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구치 유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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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구치 유키오
아카이 사키
오카타니 히데키
【 전 멤버 】



파일:yukiosakaguchi.jpg
<狂気(きょう き金狼(きんろう / Crazy Gold Wolf>
坂口 征夫(さかぐち ゆき お / Yukio Sakaguchi



파일:사카구치유키오프로필.png

DDT
본명
사카구치 유키오
坂口 征夫(さかぐち ゆき お
생년월일
1973. 7. 6 (50세)
신장
177cm
체중
77kg
혈액형
A형
출생지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도쿄도 세타가야구
가족 관계
아버지 사카구치 세이지(坂口 征二(さかぐち せい じ) (1942년생)
동생 사카구치 켄지 (1975년생)
종합격투기 전적
12전 5승 7패
유형
슈터
피니시 무브
신의 오른무릎((かみ右膝(みぎひざ)[1]
별명
사나운 독수리 2세 (荒鷲(あらわし二世(に せい)
광기의 금랑 (狂気(きょう き金狼(きんろう)
테마곡
(えよ[ruby(荒鷲, ruby=あらわし)] - 미노타우루스[2]
[ruby(刃, ruby=やいば)] - THE BACK HORN[3]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
- 호테이 토모야스
[4]
데뷔
(종합격투기) 2007년 4월 27일 (33세)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 홀
PANCRASE RISING 4
vs 최형석[5]

(프로레슬링) 2012년 3월 22일 (38세)
도쿄도 신주쿠구 신주쿠 FACE
하드 히트[6] ~달이 되는 남자들~[7]
vs 나카자와 마이클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편집]


일본의 종합격투가 출신 프로레슬러. DDT 프로레슬링 소속.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개국 공신이자 안토니오 이노키의 오른팔이었던 '세계의 사나운 독수리' 사카구치 세이지의 장남이자, 배우 사카구치 켄지의 친형으로 긴 방황 끝에 종합격투기와 프로레슬링 양 업계에 뒤늦게 뛰어들었음에도 괄목할 만한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이다.


2. 경력[편집]



2.1. 초창기[편집]


메이다이나카노중학교,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도를 해왔고, 싸움으로 정학을 먹은 적도 있지만 재학 도중 아버지가 대표를 맡던 사카구치도장의 코치로도 활동하며 고교를 졸업했다.

아버지와 같은 프로레슬러가 되길 원했으나 당시 메이저 단체들의 키 제한은 180cm이었기 때문에 185cm인 동생 켄지나 190cm이 넘는 거한이었던 아버지와 달리 키가 180cm이 안 되던 사카구치 유키오는 프로레슬러가 되길 포기하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일부러 기숙사가 딸려 있는 건설회사에 취직하여 토목공사원으로 일하며 2004년 1급 토목시공관리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직장인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27세 무렵, 다시 운동에 뜻을 두고 가라테를 시작한 사카구치는 도쿄가라테선수권에서 준우승, 루키 챌린지 컵에서 우승을 거두는 등 남들보다 매우 뒤늦게 시작했음에도 상당한 재능을 보였고, 30세에 유도 선수 시절 선배였던 키쿠타 사나에의 설득으로 종합격투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3. 종합격투기 전적[편집]


종합격투기 전적
12전 5승 7패

2KO, 2SUB, 1판정

3KO, 4SUB

  • 주요 승: 최기석, 쿠라모치 마사카즈, 이카리 유이치, 이재석, 정진석

  • 주요 패 : 최형석, 혼다 아사키, 타카하시 와타루, 앤디 올로건, 키타오카 사토루, 보쿠 코테츠(박광철)[8]


4. 여담[편집]


  •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건설회사에 취직하여 커리어를 오래 쌓은 결과 1급 토목시공관리기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수도관 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 '사카구치구미(坂口組)'를 운영 중이다.

  • 젊은 시절에 전국구 스타 프로레슬러이자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아버지 사카구치 세이지와[9] 유명 배우 동생 사카구치 켄지 사이에서 상당한 열등감에 시달렸다. 언제 죽어도 좋다는 염세주의적인 생각까지 하고 있었어서, 자식이 생기지 않았다면 지금쯤 형무소나 무덤 밑에 있었을 거라고 스스로 밝힌 적이 있다.

  • 일찍이 결혼했다 한번 이혼했으며, 20대 중반에 재혼했다. 전처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 후처가 데려온 배다른 딸 하나와 후처와의 사이에 자식 하나를 두어 총 세 명을 슬하에 두고 있다.

  • 문신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1990년대 중반에 문신을 한 선구자이자 이단아. 처음에 문신을 한 것이 20세 때(1993년~1994년)로, 본래는 프로레슬러의 꿈이 좌절된 뒤 프로레슬링과 연을 끊는다는 마음으로[10] 팔에 문신을 했다고 하며, 27세 때 가라테를 시작하며 등에 존경하던 안토니오 이노키의 상징, '투혼'을 새겼다고 한다. 이후 종합격투기 선수 시절 등에 칼집에서 뽑힌 칼과 갑옷 문신을 추가하면서 점점 늘렸으며, 원래 유명했던 아버지와 더불어 동생 켄지의 인지도가 폭발한 이후 유키오에게도 덩달아 어그로가 끌려 경기를 이겨도 다음날 기사에 문신 얘기만 나오자 아에 팔 전체를 문신으로 덮어버리는 담대함을 보여줬다.


  • 바이킹 라이즈 고인물. 전투력은 2023년 9월 기준 2400만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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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점핑 라이트 니킥.[2] 불타라 사나운 독수리. 아버지 사카구치 세이지의 신일본 시절 테마곡이었다.[3] 칼날. 사카구치가 승리 시 사용하는 테마곡이다. 입장 시와 승리 시 테마곡이 다른 정말 몇 안 되는 선수이다.[4] 킬 빌의 OST로 유명한 곡. 입장 때 사용한다.[5] 전 네오위즈 소속 게임 개발자로 요구르팅 3D 디자이너였다. 당시 한국의 아마추어 리그인 스피릿MC에서 2승을 거두고 판크라스에서 경기를 치루었다. 사카구치에게 승리를 거둔 후 격투기 대전을 더 치르지 않고 다시 게임 개발계로 돌아갔다.[6] DDT 프로레슬링 산하 브랜드로 종합격투기 부문이었다. 2011년부터는 사토 히카루가 권리를 가져가서 사실상 사토 히카루가 주최하는 종합격투기 성향 프로레슬링 흥행의 이름이 되었다.[7] 원문은 〜(つきになる男達(おとこたち[8] 재일교포 파이터. 통산 전적 26승 16패.[9] 20세에 문신을 하고도 아버지가 문신을 상당히 싫어해서 문신했다고 말하지조차 못 했으며, 십년 가까이 숨기다 종합격투가 데뷔 이후 아내가 실수로 문신 사실을 밝혔다.[10] 당시에는 타투가 새겨진 맨몸을 드러내지 못했으며, 어스퀘이크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스모 선수 시절 스모 입문 전 이미 새겼던 타투를 항상 붕대로 가리고 출전해야 했다. 즉 앞으로 맨몸 보일 일은(링 위에 오를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