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제국지열변

덤프버전 :


大秦帝国
대진제국 시리즈

'''

2009
'''
대진제국지열변
大秦帝国之裂变
'''

2012
'''
대진제국지종횡
大秦帝国之纵横
'''

2017
'''
대진제국지굴기
大秦帝国之崛起
'''

2020
'''
대진부
大秦赋


大秦帝国之裂变 (2007)
대진제국지열변

파일:대진제국 열변.jpg}}}
장르
중화권 사극
연출
황건중, 연예[1]
극본
손호휘
원작
손호휘 《대진제국》
출연
허우용, 왕즈페이, 고원원
음악
자오지핑
1. 개요
2. 줄거리
3. 문제점
4. 등장인물
4.1. 진나라 : 변법지지파
4.2. 진나라 : 변법반대파
4.3. 위나라
4.4. 기타인물



1. 개요[편집]


중국 CCTV에서 제작하여 방영했던 대하사극 시리즈로, 중국의 역사학자 손호휘가 지은 소설 대진제국을 드라마화한 시리즈의 제 1편. 갈라진 천하를 통일한 통일제국 진나라의 역사를 풀어냈지만, 워낙 긴 시기를 다뤄야 하는 까닭에 기획에서는 6부작으로 나누기로 했었다.[2] 본 시리즈는 시리즈의 제 1부작이며, 진의 25대 군주인 진 효공을 중심으로, 변법을 통하여 진나라의 천하통일 대업의 주춧돌을 쌓은 상앙과 효공의 형인 영건, 귀족 대표인 감룡 등의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다. 총감독은 황젠중(황건중)이며 총 51부작.


2. 줄거리[편집]


드라마의 첫 시작은 진나라위나라 사이에 벌어진 하서대전이다. 진나라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하던 위앙[3]은 진나라 병사들이 하나같이 갑옷도 입지 않고 덤볐음에도 도망치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음을 발견한다. 함께 출전한 그의 사부인 승상 공숙좌에게 견벽거수책을 건의하지만, 원군을 이끌고 온 공자 앙[4]은 이 의견을 무시하고 공숙좌에게 무안을 준후, 총공격을 제시한다. 진나라 진영은 사기가 충천했지만, 가난한 진나라의 사정상 갑옷을 제대로 갖춘 병사가 얼마 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군량도 부족한 상황. 전투에서 진 헌공의 큰 아들인 영건이 정예부대를 이끌고 나가지만, 곧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둘째 아들인 영거량(훗날의 진 효공)은 경병[5]을 이끌고 공숙좌를 생포하는 공을 올리지만, 그는 계속 퇴각을 건의한다. 이 전투 다음날 진 헌공은 공자 앙의 부대가 발사한 독화살을 맞고 중상을 입고 쓰러지며, 그는 병상에서 영거량에게 군대의 통수권을 넘긴다. 영거량은 퇴각령을 내리고, 공숙좌를 포로로 끌고 간다. 상처가 어느 정도 회복된 헌공은 후계를 고민하고, 주변에서는 용감한 장수인 큰아들 영건에게 공위[6]를 넘길 것을 건의하지만, 헌공은 퇴각을 요청하던 신중한 거량을 마음에 두기 시작한다. 큰 아들과 독대를 한 그는 넌지시 다음 군주에 대한 생각을 물으며, 영건이 자신의 오른손 약지를 직접 잘라 맹세를 하게 한 후, 영거량에게 공위를 넘길 것을 선포한 후, 눈을 감는다.

공위에 오른 영거량(이후 효공으로 호칭함)은 공숙좌와 담판을 지어 함곡관[7] 일대를 비롯한 하서지역을 위나라에 넘기고 위의 침략을 멈추는 조건으로 협상을 진행하여 국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고자 한다. 그러나 군권을 쥐고 있었고 공숙좌의 정적인 방연은 위의 천하통일을 위하여 배후의 적인 진나라를 멸망시켜야 한다고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었고, 탐욕스런 위혜왕을 부추겨 협약을 깨고 6국동맹을 맺어 진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계책을 내놓는다. 효공은 영건을 비롯한 측근들과 지혜를 모아 위기를 간신히 수습하여 6국 동맹을 흔들어 버리지만, 국력의 약함을 절실히 깨닫고 천하에 인재 모집령을 선포한다. 이를 위하여 측근 중 하나인 경감을 상인으로 변장하여 타국에 첩자로 파견을 보내고, 여동생인 형옥 공주는 자발적으로 함께 길을 떠난다.

