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총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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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해방의 불꽃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1. 개요[편집]
서울대학교의 총학생회에 대한 문서이다. 한국의 4년제 종합대학들은 학생회/학생조합(Student's Union)를 총학생회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단과대학별 학생회의 연합체로서 성격을 나타낸다.
한국 대학의 특성상 본래적 의미의 학생조합(자조단체)으로서의 기능보다는 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의 정치투쟁 기능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이 항목의 역사서술에서는 필히 운동권과의 관계를 기술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서울대학교 학생회관(63동) 436호를 총학생회실로 사용하고 있다.
총학생회 홈페이지 구 총학생회 홈페이지[* 62대 총학생회 <자정> 임기 도중 공식 홈페이지가 현 홈페이지로 변경되며 도메인이 변경되었다. 단, 구 홈페이지 내부의 링크를 접속하면 아직도 we.snu로 연결되어 없는 페이지라고 뜨는 문제가 있다. 이때 주소를 직접 oldwe.snu...으로 변경해주면 접속할 수 있다.]
2. 구성[편집]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전체학생총회, 전체학생대표자회의, 총학생회운영위원회,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 중앙집행위원회, 단과대학생회, 동아리연합회, 산하기구로 구성된다. 각 단과대도 해당 구성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2.1. 전체학생총회[편집]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최고 의결기구이며, 전체 학생회원의 1/10 이상의 출석으로 개회하고 과반 찬성으로 의결한다. 2023년 현재 전체학생총회가 열릴 정도의 사안이 다루어지고 있지 않아 몇 년째 개회되지 않는다. 전체학생총회에 준하는 의결권을 가진 총투표 제도가 존재하며, 학생회원 과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다.
2.2. 전체학생대표자회의[편집]
전체학생총회의 의결권을 위임받아 활동하는 의결기구이다. 총학생회장단, 단과대학생회장단, 과/반 학생회장, 동아리연합회장단, 동아리연합회 분과장으로 대의원이 구성된다. 대의원 과반 출석, 출석 대의원 과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다.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번씩 정기 회의가 개최된다. 회칙 개정과 같은 중요한 사안을 다루는 만큼 대학신문에서 취재를 나가는 등 학생사회 내의 큰 행사다.
2.3. 총학생회운영위원회[편집]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최고 운영기구이다. 총학생회장단, 단과대학생회장, 동아리연합회장을 대의원으로 둔다.
매주 일요일 저녁 7시로 정기회의 시간이 고정되어 있으며, 전학대회에서 다루지 않는 총학생회 차원의 모든 안건들을 처리한다. 총학생회가 존재하지 않을 때에는 총운위 대의원으로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가 구성되며, 연석회의 의장단이 총학생회장단의 권한을 가지게 된다.
2.4. 총학생회장단[편집]
총운위 의장과 중앙집행위원회 업무, 각종 TF장 등을 맡으며 이외에도 학생 대표자의 개별 기구로써 업무들을 처리하기도 한다.
2.5. 중앙집행위원회[편집]
총학생회의 사업들을 집행하는 실질적인 기구이다. 집행위원장단이 산하에 국과 TF를 두고 있는 형태이며, 학생들 사이에서 총학을 한다고 하면 보통 중집의 국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2.6. 단과대학생회, 학부/과/반 학생회, 총동아리연합회, 분과[편집]
서울대학교의 단과대학의 전신은 개별 학교였던 만큼, 단과대학생회의 독립성이 큰 편이다. 입학정원이 많아 단과대학생회만 되어도 회원으로 두는 학생 수가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 특히 각 단과대에서 서울대학교 축제와 별개로 축제를 개최하는 문화[1] 는 타 대학 학생들에게 생소한 점 중 하나이다. 자유전공학부 학생회와 치의과대학원 학사과정 학생회는 총학생회칙에 따라 단과대 학생회로 취급한다.
2.7. 산하기구[편집]
총학생회 산하기구는 총학생회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활동하며, 각 기구의 장은 내부적으로 선출 후 총운위의 인준을 받아 임명된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문화자치위원회: 학생문화활동 지원금 지급, 문화활동에 필요한 기구 대여, 문자위 자체 문화활동 진행 등이 주 업무이다. 특히 자체 문화할동 중 매년 교내 아티스트들의 자작곡을 모아 발매하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2] 앨범이 유명하다. 하공안 유튜브
자치언론기금: 외부 지원이 없는 서울대학교 자치언론의 활동을 지원하는 기구이다. 주 업무는 총학생회비에서 분담금을 받아 자치언론들에게 지급하는 것. 교육저널 / Queer, Fly / THISABLE / 서울대저널 / The SNU Quill 의 언론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축제하는 사람들: 매 학기 서울대학교의 축제를 진행하는 기구이다. 산하기구 중 가장 유명하며 활동이 활발하다. 축제기간에는 각종 부스와 장터, 관악게임토너먼트, 공연 등을 진행한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대학교/축제 참고.
자치도서관: 학생사회 관련 기록의 보존을 담당하는 기구이다. 현재는 많은 학생사회 기록들이 온라인으로 남아있어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대학행정자치연구위원회:[3] 대학본부의 활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학생사회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기구이다. 주로 등록금심의위원회에 대한 자문을 진행한다.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학내 인권문제들을 다루는 기구이다. 교내 인권단체나 인권봉사분과 소속 동아리에서 인원을 파견하여 위원회를 구성하며, 대자보를 게시하는 등의 활동을 진행한다.
