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문화 규제와 탄압/일지/문민정부/1997~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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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7년 상반기
2. 1997년 하반기 ~ 1998년 2월


1. 1997년 상반기[편집]


대한민국의 문화탄압과 관련 사건 일지 1997년 상반기
시기
관련 대상
상세
1997년 1월 3일
문학
검찰은 장정일에 대해 6일부터 검찰에 출두하라고 통보했다.
1997년 1월 6일
문학
검찰은 장정일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1997년 1월 7일
문학
검찰은 장정일에 대해 도주 우려가 없고 수사에 잘 협조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1997년 1월 11일
PC통신
정보통신부가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제16조 2항 개정안(통칭 통신보안법)'을 국회에 발의했다. 이 법은 수사기관과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여 수사기관과 정통윤이 불온문건 발견 시 정통부 장관에게 이에 대한 통신권의 제한을 요청한다는 내용이었다. 참고.
1997년 1월 12일
PC통신
통신보안법 개정안이 발의되자 각 통신망에서는 진보계열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토론 게시판이 열렸다.
1997년 1월 13일
PC통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정보화사업단(이하 노정단, 현 노동네트워크), 한국과학기술청년회, 통신연대, 정보연대 SING 등 6개 시민단체들은 '시민연대'를 만들어 1차로 비상회의를 열었다.
1997년 1월 14일
PC통신
정보연대 SING이 먼저 성명서를 발표했다.
1997년 1월 15일
PC통신
통신연대 등 6개의 시민단체들은 2차로 비상회의를 열어 공동 성명서와 의견서를 확정했다. 이때 '민중운동탄압분쇄와 민주기본권쟁취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와 인권운동사랑방도 이에 참여했다.
1997년 1월 17일
PC통신
통신연대 등 4개의 시민단체와 야당인 국민회의는 정보통신부에 의견서를 발송했다.
1997년 1월 18일
PC통신
1996년 당시 무장공비 자작극론 관련 게시글을 작성한 윤모씨에 대한 선고 공판이 2월 12일로 연기되었다.
통신연대는 통신보안법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민변도 정통부에 의견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국민회의의 장영달 보좌관은 시민연대를 방문하여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1997년 1월 20일
PC통신
새정치국민회의는 통신보안법 개정에 대해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1997년 1월 24일
PC통신
한총련 산하 통신단은 통신보안법 개악 반대를 위해 시민연대에 참여했다.
1997년 1월 25일
PC통신
통신연대 등 각 시민단체들은 '표현의 자유와 통신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온라인 시위와 성명서, 기자회견, 공개토론회 등에 대한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1997년 1월 27일
PC통신
정보통신부는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제16조 2항 개정안'을 무산시켰다.
1997년 2월 3일
케이블방송
종합유선방송위원회가 지난해에 사전심의를 거친 프로그램 중에 뮤직비디오 63건과 37건의 광고가 무더기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음이 확인되었다.
1997년 3월 6일
인터넷
당시 인기 모델인 이승희의 나체사진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홍익인터넷 대표 노상범씨가 검찰에 소환되어 불구속 기소되었다.
1997년 3월 7일
만화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어 동법 제45조에 따라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법제화되면서 만화에 대한 사전심의가 사후심의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청소년 유해매체 표시'라는 규정 탓에 만화 검열제가 청보법의 일부가 된 것이다.
1997년 3월 26일
문학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쓴 작가 장정일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1997년 4월 1일
애니메이션
한국방송개발원은 당해 3월 3일부터 10일까지 방송 3사에서 방영한 TV 애니메이션을 조사하여 <텔레비전 만화의 폭력성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제작, 이 보고서에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어린이들은 평균 2분 30초당 1번의 폭력장면을 목격하는 등 정서적 해악이 크다고 밝혔다.
1997년 4월 4일
영화
하일지 씨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신인 영화감독 구성주 씨가 연출한 영화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에서 여주인공인 미혼모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서 "얘 아버지는 김영삼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지금은 대통령을 하고 있어요" 라며 장난스런 미소를 짓다가 "사실은 김대중씨 아들이에요"라고 말하는 대목에 대해 공윤이 국가원수 모독 우려가 있다며 제작사인 한씨네텍에 대해 심의를 보류했다.