한편, 스승인 공숙좌가 죽은 후, 그의 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남아있던 위앙은, 공숙좌가 죽기 직전 위혜왕에게 위앙을 천거하며, "쓰시지 않을거면 위앙을 죽이라"는 말을 남겼던 까닭에 방연에게 견제를 당하고 있었다. 위앙의 재능을 눈여겨 보고 있던 객잔 동향춘의 주인 백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채 위앙을 돕는 한편, 진나라에서 인재를 모집하고 있고, 그와 동향춘에서 얼마 전에 바둑을 두던 상인은 사실 진나라의 첩자라는 사실을 은근히 흘린다. 방연은 공숙좌의 사람이었던 위앙을 쓸 생각도, 곱게 살려둘 생각도 없었는데, 이를 알아챈 백설이 손을 써서 위앙은 위나라에서 탈출하여 일단 제나라의 직하 학궁으로 가서 맹자와 논쟁을 벌이며 이름을 알린다. 그러나 제나라에도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위앙은 진나라에 들어가기로 한 후, 얼굴을 튼 사이가 된 경감에게 찾아가서 효공의 인재령에 응할 것임을, 그러나 특별한 대접을 받을 생각은 없음을 알린 후, 진나라에 들어간다. 효공은 모인 인재들에게 일괄적으로 벼슬을 주는 대신, 통행증과 노잣돈을 받고 진나라의 곳곳을 한 달간 시찰한 후에 정책을 낸 사람을 채택할 것임을 알리는데, 여기에 가장 먼저 호응했던 사람이 바로 위앙. 그는 한달간 온갖 고생을 한 끝에 돌아와서 나름의 방책을 세운 후, 효공을 떠보기 위하여 궁궐에 들어가 우선 유가에서 말하는 도덕정치론을 설파한다. 그러나 효공은 시큰둥. 또 한 번의 자리를 마련해준 효공에게 이번에는 도가의 무위자연론을 펼쳐서 다시 한 번 효공을 떠본다. 영문도 모르고 답답해 죽으려고 하는 경감에게 한 번 더 자리를 마련해줄 것을 부탁한 위앙은 이번에는 제대로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고 구체적인 방책을 제시한다. 이후 효공은 원로 대신들의 반대를 막기 위하여 연기를 하며 위앙의 변법을 실시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때가 되자 위앙을 진나라 최고위직인 대량조로 임명하고 변법을 만들고 집행할 전권을 위임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상대부 감룡과 중대부 두지로 대포되는 구 귀족 세력과 진나라의 토착 부족인 맹, 서, 백 3족의 족장은 격렬한 반발을 하며 먹구름을 드리운다.

당시 전국은 변법을 도입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변법은 일종의 관습법으로 유지되던 나라의 관행들을 보다 효율적인 제도를 만들고 엄격하게 실행하는 것을 골자로 했는데, 이 과정은 당시 기득권인 각 국가의 귀족세력 내지는 토호들에게 매우 큰 손해가 되는 것이 많았기에 실행방법은 나라마다 제각각이었다. 드라마에서는 변법을 제대로 집행하는 나라로 제나라와 한나라[8] 정도가 있었는데, 진나라는 이들보다 변법을 늦게 시작했지만, 훨씬 확실하게 밀어붙이는 것으로 나온다. 이를 위해 효공이 위앙에게 얼마나 큰 신뢰를 주었고, 얼마나 막강한 권한을 주었는지가 드라마 중반 내내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사건은 변법 도입 초기에 일어났던 부족간의 다툼 문제, 그리고 효공과 위앙을 이간질하기 위하여 조정대신(주로 감룡과 두지)들이 계략을 세워 태자가 사고를 쳐 궁에서 쫓겨나게 된 사건이었다. 특히 태자가 쫓겨난 사건은 문제가 무척 심각했는데, 태자를 벌할 수 없어서 태자의 사부인 공손가는 묵형(얼굴에 글자를 새기는 형벌)을, 영건은 의형(코를 베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이 사건은 백성들에게 법의 엄정함을 심어주었으나, 영건과 공손가에게는 씻지 못할 원한을 심어주고 말았고, 이는 극중 후반부에 위앙이 숙청을 당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만다.

