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사건사고/20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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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2012년
2.1.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사건
2.1.1. 사건의 시작, 주민등록번호 수집 사건
2.1.2. 안 선관위원의 사퇴와 내부고발
2.1.3. 주민등록번호 수집 사건의 재조명
3. 2013년
3.1. 신입생 음주 사망 및 후송 사고
3.2. 13학번 미팅 장애인 비하 사건
3.3. 성대신문 제1552~1553호 결호 사건
3.3.1. 제1552호
3.3.2. 제1553호
3.4. 컴퓨터공학과와 소프트웨어학과의 전공과목 수강권 논쟁
3.5. 예비 선거운동본부 탈락 사건
4. 2014년
4.1. 명륜캠퍼스 도서관 수은 테러 사건
5. 2016년
5.1.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피의자 입학 사건
5.2. 대학원 졸업생 상대 수십억 구상권 청구 논란
6. 2017년
6.1. 생명과학과 77번 사물함 2억원 발견 사건
7. 2018년
8. 2019년
8.1. 이공계 학생들의 인문계 조롱 사건
8.2. 공인회계사 시험 부정출제 사건


1. 개요[편집]


2010년대에 성균관대학교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를 정리한 문서.

2. 2012년[편집]



2.1.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사건[편집]



2.1.1. 사건의 시작, 주민등록번호 수집 사건[편집]


11월 18일 성대사랑에 제30대 사회과학대학 위風당당 선거운동본부의 부후보이자 제29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을 맡았던 권 후보가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여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2012년 2월 학교 측에서 새터 여행자보험 가입을 위해 수험번호, 이름,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한 새터 참가자 개인정보를 당시 권 회장에게 유용금지 각서를 받고 제공했다. 여행자보험 가입 이후에 즉시 폐기되어야 했으나 11월 학생회실도 아닌 총여학생회실에서 파일에 담긴 채 발견되었고, 그 파일에는 권 후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같은 날 익명의 한 학우는 권 후보와 총여학생회에 어떠한 유착 관계가 있는 것인지, 권 후보는 왜 재출마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권 후보가 성대사랑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과문에 따르면 새터가 끝난 날 단과대 운영위원들과 함께 남은 술과 물품을 수선관으로 운반하려 했으나 2박 3일간의 새터 감독으로 몸이 지친 상태여서 임시로 당시 총여학생회 비대위원장의 허락을 받아 총여학생회실에 잠시 짐을 두었다. 이후 총여학생회 선거가 진행되면서 권 후보와 비대위원장을 포함한 누구도 출입할 권한이 없어 출입하지 못하다가 11월 16일 해당 공간이 총학생회 선본방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개방되어 파일이 발견되었다. 미리 양해를 구하고 명부를 회수하여 폐기해야 했으나 부주의와 과실로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하여 권 후보는 사과를 표명했다.# 같은 날 선관위도 사과문 게재를 요구한 결정사실을 밝히고 추가적인 입장을 곧 공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이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했는데..


2.1.2. 안 선관위원의 사퇴와 내부고발[편집]