1997년 4월 15일
만화
음대협이 국내 3대 스포츠신문들을 미성년자보호법 위반을 적용하여 즉각 고발했다.
도서
경찰은 서울대 근처의 사회과학서점 '그 날이 오면'을 비롯해 고려대 근처의 '장백서점', 성균관대 앞 '풀무질' 등 세 곳의 사회과학서점을 압수수색해 <사회주의 노동자>, <녹슬은 해방구> 등의 재야 이념서적을 압수하는 한편 서점주를 연행했다.
1997년 4월 25일
PC통신
무장공비 자작극론 관련 게시글을 작성한 윤모씨가 국가보안법 찬양 고무 혐의와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1997년 4월 29일
영화
구성주 감독은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는냐고 물었다>에서 문제의 김영삼 대통령 관련 대사를 자진 삭제한 채로 공윤에 재심의를 냈다.
1997년 4월 30일
문학
검찰은 작가 장정일에 대해 음란문서 제조 혐의를 들어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영화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는냐고 물었다=None>가 공윤의 재심의에서 심의를 통과했다.
1997년 5월 2일
PC통신
제5기 한총련 출범식이 다가오자 나우누리는 고려대 총학생회 '작은모임' 게시판의 한총련 임시 게시판을 삭제하라고 요청했다.
1997년 5월 24일
PC통신
나우누리는 정보통신부의 요청에 따라 한총련 의장인 강위원 등의 개인 아이디와 진보계열 동아리 '찬우물' 등에 올려진 한총련 관련 게시물들을 삭제했는데, 이때 시삽이나 회원들에게 아무런 양해도 받지 않고 동호회 게시물들을 삭제했다. 이에 찬우물 회원들은 나우누리를 항의 방문했다.
1997년 5월 26일
PC통신
나우누리는 이틀 전 게시물 삭제에 대해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1997년 5월 29일
PC통신
나우누리는 한총련 관련자 두 명의 아이디를 사용 중지시켰다.
1997년 5월 30일
PC통신
나우누리는 한총련 관련자 12명의 아이디를 사용 중지시켰다. 이에 찬우물 측이 통신 검열행위에 대해 항의하는 성명서를 냈으며, 통신연대 역시 1차로 비상회의를 열었다.
문학
법원은 작가 장정일에 대해 음란문서 제조죄로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1997년 5월 31일
PC통신
데이콤은 천리안 희망터에 게시된 한총련 관련 게시글 3건을 정통부 요청에 따라 삭제했다.
1997년 6월 1일
PC통신
이날 나우누리에서는 진보계열 통신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통신검열 철폐'를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한편 찬우물 측은 '온라인 항의 시위'를 진행함으로써 1천여명이 참여했으며, 통신연대도 2차 비상회의를 열었다.
1997년 6월 2일
PC통신
나우누리는 한총련 관련자들의 아이디 사용중지 및 관련 게시글 삭제를 공지했다. 이에 민주노총과 전국연합이 이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참세상 BBS는 <한총련 속보> 등 한총련 관련 게시글들의 삭제를 정통부로부터 요청받자 관련 내용을 정통부에 질의했다.
하이텔은 정보통신부의 요청에 따라 '바른 통신을 위한 모임(이하 바통모)' 및 전대기련 게시판에 각각 올려진 <[타도!김영삼] YS담화문, 한총련 논평>, <5기 한총련 출범식 자료집> 등 13건과 <[서총련] 40개대학 신문/방송 내용> 등 16건의 게시글들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을 이유로 삭제했다.
1997년 6월 3일
PC통신
참세상 BBS는 한총련 관련자들의 아이디 4건과 관련 게시글들을 각각 이용정지/삭제했다.
천리안은 전국연합의 아이디와 <경찰은 왜 국민을 때리는가>, <96, 97 경찰폭력 주요사례> 등 3건의 게시글을 삭제했다.
1997년 6월 4일
PC통신
전국연합은 전날 아이디 정지와 게시글 삭제에 대한 질의서를 발송했다. 이날 천리안 희망터도 '통신검열 신고센터'를 운영했다. 한편 하이텔은 이틀 전에 정통부로부터 요청받은 게시글들을 삭제했다.