3.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연혁[편집]
사회지도층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라서 자괴감에 빠진 재학생들에게 기운을 주는 운동권 선배들의 명약이 있는 바, '열사가 제일 많은 학교'라고 말해주면 삶의 의지가 불타오른다고 한다. 실제로 군사정권 시기 학교 도서관 창문에서 뛰어내려서, 신림사거리에서 몸에 불을 붙여서,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하다가, 강제징집 당했다가 의문사로, 위장취업한 공장에서 산업재해등 많은 이들이 민주화의 제단에 바쳐졌다. 굳이 목숨을 바친 열사가 아니더라도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서울대 학생들의 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해서, 법과대학 한인섭 교수의 칼럼에 따르면 419혁명 이후 87년 민주화까지 약 30여 년 간의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제명된 서울대 학생이 730명, 무기정학이 681명, 유기정학이 496명이었다고 하며 이것은 다른 대학들의 징계 전체를 합한 숫자와 거의 맞먹는다고 한다. 이것은 학생운동을 하다가 학교 측의 징계를 받은 학생들만의 수이며 학교를 떠나 노동운동 등에 투신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더욱 많다. 이러한 서울대 학우들의 민주화에의 기여를 기리며 2009년, 정문 근처의 419 기념탑부터 시작하여 캠퍼스 내의 추모비 등 민주화 기념물들을 순회하는 '민주화의 길'을 조성한 바 있다.
열사를 많이 배출한 만큼, 한때는 전국 운동권의 각종 정파의 90퍼센트(대략 15개?)는 모여있을 만큼 학생운동이 강했다(대개의 다른 대학의 경우 1개 혹은 2-3개의 정파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것도 2000년대 중반까지의 이야기이며, 2018년 현재는 대부분의 단과대에서 단일 선본이 출마하며 총학과 단과대를 막론하고 운동권 학생회는 찾기 힘들다. 물론 이것은 서울대만의 현상이 아니다. 운동권의 몰락의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91년 소련 붕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가 1914년 1차 세계대전으로 시작했다면(역사 발전에 대한 믿음 붕괴 + 자본주의 세계 극복의 노력), 21세기는 1991년 소련붕괴(사회혁명 전망의 실종 + 세계 규모의 정치적 우경화)로 시작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96년 연세대 사태는 대학 내 운동권의 도덕적 헤게모니가 파산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97년 IMF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경제의 장기불황과 대학의 취업학원화의 기점이 되었다. 대략 이러한 흐름에 따라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섰던 대학생 사회가 개인화, 보수화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서울대학교는 1992년에 전대협 6기 의장(태재준[4] )을 배출한 이후로 한총련의 NL 노선과 달리 PD 성향이 강했기에, 한총련과는 따로 노는 경향이 있었다.[5] 2006년 총학생회장 탄핵 사건의 간접적 계기가 된 한총련 탈퇴선언 당시에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이 이를 찬미했지만, 실상은 한총련과의 관계가 이미 단절되어 있었던 것.
학생운동이 강했던 만큼 총학생회 역시 학교 역사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군사정권시절에는 총학생회가 없었으나, 민주화과정에서 학도호국단이 총학생회로 바뀌었다. 학도 호국단 이전의 총학생회를 포함하여 세기 때문에 2017년은 제59대 총학생회이다.
3.1. 2000년 이전[편집]
김영삼 정권때부터는 이전에 잡혀가는 것을 우려해 지하조직처럼 운영되던 학생운동조직들이 '지상'으로 나오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조직 이름이나 선거구호를 명시적으로 내 걸고 학생회 선거에 나왔다(80년대에는 학생회 선거에 나오지 않고도 따로 지하조직으로 운영을 해서도 데모도 많이 하였으나, 민주화가 되면서 공개공간에서 적극활동하는 전략을 취하게 된 것이다). 당시 공개정치조직을 건설한 것은 대장정, 젊은 벗, 21세기 진보학생연합, 노진추 청학위, 학생연대(전학협으로 이어짐) 등등이 있었는데 대체로 다 PD 계열이었다. NL 계열에서는 애국청년선봉대를 제외하고는 계속 지하조직처럼 운영했다.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정통 PD를 자처하는 전국학생연대회의(현 전국학생행진으로 계승) 계열과, 운동권내에서 온건파로 분류된 21세기 진보학생연합(2004년 해소되었음)이 번갈아 가며 수권을 하는 구조였다.
최초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 출범한 것이 93년인데, 93년도에는 '21세기 선거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NL계열의 '생대련'과 PD 계열의 '진학련'이 양대주축을 이루고, 언더에서 수면으로 올라온 다른 학생운동조직들이 결합해서 학생회에 당선되었고[6] , 94년에 연이어 당선되었다. 95년에는 대장정이 당선되며 이후 계속 매년 번갈아 당선되었는데, 정말 신기할 정도로 8년 동안 이 법칙이 깨지지 않고 두 계열이 번갈아가면서 수권을 한다.
