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타케 마사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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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사타케 마사아키
(佐竹(さたけ 雅昭(まさあき)
출생
1965년 8월 17일 (58세)
오사카부 스이타시
국적
[[일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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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거주지
교토부 교토시
입식 전적
40전 24승 12패 4무 (17KO)
종합격투기 전적
10전 1승 8패 1무

1KO

2KO, 3SUB, 3판정
체격
185cm / 106kg
주요 타이틀
K-1 Illusion 1993 Karate World Cup 우승
K-1 Dream '97 우승
K-1 Japan Grand Prix '98 우승
기타
K-1 WGP '94 준우승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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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전적
3. 커리어
4. 파이팅 스타일
5. 여담



1. 개요[편집]


일본의 전 정도회관 가라테, 킥복싱, 종합격투기 선수.


2. 전적[편집]


※ 입식격투기




※ 종합격투기





3. 커리어[편집]


중학교 시절 최영의가 쓴 저서에 감명을 받고 가라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정도회관 총본부에 입문했다.[1]

대학 재학 중이었던 1984년 정도회관 주최의 무차별급 전일본 가라테 대회에 출전해서 4위를 기록했고, 이후 매년 이 대회에 출전해 1985, 1986년에는 준우승, 1987~1989년에는 우승을 차지했다. 1991년에는 USA 오야마 가라테 vs 정도회관 가라테 5대5 매치에 출전해서 윌리 윌리엄스를 꺾었고, 1993년에는 정도회관 가라테 월드컵에서 앤디 훅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90년부터는 킥복싱 대회에서도 출전하기 시작했는데 세계 킥복싱 협회(WKF) 전미 크루저급 챔피언 돈 나카야 닐센과 WKA 풀컨택트 세계 미들급 챔피언 롭 케이먼을 꺾고 피터 아츠와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뒀다.

1993년 4월에는 당시 정도회관의 수장이었던 이시이 카즈요시가 창설한 K-1의 제1회 대회 K-1 GRAND PRIX '93에 출전해서 토드 헤이즈[2]를 꺾고 4강에 진출했지만, 4강에서 만난 브랑코 시카틱에게 왼손 훅으로 KO패하며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듬해 3월 K-1 Challenge에서는 어네스트 후스트에게 헤드킥으로 KO패했으나 4월 K-1 GRAND PRIX '94에서는 마이클 톰슨과 시가틱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는 피터 아츠에게 만장일치 판정패하며 준결승에 그쳤다.

그 후 97~98년 일본 그랑프리에서 2년 연속 우승했지만 월드 그랑프리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정도회관 차세대 에이스 무사시의 성장으로 인한 위기감과 이시이 관장과의 갈등으로 인해 1999년 정도회관을 떠났다.

이후 종합격투기에 진출했으나 그래플링 능력이 전무했기에 1승 8패 1무에 그쳤고, 프로레슬링[3]에 다시 발을 들였다가 2003년 은퇴했다.

은퇴 이후 교토시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가라테 도장을 운영하고 있고 헤이세이 부시도 스쿨을 통해 인재를 중점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2013년 제2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자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4. 파이팅 스타일[편집]


풀컨택트 가라테 베이스에서 나오는 강력한 킥이 강점이었던 선수다. 특히 레그킥에 상당히 능해 경기 내내 레그킥을 던지면서 상대의 기동력을 떨어뜨림과 동시에 다리에 데미지를 축적시키고 펀치러시를 들어갔다. 상대가 들어오면 사각으로 빠지면서 레그킥을 차는데에도 능했다. 굿리지전에서 라운드 내내 레그킥을 깔아놔 굿리지의 다리를 무력화시켰고 러시를 들어가 KO승을 거둘 수 있었다. 바디킥과 헤드킥도 잘썼다.

복싱 실력도 나쁘진 않았다. 헤드 무브먼트가 괜찮고 오른손의 파워가 좋았다. 경기 양상은 아웃파이팅을 하며 레그킥을 섞어주고 상대가 들어오면 카운터 콤비네이션으로 받아치는 패턴이였다.

단점은 체격이었다. 신장이 190cm가 넘는 거구들에게는 자신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했다. 복싱 실력도 공격에선 나쁘진 않았지만 방어적인 면에선 좋지 않았다. 하이가드는 그럭저럭 활용했지만 패리같은 직선 펀치를 흘리는 능력이 부족해 상대의 잽을 꽤 허용했다. 잽의 활용도가 높지 않고 잽 회수시 가드 밑으로 내려가는 버릇이 있었다. 게다가 타격시 가드가 자주 벌어졌고 핸드 스피드도 좋지 않았다. 자신보다 신장이 큰 상대들에겐 주로 펀치 셋업보단 단발 킥을 던졌는데 그 과정에서 펀치 카운터를 많이 허용했다.

클린치 상황에서 대처도 좋지 않아 니킥을 많이 허용했다. 피터 아츠전에서도 니킥으로 KO패했으며 굿리지전에서도 니킥 대처가 별로 좋지는 못했다.


5. 여담[편집]



  • 원래는 대학 졸업 후 한 텔레비전 방송국에 채용이 내정되어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정도회관 직원으로 일하다가 1991년에 프로 격투가로 전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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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도회관에 입문하기 전에 극진회관 간사이 본부에 입문했었지만 도장 분위기가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달 만에 탈퇴했다고 한다.[2] 봅슬레이 선수 출신이다.[3] 1991년 Rings에서도 프로레슬링 경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