11월 18일 제30대 사회과학대학 선거관리위원회의 안 위원이 선관위원 직을 사퇴하면서 내부 비리를 고발했다.#
  • 선거관리위원회의 후보자 등록공고 세칙 위반
    • 후보자 등록공고는 등록 1주일 전에 하는 것으로 세칙에 명시되어 있으나, 선관위장은 추천인 명부를 받는 기간(11월 7일~9일) 직전인 11월 6일 저녁에 공고했다.
  • 선거 출마 후보자가 선거세칙을 합의하고 만드는 전대미문의 사례
    • 권 전 회장은 선관위장을 맡아 선관위원들과 함께 큰 틀에서 세칙을 모두 합의하고 그 직후 선관위장을 사퇴하여 위風당당 선본의 부후보로 출마했다. 상식적인 판단으로 후보 출마를 하려면 선관위장을 맡기 전에 사전 사퇴를 해야했다.
  • 선본 문제제기 관련 선거관리위원장의 번복 및 불공정한 처분
    • FoCusOn 선본이 리플렛을 선관위에게 인분받았으나 위風당당 선본이 해당 리플렛에 후보자 사진이 컬러로 인쇄된 점이 채도 위반이라고 문제를 제기하여 선관위장 직권으로 1시간만에 선관위로 전량 수거 및 폐기당했다. 위風당당 선본은 리플렛의 잘못된 내용을 스티커를 부착하여 수정하였고 이를 선관위장이 배포를 허용했으나 FoCusOn 선본 리플렛의 스티커를 이용한 수정은 선관위장이 거부했다. 이에 FoCusOn 선본이 문제제기를 하였으나 선관위장은 이미 위風당당 선본 리플렛이 배포되어 폐기할 수 없다고 답했으며, 계속된 문제제기에 결국 24시간이 더 지난 다음 날 오후 위風당당 선본 리플렛이 폐기되었다.
    • 위風당당 선본이 선본장 합의에서 제출했던 색(감청색)과 실제 선본복 색(진한 청색)이 달라 FoCusOn 선본이 문제제기를 했으나 선관위장은 징계조치 없이 넘어갔다.
    • FoCusOn은 공약으로 수선관 Wifi 개선 및 휴대폰 충전기 설치를 제시했으나 위風당당 선본은 11월 13일 오후 3시 강의실 유세에서 이 공약이 이미 제29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에서 권 후보가 실현한 공약이며 FoCusOn은 무임승차를 한다는 식의 비방을 했다. FoCusOn의 문제제기에 대해 안 선관위원이 사회과학대학 행정실과 학생지원팀에 문의한 결과 권 후보가 실현한 공약이라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하여 명백한 상대 선본 비방 및 허위사실 유포임이 드러났다. 그러나 선관위장은 녹음 파일이 없으므로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증거불충분으로 문제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위風당당 선본이 등록 전에 학생회관에 지지를 요청하는 문건을 배포하고 정책자료 내용이 유출되었다. 이를 한 학우가 입수하여 제보했으나 선관위장은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에 선관위는 반박문을 게재하였다.#
  • 사전선거운동
    • 선거시행세칙 제3장 12조 1항에 따르면 '사전선거운동이란 선거운동기간 이전에 후보의 이름 혹은 선본명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제반의 행위를 뜻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FoCusOn 선본이 제출한 사진 자료로는 문서 작성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고 또한 이를 공개적으로 배포하거나 공유했음을 밝힐 수 없었다.
  • 리플렛
    • FoCusOn 선본 리플렛에 후보자 사진이 컬러로 인쇄된 점은 위風당당 선본이 문제제기를 해서가 아니라 선관위가 인준 중에 이를 발견한 것이었다.
    • 위風당당 선본이 라벨링으로 리플렛을 수정했다고 인준 전에 보고했고 이를 논의하고 허락했던 그 자리에 안 선관위원도 함께 있었다.
    • FoCusOn 선본에서 리플렛을 스티커로 수정하겠다고 선관위 측에 요청한 바가 없다.
    • FoCusOn 선본의 문제제기에 대하여 이미 위風당당 선본의 리플렛이 배포되었기 때문에 폐기할 수 없다고 선관위원장이 답한 적이 없다. 문제제기 직후 선관위 회의를 열었고 그 회의의 결정으로 위風당당 선본 리플렛을 회수했다.
  • 선본복
    • 11월 9일 룰미팅에서 FoCusOn 선본의 선본색은 보라색과 노란색, 위風당당 선본의 선본색은 감청색과 연지색으로 결정되었다. 당시 선관위원 다수와 양 선본장이 입회한 가운데 감청색을 파란색, 연지색을 분홍색으로 해석한다는 사항에 대해 참석자 모두 인지했다.
  • 선거시행세칙
