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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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백제 제 21대 국왕인 개로왕의 부인. 국내 기록에는 없고, 일본서기에 주석으로 인용된 백제기에서 개로왕의 부인인 대후(大后)가 살해당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20년(476) 겨울 고려(高麗)의 왕이 군사를 크게 일으켜 백제(百濟)를 쳐서 없앴다. 이 때 조금 남은 무리들이 있어 倉下에 모여 있었는데 군량이 다하자 매우 근심하여 울었다. 이에 고려(高麗)의 장수들이 왕에게 “백제(百濟)는 마음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신들은 그들을 볼 때마다 모르는 사이에 착각하게 됩니다. 다시 덩굴처럼 살아날까 두려우니, 쫓아가 없애기를 청합니다”고 하였다. 왕은 “안된다. 과인이 듣기에 백제국(百濟國)은 일본국(日本國)의 관가(官家)가 되었는데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고 한다. 또 그 왕이 들어가 천황을 섬긴 것은 사방의 이웃들이 다 아는 바이다”라 하였으므로 드디어 그만두었다.【『백제기)百濟記)』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개로왕(蓋鹵王) 을묘년(乙卯年: 475년) 겨울 박(狛)의 대군(大軍)이 와서 대성(大城)을 7일 낮밤을 공격하였다. 왕성(王城)이 항복하여 함락되니 위례(尉禮)를 잃었다. 국왕(國王)과 대후(大后), 왕자 등이 모두 적의 손에 죽었다”】.
일본서기 권14 大泊瀨幼武天皇 雄略天皇
2. 기타[편집]
461년 부여곤지를 따라 일본으로 간 개로왕의 부인과 동일인인지는 알 수 없다. 만일 둘이 동일 인물이라면 무령왕은 대후의 아들일 수 있으나, 무령왕의 출자에 대해서는 개로왕설과 곤지설로 나뉜 상태라 확실하지 않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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