1997년 6월 5일
만화
경기도 부천시에서 만화 탄압과 규제의 도화선이 되는 일진회 사건이 발생한다. 일진회란 이름은 캠퍼스 블루스의 호칭에서 착안했다고 전해진다. 참고.
PC통신
나우누리 찬우물 동아리는 나우누리 본사에 항의 서한과 통신연대의 질의서를 발송했다.
1997년 6월 6일
PC통신
통신연대는 3차로 정보검열 행위에 대한 비상회의를 열었으며, 정보연대 SING도 통신검열에 항의하는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1997년 6월 7일
PC통신
통신연대는 참세상 BBS에 대해 질의서를 발송했다.
1997년 6월 10일
PC통신
나우누리와 참세상 BBS는 통신연대의 질의서에 대해 회신을 발송했다. 한편 통신연대는 민주노총, 전국연합과 함께 공동으로 통신검열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1997년 6월 19일
PC통신
민주노총, 통신연대, 전국연합은 '제11회 한국 컴퓨터/소프트웨어 전시회(SEK '97)'에서 통신검열에 항의하는 뜻으로 공동 선전전을 벌였다. 한편 하이텔도 바통모 이용자와 통신연대에 대한 질의서에 답변했다.
1997년 6월 20일
만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PC통신
나우누리와 참세상 BBS는 통신연대의 질의서 대해 회신을 발송했다. 한편 통신연대는 민주노총, 전국연합과 함께 공동으로 통신검열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1997년 6월 21일
PC통신
통신연대는 민주노총, 전국연합과 함께 'PC통신 검열철폐'를 외치며 정통부 앞에서 공동 집회를 벌였다. 이날 천리안과 하이텔에서 아이디 및 게시글 무단삭제에 항의하는 토론실이 개설되었다.
1997년 6월 28일
PC통신
나우누리의 사회단체 CUG '21세기 프론티어'에 세계일보 기자인 손형국 씨가 올린 <PC통신 공간에 안기부가 뛰고 있다>라는 게시글에 따르면 이용자 이모씨가 나우누리 측이 안기부에 게시물과 이메일 등에 대한 일체의 자료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폭로, 이후 몇몇 언론에서 취재했으나 증거자료가 부족해 보도되지 못했으며 나우누리는 이씨가 신청한 <안기부의 통신검열 반대한다>라는 토론실 개설 안건조차 거부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각 수사기관이 일상적으로 PC통신 업체 측에 이용자에 대한 자료 요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관련 자료.

2. 1997년 하반기 ~ 1998년 2월[편집]


대한민국의 문화탄압과 관련 사건 일지 1997년 하반기 ~ 1998년 2월
시기
관련 대상
상세
1997년 7월
도서
월간조선 7월호와 한국논단에서는 이장희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의 어린이 통일교육 도서 <나는야 통일 1세대(1995, 천재출판사)>에 용공도서라며 왜곡보도를 일삼았다.
1997년 7월 1일
만화
청소년보호법이 시행됨과 동시에 만화사냥의 서곡이 시작되었다.
1997년 7월 2일
만화
신한국당 이만섭 대표서리가 국회 연설에서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여 만화 탄압에 가속이 붙었다.
1997년 7월 5일
만화
경찰은 <암흑가의 특별경찰> 등의 일본만화를 배치하여 열람케 한 서점주를 구속했다. 이는 청보법에 의한 첫 적용 사례이다.
1997년 7월 5일
문화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문화체육부 산하 기구로 발족되었다. 이 기구는 유해매체 표시 여부를 결정하고 유해매체 표시, 포장, 격리, 수거, 폐기에 이르는 준사법권을 행사한다.
1997년 7월 7일
만화
정부는 김영삼 대통령 주제로 청와대에서 열린 학교폭력근절대책 보고회의에서 청소년보호위원회를 중심으로 폭력만화를 특별단속하는 한편 민간감시단의 활동을 강화시켜 이를 판매하는 대여점과 서점에 대해 민간신고를 받아 처벌키로 했다.
청소년보호법 시행규칙이 제정되었다.