변법을 적용한 지 10년동안 진나라는 몰라보게 국력이 신장한다. 이렇게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위앙은 비밀리에 신군을 조직하고 훈련을 시작하여 위나라에게 빼앗긴 하서지역을 수복할 준비를 한다. 한편으로는 위나라의 새 승상 공자 앙을 흔들어서 방심하게 만드는 양면책을 구사하는데, 마침 방연이 그 유명한 손빈의 계략에 걸려 마릉 전투에서 비참하게 전사하여 대진 강경책을 주장하던 사람은 하서 수비군 사령관인 용가 한 사람만 남게 된다. 이를 놓치지 않은 위앙은 군사를 일으켜 하서 지역을 되찾고, 동시에 수도를 악양에서 함양으로 천도하여 진나라의 위상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변법 시행으로 누적된 사회적 피로와 더불어 상사병[9]과 과로로 인한 중병은 점차 효공을 시들어가게 했고, 결국 그는 함곡관을 돌아보며 천하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만족하며 피를 토하며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태자 영사가 즉위하니, 그가 훗날의 혜문왕이며, 2부인 대진제국지종횡의 주인공[10]이다. 그는 결국 대신들을 달래기 위하여 위앙을 거열형으로 처형하는 것으로 드라마가 끝난다.


3. 문제점[편집]


아무리 주인공 보정이라고는 하지만, 상앙과 법가를 지나치게 미화하여 스토리의 상당부분을 역사왜곡으로 만들어 버렸다. 드라마 후반에 나오는 혜문왕과 상앙과의 관계 설정이 가장 대표적인 오류이며, 또한 위나라의 침공을 막기는 했지만, 결국 양패구상의 결과로 끝나는 바람에 비참하게 자살하는 것으로 나오는 신불해도 드라마의 피해자. 거기다 묵가와 진나라 왕실의 관계 설정은 말 그대로 드라마이며, 묵가 처녀와 효공의 로맨스는 선을 넘어도 아득히 넘어버린 셈이라 이 드라마에서 가장 평이 엇갈리는 부분.

기존의 세족 세력은 그 수장인 상대부 감룡[11] 정도를 제외하고는 자신들의 이득만 관심이 있는 적폐세력으로 설정하여 선악의 구도에서 벗어나 기존 보수파와 변법파와의 흥미진진한 정치 전쟁을 기대했던 사람들로 하여금 아쉬움을 주지만, 이는 역사 기록에서도 어느 정도 교차검증이 되는 면이 있어서 무조건적으로 드라마의 오류라 하기에는 애매한 면도 있다.

또한 변법 시행 과정에서 백성들이 법을 수호하자며 보여주는 모습은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해당 드라마가 공영방송인데다 중국 본토의 드라마인지라 다분히 공산당의 통치를 따르자는, 일종의 정권 프로파간다로 해석될 수도 있어서 시청하는데 있어서 보는 사람에 따라선 다소 거슬릴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전투 장면이 복붙으로 처리되었다든가, 혹은 무협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부분도 아쉬운 점. 단, 이 부분은 제작진에서 정확하게 인지하여 2부작부터 감독과 각본가가 교체되어 상당부분 개선되었다.


4. 등장인물[편집]



4.1. 진나라 : 변법지지파[편집]


  • 진 효공 : 진나라의 26대 국군. 아버지 진 헌공이 하서 전투의 부상 후유증으로 사망한 후, 21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22년간 진나라를 통치하였다. 위앙을 등용하고 변법을 시행하여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기초를 놓았다. 극중 위앙을 등용한 이후 단 한 번도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효심이 지극하고 문무를 겸비한 전형적인 명군이며, 성품 또한 완벽하여 자신을 낮출줄 알면서도 과단성이 있고 상당히 사려깊은 인물이다. 배우는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에서 노숙 역을 맡았던 배우 허우용(侯勇). 배우의 연기가 출중하긴 한데, 실제 효공의 나이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 유일한 흠.

