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키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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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게이밍 CEO
빅터 키슬리
VIctor Keithley


파일:external/file.thisisgame.com/20140405015418_1875.jpg

이름
빅타르 울라지미라비치 키슬리
Віктар Уладзіміравіч Кіслы
Victor Keithley
출생
1976년 8월 3일 (47세)
[[소련|

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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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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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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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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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스크
국적
[[벨라루스|
벨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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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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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벨라루스 주립대학교, 레이저 분광학과
직업
워게이밍 CEO
링크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벨라루스의 기업가이자 프로그래머, 그리고 게임 제작사 워게이밍의 CEO.

참고1, 참고2, 참고3

2. 생애[편집]


1976년 8월 3일에 벨라루스(당시 소련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민스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제1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 대전에 관심 많은 밀덕이었다. 대학은 벨라루스 주립대학교의 레이저 분광학과를 나왔다고 한다.

학창시절부터 비디오 게임을 좋아했고 프로그래밍에 빠졌으며, 이때부터 게임을 개발하고 코딩하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1996년에는 이메일 기반으로 작동하는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체스 게임도 개발했다. 1998년에 Game Stream이라는 회사를 세웠고 동년에 워게이밍도 설립해서 CEO가 되었다.

키슬리가 설립한 워게이밍은 2000년대 들어서 DBA online, Massive Assault, Operation Bagration, Order of War 라는 4개의 게임을 개발했다. 앞선 2개는 실패하여 손실이 되었지만, 그나마 뒤의 작품 2개가 어느정도 알려지면서 개발비 회수는 할 수 있었는데 여전히 흥행하거나 유명해지는 수준으로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2009년에 워게이밍이 월드 오브 탱크의 개발을 발표하고[1] 2010년에 출시하면서 러시아벨라루스를 비롯한 동유럽 지역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히트를 치게 되었다. 이때 워게이밍도 월드 오브 탱크 덕분에 엄청난 인지도를 얻으면서 대성공했고, 유럽을 시작으로 미국 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지역들까지 진출하면서 점차 서비스 지역을 넓혀가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월드 오브 탱크의 흥행을 계기로 키슬리는 벨라루스 TOP 200 기업가에도 들었고, 2017년 기준으로는 워게이밍도 가치가 30~40억 달러에 달하는 벨라루스 대기업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3. 여담[편집]


월드 오브 탱크 초창기의 과금에 대한 개념 행보 덕에 이미지가 좋았으나, 2010년대 후반부터 워게이밍이 돈독이 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어서 평가가 박해졌다. 월드 오브 탱크 갤러리월드 오브 워쉽 갤러리에는 이 인물의 움짤에 한국에서 높은 수익을 얻어서 기분 좋다는 자막이 달린 디시콘이 자주 사용될 정도.

월드 오브 탱크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를 비롯한 워게이밍의 게임들을 다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묘하게 패드립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잦다. 이는 옆동네가 만든 워 썬더안톤 유딘체프키릴 유딘체프 형제도 비슷하다.

월드 오브 탱크와 콜라보도 하고 워게이밍이 고증 협력으로 제작에 참여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걸즈 앤 판처 시리즈의 팬이라고 한다.[2] 작중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카도타니 안즈라고 한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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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8년부터 웨게이에서 탱크 게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본격적인 개발은 2009년에 개발자 SerB(전 워게이밍 부사장이자 책임 디자이너)가 합류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2] 월드 오브 탱크와 처음 콜라보가 결정되었을 당시에는 회의적이었지만 지금은 시리즈에 관심을 가진 팬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