3.2. 2000 (43대) : 광란의 10월(반권) [ [[허민(기업인)|허민]] / 강제욱 ][편집]
이 법칙이 깨진 건 2000년. 1999년 11월에 벌어진 2000년 총학생회 선거에서 비운동권 계열의 '광란의 10월' 선본이 당선됨으로서 (총학생회장 허민[7] ) 서울대 최초로 비운동권[8] 총학생회가 당선되게 된다. 결선 투표까지 가는 접전이었지만, 아무튼 지금과는 달리 당시 정서에서 비운동권 총학생회의 당선은 내외적으로 상당히 충격이었다.[9] 다른 대학보다 반권총학생회의 등장이 몇년 늦은 편인데,[10] 온건한 성향의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 운동권들의 경직성을 완화시킨 덕분이라는 의견, 서울대가 연대 등 타 대학에 비해 학생운동이 길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가능하다. '광란' 총학생회는 비권이라기 보다는 반운동권의 성향으로 대부분 학생정치조직 출신인 단과대 학생회장들과 심각한 마찰을 빚어 총운위가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다.
3.3. 2001 (44대) : 발칙한 상상- 21세기 [ 장종오 / 이민규 ][편집]
광란의 10월 다음해 벌어진 2001년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장종오 후보의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 2년만에 다시 수권한다. 서울대학교 장학금 선정기준이 성적만이 아니라 경제적 사정이 포함되게 된 것은 이때의 총학생회에서 문제를 제기한 덕분이다.
3.4. 2002 (45대) : 에갈리아(운동권/연대회의) [ 구정모 / 이석영 ][편집]
2002년 총학생회 선거에선 전국학생연대회의 계열의 에갈리아 선본이 당선되었다. 이 해는 굉장히 다사다난 했는데, 당시 총장 이기준의 비리와[11] 대학 개편에 반대해 총학생회가 본부 점거를 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해 당시 총학생회장 구정모[12] 가 제명당했으며, 총학생회 집행국들도 줄줄히 징계를 받게 된다. 끈질긴 투쟁 끝에 결국 이기준 총장은 사퇴했다. 당시 내려진 징계는 2년 후에야 모두 풀리게 된다.
3.5. 2003 (46대) : 학교로(비권) [ 박경렬 / 홍상욱 ][편집]
2003년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기존 비운동권과는 다소 다른, 운동적 성향이 포함된 비권인 '학교로' 선본이 수권을 하게 된다.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박경렬은 학내 정보포털사이트 스누라이프 회장이었고, 상문고 출신으로 사학비리투쟁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상당히 신선함을 불러일으켰고, 학생들로부터도 비교적 괜찮은 평을 받으며 마지막 서울대 총학생회의 르네상스라는 후대의 평가를 받는다. 2003년 4월 2일 이라크 전쟁 파병반대 동맹휴업에는 3천여명이 아크로에 모여 국회까지 행진하는 등, 할 것 다 했지만 총학생회장단이 기존의 학생운동조직에 속하지 않았기에, 이 계열을 '비조직 운동권'으로 보자는 주장도 있었다.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 학생회론으로 내세운 '네트워크 학생회론'을 실제로 구현한 것이 이 '학교로' 총학생회였고[13] , 운동권과 비운동권 학생대중들에게 모두 무난한 평가를 받은 학생회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해 11월 벌어진 2004년 총학생회선거에서 서울대 사상 최초로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게 된다(95년 전두환노태우 처벌 동맹휴업이 성사되고 미친 듯한 데모 이후 전두환과 노태우가 감옥에 갔는데, 정작 그 해 가을에 서울대 역사상 최초로 총학생회 선거가 연장투표로 가게 된 것, 프랑스의 68운동 직후 총선에서 보수당에게 정권이 넘어간 것,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퇴임 후 지지율이 높았음에도 정작 후임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과도 유사한 아이러니함이라 하겠다). 2003년 이전에는 서울대 3대 바보 중에 하나가 서울대 축제를 가는 것이었는데, 총학생회의 개혁 중 하나였던 '축제하는사람들'의 출범을 통해 성공적인 봄, 가을 축제를 만들었다.
3.6. 2004 (47대) : 학교로(비권) (3월선거) [ 홍상욱 / 박경동 ][편집]
다음해 벌어진 2004년 3월 선거에서 다시 '학교로' 선본이 당선(총학생회장 홍상욱).[14] 서울대 총학생회 사상 두번째로 (최초는 93-94년의 21세기 진보학생연합) 동종 계열이 2년 연속 수권을 하게 된다.