  • 위앙 : 법가 사상가이자 진나라의 좌서장[12]이었으나, 이후 변법의 정착을 위하여 대량조에 취임하여 진나라의 천하통일 대업의 기초를 닦은 인물. 본래 위니라의 승상 공숙좌의 식객이며 문하생이었으나, 위 혜왕이 공숙좌의 위앙 천거 부탁을 거절하여 위나라를 떠나 진의 인재 모집에 응하여 강력한 변법을 시행하며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 영화에서는 그 공을 인정받아 상군 직위를 받고 상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으로 나온다. 위앙의 신변 보호를 위하여 효공이 자신의 여동생인 형옥을 부인으로 삼게 하나, 그는 백설 낭자와 사랑하는 사이이나, 두 여인 모두 서로를 존중해주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쉽게 말해 주인공 보정을 심하게 받은 셈. 그래도 단점이 많이 부각되는 편인데, 성품은 강직하고 똑똑하지만, 저돌적인 면이 강한데다 자신이 옳다 생각되면 다른 것은 가볍게 무시하는 면이 있어서 거만해 보이는 면이 있다. 배우는 왕즈페이(王志飛).

  • 백설 : 전국시대의 거상이자 위나라의 승상 백규의 딸.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엄청난 재력을 갖추고 있으며, 그 재력을 바탕으로 위나라의 수도 안읍에서 동향춘이라는 객잔을 운영하여 전국의 정보를 수집한다. 우연한 계기에 위앙을 알게 되어 자신의 힘으로 위앙을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후에 위앙이 진나라에서 관직에 오르자 진을 위한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위앙 사이에 아들을 한 명 두었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효공이 그녀에게 상당히 미안해 한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위앙과 함께 죽음을 맞기 위해 독주를 마시고 함께 자진한다. 배우는 고원원(高圓圓).

  • 형옥 : 진 헌공의 막내이자 고명딸. 부모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자랐고, 자신의 오라버니들을 매우 아낀다. 특사로 떠나는 경감의 호위 무사 역을 자청하여 위나라에 잠입했다 위앙을 보고 그에게 반한다. 결국 그와 혼인하지만,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위앙은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든든한 동료로 대하지만,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과 도움으로 차츰 마음을 열어준다. 위앙이 처형될 때, 백설과 묵가 사람들의 도움으로 처형을 보지 않고 진나라를 떠난다. 배우는 제방(齊芳).

  • 진 태후 : 헌공의 부인이며 효공의 어머니. 남편이 젊었을 때, 그의 어려움을 마다않고 함께 했으며, 왕실 내의 기강을 다잡으며 항상 남편(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었다. 극중에서는 진나라 국성(國性)인 영(嬴)씨 부족의 족서장이어서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 종친들이 반발하면 족서장의 권위로 찍어누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변법의 성공을 위해 위앙과 형옥 공주를 맺어주는 아이디어도 내는 등 크게 활약하는 여걸이다. 하서 수복전의 대승을 본 후, 노환으로 숨을 거둔다. 배우는 여중(呂中).

  • 경감 : 진의 도위이며 장군. 효공의 측근으로 6국 특사가 되어 각국의 정보를 수집하며 비밀리에 물자를 구입하여 진나라로 보내는 등 궃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위앙을 만나 교제하게 된다. 위앙이 대량조가 된 후, 변법의 차영과 함께 행정과 집행을 담당하여 수고하였고, 훗날 중대부로 승진한다. 배우는 우양(于洋).

  • 차영 : 진목공 시절 나라에 헌신했던 자처씨 부족의 부족장으로 뛰어난 기마술을 구사하는 무장. 6국 연합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뛰어다니던 효공에게 발탁되어 조정에서 일했고, 이후 위앙을 도와 변법의 집행을 위해 뛰어다녔다. 이후 하서 수복전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운다. 배우는 후상령(侯祥玲).

  • 현기 : 할아버지 백리해[13]와 악양에 있다가 우연히 효공을 만난다. 이후 효공은 그녀를 연모하고, 현기는 효공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변법을 실시했다 하여 효공을 폭군으로 규정하고 척살하려는 묵가를 저지하고 설득하여 묵가가 진나라와 화해하게 만들고, 훗날 묵가가 함양 천도를 위해 도움을 주도록 한다. 이후 효공과 사적인 혼례를 치른다. 묵가와 진나라의 관계 자체가 말도 안되는 설정으로 이 드라마에서 가장 크게 비판을 받는 요소 중 하나. 배우는 원염(苑冉).

  • 흑백 : 궁중의 사무를 맡은 인물로, 조선시대의 상선과 흡사한 직책.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헌공과 효공, 태후의 매우 두터운 신임을 받는 인물. 무예도 뛰어나 늘 효공의 주변을 호위무사처럼 지킨다. 효공이 승하한 후, 효공의 무덤에서 자결한다. 배우는 강화림(姜化霖).



