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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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박능일(朴能一)
자 / 호
성언(聖彦) / 무호(无號)
본관
월성 박씨(月城)[1]
출생
1859년 2월 29일
경상도 의흥현 내화면 상라동
(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상라마을)[2]
사망
1917년 7월 20일
대구광역시 영일군 흥해면 우목동 앞바다
(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우목리)
묘소
대구광역시 군위군 의흥면 이지리 가지골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與其事讎而生, 不若蹈海. 朝鮮逸民 朴能一.

(원수를 섬기고 사는 것은 바다에 뛰어들어 죽는 것만 못하다. 조선일민 박능일.)


1859년 2월 29일 경상도 의흥현 내화면 상라동(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상라마을)에서 아버지 박현원(朴顯源, 1835. 8. 16 ~ 1904. 2. 1)과 어머니 전주 이씨(1828. 10. 11 ~ 1897. 12. 28)[3]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0년 8월 29일 일제경술국치를 당하자 통한을 품고 살아오다가, 1912년 제령(制令)인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의 공포로 호적 편제가 강제되었으나 호적 취득을 거부했다.

그 뒤 1914년부터 1917년까지 가족들을 이끌고 안동군 예안면, 영주군 풍기면 등지를 전전하다가 1917년 7월 20일 영일군 흥해면 우목동(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우목리)의 어느 바닷가 암벽 위에서 "與其事讎而生, 不若蹈海. 朝鮮逸民 朴能一"이라고 유서를 남긴 뒤 바닷속에 투신해 순사했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고향인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에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기리는 추모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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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촌공파(柳村公派) 59세 조(祚) 항렬.[2] 인근의 미성리와 함께 월성 박씨 집성촌이다. 박배근 전 대구직할시장, 박영언 전 군위군수와 독립유공자 박승조·박필조·조성우도 이 마을 출신이다.[3]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이원동(李元東)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