3.7. 2005 (48대) : Q(운동권/연대회의) [ 류정화 / 임성우 ][편집]
2004년 11월에 벌어진 2005년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다시 전국학생연대회의 계열의 'Q' 선본이 당선. 총학생회장 류정화는 서울대 최초의 여성 총학생회장으로 주목을 끌었다. 2005년 당시에도 본부점거가 있기는 했는데 총학생회 주도는 아니었지만 총학생회장이 직접 교육투쟁을 위해 비상총회를 선언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했는데 주도가 아니었다라고 간단하게 서술하기는 곤란하다.[15]
3.8. 2006 (49대) : Suprise(비권) (3월 재선거) [ 황라열 / 송동길 ] 6월 탄핵[편집]
2005년 11월에 벌어진 2006년 선거는 전국학생연대회의 계열의 'PLAY'선본과 독특한 이력을 자랑하는 정후보를 내세운 비운동권 선본인 'suprise' 선본[16] 이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으나 투표율 미달로 무산. 다음 해 3월로 선거가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2006년 3월 선거에서 PLAY 선본이 불참한 가운데 'suprise' 선본이 높은 지지율로 당선이 된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한총련 탈퇴 선언[17] 으로 논란이 되었다. 사실 당시 서울대는 운동권학생회와 비권학생회가 번갈아가며 수권한지도 오래되었는데, Suprise는 자신들이 운동권학생회의 역사와 단절할 유일한 세력인 양 인위적으로 어그로를 모았고, 한총련 탈퇴 선언은 그 중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다 6월 황라열 총학생회장의 경력 위조 문제가 불거지면서 논란이 일었고, 전학대회 대의원회 투표에 의해 서울대 최초로 총학생회장이 탄핵을 당한다.[18] 이 때를 기점으로 1~2년 간은 운동권 세력과 비운동권 세력의 대립이 극에 달하게 된다.
3.9. 2007 (50대) : Spotlight(운동권/학생행진) (3월선거) [ 한성실 / 박찬섭 ][편집]
2006년 11월 선거는 투표율 미달로 다시 무산. 이어 벌어진 2007년 3월 선거에서는 전국학생행진 (구 전국학생연대회의) 계열의 'Spotlight' 선본이 당선된다(총학생회장 한성실).
3.10. 2008 (51대) : 실천가능(비권/생협 학생위원회) [ 전창열 / 박진혁 ][편집]
그해 11월 벌어진 2008년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비운동권 계열의 '실천가능'이 당선된다(총학생회장 전창열).
3.11. 2009 (52대) : 실천가능(비권) [ 박진혁 / 김진섭 ] (2010년 3월 명예탄핵)][편집]
그리고 2008년 11월에 벌어진 2009년 총학생회 선거에서 다시 같은 계열의 '실천가능'이 당선 됨으로써(총학생회장 박진혁) 2번째로 동종계열 연속 수권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학생회 간부가 식권을 위조해 팔다가 적발되어 곤혹을 치르기도 하였다. [19]
이후 2009년 11월에 벌어진 2010년 총학생회 선거와 다시 이어진 2010년 3월 총학생회 선거는 누가 더 잘못했는가의 유무를 떠나 상당히 흑역사다. 2009년 11월 선관위를 의심한 모 선본에서 도청을 시도 하고 도청 된 내용과 여타 의심되는 증거물들의 발견으로 인해 투표함 개봉논란이 일어난다. 결국 개봉 논란으로 인해 투표율 50%를 넘겼지만 무효 처리[20] . 기존 선관위가 전원 사퇴하고 새롭게 구성된 선관위를 통해 다시 재투표에 돌입했고 재투표에서 투표율 미달로 총학선거가 무산된다. 사건이 벌어진지 1년여가 지난 2011년에도 이 때 사건은 꾸준글로 올라왔다.[21] 그 만큼 매우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되며, 당시 선거관리위원장이었던 박진혁은 '박징역'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학내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 영구박제되었다.
3.12. 2010 : 선거무산[편집]
이후 벌어진 2010년 3월 선거에서는 역시 50%를 넘긴줄...알았다가 선관위의 실수로 투표 성사가 되지 않은 것이 밝혀지고, 추가로 후보들의 휴학 문제등이 불거지면서[22] 역시 무산된다. 서울대 사상 최초로 총학생회가 1년 동안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1년 동안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로 운영되었다.
3.13. 2011 (53대) : Action!Again(운동권/학생행진) [ 이지윤 / 임두헌 ][편집]
2010년 11월 선거에서는 선거가 성사. 전국학생행진 계열의 'Action Again' 선본이 당선되었다(총학생회장 이지윤).[23] 당선 직후 국회에서 서울대법인화법이 날치기로 통과됨에 따라 총학생회에서는 6년 만에 총회를 통해 행정관을 점거하게 된다. 28일 간에 걸친 본부점거는 '대국회투쟁에 집중한다'라는 명목으로 자진해산되었으나 결국 12년 1월 1일부로 서울대학교는 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된다.
3.14. 2012 (54대) : Ready Action(운동권/사노위) (3월선거) [ 오준규 / 이주용 ][편집]
2011년 11월 선거는 최종투표율 48.7%로 또 다시 무산 되었다. 따라서 54대 총학생회의 건립은 2012년 3월 재선거로 넘어갔다. 이때도 단독 출마라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Ready, Action!' 선거운동본부가 당선되었다.(총학생회장 오준규[오준규] ). 법인화 원년을 맞아 전년도에 이어 총회 투쟁을 준비하였으나 정족수(재학생 10분의 1)에 미달되어 무산되었다.