1997년 7월 8일
만화
국회는 청소년 폭력의 대책을 마련하는 자리에서 일진회,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캠퍼스 블루스' 등의 일본만화를 거론했다. 참고
검찰은 <협객 붉은매> 등의 국내/일본만화에 대해 폭력성과 선정성을 검토하면서 만일 이와 같은 매체들이 유해물로 판정될 경우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1997년 7월 9일
만화
경찰은 불량 만화를 대여하고 열람케 한 만화방 업주 14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1997년 7월 11일
영화
공연윤리위원회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춘광사설(부에노스아이레스)>에 대해 동성애를 이유로 수입불허 판정을 내렸다.
1997년 7월 12일
PC통신
1995년에 있었던 하이텔 한국통신 노동조합 CUG 폐쇄 문제에 대해 한국PC통신(주)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노조 측이 패소했다.참고.
나우누리는 한총련 5기 출범식을 전후해 정지된 한총련 관련자들의 아이디 상당수를 복구했다고 공지했다. 비슷한 시기에 하이텔과 천리안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1997년 7월 14일
PC통신
정보통신부는 각 PC통신 사업자와 수사기관의 의견을 수렴하여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에 따라 PC통신 내 불온문건을 올린 이용자에 대해 1회 위반 시 1달간, 2회 위반 시 2개월, 3회 위반 시 6개월간 아이디가 정지된다고 규정했다. 참고.
1997년 7월 15일
만화
청소년보호위원회는 간윤 심의기준에 따라 1,700여종의 청소년 유해매체 목록을 발표했는데, 이중 이두호의 <객주>, 이희재의 <성질수난>, 허영만의 <닭목을 비틀면 새벽은 안온다>와 <오! 한강>, <오늘은 마요일>, <들개이빨>, 일본 만화 <짱구는 못말려> 등 510만 권이 유해도서 판정을 받았다. 링크
PC통신 내에서 결성된 '만화수호연합'은 청보법에 반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1997년 7월 19일
만화
서울지검은 <천국의 신화>의 음란성을 문제삼아 인도네시아에 체류중인 저자 이현세 화백에게 동월 21일까지 소환하도록 통보했다.
1997년 7월 20일
만화
서울지검이현세 씨의 귀국이 늦어짐에 따라 소환 일정을 재조정하기로 했다.
도서
<나는야 통일 1세대=None>사건의 여파로 이장희 교수가 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에서 해촉되었다.
1997년 7월 21일
만화
서울지검은 이현세 씨가 귀국하려 했지만 비행기표가 늦어짐에 따라 소환일자 연기를 요청하자 동월 23~24일 즈음에 이씨를 소환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음악
경찰은 카니발 콥스 베스트 앨범을 수입판매하고자 한 음반업자 2명이 음비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링크[1]
1997년 7월 22일
영화
장선우 감독의 영화 <나쁜 영화>가 공윤에 의해 음란성과 폭력성을 이유로 등급외판정을 받아 사실상 상영 불가 판정을 받았다.
1997년 7월 23일
문학
법원은 작가 장정일에 대해 보석을 허가해 석방시켰다.
만화
대한민국 검찰청은 인도네시아에서 귀국한 이현세 씨를 소환해 조사한 뒤 오후 7시에 귀가시켰다. 이때 검찰은 "이씨의 진술은 충분히 들었으며 적용 법규를 재검토한 뒤 하루 안에 형사처벌 방침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며, 이에 이씨는 "<천국의 신화>는 배경이 선사시대이다 보니 인간을 원숭이 정도로 보고 있으며, 당시는 모계사회였기 때문에 혼숙 장면이 나올 수밖에 없다."라고 하며 "척박한 만화계를 개척하기 위해 20년간 달려왔는 데 이제 와서 동물원 신세를 질 순 없다"고 한 뒤 "차라리 붓을 놓는 게 낫겠다"고 절필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한국만화가협회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1차 모임을 개최했다.
영화
당월 21일에 '왕가위 감독 포스터/사진 전시회'에 참석 차 한국에 온 왕가위 감독은 이날자 한겨레 인터뷰에서 동성애가 주제라서 <춘광사설>을 상영 중지시킨 공연윤리위원회에 실망을 표했다.
1997년 7월 24일
도서
<나는야 통일 1세대>사건의 여파로 이장희 교수가 통일원(현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에서 해촉되었다.