    • 권 후보는 세칙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지 않았고 상기 사항에 대해서는 선거관리위원들도 모두 인지하고 있으며, 11월 14일 회의에서 이 모든 사항에 대해 논의한 후 문제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안 전 선관위원은 11월 19일 오후 3시 30분경 선거 업무를 위해 선관위실을 방문하였다가 특정 문서를 발견하고 선거관리위원과 단대운영위원 일부가 선거관리위원회를 해산하고 단대운영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선거를 파행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선관위장은 11월 19일 오후 6시 30분에 소집되었던 단운에서 사퇴할 예정으로 4명의 선관위원에게 함께 사퇴할 것인지 물을 예정이었고, 추후 단운에서 호선된 선관위장이 비대위장을 겸임하지 않을 경우 별도의 비대위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적은 것이라 해명했다. 2/3 5개과라고 적은 부분은 의결 정족수 확인을 위한 것이었고 인준 업무도 정상적으로 했고 선거인 명부 제본도 이미 시작했고 투표관리위원 모집, 기표소 확보도 끝난 상황으로 절대 선거 파행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11월 21일 새벽 성대사랑11월 19일 소집되었던 단운의 입장이 공고되었다.#
  • 선관위장과 3명의 선관위원이 사퇴하여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장을 선관위장으로 선출한다.
  • 성대사랑에 게재된 7개의 게시물을 검토하여 아래와 같이 유권해석을 내린다.
  • 개인정보 유출에 관한 건
    • 명백히 권 전 회장의 잘못이다. 이에 대한 조치로 11월 18일 오후 2시경 선관위 절차에 따라 사과 권고가 이루어졌으며 같은 날 오후 3시 경 단운 소집 요청이 들어와 11월 19일 오후 6시 30분 경 단운을 소집했다. FoCusOn 선본 측에서 해당 안건을 중앙운영위원회에 바로 회부한 점은 사회대 학생을 대변하기 위한 행동이었음이 인정되나 선관위와 단운 등의 자치기구를 무시하고 바로 중운에 보고한 면에서 부적절했다.
  • 선관위의 후보자 등록공고 세칙 위반
    • 세칙에 의하면 후보자 등록공고는 등록 1주일 전인 11월 1일 이전에 이루어져야 했으나 11월 6일 저녁에 공고되었다. 이는 세칙 위반이며 전 선관위장도 위반 사실을 인정했다.
  • 선거 출마 후보자가 선거세칙을 만든 점에 관해
    • 권 전 회장이 개정한 세칙 여섯 조항은 조악한 문장 수정이나 생활과학대학의 사회과학대학 편입에 따른 변화에 맞춰 수정해야할 부분들에 한정되었으므로 권 전 후보가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 규칙을 만들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고 판단한다. 다만 사회과학대학 학우들의 의심을 살 만한 우려가 있는 행동이었음을 지적한다.
  • 리플렛 인준
    • FoCusOn 선본 리플렛에 대한 폐기 결정은 문제가 없다. 후보자 사진의 컬러 인쇄와 규정된 색상 미준수 등으로 인한 명백한 세칙 위반이 인정된다.
    • 위風당당 선본의 리플렛을 스티커를 통해 수정한 뒤 배포를 허용한 부분은 문제가 없다. 스티커 수정 부분에 대해 세칙에 명시된 바가 없어 선관위에서 이에 관해 논의하였고 그 결과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 FoCusOn 선본의 문제제기에 대하여 이미 위風당당 선본의 리플렛이 배포되었기 때문에 폐기할 수 없다고 선관위원장이 답한 적이 없다. 문제제기 이후 배포 중단을 명령하고 논의한 결과 위風당당 선본 리플렛도 폐기하게 되었으며 이 결정은 절차적 문제가 없다.
  • 위風당당 선본의 상대 선본 비방 및 허위사실 유포
    • 녹음파일 등 증거가 불충분하여 징계를 할 수 없다고 의결한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한다.
  • 위風당당 선본의 사전선거운동 세칙 위반
    • 임 전 후보의 이름이 기입되어 있는 점, 사진이 찍힌 날짜가 10월 22일로 이렇게 이른 시기에 상대후보를 예측하여 이러한 글을 조작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일반 상식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위風당당 선본의 사전선거운동 세칙 위반으로 보아야 한다.
  • 행정학과 안 위원, 하 위원이 운영위원회의에서 배제된 점
    • 아직 임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한 두 위원의 주장과, 새로 선출된 대표가 운영위원이라는 전 선관위원장의 주장 양측 다 일리가 있다. 이 전 선관위장이 사실 관계에 대한 확인이 부족한 채 경솔하게 판단을 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 이혜민 전 선거관리위원장의 선거 파행 의혹에 관해
    • 의혹을 제기한 안 운영위원과 전 선관위장 및 다른 운영위원들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전 선관위원장이 작성한 문서가 선거 파행을 위한 문서라는 점을 인정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전 선관위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건을 부주의하게 작성, 방치하여 문제를 일으킨 점이 인정되고, 안 운영위원도 전 선관위장의 해명을 청취하지 않고 성급하게 학생사회에 유포한 점에서 문제가 있다.
    • 따라서 전 선관위장과 안 운영위원에게 사과 성명을 선관위장에게 대자보와 글로 11월 20일 정오까지 제출할 것을 의결한다.성대사랑에 게재된 사과문