이 당시 민주통합당에서 '국립대 공동학위제'[24] 를 거론하였다. 총학생회는 '학생과 의논하지 않고 진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원론적인 입장의 의견서를 제출하였는데, 당시 스누라이프를 중심으로 더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3.15. 2013 (55대) : 서포터즈(비권/축하사) (재선거) [ 김형래 / 이은호 ][편집]
이후 2012년 10월 서울대 성폭력 대책위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이에 영향을 받아 2012년 11월 선거는 27%라는 사상 초유의 투표율로 연장투표도 하지 못하고 선거가 무산되었다. 이에 총학생회 구성은 2013년 3월로 미뤄졌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학생회칙에 따르면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될 경우 각 단과대학의 학생회장들을 중심으로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를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대, 농생대, 인문대, 법대[25] , 자유전공학부, 공과대학 등 대다수 단과대에서 선거가 무산되었기에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힘든 상황이 발생했다. 특히 사회대, 인문대 등 학생회가 강성하던 단과대조차도 담배녀 파동 등에 직격당해[26] 선거가 무산되었다. 덤으로 이때 관행적이던 이동투표소[27] 에 대한 이의제기가 자보로 이루어져 이동투표소 역시 없어지며 표 긁어 모으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그러던 중 2013년 3월 재선거에 '서포터즈' 선본이 단독 선본으로 출마하였다. 이전 선거의 투표율이 워낙 처참했던지라 이번 선거도 투표율이 50%를 넘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연장투표 끝에 투표율이 50%를 넘겼고, 서포터즈가 당선되었다.(총학생회장 김형래)[28] . 4년만의 비권 총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방학의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활동, 2학기의 시흥캠퍼스 투쟁 등을 기획하였으며, 시흥캠퍼스 관련 투쟁에서는 부총학생회장이 삭발을 하기도 하였다.
3.16. 2014 (56대) : 디테일(비권/동아리연합회) (재선거) [ [[이경환(1986)|이경환]] / 김예나 ] 총학생회장단 사퇴[편집]
2013년 11월 선거엔 전자투표제도가 최초로 도입되었다. 전자투표 시행이 학생회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발표되었고 단과대 학생회 선거도 아닌 총학생회 선거에서 섣불리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 것[29] 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제56대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세 군데의 선본이 출마할 예정이었으나 그 중 한 선본이 정후보와 부후보의 갈등으로 인해 최종등록을 하지 않게 되면서 두 선본이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30] 전자투표를 시행했음에도 투표율이 저조했다. 연장투표를 했음에도 30%가 조금 넘는 수준의 투표율을 보여주며 선거는 무산되었다. 총학생회선거와 함께 진행했던 시흥캠퍼스 총력투쟁을 위한 총투표 역시도 30%가 조금 넘는 수준의 투표율을 보이며 무산되었다.
2014년 3월 재선거에는 두 선본이 출마했는데 두 선본의 정후보들의 학번이 각각 03과 05로 상당히 고학번이라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31][32] 저번 선거의 전자투표제도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어 이번에는 전자투표와 기존 종이투표를 병행하였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는 최초로 단과대 회장들이 선관위원이 되는 중앙선관위 제도를 운영하였는데 연장투표 전에도 투표율이 45%를 넘겨 무난히 선거 성사가 예상되었으며, 연장투표 후 투표율이 50%가 넘어 디테일 선본이 당선되었다(총학생회장 이경환). 전통적인 운동권과 비권의 경계에 있는 민달팽이 유니온 계열로 분류된다.
그런데 9월에 총학생회와 관련해 큰 사건이 터졌다. 총학생회장이 학사경고가 누적되어 학교로부터 제명당한 것[33] . 더군다나 대의원회의에서 이 사실을 숨기고 총학생회장이 "휴학생" 신분으로 참석한지 이틀만에 언론보도로 처음 알려졌기 때문에 학생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총학생회장은 9월 28일 제21차 총학생회운영위원회가 돼서야 총학생회장직에서 사퇴했음을 밝혔다. 직후 총학생회운영위원회에서 부총학생회장 사퇴 권고안이 가결되었다. 결국 부총학생회장도 사퇴하였다.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 둘 다 사퇴하면 집행부도 자동 해산인터라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가 구성되었다.
3.17. 2015 (57대) : 디테일(비권) (재선거) [ [[주무열]] / 김보미 ][편집]
직전에 사퇴했던 총학생회의 선본명은 '디테일'이었는데, 제57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주무열 정후보 역시 디테일 계열에 속해있었다. 주무열 후보는 '디테일'의 오명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같은 선본명인 '디테일'으로 출마하였다. 단독으로 출마했기에 무산이 예상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사를 목전에 두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결국 약 2%의 투표율이 모자라서 2014년 11월 선거는 무산되었다.
이듬해 2015년 3월, 재선거에서 '디테일'은 다시 출마했고, 상대 선본인 <비상> [34] 을 꺾고 총학생회 수권에 성공하게 된다. 이로써 디테일 선본의 주무열[35] 이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으며, 서울대 최고령 총학생회장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3.18. 2016 (58대) : 디테일(비권) [ 김보미 / 김민석 ][편집]
한편 2015년 11월 선거를 앞두고 디테일(3기) 선본의 총학생회장 후보 김보미[36] 가 공동정책간담회에서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밝히며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하였다.
2015년 11월 선거는 18년만에 본투표 기간 안에 성사되었고, 3년 연속 디테일 선본이 당선되어 대한민국에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성소수자가 대학 총학생회 회장에 당선된 최초의 사례[37] 되었다.
김보미 총학생회장이 이끈 디테일 학생회는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임기를 마무리했다. 또한 임기 말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 정국에서 총학생회장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대표해 목소리를 내는 카리스마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후 김보미씨는 졸업 이후에도 청년 성소수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38]
부총학생회장이었던 김민석씨가 피해자의 폭로와 21년 12월 21일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 전 여자친구에 대한 성폭력을 행사하였음이 드러났다. 해당 인물은 당시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의원의 비서(9급)로 재직 중이라 학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일보 관련기사 심지어 2022년에는 복직하였다.
