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기업/사례/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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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범례
3. 대한민국
3.2. 경동산업(현 키친아트) 災, 甲, 罪
3.7. YK패밀리 甲, 勤
3.8. 옴니뮤직 災, 甲, 勤
3.10. 태평백화점 甲, 勤, 罪, 外
3.12. 삼풍건설산업 災, 甲, 罪, 外
3.13. 이석민피자 災, 甲, 罪
3.16. 오대양 災, 甲, 罪
4. 일본
4.1. 타카타 災, 外
4.3. Bakky 甲, 罪
4.4. JCO 災, 勤
5. 미국
6. 유럽
7. 홍콩
8. 인도네시아
8.1. 아담항공 災, 外
9. 개과천선한 사례



1. 개요[편집]


블랙 기업의 사례 중 회사의 합병이나 폐업, 노동자 처우 개선 등으로 인해 과거 사례가 된 경우를 설명하는 문서이다.


2. 범례[편집]


기호
설명

산업 재해 (자살 포함)

갑질

언어폭력

범죄 연루

열악한 근무 환경

사외 인명피해 (자살 포함)


3. 대한민국[편집]



3.1. 서울메트로 勤, 外[편집]


자사의 모든역사 스크린도어정비를 외주업체에게 떠넘기도록하여 결국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사망사고를 내는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였다. 또 외주업체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을 대부분을 채용하는 혐의가 추가로 드러났다. 또 이 사건을 계기로 2017년 5월 31일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와 통합해서 서울교통공사를 창립하게 했다.


3.2. 경동산업(현 키친아트) 災, 甲, 罪[편집]


노동자역사 한내 자료
김세진이재호기억저장소 자료
오마이뉴스 보도 자료

1960년 삼환기업 창업주 최종환의 형 최경환(2004년 작고)이 인천 주안에 세운 경동산업은 주방기구 브랜드 '키친아트'를 만드는 기업이었으며 최 회장 자신도 아시아양식기협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업계 대표 주자였다. 그러나 이 회사의 작업환경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산재율이 매우 높아서 일 년에 잘리는 노동자 손가락이 한 바구니[1]라는 말이 돌았다. 노동자들의 이직률을 보면 월 유동인원이 약 500여 명에 달할 때도 있었다. 전체 근로자 중에서 1년 이하 근무자가 60 ~ 70%에 이를 정도였다. 이는 학생 출신의 노동운동가들이 쉽게 위장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1984년부터 이같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항의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으나, 사측과 인천시, 공권력, 한국노총 등은 어용노조 설립, 강제해고, 구사대 폭력 등으로 대응하였으며, 1989년에는 농성 도중 분신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와 더불어 주주와 대표이사의 업무상 횡령비리(비자금) 등으로 진통을 겪다가 경동산업이 중견 건설사로 넘어가면서 경영이 엉망이 되었고, 199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2000년 법정관리 퇴출 명령을 받으면서 회사는 사라지는가 싶었으나, 2001년부터 비상대책위 노동자들이 경동산업을 인수하여 '키친아트'로 명칭을 바꾸어 과거 경동 시절의 잔재를 씻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사훈으로 '공동소유, 공동책임, 공동분배'를 내세워 주주 배당 중 10%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3.3. 원진레이온[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원진레이온 사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4. 총각네 야채가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총각네 야채가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5. 우정사업본부 災, 甲[편집]


2013년때 우체국 위탁택배 기사가 국민신문고에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올렸다가 해고위협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관련기사

또한 우체국이 협력택배기사들에게 갑질한다고 시위가 난 적도 있으며 부당한 업무지시를 강요 하기도 하였다. 인터뷰.
우체국의 부당한 업무지시

집배원들의 잇따른 죽음으로(과로 등) 그들에게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3.6. 세진컴퓨터랜드[편집]


한때 공격적인 매장 확장과 할인, 평생 사후지원으로 유명했던 PC 전문점이었으나 내부적으로는 사장의 독선적인 직원 관리라는 그늘이 있었고, 이후 다른 기업에 인수되었으나 앞서 말한 무리한 확장 등의 후유증으로 인해 결국 파산하여 사라졌다.


3.7. YK패밀리 甲, 勤[편집]


양원경이 세운 연예기획사로, 유세윤을 무보수로 부려먹은 것으로 악명 높다. 현재는 없어졌으며, 그걸 배제하고 봐도 현재 양원경은 엄청나게 몰락한 상황이다. 자세한 건 양원경 문서 참고.


3.8. 옴니뮤직 災, 甲, 勤[편집]


서지원 사망 사건 문서 참고.


3.9. TS엔터테인먼트[편집]


해당 문서 참고.