2.1.3. 주민등록번호 수집 사건의 재조명[편집]


11월 20일 오후 5시 37분 인터넷 신문에 기사화되었다.#

11월 21일 최초 의혹을 제기한 박 학우가 개인적으로 권 전 회장에게 받은 요구사항에 대한 답변을 성대사랑에 게재했다.#
  • 해당 문건의 수집은 여행자 보험 가입을 위해 각 조장들이 새터 당일 수집한 것으로 필사본이 아닌 원본이다. 해당 문건을 살펴보면 각 장의 필체가 각기 다르다.
    • 필사본임을 주장했던 이유는 주민등록번호가 학교 측에서 제공되었다는 복수의 단대장의 증언이 있었고 취합한 당일 여행자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었다.
    • 문제의 파일 원본은 중운이 봉인하여 보관하고 있으므로 중운 측의 조속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이 과정에서 권 전 후보의 반론권도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필사가 아닌 원본임이 밝혀질 경우 공개적으로 정정과 사죄를 하겠다.
  • "최소한 그 개인정보가 학생회 활동이 아닌 다른 활동을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회 활동을 위해서라면 주민등록번호는 필요가 없고, 전화번호는 필요할 때 행정실에 부탁하면 얻을 수 있기에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이 개인정보가 권○○ 후보가 속해있는 다른 조직에 넘어간 것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면까지 권○○ 후보를 의심하게 된다면 이는 학생사회에 크나큰 비극일 것입니다."라는 발언에 대한 정정과 공개사과를 바란다.
    • 발견된 정보의 형태가 수기였으며 발견된 장소인 당시 총여학생회 방은 권 전 후보와 같은 조직에 속한 모 학우가 거점으로 활동하던 방으로 필사가 강력히 의심되던 사안이었다. 필사여부 등의 판단이 이루어진다면 해당 주장에 대한 정정은 행하겠다. 다만 공개사과는 해당 주장이 정황상 충분히 가능한 합리적 추측이었다는 점, 사실의 적시가 아닌 의견의 표명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숙고한 후 입장을 밝히겠다.

11월 22일 사회과학대학 전 사무국장이 대자보를 부착하였다.# 개인정보를 부주의하게 관리한 것에 대한 비판과 징계는 달게 받겠으나 사실확인도 없이 추측을 제기한 박 학우에게 사과를 요구한다는 요지의 내용이다.


2.2. 대전 지적장애 여중생 성폭행 사건 가해자 입학 사건[편집]


2010년 지적장애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했던 가해자 중 1명이 입학사정관제 리더십 전형에 지원해 입학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학교 측이 조사에 착수했다. # #

성균관대학교 입학처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 법원 판결 결과를 공식 문의하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라며 "집단 성폭력 가담 사실이 확인되면 입학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사실 확인 뒤 출신 고등학교의 확인과 본인 소명 등을 거쳐 별도 위원회를 열어 입학 취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추가로 "사건과 관련한 어떠한 내용도 자기소개서, 학생부, 추천서에 나타나지 않았다"며 "추천서상에는 이 학생이 인성 면에서 우수하다는 평가가 기재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성균관대는 결정의 근거로 학칙 제19조의2 ‘입학허가의 취소’를 제시하며[1] 성폭행 가해자에 대해 합격 및 입학 취소 결정을 내렸다. #

3. 2013년[편집]




3.1. 신입생 음주 사망 및 후송 사고[편집]


2월 27일부터 3월 1일까지의 새내기 새로배움터 기간동안 음주로 인해 발생한 일련의 사고들을 통칭한다.