3.19. 2017 (59대) : '당신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총학생회' <U> (비권) [이탁규/임수빈] 총학생회장 사퇴[편집]
학교 외적으로는 최순실 게이트, 내적으로는 시흥캠퍼스 문제로 시국이 대단히 혼란하던 2016년, 오랜만에 출마한 운동권 선본을 포함하여 3개의 선거운동본부가 출마했다. [39] 하지만 더:하다 선본은 부후보의 부적절한 행동[40] 으로 사퇴하게 되고, 이후 연장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41] '닿음' 선본을 제치고 'U' 선본이 당선되었다.[42]
그런데 당선이 되자마자 학내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서 총학생회장 당선자에 대한 논란들이 공론화되었다.[43] 결국 총학생회의 임기가 시작한 지 2주 만에 총운영위원회는 총학생회장의 직무 정지를 결의하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기로 하였다. [44]
2017년 2월 28일에 열린 임시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총학생회장 사퇴권고안'이 가결되었으며 얼마지나지 않아 이탁규 총학생회장은 사퇴했다.[45]
이후 임수빈 부총학생회장이 총학생회장을 대신하여 업무를 수행하며 임기 마무리까지 직을 수행했다. 임기 도중 시흥캠퍼스 사안과 관련하여 많은 대립이 있었고, 2016년 10월 10일부터 해온 본부점거를 2017년 3월 11일에 끝내게 되었다.[46] 시흥캠퍼스 사안으로 인해 총운영위원회가 혼란스러웠으며, 그 때문에 총학생회 운영에 난항을 겪었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총학생회'U'는 임기를 끝까지 채우며 최선을 다한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유례없던 총학생회 중앙집행위원회와 산하기구의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그를 바탕으로 실무자에 대한 인식개선, 총학생회 정상운영을 위한 노력 등을 함으로써 긍정적인 평가 또한 받으며 임기를 마무리했다.
3.20. 2018 (60대) : '모두의 잔물결이 하나의 큰 물결로' <파랑> (비권) [ [[신재용]] / 박성호 ][편집]
2017년 11월, 제60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파랑] 선거운동본부가 당선되었다. 당초 총학생회장 예비후보 등록에는 신재용 후보 외에 김민석(제58대 부총학생회장), 강유진(2017년 당시 사회대 학생회장)도 이름을 올렸으나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정식 선거운동본부로는 신재용 후보가 있는 [파랑] 선본만 등록하게 되었다.[47]
11월에 치러지는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선거는 대부분 연장투표, 무산도 자주 발생했기에[48] 많은 이들이 선거 무산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연장투표없이 본투표만으로 총학생회 선거가 성사되었다. 당선이 가능했던 이유로는 계속된 시흥캠퍼스 투쟁으로 인해 지친 학생들을 대상으로 '복지'와 '학우중심'을 내세운 비권 선본이었다는 점, 선거운동본부원이 120명 가까이 되는 거대한 조직이었던 점, 기존 학생회와는 다른 신선한 이미지를 지녔다는 점, 연합 선본 구축이 탄탄했다는 점[49] 같은 평가들이 존재한다. [50]
임기를 시작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임시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소집하여 학생 대표자 사이에선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51] 하지만 카톡 투표기능을 이용하여 서울대 최초로 전학대회 전자표결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52] 그동안 밀린 예결산안을 처리해 산하기구가 사업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으며, 전학대회를 통해 많은 기간 대립해오던 시흥캠퍼스 논란에도 종지부를 찍었다.[53]
[파랑]은 총학생회 선거 당시, 2018년 5월에 치러질 총장선거와 관련하여 학생, 교수, 직원의 투표비율을 1:1:1의 비율로 정하자는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대학 본부측에서는 9% 남짓한 학생참여비율, 60명 정도의 학생만 참여할 수 있게 하자는 선택지를 학생들에게 제시했다.[54] [55] 학생측과 대학본부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에 갈등이 예상되었지만, 총학생회는 총운영위원회를 거쳐 본부가 제시한 9%의 학생비중은 수용하는 대신 '모든 학생이 총장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총학생회는 총학생회장과 총장의 단독면담, 집단행동 등을 통해 학생 의견이 관철되도록 지속적인 행동을 하였고, 결국 12월 27일 서울대학교 이사회는 모든 학생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렸다.[56]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형성되었을무렵, 김일성종합대학과 교류할 수 있도록 교류추진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한국 대학 최초로 북의 대학에서 서신을 받은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여러 사정이 겹쳐 양 대학의 학생들이 실제로 만남을 가지진 못했다.[57]
그 외에도 △한양대와의 수도전 지원 △교환학생 제도개선 △교내 대학생활문화원 상담 시스템 개선 △교원양성지원센터 인력 확대[58] △서울시 자전거 따릉이 정문 설치 △생리대 자판기 설치 같은 복지사업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또한 H교수 사건처럼 직접행동이 필요한 사업에서는 단식 및 투쟁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했고, 때로는 총학생회를 비판하는 세력들과도 교집합을 맞추며 공약이었던 화합의 기조를 실현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3.21. 2019 (61대) : '내 일상과 함께하는 총학생회' <내일> (비권) [ [[도정근]] / 김다민 ] 11월 총학생회 사퇴[편집]
2018년 11월 선거에서 [NOW][59] 선본과의 열띤 경쟁 끝에 [내일] 선본이 당선되었다. 2010년대 이후 비권이 강세이던 상황에서 오랜만에 운동권vs비운동권의 일대일 구도가 형성되었다.