4.2. 진나라 : 변법반대파[편집]


  • 감룡 : 진나라의 상대부이며 실세 중의 실세. 세족[14]의 수장이며, 오랫동안 나라의 일을 처리해온 노대신. 정세를 판단하는 눈이 뛰어나고 공사를 구분할줄 아는 인물. 영거량의 사람됨을 알고 있기에 그가 국군으로 등극한 후, 헌신은 하되 상당히 주의깊게 효공을 지켜본다. 이후 위앙이 대량조에 취임하여 변법을 밀어븥일 때, 효공이 태사에 임명한다. 이는 당시 조정의 최고위직이나, 실권은 전혀 없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챈 감룡은 이후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며 일선에서 물러나 조용히 때를 기다렸고, 효공의 승하 이후 구귀족들을 선동하여 끝내 위앙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배우는 손비호(孫飛虎).[15][16]

  • 두지 : 감룡의 제자이며 진나라의 중대부. 성격이 급하고 정치적으로 깊은 수를 읽어내지 못하는 단순한 인물. 세족의 안위와 자신의 부귀공명에만 관심이 있는 매우 소인배적인 면모로 등장한다. 변법이 시행될 때, 진나라 역대 국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직책인 태묘령에 임명되나, 이를 매우 싫어하고[17], 위앙에게 이를 갈고 있고, 결국 복수에는 성공한다. 배우는 로영(卢映).

  • 공손가 : 진나라의 장사. 후에 태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태자부에 임명된다. 효공 즉위 초기에는 효공의 곁에서 행정업무 처리를 맡았다. 학문에 능하며 무예도 겸비한 인물이나 큰 그릇은 못된다. 감룡과 두지가 태자를 선동하는 계략을 꾸몄을 때, 태자를 막지 못했다는 죄명으로 묵형[18]을 받고, 이후 정체를 숨기며 진나라를 떠돌아다니며 호시탐탐 배우는 위앙을 도모할 기회를 노린다. 배우는 구영력(仇永力).

  • 영건 : 진 헌공의 첫째이나, 실제로는 서자. 효공과 우애가 깊지만 ,뼛속 깊이 무골인 인물. 공위를 거량에게 넘기고자 하는 부친의 의도를 읽어내고 자신의 오른손 약지를 잘라 혈서를 써 맹세했고, 동요하는 대신들을 칼로 협박하며 동생의 즉위를 돕는다. 좌서장의 직위에 취임하여 동생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위앙의 등용 이후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태자가 일으킨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의형[19]을 당하여 평생 위앙을 원망하며 자신의 집에 칩거하여 때를 기다린다.[20] 변법 자체에도 찬성하고, 동생인 효공도 지지하지만, 자신에게 망신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위앙에게 원한을 품고 끝내 이 원한을 모반을 꾸몄다고 무고하여 갚아버린다. 그럼에도 위앙과는 서로의 의중을 잘 헤아리고 있는 지음의 면모도 살짝 보인다. 배우는 로용(卢勇).[21]

  • 혜문왕 : 효공의 외아들[22]이며 태자. 이름은 영사(嬴駟) 태자의 봉토에서 바친 곡식에 모래가 섞여있었다는 보고를 받고 매우 분노하여 봉지에 군사를 몰고 쳐들어가 백성들을 학살하는 사고를 친다. 이는 태자와 효공, 위앙 사이를 갈라놓고 변법을 무너뜨리려는 세족의 이간책. 결국 이 사건은 영건과 공손가의 처벌로 끝나고, 뒤늦게 이 일을 알게 된 효공은 분노하여 영사를 궁궐에서 추방한다. 변법이 얼마나 백성들을 변화시켰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라는 뜻. 이후 10년간 전국을 유랑하며 공부를 하는 선비로 위장하여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삶을 살폈고, 이후 후사를 염려한 형옥과 위앙의 노력으로 궁궐로 복귀하여 태자에 복귀한다. 위앙을 스승으로 모시지만, 효공 사후, 분노한 구 귀족들을 달래기 위하여 위앙을 거열형으로 처벌한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위앙을 존경하며, 거열형 처벌 역시 위앙의 계책으로 나온다. 2부와는 완전히 다른 포지션. 배우는 소년 영사는 풍붕비(馮鵬飛), 청년 영사는 유내예(劉乃藝)[23].