2월 27일 사회과학계열 장학생으로 입학한 한 학생이 음주사고로 사망했다.# 해당 학생은 새내기 새로배움터(이하 새터)에 참석하지 않고 계열 내 소그룹인 Learning Community끼리 대성리 펜션으로 별도의 MT를 떠났었다. 당시 학생은 소주 3~4잔을 섭취한 상태에서 머리가 아프다며 쉬고 있던 중 상태가 좋지 않아 11시 20분경 병원으로 후송하였으나 후송 도중 사망하였다.[2]

2월 28일 새벽 새터를 진행중인 총학생회 및 각 단과대학 학생회로 위 사고가 전달되었고 학교 당국과 학생회는 새터 둘째날인 이날 밤에는 주류를 금지할 것인가를 긴밀하게 논의했으나 일단 공급하되 주의를 요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그러나 3월 1일 오전 2시경 공학계열 신입생 한 명이 피를 토하는 증세를 보여 응급실로 후송됐다.# 그 직후 공과대학, 정보통신대학에서는 주류 공급이 전면 중단되었다. 공과대학은 방마다 남아 있는 술까지 모두 수거했으나 정보통신대학은 전날 저녁 행사가 12시가 다 되어서야 끝난 탓에 남은 술은 수거하지 않기로 했다. 신입생들이 술에 취하면 자기들끼리 먹으려고 양주를 아껴두었던 재학생들은 눈물을 머금고 신입생들에게도 한잔씩 돌렸다는 후일담이 후송된 학우는 다행히 건강에 지장이 없어 이날 오후에 바로 퇴원했다고 한다.


3.2. 13학번 미팅 장애인 비하 사건[편집]


3월 15일 13학번 3명이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과 13학번과 미팅을 하는 자리에서 FM의 변종인 JM을 하도록 요구한 사건이다.# 기사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진 내용과는 달리 여학생에게 JM을 시킨 것이 아니라 다른 학생에게 시킨 것을 여학생들이 제지하였으나 이를 무시했다고 한다. JM이란 주로 3월에 대학에서 많이 행해지는 자기소개인 FM을 변형시켜 장애인 흉내를 내며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미팅 자리가 끝나고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카톡으로 사과를 받지만 해당 남학생이 페이스북에 욕설을 올리면서 사건이 커지게 되었다.

3월 16일 해당 여학생 1명이 페이스북에 전체공개로 글을 올리면서 여러 사람들이 이를 퍼나르기 시작했고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짤방이 떠돌게 된다. 글에는 '공대'라고 적혀있는데 성대는 공대가 '공과대학'과 '정보통신대학'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양측 단과대학 학생회장 모두 해당 남학생의 소속을 파악하려 했다. 그러다가 해당 남학생의 선배가 댓글로 사과문을 올리면서 소속이 밝혀졌고 해당 단과대학 학생회장과 특수교육과 공동대표와 연락이 오가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 와중에 남학생은 사과문 같지도 않은 사과문을 올려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

3월 16일 오후 9시경 '공부'라고 하는 페이스북 계정에서 위 글과 남학생의 욕설 글을 하나의 이미지로 캡쳐해서 업로드하면서 이 사건은 더 널리 퍼지게 된다. 3월 17일 오후부터 인터넷 기사가 하나둘 나타나더니 3월 18일에는 지상파 방송으로도 등장하고 네이트 뉴스 순위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3월 20일 교내에는 해당 단과대학 학생회장의 대자보가 부착되었고 3월 21일 해당 남학생의 자필 사과문 사본이 나란히 부착되었다. 원본은 이대 측에 등기로 발송했다고 한다.

사건 초기에 해당 남학생들이 "우리 학교 전통이다"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성대나 해당 학과에서는 JM이 공공연하게 행해진다는 오해를 받았으나 해당 학과에서도 JM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구성원들이 대다수였다.

FM을 변형시키는 경우는 다른 대학에서도 존재하지만 JM은 장애인을 희화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애초에 문제가 있는 자기소개법이다. 더욱이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학과인 특수교육과 학생과의 미팅에서 JM을 요구하고 이를 불쾌하게 여긴 여학생들과 헤어진 이후 본인의 SNS공간에 욕설을 쓰며 이를 비난했다. #


3.3. 성대신문 제1552~1553호 결호 사건[편집]



3.3.1. 제1552호[편집]


10월 14일 발간 예정이었던 성대신문 제1552호가 주간교수의 결호 선언으로 인해 발행되지 못했다. 발간주 수요일에 진행되는 편집기획회의가 지난 목요일 밤이 되어서야 기존에 실릴 예정이었던 기사의 기사화가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10월 12일 기자단은 대체기획을 결정하여 주간교수에게 편집계획서를 다시 보냈으나, 주간교수는 새로운 기획의 기사화를 반대하여 광고로 대체할 것을 요구했다. 오후 2시부터 14시간 가량 이어진 회의 끝에 10월 13일 새벽 주간교수는 결호를 선언했다. 페이스북