학생 복지 중심의 비운동권 총학생회를 표방하며 당선되었다. 선거운동 당시 마미손의 소년점프를 패러디한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60] 오프라인 선거(총 3,000표 가량)에서 접전 끝에 100표 차로 뒤졌음에도 스누라이프나 에브리타임 등 온라인 커뮤니티의 지지를 등에 업고 온라인 투표(총 6,000여표)에서 무려 700표 차이로 우세를 점하며 총학생회 수권에 성공했다.당선발표영상
당선 이후 사당역-서울대 셔틀버스 신설[61] , 심야버스 노선 연장[62] , 학사제도 개선[63] , '볶음밥에는 짬뽕국물' 공약[64] 등 학생 복지와 밀접한 공약들을 충실히 이행했다.
임기 중 조국 사태가 발생하였다.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내에서 강한 비판을 받았고, 이후 총학생회가 조국 후보자의 사퇴를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후에는 조국 지지자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임기 말 총학생회 사업 홍보 포스터 표절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65][66]
3.22. 2020 : 선거무산[편집]
2차 재선거
2020년 3월 재선거에 제60대 부총학생회장이 다시 [파랑]선본(정후보 박성호, 부후보 최하영)으로 선거에 출마했으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며 선본이 사퇴하게 된다. 이로써 2번 연속으로 선본에서의 논란으로 인해 후보가 사퇴함으로써 2020년은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로 운영되게 되었다.
3.23. 2021 : 선거무산[편집]
3차 재선거
2020년 11월 본선거(제62대 3차 재선거)에서 후보가 출마하지 않아 선거가 무산되었다.
4차 재선거
2021년 3월에 열린 재선거(제62대 4차 재선거)에서는 [퍼즐]선본(정후보 김서정, 부후보 이민성)이 출마하였으나 코로나 19 등으로 인한 환경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하여 45.17%의 투표율로 안타깝게 무산되었다. 그로인해 적어도 2021년 11월까지 서울대학교 학생회는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로 운영되게 된다.
3.24. 2022 (62대) : '새로운 시작, 정화의 시간' <자정> (비권) [ [[김지은(서울대 총학생회장)|김지은]] / 전현철 ][편집]
5차 재선거
2021년 11월 선거(제62대 5차 재선거)에서는 [자정]선본(정후보 김지은, 부후보 전현철)이 단일 선본으로 출마하였다. 하지만 에브리타임에서 정후보에 대한 악의적인 고발사주 의혹, 부후보에 대한 신천지 신자 무고 등이 발생하며 좋지 않은 여론이 형성되었고, 연장투표 끝에 44.99%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또 다시 선거가 무산되었다.
2022년 3월 선거(제62대 6차 재선거)에서 직전 선거에 출마했던 [자정]선본(정후보 김지은, 부후보 전현철)이 단일 선본으로 다시 출마하였다. 대면 수업 재개와 철저한 준비로 총 투표율 51.40%를 달성. 2022년 4월 1일, 2년 4개월만에 선거가 성사되고 93.52%라는 높은 찬성률로 선본이 당선되었다.[67] 이로써 김지은은 2016년 김보미 이후 6년 만의 여성 총학생회장이자 2003년 박경렬 이후 무려 19년만의 공과대학 출신 총학생회장이 되었다.
3.25. 2023 (63대) : '함께 밝히는 새로운 시간' <정오> (비권) [ 조재현 / 박용규 ][편집]
2022년 11월 선거에선 2018년 11월 선거 이후 4년만에 두 선본이 출마해 경선으로 선거가 진행됐는데, 기존 총학생회인 자정의 사실상 후계자인 [정오] 선본이 [공명] 선본을 큰 차이로 이기고 당선되었다. 경선임에도 투표 참여가 저조해 연장투표 마지막날에 겨우 투표율 50%를 넘기고 성사되었다.
3.26. 2024 : 선거무산[편집]
2023년 11월 진행된 64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기존 총학생회 정오의 부집행위원장과 복지국장 각각 정, 부후보로 하는 선본 '파도'가 단일 선본으로 출마했으나 가투표율 24.40%의, 최근 총학생회 선거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낮은 투표율로 선거가 무산되며 3월 재선거 전까지는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가 운영 될 예정이다. 제64대 총학 선거 무산… 잠정 투표율 24.4%로 마무리
4. 1994년 이후 현재까지의 수권 정파 및 총학생회장단[편집]
5. 기타[편집]
서울대 총학생회 역사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NLPDR 약세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한총련 출범 (1992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NL 성향의 총학생회가 당선되지 못하였다. 이는 서울대 아니고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다.