3.10. 태평백화점 甲, 勤, 罪, 外[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태평백화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겉으로만 보면 서울특별시에 남아있는 유일한 지역백화점이자 지금까지도 인근 지역인 사당동, 방배동 등지에 마땅한 할인점이 없어 그 역할까지 수행하는 알짜배기 유통업체이지만, 그 이면에는 부당한 상품권 강매, 소방위반 과태료 전가 및 불법 적치, 착취 수준의 형편없는 임금, 매장 매니저와 판매사원에 대한 부당한 해고 및 압력, 입점 업체에 대한 협박 등의 갑질 등 추악한 민낯이 숨어있었다.#

그리고 결국 2021년 3월, 직원간 방역수칙 관리 미흡으로 인하여 3월 20일에 1층 매장 직원 1명이 처음 양성 판정을 받은 이래 각층 포함 총 10명의 직원이 확진되며 집단감염사태가 발생했음에도 보건소에서 실행한 무료 방역 외에 그 어떤방역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누적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음에도 회사 직원들이 영업이익에 눈이 멀어 오너에게 보고를 차일피일 미루며 관할 보건소와 백화점 영업 결정 여부에 대한 책임 소재를 미루는 등 막장 행태를 보여주었다.

결국 2021년 10월 31일 영업을 마지막으로 폐업했다.


3.11. 온게임넷 스파키즈[편집]


팀 내 부조리와 똥군기, 이유찬 감독의 갑질 등으로 문제가 많았고 승부조작 사건으로 팀은 CJ 엔투스에 합병되었다.


3.12. 삼풍건설산업 災, 甲, 罪, 外[편집]


해당 문서 또는 그 유명한 붕괴 사고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참고. 이 회사는 사장 및 경영진의 갑질 또는 무리한 백화점 부실공사 요구로 일어난 일이라 안타까운 사례라 볼 수 있으며, 삼풍아파트처럼 제대로 건축하기만 했어도 이런 비극이 일어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3.13. 이석민피자 災, 甲, 罪[편집]


서산 성폭행 피해자 자살 사건 참조.


3.14. 산융산업[편집]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이자 최악의 막장 다단계 판매회사로, 산업회사를 빙자한 범죄조직이다. 해당 문서의 실상 문단 참조.


3.15. 청해진해운 罪, 外[편집]


해당 문서 또는 그 유명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문서 참고.


3.16. 오대양 災, 甲, 罪[편집]


민속공예품제조업체를 빙자한 사이비 종교 집단. 기업을 빙자한 사이비 종교이었음이 드러난 몇 안되는 사례다.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참조.

4. 일본[편집]



4.1. 타카타 災, 外[편집]


해당 문서의 여담타카타 에어백 결함 사태 참조.


4.2. 테크모[편집]


테크모 문서 참고. 지금은 코에이에 합병되여 코에이 테크모가 되었다.


4.3. Bakky 甲, 罪[편집]


20세기 이후 인류 역사상 최악의 블랙기업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성인물 제작사의 탈을 쓴 범죄조직이다. 자세한건 Bakky 사건 참고.


4.4. JCO 災, 勤[편집]


도카이 촌 방사능 누출사고 참조.


5. 미국[편집]



5.1. 스텔라 스톤[편집]


전부 똥겜만 만들다 망한 제작사로, 그 중에서 Big Rigs: Over the Road Racing이 제일 유명하다. yourewinner.com에서 진행한 전직 개발자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높으신 분들이 강압적인 태도를 일으켰다고 한다. 어떤 일인지는 해당 문서의 문제점 참조.


5.2. 와인스틴 컴퍼니[편집]


하비 와인스틴 성범죄 파문 문서 참조.


6. 유럽[편집]



6.1. 브리티시 레일랜드 甲, 勤[편집]


영국의 제너럴 모터스를 꿈꿨지만 잦은 노사갈등과 비효율적 경영을 참지 못하고 망한 자동차 그룹. 영국 자동차 산업 전체를 완벽히 몰락시킨 회사다.


7. 홍콩[편집]



7.1. 케이더 그룹 災, 勤[편집]


케이더 인형 공장 화재 문서 참조.


8. 인도네시아[편집]



8.1. 아담항공 災, 外[편집]


아담 항공 574편 추락 사고 문서 참조.