10월 16일 기자단은 주간교수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페이스북
  • 제1552호에 대한 결호를 선언함으로써 신문 발행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편집인의 책임을 저버렸고, 기자단과의 합의 없이 인쇄처에 신문 제작 중단을 통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신문 발행을 불가능하게 했다.
  • 지난해 제1520호 결호에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을 약속했으나 이행하지 않았다. 기자단은 주간교수의 사퇴 번복 이후 불신임 선언을 했으나, 현재 학교는 주간교수를 연임시킨 상태이며 주간교수 역시 이를 따르고 있다. 기자단이 불신임을 선언한 주간교수를 연임시키는 학교 측의 조치와 이를 받아들이는 주간교수의 처신은 성대신문의 상징적인 편집권 독립을 훼손시키는 행위다.
  • 지난해 제1520호 결호 이후의 파업 사태를 마무리하며 작성한 서약서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았다. 당시 기자단은 주간교수와의 협상을 통해 2012년 상반기 내 총장과의 간담회 주최, 제3편집위원(전문위원) 선임 등을 약속받았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총장 간담회는 현재까지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또한 주간교수와 학생기자단 사이에서 조율해 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제3편집위원은 처음 3개월 이후 공석으로 남아있다.
  • 편집인으로서 부적절하다고 판단될 만큼 기자단의 편집권을 침해했다. 서약서에는 ‘객관적이지 못한 이유로 사안 자체를 다루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주간교수는 파업 이후에도 뚜렷한 이유 없이 △특정 사안에 대해 기사화하는 것을 막았으며(제3캠퍼스) △축소 보도를 지시했고(국정원 댓글 여론 조작 사태) △기사 헤드 및 내용을 수정할 것을 요구(불법 영어캠프 관련 기사 헤드, 환경영화제 협찬 기업 명칭)했다. 이 외에도 기자단이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수 기사의 제목 및 내용을 변경하도록 해왔다.

또한 다음과 같이 신문 제작 체계를 변경해줄 것을 요구했다.
  • 성대언론사규정을 편집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선
    • 제10조 3항 ‘편집장·국장 및 학생기자는 주간이 임명한다’ 삭제
    • 제9조 2항을 ‘사무국에는 일반사무를 담당할 행정간사를 두며, 각 사별로 편집간사를 둬야 한다’로 수정
    • 제9조 5항에서 편집간사의 역할을 ‘행정간사의 지휘를 받아 기획·편집 및 제작 등에 관해 주간과 학생기자단 사이의 의견을 조율한다’로 수정
    • ‘편집장·국장은 편집 및 제작에 관한 실무 전반을 총괄한다’는 내용의 제10조 4항을 추가
    • ‘주간 및 편집간사는 학생기자단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후 임명한다’는 내용의 제7조 3항을 추가
  • 성대언론사규정에 따라 행정간사를 부참사이상의 직원으로 임명
  • 총장에게 귀속된 배포 여부 결정권(배포권) 폐지

10월 16일부터 다양한 언론사에서 이번 사건을 보도했다.

