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옥(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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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윤옥(朴潤玉)
본관
밀양 박씨
생몰
1915년 12월 9일 ~ 2005년 8월 23일 (향년 89세)
출생지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금천리[1]
(현 평양직할시 만경대구역 금천동)
사망지
대전광역시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편집]


1915년 12월 9일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금천리(현 평양직할시 만경대구역 금천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개신교 신자로, 사립 신흥학교(新興學校)를 졸업한 후 평양의 숭인상업학교(崇仁商業學校)에 입학하였다. 그는 재학 중 한인 교사와 목사로부터 민족 교육을 받은 후 독립운동에 뜻을 두었다. 1936년 6월, 동교생 김현주(金顯周)·김덕윤 등과 함께 농민의 계몽지도 및 민족의식의 고양을 목적으로 삼은 항일결사 일맥회(一麥會)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일맥회는 곧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해산하고 말았다. 이에 1937년 2월 김현주·김덕윤·김동순(金東舜)·지광호(池光浩) 등과 다시 비밀 결사 열혈회(熱血會)를 조직하고, 박윤옥이 회장을 맡았다. 열혈회는 이후 농민 대중 지도를 통한 민족의식 배양과 농업 기술 및 경영 지도를 통한 농민 경제 향상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회원들 사이에는 비밀 유지를 위해 성명 대신 한글 한 글자를 암호로 정하고, 해마다 3월 1일과 8월 29일을 열혈회 기념일로 정해 조국 독립을 위한 기도와 단식을 하면서 항일 정신을 기렸다.

1938년 3월 졸업과 동시에 일본으로 건너가 4월 도쿄(東京)에 있는 아오야마학원 신학부 예과에 입학하였다. 항일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온 김덕윤·김동순 등 열혈회 회원들과 계속 모임을 가지면서 항일 활동을 하던 중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1939년 11월 체포되었다. 2년 동안 미결수로 있다가 1941년 11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항소해, 2심에서 징역 4년에 집행 유예 5년형을 받았다.

이후 일제 경찰의 감시를 받다 8.15 광복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고, 2005년 8월 2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박윤옥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1] 인근의 장광리와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