1997년 7월 25일
케이블방송
종합유선방송위원회는 청보법 시행에 따라 8월 1일부터 '종합유선방송심의규정'과 '영화등급 등에 관한 세칙'을 개정하여 케이블TV에서 방송하는 영화/애니메이션 프로그램에 대해 등급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링크
1997년 7월 28일
만화
한국만화가협회, 우만연, 한국만화출판협회 등 10개 만화관련 단체들은 청보법에 의한 만화사냥에 대해 대책회의를 열었다.
1997년 7월 29일
만화
한국만화가협회 등 10개 만화관련 단체들은 <정부의 만화 탄압에 대한 범만화인 성명서>를 발표했다.
1997년 7월 30일
영화
<나쁜 영화=None>가 공윤의 2차 심의에서 문제의 장면들을 삭제하는 조건으로 심의를 통과해 개봉이 성사되었다.
1997년 8월 1일
만화
음대협의 고발에 따라 검찰은 <밤사쿠라>를 지은 강철수 씨 등 10여명과 스포츠신문 만화가와 관계자 등 15명을 대거 기소시키기로 밝혔다. 이중 일간스포츠에 <대침몰>을 연재한 임동재 등에 벌금 3천만원을 매겨 약식 기소시킬 것이라고 했다.
1997년 8월 2일
만화
검찰은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시행한 '유해매체 표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출판업자는 구속 수사시키겠다고 밝혔다.
1997년 8월 4일
만화
검찰은 강철수 등 스포츠신문 만화가 10여명과 관계자 등 15명 안팎을 불구속 기소시켰다.
1997년 8월 19일
잡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서울민주청년단체협의회(이하 서청협)이 펴낸 기관지 <서울청년> 8호를 심의하여 해당 잡지에 게재된 미군철수와 김영삼 정권 퇴진 등의 내용을 문제삼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해 이를 서청협에 통보했다.
1997년 8월 26일
만화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청소년 유해환경의 효율적인 감시를 도입하는 '교사 감시단제'를 도입하는 등 1만명 규모의 전국적인 자원봉사 민간감시단을 창설키로 했다고 밝혔다.
1997년 8월 31일
영화
공연윤리위원회는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작으로 출품된 네덜란드의 단편영화 <좀비1(1995년작.)>에 대해 폭력성과 잔혹성을 이유로 등급보류시켰다. 그러나 PiFan 관계자는 이에 불구하고 부천 영시네마[2] 1관에서 서비스 차원으로 해당 영화를 상영했다.
1997년 9월 3일
인터넷
한국전산원은 국내 최초의 유해사이트 차단 소프트웨어 'NCA 패트롤'을 전국 초/중/고등학교와 학부모들을 상대로 6000개 이상 무료 배포했다. 링크
1997년 9월 8일
영화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이틀 앞두고 집행위원장인 김동호는 "이번 영화제에 출품할 <춘광사설(부에노스아이레스)> 등 3편의 동성애 영화에 대해 무삭제로 상영하기로 공윤과 합의를 했다."고 밝혔다.
1997년 9월 17일
영화
동성애를 주제로 한 영화를 모은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에 대해 서대문구청은 해당 영화들이 공윤에 심의를 받지 않은 데다 사전신고가 안 되었다는 이유로 개최를 불허했다. 이 영화제는 1998년 11월에야 개최될 수 있었다.
1997년 9월 20일
도서
<나는야 통일 1세대>의 저자 이장희 교수는 9월 20일에 조선일보와 한국논단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냈다.
1997년 9월 23일
PC통신
국회 통신과학기술위원회 김영환 의원과 정보통신부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당해 6월말까지 수사기관이 한국통신 등에 요청해 실시한 통신 감청 건수는 2,39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28건보다 23% 증가했다. 그리고 당해 7월말까지의 PC통신 아이디 사용정지와 폐쇄 건수는 3,026건으로, 지난해 1년치 2,413건보다도 많은 것으로 집계된 것임이 밝혀졌다.
1997년 10월 2일
PC통신
제15대 대선을 앞두고 PC통신 토론방에서 특정 후보에 대해 비방을 일삼던 유저 3명이 구속되었다.
1997년 10월 3일
영화
인권운동사랑방이 주최한 '제2회 인권영화제(홍익대 개최)'가 경찰의 외압으로 인해 조기 폐막했다. 그러나 주최측은 이에 굴하지 않고 명동 향린교회, 인하대를 전전하며 개최를 강행했다.