4.3. 위나라[편집]


  • 위 혜왕 : 위나라의 군주. 예의와 체면을 대단히 중시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왕으로서의 품위를 잃고 싶어하지 않는다. 귀가 얇고[24] 허세가 심하고 탐욕스러우면서 사람을 보는 눈도 없어서 위나라의 대사를 그르치는모습으로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또한 드라마상에서는 처음부터 왕이라 불리는데, 실제로 혜후가 칭왕을 한 것은 한참 이후이며, 왕의 가벼움이 유명하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실제 역사와는 다른 부분이 많다. 전체적으로 진나라를 띄우기 위하여 위나라를 집중적으로 깠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배역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는 이립군(李立群).[25]

  • 공숙좌 : 위나라의 승상. 6국을 병합해야 한다는 방연의 주장에 맞서 6국을 통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여 방연과 크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 하서대전에서 영거량의 포로가 되었고, 이후 효공이 즉위하면서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대신들이 그를 죽이려 하나, 하서 지역을 위나라에 할양하는 대신 평화협약을 맺고자 하는 효공의 의견을 듣고[26] 위나라에 가서 약조를 맺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방연의 계략으로 이 일이 무산되자 미안한 마음을 품게 되었고, 곧 병으로 즉음을 맞이한다. 죽기 전, 자신을 찾아온 혜왕에게 "위앙을 승상으로 임명하시면 위나라는 전국을 통일할 수 있다. 그게 싫으면 그를 죽이시라"는 의견을 내지만, 이를 무시한 혜왕을 보면서 한탄하고 위앙에게 위나라를 떠날 것을 명하며 숨을 거둔다. 배우는 두우로(杜雨露).

  • 방연 : 위나라의 상장군. 진나라를 쳐서 병합하여 근심을 없앤 후, 나머지 5국을 병합하여 천하통일을 하자고 주장하는 과격한 주장을 펼치며 공숙좌와 대립한다. 하서대전 이후 6국회맹을 주선하여 진나라을 멸망하고 분할할 계책을 내나, 효공에게 간파당하여 각개격파 당한다. 이후 공자 앙이 승상이 되며 정책에서 계속 대립을 거듭하던 중, 그 유명한 마릉 전투에서 그의 라이벌 손빈의 계책으로 사망한다. 그러나 마릉 전투의 원인이 되는 신정 공략전 직전, 용가에게 사후를 부탁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튼, 대표적인 대진 강경파. 배우는 우용(尤勇).[27]

  • 공자 앙 : 위 혜왕의 동생. 자신을 과시하기 좋아하고 매우 사치스럽고 풍류를 즐기는 미식가. 공숙좌 사후 승상이 되어 국정을 주도하지만, 상인으로 위장한 경감의 회유책에 낚여 진나라를 건드리지 않고 방치하여 진나라가 국력을 끌어올릴 시간을 허락한다. 이후 하서 수복전에서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지만, 위앙의 계책에 걸려 군사는 전부 포로가 되거나 몰살당하고 본인 역시 포로가 되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다. 이후 안읍에서 대량으로 천도하는 일의 책임자가 된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는 공숙좌와 함께 상앙을 위왕에게 천거하는 사람이며, 실제로 상앙을 많이 도와주었기에 그의 뒷통수를 친 것은 당시에 은혜도 모르고 은인을 뒷통수를 쳤다고 심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진나라와 상앙을 띄우기 위해 희생당한 위나라의 대표적인 디버프 중 하나. 배우는 왕휘(王輝).

  • 태자 신 : 위 혜왕의 아들. 드라마 중반부터 국정에 관여하는 모습이 등장하며, 부친보다는 지혜롭지만, 그 역시 왕족 특유의 허장성세가 조금 엿보이는 면이 종종 등장한다. 역사와는 달리 마릉 전투에서 포위당한 위군을 위해 증원군을 이끌고 가서 혈로를 뚫고 오는 것으로 묘사되며, 하서 수복전 이후 부친을 대신해 국정을 총괄하는 모습을 보이며 퇴장한다. 배우는 유목(劉牧).