10월 20일 기자단은 주간교수 및 학교 측의 반응을 발표했다. 페이스북
  • 주간교수
    • 10월 13일 일요일 : 새벽에 결호 선언하며 ‘14일 월요일에 총장을 만나 책임질 방법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말함.
    • 10월 14일 월요일 : 회의 중 ‘총장이 출타 중이다’며 15일 화요일로 만남을 미루겠다고 통보.
    • 10월 15일 화요일 : 간사 통해 ‘총장이 일정 있어 빨라야 17일 목요일에 만날 수 있다’고 통보.
    • 10월 16일 수요일 : 회의 중 ‘총장이 해외에 나간다’며 한 주 이상 지난 후인 25일 금요일에 만나겠다고 통보.
    • 10월 18일 금요일 : 별도로 알아본 결과, 총장은 22일 화요일 한국에 들어오며 23일 수요일부터 학교에 나온다는 사실을 파악함. 이에 주간교수에게 만남이 금요일까지 미뤄진 이유에 대해 묻고자 전화와 문자를 통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주간교수는 답을 주지 않고 있는 상황.
  • 총장
    • 10월 16일 수요일 : ‘면담 요청 및 요구 사항 이행 촉구’ 공문을 전달했으나 학교 측은 금요일 오후까지 답변을 주지 않았음.
    • 10월 18일 금요일 : 오후에 연락해보자 관계자가 ‘정상적인 절차(주간 결재)를 거치지 않으면 면담이 불가능하다’고 답변함.
  • 기획조정처장
    • 10월 16일 수요일 : ‘면담 요청 및 요구 사항 이행 촉구’ 공문을 전달했으나 학교 측은 금요일 오후까지 답변을 주지 않았음.
    • 10월 18일 금요일 : 오후에 연락해보자 기획조정처장실 관계자가 ‘처장이 읽었으나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고 말함. 이에 한 번 더 전해달라고 부탁함.
  • 총무처장
    • 10월 16일 수요일 : ‘면담 요청 및 요구 사항 이행 촉구’ 공문을 전달했으나 학교 측은 금요일 오후까지 답변을 주지 않았음.
    • 10월 18일 금요일 : 오후에 연락해보자 관계자가 ‘공문이 전달됐는지 확인 가능한 사람이 지금 자리에 없으며 총무처장 역시 출장 간 상태’라며 공문 전달 여부도 파악해주지 않음.
  • 학생처장
    • 10월 16일 수요일 : ‘면담 요청 및 요구 사항 이행 촉구’ 공문을 전달했으나 학교 측은 금요일 오후까지 답변을 주지 않았음.
    • 10월 18일 금요일 : 오후에 연락해보자 관계자가 ‘공문이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며 다시 보내달라고 함.

10월 22일부터 10월 28일까지 1주일간 성대신문 결호사태에 대한 학우들의 관심도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페이스북

10월 28일 성대방송에서 정규 5주차 SBUS 뉴스5분다큐에서 이번 사태를 다루었다.


3.3.2. 제1553호[편집]


11월 4일 발간 예정인 제1553호 또한 주간교수의 제작거부 선언으로 결호되었다. 이에 11월 1일 기자단은 다음의 5개 항목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자연과학캠퍼스 총학생회, 문과대학, 약학대학, 유학대학, 자연과학대학, 정보통신대학, 건축학과 학생회의 지지를 얻어낸 것이 특징이다. 성대신문
  • 주간교수의 사퇴
  • 성대 언론사 규정을 편집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선
  • 행정간사를 부/참사 이상 직원으로 임명
  • 총장에게 귀속된 배포 여부 결정권 폐지
  • 총장과의 대화

11월 6일 기자단에서 사비를 모아 무제호 호외를 발간하여 지지서명을 받았다. 페이스북


3.4. 컴퓨터공학과와 소프트웨어학과의 전공과목 수강권 논쟁[편집]


컴퓨터공학과와 소프트웨어학과는 유사한 교육과정을 따르고 있음에도 양 학과의 수강권이 애매하게 배정되어 있었다. 이에 8월 29일 컴퓨터공학과 학생회에서 교무처에 "두 학과의 전공과목이 학수번호까지 분리되어 아예 다른 과목으로 개설되어 있다면 상호간의 학점취득 및 수강신청을 불인정할 것"을 요청하였고 내년 교육과정 제정에 참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페이스북

어차피 당장 바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2014년까지 그냥 조용히 지나가는 듯 하였으나.....바로 위의 성대신문 결호 사건으로 화제에 오르게 되었다. 성대신문에 실릴 예정이었던 그 문제의 기사가 바로 이 수강권 문제였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댓글 참조

10월 14일 컴퓨터공학과 학생회에서는 성대신문의 기사화 무산에 반발하여 '소프트웨어학과의 컴퓨터공학과 전공과목 수강에 대한 의견조사'를 실시하였다. 페이스북

10월 17일 컴퓨터공학과를 대상으로 한 의견조사에 소프트웨어학과 학생 일부가 참여한 사실이 적발되어 컴퓨터공학과 학생회에서 간접적인 경고문을 게시하였다. 페이스북

10월 18일 컴퓨터공학과 학생회에서 의견조사를 이날 종료하고, 소프트웨어학과 비상대책위원회와의 협의 후에 결과를 공고하겠다고 공지했다. 페이스북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소프트웨어학과 학생이 페이스북에 현 문제를 기숙사 식당에 비유하는 게시글을 작성하였다. 페이스북 이 게시글이 소프트웨어학과 학생들의 지지를 받으며 퍼져나가자 컴퓨터공학과 학생회에서 곧바로 반박문을 게시하였다. 비유에는 비유 위 게시물이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에게 제대로 어그로를 끌어 성대사랑에까지 관련 글이 올라와 추천게시판에 등록되었다. 성대사랑 이후 의견조사가 종료되어서인지, 아니면 여론의 역습을 우려한 내부 입단속이 있었는지 양 학과 모두 특별히 다툼이 없는 상황이었다.