단과대 학생회의 경우, 한국의 여타 학생회와 마찬가지로 2000년 중반 이래 전반적인 침체기를 겪고 있다. 현재는 단대 집행부에서 사실상 세습되는 구조로 희생정신이 투철한 비운동권 활동가들이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5.1. 서울대학교 동맹휴업 역사[편집]
1995년
전두환.노태우 처벌 동맹휴업
2003년 4월 2일
이라크전쟁과 파병반대를 위한 동맹휴업.
총투표 결과 투표자 1만54명중 87.1%인 8천722명이 휴업에 찬성
관련기사
2008년 6월 5일
광우병 관련
2016년 11월 30일
박근혜 탄핵 동맹휴업
관련기사
5.2. 서울대학교 총학생회가[편집]
90년대 초반 서울대 노래패였던 '메아리'에서 작사 작곡했다.[77] 자교 전용 총학생회가를 가진 몇 안 되는 학교중에 하나가 서울대다. 가사가 폭풍간지를 내뿜기 때문에 타 대학 운동권 학생과 학생회 학생들의 부러움을 산다.
이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여전히 총학생회 주관 행사에서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곡 가사를 보면 알겠지만 '통일' '민족'이라는 단어가 단 한 단어도 들어가 있지 않다. 전통적으로 PD가 NLPDR보다 강세였던 서울대 학생회의 성향을 그대로 말해주는듯.
한동안 비권이 총학생회를 잡고 있던 시절 '민중해방의 불꽃'이라는 모토와 함께 총학생회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2011년 6월 , 학생들이 점거한 본부 건물에서 다시금 '민중해방의 불꽃'이란 아지로 시작하는 총학생회가가 울려퍼지고 있다.[78]
유튜브에 있던 서울대학교 총학생회가 영상이 2022년 1월 6일 기준 삭제된 상태이다.
2절1절
(민중!해방의 불꽃! 서!울!대!)
어두운 굴종과 침묵의 나약한 지성 거부하고
민주주의 뜨거운 진실 온몸으로 노래하라
우리가 쟁취할 역사 참 민주의 세상
보라 민중의 벗 관악 민중해방의 불꽃이여
저기 반역의 사슬을 끊고 솟구치는 우리의 투쟁
가자 너 관악이여 사랑과 투쟁의 신새벽으로
아아 피로지킨 학생회 깃발아래
민중의 아들딸들아 열사의 한 뜻 가슴에 안고
노동해방 벅찬 그 길로 한발 두발 전진이다
우리가 건설한 세상 참 노동의 세상
보라 민중의 벗 관악 이만 불꽃의 전사들아
착취의 세월 되갈아 엎고 솟구치는 우리의 투쟁
가자 너 관악이여 사랑과 투쟁의 신새벽으로
아아 피로지킨 학생회 깃발아래
5.2.1. 자주관악가(NL한정 총학생회가)[편집]
이것말고도 '자주관악가'라는 NL한정 총학생회가가 있다. 운동권 사이에 널리 퍼진 가사와 곡조[79] 를 바꾼 것으로 보이며, 90년대 중반에 21세기 NL그룹이 망한 이후로 듣기 힘들어졌다.한양대 학보사에도 가사만 조금 다른 버전이 전해진다.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들은 민중의 아들딸.
조국의 자주와 통일 우리의 사명.
자주관악 기치를 높이 올려라,
조국의 해방이 동터 오른다 동지여
5.2.2. 자연대 학생회가[편집]
(민중의 벗, 파쇼의 적, 자연대)
자 가자 노동해방의 새시대를 선언하라
굴종의 어둠을 사를
민중승리 횃불을 올려라
녹두벌 투쟁의 함성으로
진군하는 동지여 (동지여!)
파쇼 타도 함성 소리 울려퍼지면
휘날려오는 승리의 깃발
선언하라 동지여 (동지여!)
압제의 사슬 사르를 두팔로
투쟁하라 동지여 (동지여!)
민중의 벗 자연대
5.2.3. 사범대 학생회가[편집]
원곡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노래 참교육의 함성으로이다.
(1절)
굴종의 삶을 떨쳐(떨쳐) 반교육의 벽 부수고
침묵의 교단을 딛고서 참교육 외치니
굴종의 삶을 떨쳐(떨쳐) 기만의 산을 옮기고
너와 나의 눈물 뜻모아 진실을 외친다
보이는가 강물 참교육 피땀 흐르는
들리는가 함성 벅찬 가슴 솟구치는
아 우리의 깃발(펄럭펄럭) 목적사대 쟁취하여
민족민주 인간화 교육 만만세
(2절)
굴종의 삶을 떨쳐(떨쳐) 반교육의 벽 부수고
침묵의 교단을 딛고서 참교육 외치니
굴종의 삶을 떨쳐(떨쳐) 기만의 산을 옮기고
너와 나의 눈물 뜻모아 진실을 외친다
보이는가 강물 참교육 피땀 흐르는
들리는가 함성 벅찬 가슴 솟구치는
아 우리의 깃발(펄럭펄럭) 목적사대 쟁취하여
민족민주 인간화 교육 만만세(투쟁)
5.3. 새학생회[편집]
트루스포럼이라는 단체가 주축이 되어 운동권에 경도된 학생회를 대체하겠다며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학내 구성원 대다수에게 동의를 받지 못했고, 학교에서도 정식 단체로 인정받지 못한 사조직이다. 새학생회 홈페이지 기사 기사2 기사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