1997년 10월 11일
공연,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공연윤리위원회가 공연예술진흥협의회(이하 공진협)으로 새로 출범하였다. 이때 문화체육부가 맡았던 외국영화수입추천권이 공진협으로 이관되었다.
1997년 10월 19일
인터넷
정보통신부는 미국의 유명 인터넷 호스팅 업체 '지오시티(Geocities)'에 호스팅된 '자주성'이라는 친북 사이트가 있다는 이유로 지오시티 자체를 접속 차단시켰다. 링크
1997년 10월 29일
인터넷
검찰은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등 국내 4대 PC통신 업체를 경유해 북한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유저들에 대해 엄중 사법처리하겠다고 하여 내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통신공간의 행적을 모두 감시, 기록해야 하므로 국민의 프라이버시권에 심각한 침해가 우려되었다. 링크
도서
경찰은 성균관대 앞 서점 '논장' 등 인문과학서점 4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여 <공산당 선언>, <실천의 변증법> 등 28종 50여권의 서적과 거래장부 등을 압수했다.
1997년 10월 30일
가요
공진협은 스티브 유의 동명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 <West Side>와 인트로 곡에 영어 욕설이 나왔다는 이유로 '대중가요 부적합' 처분을 내렸다. 
1997년 10월 31일
도서
법원은 이장희 교수의 <나는야 통일 1세대>에 대한 왜곡보도를 한 월간조선에 대해 반론보도문을 실으라고 결정했다.
1997년 11월 4일
영화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레드헌트> 건에 대해 경찰은 인권운동사랑방 서준식 대표에게 국가보안법 및 음비법, 보안관찰법 위반을 적용해 구속했다.
1997년 11월 10일
인터넷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인터넷 전위예술 일러스트레이터 조경규와 바다가 운영하는 피바다학생공작소를 폐쇄조치시켰다.
1997년 11월 25일
도서
검찰은 <나는야 통일 1세대>의 저자 이장희 교수와 출판사 대표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1997년 12월 3일
도서
검찰은 <나는야 통일 1세대>의 저자 이장희 교수와 출판사 대표에 대해 영장을 재청구했다.
1997년 12월 29일
도서
검찰은 <나는야 통일 1세대>의 저자 이장희 교수와 출판사 대표에 대한 영장이 두 번 기각되자 이 교수를 불구속 입건했다.
1998년 1월 22일
영화
<레드헌트> 건으로 구속된 서준식씨가 비디오물에 대한 사전심의를 규정한 음비법 제17조와 25조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신청하였다.
1998년 2월 5일
영화
<레드헌트=> 건으로 구속된 서준식씨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1998년 2월 6일
도서
법원은 <나는야 통일 1세대>의 저자 이장희 교수를 왜곡보도한 한국논단에 대해 반론보도문을 게재하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한국논단 측이 이에 불이행하는 바람에 3월 25일에 압수수색을 당했다.
1998년 2월 18일
만화
만화가 이현세천국의 신화와 관련하여 미성년자보호법 위반으로 3백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이현세는 이에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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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02-02 09:06:40에 나무위키 대한민국/문화 규제와 탄압/일지/문민정부/1997~1998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당시 음반업계는 사전검열제가 사라졌다며 좋아하고 있었는데, 청소년보호법으로 인해 당시 영화나 음반에 사후심의제를 채택한 공연윤리위원회에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고 한다. 이 와중에 사실상 청소년 팬들이 많은 데스메탈 장르의 음반 판매를 위해 카니발 콥스의 음반을 들여온 록레코드에서, 정부 기관에 검토를 위해 가사와 음반을 제출했는데, 진짜 가사가 아닌 가짜 가사를 프린트해서 보냈다.(...) 당연히 심의를 통과, 라이센스로 판매되었고, 나중에 진상을 알게 된 정부부처에서 고소를 함으로서 구속된것. 참고로 당시 한국의 카니발 콥스의 음반 판매량은 엄청나서, 한국 한정으로 발매된 그들의 음반 "데들리 트랙스"에는 음반이 시작될때 "안뇽하세요우 코리아! 감솨합미다~!!"라는 한국어가 녹음되어있었다...[2] 현재는 영웨딩컨벤션센터가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