한 데다가 운용한 항공사도 단 한 곳밖에 없었기 때문에 항공기 역사에서 손꼽히는 비운의 기종이 되었다.

이름은 다쏘의 창립자 마르셀 다소(Marcel Dassault)가 메르쿠리우스(머큐리)의 프랑스어명 '메르퀴르'(Mercure)를 따서 붙인 것이다.


2. 역사[편집]



2.1. 개발[편집]


1967년에 다쏘는 프랑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그 동안 우라강, 미라주 등 전투기 개발로 쌓은 노하우를 대거 동원하여 제트 여객기 시장도 먹어보려는 심산으로 140석 정도의 수송능력에 737 정도의 항속거리를 가지는 민항기의 개발을 발표한다.

다쏘는 1971년 가치로만 총 7500만 달러[2] 이상을 들여 737 오리지널을 기반으로 하되, 주익의 크기를 키우고 737 오리지널보다 속도도 키웠으며, 동체 길이(34.84m)와 폭[3]도 737 오리지널보다 넓혀 737 오리지널보다 17% 많은 140명 정도(올 이코노미로는 162명)를 태울 수 있게 하여 단거리 시장을 타겟으로 한 머큐리를 구상하여 1969년 6월에 열린 파리 에어쇼에서 이 기체의 실물 크기 모형을 처음으로 공개하게 된다.[4] 이후 머큐리의 첫 시제기는 1971년 4월 4일에 완성된 후 롤아웃되었고, 이 기체는 동년 5월 28일에 초도비행을 했다.


2.2. 출시와 상업적 대참패[편집]


다쏘는 당시 쉬드 아비아시옹 카라벨DC-9의 대안으로 머큐리를 들고 여러 항공사들에게 구매를 요청했다. 그런데 그 수많은 항공사들 중 실제로 미끼를 문 곳은 1972년 1월 30일에 머큐리 10대를 주문한 에어 인터[5] 단 한 곳 뿐이었다. 여하튼 에어 인터는 1974년 6월 4일에 머큐리를 운항하기 시작했다.[6]

사실 머큐리가 거의 팔리지 않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먼저 당시 미국 달러가 평가 절하되어 항공사들이 737을 상대적으로 싸게 사올 수 있었으며, 1973년에 오일 쇼크가 와서 불경기까지 온 데다가, 결정적으로 머큐리의 항속거리가 겨우 1700~2100km밖에 되지 않아 겨우 서유럽 내부에서나 굴릴 수 있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7] 다만 이건 다쏘가 원래 전투기 제작사였기 때문에 상업용 항공기는 군용기처럼 매번 착륙할 때마다 항상 연료를 보급해야 한다고 착각했던 것도 있었고, 머큐리가 더 많은 승객을 실어 나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료 탑재량을 줄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지만...[8] 다만 머큐리에 장착된 JT8D-15 엔진은 소음이 심하고 연비가 낮았으며, 뒷좌석이 수평 회전 운동의 영향을 지나치게 많이 받아 탑승감이 불편했다고 하는 등 문제점이 완전히 없지는 않았다고 한다.

결국 '1979년까지 300대를 판매하는 것을 시작으로 1980년대까지 총 1500대 판매하기'를 목표로 삼아 다쏘가 4개의 공장까지 만들어갈 정도로 심혈을 기울이며 만들어갔던 머큐리는 에어 프랑스도 1973년 중순에 주문을 취소하면서 목표치의 1% 미만12대[9]만 생산되었으며, 1975년 12월 15일에 마지막 기체가 완성된 것을 끝으로 머큐리의 생산은 완전히 중단되었다.[10] 이렇게 다쏘 머큐리는 '제트 여객기 역사상 가장 상업적으로 실패한 기체'라는 엄청나게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11]


2.3. 최후[편집]