9. 개과천선한 사례[편집]


  • 경남여객: 고양교통처럼 근무강도, 근무시간이 높아 17시간씩 근무했며 빡빡한 배차와 시간표로 인해 기사들의 난폭운전이 심했었다.[2] 하지만 이거 다 옛말이 되었다. 왜냐하면 경기도 공공버스 정책 시행으로 근무형태에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으며, 이후 용인시 공공버스 정책 시행 직전 1일 2교대제 시행 및 근무여건 개선 등으로 근무여건을 한순간에 싹 갈아업었다. 이렇게 빡빡한 근무여건으로 인해 블랙 기업으로 악명 높았던 경남여객이 1일 2교대제 등으로 근무여건을 개선하니 이젠 수도권 시내버스에서 새롭게 손꼽히는 개념업체[3]가 되었다. 다만 과속은 여전하다...
  • 동성교통: 구 45-2번 직행좌석버스(구미동 - 광화문)가 중앙극장에서 이매촌한신 정류장까지 15분 만에(!) 끊어주질 않나, 막차고 뭐고 그딴 거 없고 할당된 분량(탕수)을 다 채워야 퇴근이 가능했고, 그 당시에도 다른 업체들은 하지 않았던 격일제까지 시전하는 등 지금의 서울특별시 시내버스를 생각하면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막장을 보여줬다. 해당 자료 그래도 2004년 개편 이후로 준공영제가 시행되면서 근무환경은 나아져 실제로 2018년 ~ 2019년 때 KD 운송그룹에서 동성교통으로 입사하려고 줄을 서기도 했다. 계열사인 대명운수57번만은 2020년까지 개편전 동성교통 모습 그대로를 보여줬다.
  • 와타미: 이자카야 스타일의 패밀리 레스토랑치고는 한때 일본의 대표적인 블랙 기업이라는 치부가 감추어졌을 정도로, 일본 현지 인터넷에서 여러번 비판당한 적이 있었다. 요약하자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린 근로자가 자살하거나, 심하게 여위어버린 사원이 찍힌 사진이 인터뷰에 실리기도 하는 등, 노동 문제가 계속 발생하여 이미지가 심하게 훼손된 적이 있었다. 다만, 2018년부터는 종업원 처우 개선 등으로 오히려 업게 평균보다 월등히 낮은 종업원 이탈율을 기록하는 등 점차 개선되고 있다.
  • 캡콤: 쓸데없는 DLC남발과 주요 인력 홀대, 프랜차이즈 죽이기를 밥먹듯이 해오던 회사였다. 하지만 2016년 이후의 행보를 통해 다시한번 전성기를 누리는 중이며 내보낸 인력인 카미야 히데키, 미카미 신지와 다시 화해했다. 반면 이나후네 케이지는 오히려 스스로 무덤을 파버려서 평가가 수직 하락해 버렸다.
  • 펄어비스: 한때 몇날 며칠씩 철야는 물론, 그 유명한 당일 해고라는 사태를 일으킨 전적이 있다. 문서 참고. 그러나 2020년대 극초 들어서는 나아졌다고 한다. 최근 2020년에 나온 보고서에서는 노동청에서 지적받은 부분도 모두 해결되었다는 내용이 전해졌다. 과거에는 근무연수가 짧아 논란이 많았으나 노동 환경이 서서히 안정화 되면서 근무연수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결과적으로 노동환경 문제가 사실상 해소된 거나 마찬가지다. 현 시점에서는 펄어비스가 양반으로 보일 만큼 여러 사고를 치고 다니거나 근무 강도가 굉장히 센 다른 게임 회사가 욕도 더 먹고 있다.
  • 평택여객: 같은 평택시 버스회사인 서울고속협진여객의 경우에는 격일제 근무를 했지만, 2017년 이전 평택여객은 복격일제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3~5일을 불규칙적으로 계속 일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기사들의 처우가 위의 두 평택시 시내버스 회사는 물론이고 천안시 시내버스나 하위 문서에 있는 오산교통보다도 매우 좋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 기사를 더 모집해서 근무형태가 격일제를 거쳐 1일 2교대제까지 나아졌다. 그 덕에 평택에서 근무여건이 가장 좋고 서비스 수준 최상의 버스회사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서울고속에서도 이러한 근무형태를 배워서 1일 2교대제를 시행하였다. 블랙기업이 다른 기업에 모범을 보인 화이트기업이 되었다.
  • 흥안운수 계열: 서울 시내버스 개편전에는 블랙기업으로 꼽혔으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운송업 면허취소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어 서울시에 굴복한 이후 많은 부분이 개선되어 그냥저냥 괜찮은 회사가 되었다.
  • MGM/UA: 지금은 좋은 영화사지만, 1930년대 말에 동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 촬영 때 MGM 측에서 배우들을 혹독하게 연기시키게 했고, 당시 감독이었던 빅터 플레밍이 이를 방관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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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노해 시 <손무덤>도 이를 바탕으로 창작되었다.[2] 심지어 코로나 19로 인력이 부족해지자 복격일제는 물론이고 복복격일제(!)까지 시키는 경우가 빈번했었다.[3] 어쩌면 KD 운송그룹 이상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