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텐슈타인의 알로이스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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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의 공자
리히텐슈타인의 알로이스
Prinz Alois von und zu Liechtenstein

이름
알로이스 곤차가 마리아 아돌프
(Alois Gonzaga Maria Adolf)
출생
1869년 6월 17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홀레네그
사망
1955년 3월 16일 (향년 85세)
리히텐슈타인 파두츠
배우자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 아말리 여대공 (1903년 결혼)
자녀
프란츠 요제프 2세, 마리 테레제, 카를 알프레트, 게오르크 하르트만, 울리히, 마리아 헨리에테, 알로이스, 하인리히
아버지
리히텐슈타인의 알프레트 공자
어머니
리히텐슈타인의 헨리에테 공녀
형제
프란치스카, 프란츠, 마리아 테레지아, 요하네스, 알프레트 로만, 하인리히, 카를 알로이스, 게오르크
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3.1. 자녀
4. 여담



1. 개요[편집]


리히텐슈타인의 공자. 프란츠 요제프 2세의 아버지이다.


2. 생애[편집]


1869년 6월 17일 리히텐슈타인의 알프레트 공자와 리히텐슈타인의 헨리에테 공녀의 7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알프레트 공자는 요한 1세 요제프의 차남 프란츠 데 파울라 공자의 장남이고 어머니 헨리에테 공녀는 요한 1세 요제프의 장남 알로이스 2세의 7녀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친사촌이다. 위로 형 프란츠가 있었지만 미혼에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장남이었다.

파일:알로이스와 엘리제베트 아말리.jpg
알로이스와 엘리자베트 아말리.

190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카를 루트비히 대공마리아 테레자의 딸인 엘리자베트 아말리 여대공과 결혼해서 슬하에 6남 2녀를 두었다.

원래는 평범한 방계 공족이였지만 당숙 프란츠 1세가 자녀가 없자 외조카이자 종법상 가장 가까운 알로이스가 후계자가 되었지만 자신의 나이가 너무 많아서 걱정되었기 때문에 1923년 2월 26일 장남 프란츠 요제프 2세에게 계승권을 넘겼다.

1955년 3월 16일 리히텐슈타인 파두츠에서 사망했다.


3. 가족관계[편집]



3.1. 자녀[편집]


  • 장남 프란츠 요제프 2세 - 슬하 4남 1녀
  • 장녀 마리 테레제 - 슬하 2남 1녀
  • 차남 카를 알프레트 - 슬하 3남 4녀
  • 삼남 게오르크 하르트만 - 슬하 1남 6녀
  • 사남 울리히 - 미혼, 자녀 없음.
  • 차녀 마리아 헨리에트 - 슬하 3남
  • 오남 알로이스 - 미혼, 자녀 없음.
  • 육남 하인리히 - 슬하 1남 2녀


4. 여담[편집]


  • 오스트리아 황금양모 기사단의 1,177 번째 기사였다.

  • 알로이스 본인은 리히텐슈타인의 방계 공족이였지만 무려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인 엘리자베트 아말리 여대공[1]과 결혼하였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8명의 자녀들 중 아들만 6명인 아들 부자였다. 이후 당숙인 프란츠 1세에게 자녀가 없어 후계자가 되었지만 자신의 나이가 많아 계승권을 넘기면서 장남 프란츠 요제프 2세가 리히텐슈타인 공이 되었다. 게다가 자신에 이어 아들과 손자들도 모두 아들을 많이 낳아서 현재 알로이스의 남계 후손만 50명이 넘어갈 정도로 가문이 크게 번성했다. 현재 리히텐슈타인 공가는 알로이스의 직계 후손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몇조원의 재산을 가진 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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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직계 여대공은 아니었다. 엘리자베트 아말리는 카를 루트비히 대공의 3녀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조카였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