다쏘 머큐리의 비극적인 스토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실 다쏘는 이후 에어 프랑스를 런치 커스터머로 하여 엔진을 CFM56으로 바꾼 후 항속거리와 동체를 연장하여 190명을 태울 수 있는 머큐리 200과 항속거리를 2,200Km로 연장하고 140명을 태울 수 있는 머큐어 200C 개발도 계획었했다. 그런데 프로젝트에 넣을 돈이 없어서 프랑스 정부자금도 대출받고 맥도넬 더글러스, 록히드 마틴미국 항공사에게 라이선스 생산 떡밥까지 던지면서 개발을 추진하였으나 놀라울만큼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1974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까지 끊기게 되면서 시제기조차 만들어지지 못한 채 프로젝트 자체가 백지화되어 버렸다. 그리고 1995년 4월 29일 에어 인터 소속의 머큐리 2대가 퇴역한 것을 끝으로, 더 이상 하늘을 나는 머큐리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다만 머큐리의 비극적인 실패가 헛된 것은 전혀 아니었고, 오히려 큰 결실을 맞이하게 되었다. 머큐리의 실패 이후에 프랑스가 유럽 각국과 함께 설립한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는 후대에 머큐리를 기반으로 협동체 여객기인 A320 패밀리, A320neo 패밀리를 개발하게 되는데, 이들이 737의 라이벌이라 불리게 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CV-880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운명을 겪은 셈이다[12].

이 모델은 의외로 여기저기에 많이 보존되어 있다. 파리 인근 파리 르부르제 공항의 항공우주박물관에도 하나 전시되어 있다고. 외에도 에어라이너즈에서 찾으면 오를리, 리옹 같은 곳에서 찍은 버려진 머큐리 사진들이 많이 있다.

참고로 다쏘 머큐리는 최초의 대규모 유럽 국가들이 협력하며 진행된 민간 항공 프로그램이었는데, 이탈리아, 벨기에, 스페인, 스위스, 심지어 캐나다도 머큐리의 개발을 위해 다쏘와 협업했다고 한다. 거기에 98%에 달하는 서비스 안정성을 보여준 것과 21년간 운항하면서 사고를 겪은 머큐리가 단 한 대도 없었다는 것을 보면, 머큐리의 안정성은 확실히 보장된 셈이다.


3. 매체에서[편집]


페이스북의 항공게임인 에어라인 매니저에서는 이런 역사에도 불구하고 초반 단거리 짤짤이용으로 많이 쓰인다. 항속거리와 연비가 후달리지만 수송량이 동급 어느 기체보다도 우수하고 가성비가 훌륭하기 때문. 브루제 393T도 쓰이긴 하지만 프롭기에 속도가 느려서 빠른 회전으로 돈을 모아야 하는 초반 러시엔 머큐리가 최고다. 사실 국내에 이 기종이 알려지게 된 계기도 에어라인 매니저 덕분이었다.


4. 참고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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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날에는 독일의 슈파이어 기술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2] 이는 2023년 환율로는 약 5.5억 달러(약 6,600억 원)다.[3] 동체 직경을 5cm 정도 넓혔다고 한다.[4] 참고로 이 에어쇼에서는 보잉 747콩코드 여객기, Tu-144 등도 처음으로 민간에 공개되었다.[5] Air Inter, 1954년부터 1997년까지 존재한 프랑스 국내선 전담 항공사. 1997년 4월 1일에 에어 프랑스에 흡수되었다.[6] 참고로 에어 인터의 머큐리에 의해 1985년에 성사된 파리- 비행은 '객실 승무원은 물론 조종사들까지 모두 여자인 최초의 민항기'라는 이색적인 기록도 세웠다고 한다.[7] 참고로 보잉 737-100의 항속거리가 2850km 정도였고, 하다못해 당시 시점에서도 30년도 넘은 기체였던 피스톤기인 DC-3의 항속거리마저 2540km 정도였다.[8] 심지어 엔진을 JT8D로 교체하기 전 원래 항속거리는 최대 중량으로는 756km, 연료를 다 채워도 1000km에 불과했다고 한다.[9] 시제기 2대+양산형 10대[10] 생산된 모든 머큐리들은 시제기 하나(1번째로 만들어진 기체)를 제외하고는 다 에어 인터가 여객용으로 썼다고 한다. 시제기 2호는 머큐리에 만족한 에어 인터가 1983년 7월 11일에 주문된 후 여객용으로 개조되어 1985년 3월 8일에 인도받았다고 한다.[11] 사실 다쏘 머큐리보다 더 상업적으로 실패한 제트 여객기 기종은 고작 10대만 생산된 DC-9-20과 5대만 생산된 보잉 707-220, 단 1대만 생산된 DH-106 코멧 3도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한 기체의 세부 기종이라 다쏘 머큐리와는 다르게 봐야 한다.[12] 참고로 CV-880은 항속거리 문제를 제외하고 봐도 이곳저곳 문제가 수두룩했다. 항목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