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브 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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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스튜어트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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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81
1989
1993








파일:MLB 로고.svg 1990년 메이저 리그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게리 카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데이브 스튜어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해럴드 레이놀즈
(시애틀 매리너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48번
릭 서트클리프
(1976)

데이브 스튜어트
(1978~1983)


마이크 램지
(1985)
{{{#FFFFFF [[텍사스 레인저스|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31번}}}
퍼거슨 젠킨스
(1974~1981)

데이브 스튜어트
(1983~1984)


데일 머레이
(1985)
{{{#FFFFFF [[텍사스 레인저스|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43번}}}
도니 스캇
(1983~1984)

데이브 스튜어트
(1985)


케빈 브라운
(1986)
{{{#FFFFFF [[텍사스 레인저스|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48번}}}
마이크 스미슨
(1982~1983)

데이브 스튜어트
(1985)


바비 위트
(1986)
{{{#ffffff [[필라델피아 필리스|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38번}}}
팻 자크리
(1985)

데이브 스튜어트
(1985~1986)


왈리 리치
(1987~1988)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34번
톰 텔만
(1985)

데이브 스튜어트
(1986~1992)


롤리 핑거스 / 데이브 스튜어트
영구결번
{{{#ffffff [[토론토 블루제이스|토론토 블루제이스]] 등번호 34번}}}
마크 아이크혼
(1992)

데이브 스튜어트
(1993~1994)


다윈 커빌란
(2000)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35번
밥 웰치
(1988~1994)

데이브 스튜어트
(1995)


프랭크 토마스
(2006~2008)




파일:스튜어트.png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No.34[1]
데이비드 키스 스튜어트
David Keith Stewart

출생
1957년 2월 19일 (67세)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신체
188cm, 90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75년 드래프트 16라운드 (전체 384번 / LAD)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78, 1981~1983)
텍사스 레인저스 (1983~1985)
필라델피아 필리스 (1985~1986)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86~1992)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3~1994)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5)

1. 개요
2. 선수 시절
3. 은퇴 이후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영결어트.jpg

미국의 전 야구선수.


2. 선수 시절[편집]



- 1989년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는 모습.

고등학교 재학 당시만 해도 포수로 활동했으나, 다저스에 입단한 이후 구단에서 강한 어깨에 주목하여 투수 전향을 권유했다. 1978년 처음으로 빅리그 데뷔 등판을 가졌고, 그 해의 처음이자 마지막 등판이었다.

이후 두 시즌은 AAA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돌았는데, 79년과 80년에 각각 5.24-3.7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후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빅리그에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81년에는 불펜투수로만 32경기에 등판하며 2.4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이듬해인 82년에는 스윙맨으로서 불펜과 선발을 모두 맡았다. 83시즌 역시 불펜으로 뛰다가 시즌 도중에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2] 사실 트레이드 당시에는 텍사스 팬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때까지만해도 스튜어트는 데뷔한지 얼마 안된 추격조 불펜이었을 뿐이고, 릭 허니컷은 두 차례 올스타에 선발된 리그 탑급 선발투수였기 때문이다.

텍사스 2년차 시즌인 1984년에 처음으로 선발투수 풀타임 시즌을 치뤘다. 성적은 32경기 192이닝 7승 14패 4.73. 1985년에는 다시 불펜으로 밀려 42경기에 등판했고 5.4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던 도중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상대는 릭 서호프.

필리스에서는 12경기만을 등판하는 데 그쳤고, 또 다시 1986년 시즌 도중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오클랜드 이적 후 스튜어트는 통산 168승을 기록한 1980년대 후반 오클랜드의 전성기 1선발 에이스가 되었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꾸준히 250이닝과 20승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고 1989년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할 정도로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팀 내에 사이영상을 수상했던 밥 웰치보다 오히려 세부지표가 좋았다. 또 수상 기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강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통산 22차례(17선발)의 포스트시즌 등판을 가지며 133이닝을 소화했고 2.7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스튜어트가 선발등판한 17경기 중 팀이 승리한 경기는 무려 13경기. 완투 또한 세 번을 기록했고, 이 중 완봉은 한 번이다.

1992년 시즌 후 FA자격을 취득했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2년 850만 달러에 계약한다. 그러나 나이가 나이인지라(36~37세 시즌) 이전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고, 두 시즌 동안 4.44 - 5.8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다. 계약기간이 끝난 후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와 한 시즌을 뛰고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3. 은퇴 이후[편집]


은퇴 이후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밀워키 브루어스,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투수코치로 일했고, 잠시동안 샌디에이고에 연고를 둔 스포츠 에이전트로 활동하기도 했다.[3]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단장을 맡았다. 다만, 디백스 단장 시절 평은 그다지 좋지 않다. 특히 마지막 시즌인 2016 시즌을 거하게 말아먹고 당시 감독이던 칩 헤일과 함께 짤리다시피 해서 팀을 나갔다.[4] 특히, 당시 CBO였던 토니 라 루사와 함께 세이버메트릭스에 거의 무지한 모습을 보여 현지 및 국내 언론인들에게 크게 지탄받기도 했다.

파일:스튜어트방송.png

2021년 현재에는 오클랜드의 경기 후 리뷰방송에 패널로 참가하고 있다.

2022년 4월 22일, 그의 번호인 34번이 영구결번이 되는 것이 발표되었다. 9월 11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경기에서 영구결번식을 진행했다. 외야 벽과 마운트 데이비스에 스튜어트의 등번호와 이름이 새겨졌다. 토니 라 루사, 빌리 빈 등 구단의 전, 현직 주요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4. 여담[편집]


  • 사생활이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았던 듯 싶다. 1985년 선수생활 도중 매춘부와의 성매매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벌금 및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 2018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명예의 전당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헌액되었다.


5.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3 03:31:28에 나무위키 데이브 스튜어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롤리 핑거스와 공동 영구결번이다.[2] 스튜어트와 리키 라이트가 텍사스로, 릭 허니컷이 다저스로 이적.[3] 대표적인 고객으론 前 샌프란시스코 투수인 맷 케인이 있다.[4] 정확히 말하면 칩 헤일 감독은 경질이 맞고 스튜어트는 그냥 계약 만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