  • 용가 : 위나라의 장수이며 하서 수비군 사령관. 방연의 전사 이후 공자 앙의 모함으로 병권을 빼앗기고 좌천당하나, 하서 수복을 위하여 출전한 진군을 막기 위해 군부에서 혈서를 올려 복직된다. 진군과 맞서 싸우려 하나, 공자 앙의 방해로 소량 지역에 묶여있다 진군의 신군과 맞선다. 패배를 직감하여 부장군 진비[28]에게 군사 절반을 이끌고 안읍으로 떠나라고 명을 내린 후, 진군과 맞서나 군사는 전멸하고 일기토 끝에 차영에게 창[29]을 빼앗긴다. 장군의 명예를 지켜주겠으니, 돌아가라는 위앙 앞에서 자결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는 한참 후에도 활동하기에 이 부분 역시 고증오류(...).[30] 배우는 왕덕순(王德顺).



4.4. 기타인물[편집]


  • 진 헌공 : 효공의 아버지이자 진나라의 25대 국군. 업적이 제법 되지만, 극중 등장은 하서대전과 거기서의 부상[31]으로 오늘내일 하는 모습만 나오는지라 뭐라 평가하기는 조금 애매하지만, 기본적으로 구 귀족들의 지지와 노병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아들들을 앞에서는 윽박지르지만, 뒤에서는 그들을 주의깊게 살피는 현명함을 갖춘 군주로 나온다. 식량 문제로 퇴각을 주장하는 둘째 아들을 다그치지만, 그의 제안을 곰곰히 생각하고, 자신의 부상 이후 전후처리를 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자신의 후계자로 효공을 선택하고, 후환을 막기 위해 영건의 단지혈서를 받아내는 용의주도함을 보여준다. 형옥 공주의 관례를 치르던 도중 숨을 거둔다. 배우는 중국의 유명배우인 허환산(許還山).[32]

  • 신불해 : 위앙과 함께 법가를 대표하는 사상가. 제나라의 직하 학궁에서 맹자와 함께 논쟁하며 이름을 알렸고, 이후 한나라의 승상이 되어 한나라의 변법을 주도하고 국력을 끌어올린다. 방연의 신정(한나라의 수도) 공략전에서 위나라의 대군을 맞아 싸우는 한편, 제나라에 도움을 청하나, 양패구상을 노리는 제나라가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국력을 대부분 소진하였고, 위군이 철수한 후, 성을 돌아보던 중 죽은 병사들이 일어나 그를 비웃는 환상을 본 후, 절망하며 자결한다. 이 역시 역사왜곡급 묘사. 배우는 조동백(趙冬柏).

