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성대군

덤프버전 :

密城大君
1. 개요
2. 생애
3. 묘(시조단소)
3.1. 밀성대군 지단 이전 논란


1. 개요[편집]


본명은 박언침(朴彦忱). 신라 경명왕장남으로, 밀양 박씨의 시조이다.


2. 생애[편집]


족보 등 비공식 문헌에 따르면, 경명왕의 장남인데도 왕위를 물려받지 못했다. 경명왕은 젊은 나이에 중병이 들었고 자신의 장남인 밀성대군이 아직 나이가 어려서 후삼국이라는 난세의 지도자로 적합하지 않다 판단하고, 많이 걱정이 돼서 장성한 아우인 경애왕에게 물려준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이렇게 왕위를 물려받은 경애왕도 결국 포석정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기는 하지만 그 전까지 나름대로 고려군과 신라군의 연합 작전을 감행하는 등 침체해 있던 신라를 살려보기 위해 적극적인 타개 노력을 했던 것이 확인되며, 성인인 경애왕 대신 어린 왕자가 즉위했다면 견훤의 위협 앞에서 더 좋게 진행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 뒤에는 밀성대군으로 봉군(封君)되고, 밀양시에 눌러 앉으면서 밀양 박씨의 시조가 된다. 남동생이 7명이나 있었는데[1] 각각 둘째부터 막내까지 고령, 함양, 죽산, 무안, 춘천, 순천, 충주, 상주, 월성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또한 자기 아들인 박욱(朴郁)은 고려 태조 때 삼한벽공도대장(三韓壁控都大將軍)을 지냈다고 한다.


3. 묘(시조단소)[편집]


그의 시조단소는 밀성대군지단(密城大君之壇)이라고 불리는데, 일반적인 가 아니라 로 되어있다.
밀성대군지단은 밀양시 천진궁 옆에 있으며 천진궁, 영남루, 아랑사, 박시춘 옛집, 밀양읍성, 밀양관아밀양시 내일동 내 대표적인 여행지이다.

3.1. 밀성대군 지단 이전 논란[편집]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경남도의원[2]친일반민족행위자 박춘금이 완력으로 영남루 마당에 세운 밀성대군지단을 옮기고 그곳에 '박춘금 단죄비'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조선총독부를 등에 업은 박춘금이 박씨 문중을 만방에 과시하고자 세운 '일본식 무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밀성(밀양)박씨대종회가 "밀성대군지단이 친일잔재라는 기록이 어디에 있느냐"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상조 전 밀양시장(1995~2006년) 재임 당시 지단을 옮기자는 여론이 있었으나 이뤄지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9 09:47:46에 나무위키 밀성대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즉 경명왕 슬하에는 8남이 있었던 거다.[2] 창원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