  • 손빈 : 제나라의 책사. 빈형[33]을 당한 탓에 항상 수레에 앉아있지만, 천하의 움직임을 훤히 꿰뚫고 있다. 출전하는 장수들에게 계략을 상세히 알려주며 방연을 기어이 마릉에서 죽이게 한다. 배우는 동기명(董祁明).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2 09:25:04에 나무위키 대진제국지열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약 10년 뒤 후속작 대진부를 연출하게 된다.[2] 다만 최종적으로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이루는 시점에서 4부작으로 시리즈가 최종완결되었다.[3] 상앙의 본명은 여러 가지로 전해지는데, 드라마에서는 그가 옛 위(衛)나라 사람이라서 "위앙"이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하며, 훗날 변법이 성공했음을 쳔명한 효공이 상읍을 봉지로 하사하면서 상앙이라는 이름과 병행하여 불린다.[4] 위 혜문왕의 동생으로, 극중에서는 상당히 탐욕스럽고 무능한 캐릭터로 나온다.[5] 갑주 없이 칼이나 창만 든 병사들로 구성된 부대. 이 부대는 극 초반에만 등장하며, 진나라의 가난을 보여준다. 물론, 변법이 성공한 이후에는 그런거 없다.[6] 아직 진나라는 왕을 선포하지 않았고, 군주는 백작위였다. 드라마에서 군주에 대한 호칭은 "진공(秦公)"이다.[7] 이 드라마의 대표적인 고증오류. 당시 함곡관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다.[8] 한나라는 상앙의 등용보다 조금 앞서 변법가 신불해를 승상으로 등용한 상황이었다.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신불해를 실패한 정치가로 만들어서 말이 많았다.[9] 즉위초에 민정시찰을 나갔다 우연히 만나게 된 묵가 처자 한 사람을 짝사랑하게 되었는데, 맺어질 수 없기에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던 것. 그의 부인은 이미 죽은 것으로 나와서 극중 효공은 죽 솔로였다.[10] 여기서는 추방되었던 10년간 변법의 힘을 깨닫고 위앙을 존경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코너에 몰린 위앙이 오히려 혜문왕에게 자신을 제물로 내주고, 그 대신 노대신들을 잡을 계책을 알려주는 것으로 상황을 설정한다. 성격도 서로 다른데, 열변에서의 영사는 매사에 신중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라면, 종횡에서의 영사는 매사에 신중하면서도 불같이 화끈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11] 상앙의 변법을 반대하고 대신 효공 이전 진나라 시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신정 개혁을 주장하였으나, 상앙을 전적으로 밀어주었던 진 효공에 의해 완전히 묻혀버리고 본인은 효공이 죽을 때 까지 긴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12] 진나라의 실무를 총괄하는 직책. 당시에는 승상 포지션.[13] 진목공때의 재상인 백리요의 자손. 학식이 깊은 현인.[14] 진나라를 구성하는 주요 부족 중의 하나. 극중에서는 맹족, 백족과 함께 늘 세트로 등장한다.[15] 상하이 사람으로 장제스 특유의 오어 말투를 능숙하게 익혔고, 이를 계기로 <서안사변>이라는 드라마에서 처음 장제스 역을 맡게 되었다. 이후로 줄곧 수 많은 작품들에서 장제스 역을 맡아 장제스 전문 배우로 장평이 나있었다. 2014년 향년 73세의 일기로 타계하였다.#[16] 이후 2부 대진제국지종횡에서도 다시 한 번 감룡 역을 맡았다.[17] 효공이 새로운 직책에 임명한다는 전교를 내릴 때, 감룡은 공손히 "명 받드나이다"라고 절을 하지만, 두지는 "뭐요? 맨날 사당에서 향이나 피우라는겁니까?!"라고 하며 반발하다 감룡이 눈치를 주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명받듭니다"라고 인사한다. 감룡과 두지의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며, 두지가 얼마나 소인배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18] 얼굴에 죄인이라고 글자를 새기거나 낙인을 찍는 형벌.[19] 죄인의 코를 베어버리는 형벌.[20] 다만 실제 역사서에서는 태자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별도의 다른 벌을 받고, 이후 모종의 이유로 법을 어겨 의형을 받았다고 나와있다. 아마 실제 역사와 달리 드라마에서는 변법을 지지했던 인물로 나와 법을 어기는 모습이 나오면 이와 모순이 생기기 때문에, 태자사건을 계기로 의형을 받았다고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21] 훗날 대진부에서 조나라의 명장 이목 역할을 맡게 된다.[22] 원래 영질(嬴疾) 이라는 이복동생이 있지만 해당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2부 대진제국지종횡에서는 등장한다.[23] 훗날 대진제국 시리즈 3편 대진제국지굴기와 4편 대진부에서 평원군을 연기하게 된다.[24] 함곡관과 하서 지역을 할양하고 평화협정을 맺기로 조약한 직후, 방연의 부추김으로 아예 진나라를 6국이 분할하려고 계략을 짜고, 이에 경악한 공숙좌가 펄펄 뛰며 말리나, 진나라 땅을 먹을 생각에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공숙좌가 왕을 설득하여 협정을 맺은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협정 전에는 할양할 땅을 보고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 방연의 이야기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왕의 모습이 돌연 바뀐 것은 그가 팔랑귀라는 것을 보여준다. 왕인데도...[25] 대만 출신의 배우로 이후 2편에서 다시 한 번 혜왕 역할로 나와 혜왕의 경솔함의 극치를 보여준다.[26] 사실 이 의견은 위앙이 자신의 스승을 구하기 위하여 진나라의 감옥으로 찾아와 담판을 지으면서 제시한 계책이었다.[27] 영화 적벽대전유비, 초한전기옹치 역을 맡았다. 후속작 대진부에서는 왕전으로 출연한다.[28] 드라마에서는 이름만 등장하나, 실제 역사에서는 오랫동안 위군을 이끈 명장이다. 혜왕 이후 위의 군부를 이끌었다는 기록이 있다.[29] 그가 들고 다니는 창은 특이하게 다과극이다.[30] 이후 대진제국지종횡에서 다시 나온다 죽은 용가가 부활했다![31] 공자 앙의 부대가 쏜 독화살에 맞았고, 이 상처가 악화되어 숨을 거둔다. 참고로, 독화살이라기보다는 거의 투창 정도의 큰 화살이라 고령의 헌공이 즉사하지 않은 것이 기적일 정도.[32] 후속작인 대진부에서는 순자로 출연한다.[33] 무릎뼈를 부수는 형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