10월 30일 컴퓨터공학과 학생회에서 의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34명 중 부적합 참여 인원 9명을 제외한 25명의 결과만 집계하였다. 홈페이지 마지막 문항만 보면 모든 일반 분반에 소프트웨어학과 학생들의 수강을 불허하자는 의견이 16%, 소프트웨어학과 전용반이 있는 과목에 한하여 일반 분반에 소프트웨어학과 학생들의 수강을 불허하자는 의견이 60%, 소프트웨어학과 전용반 유무와 관계 없이 컴퓨터공학과 과목을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도록 허가하자는 의견이 12%, 기타 의견이 12%로 집계되었다.

다만 의견조사 자체가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했기 때문에 컴퓨터공학과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컴퓨터공학과 학생회에서도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아직 밝히지 않았다.

결국 컴퓨터공학과가 소프트웨어학과에 흡수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3.5. 예비 선거운동본부 탈락 사건[편집]


성균관대학교/총학생회 문서 참조.


4. 2014년[편집]



4.1. 명륜캠퍼스 도서관 수은 테러 사건[편집]


2014년 4월 14일 오후 2시 경 중앙학술정보관 4열람실에서 유독성 수은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발견되었다.

CCTV 확인 결과 수은을 발견한 여학생의 전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인물이 해당 열람실에 들어갔던 것을 확인[3],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용의자는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도주하였다. 여학생은 수은을 잠깐 만지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은으로 추정되었던 물질은 출동한 소방관들에 의해 채취되어 나중에 수은으로 밝혀졌으며 4월 17일 기준 범인을 잡지 못한 상태이다. 사건이 일어난 당일 경찰과 소방관이 출동하고 도서관의 여러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으며, 해당 열람실은 한동안 이용이 금지되었다.

용의자는 같은 학교 학생이었으며 성균관대 근처 와룡공원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기사


4.2. 자연과학캠퍼스 총여학생회 폐지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2016년[편집]



5.1.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피의자 입학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생 성추행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최종 선고까지의 과정 중에서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하며 진짜 피해자를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다는 둥 깎아 내렸었다는 것을 미루어보면 인성의 문제가 의심된다. 여론이 문제를 삼는 것도 성적이 아닌 인성이다. 애초에 본과에 재학 중이었던 학생인 만큼 이 학생의 학교 성적은 상당히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학내 여론은 이런 학생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부정적이며 직접 징계를 하지는 못하더라도 간접적으로 여러 압력을 행사해서 의사가 되지 못하게 막거나, 의사가 되더라도 사실상 의사 집단 내에서 매장을 시키려는 쪽으로 나아가려하고 있다. 같은 의대생들 사이에서도 이런 사람이 남아있다는 건 의사 전체의 신뢰와 명예가 걸린 문제라고 봐서 나름 강경하게 대처하는 듯하다.


5.2. 대학원 졸업생 상대 수십억 구상권 청구 논란[편집]


지도교수의 지시로 실험조작에 따른 배상금을 당시 지도교수를 포함한 대학원 졸업생들에게 배상하라는 구상권을 성균관 대학측이 요청했다. 교수의 경우 파산신청을 한 상태이며 유사한 사례의 경우 지도교수에게만 해당 구상권이 요청되었던 것에 비해 지시에만 따랐던 대학원생에게 구상권이 요청되는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
성균관대, 학생 상대 25억 구상권 청구 '논란', KBS, 2016.04.25. 21:56
성균관대, 학생 상대 수십억 구상권 청구 논란, KBS, 2016-04-26 00:39

결국 약학대학 동문회 등의 노력으로 구상권 요구가 철회되었다. http://m.dailypharm.com/newsView.html?ID=218149


6. 2017년[편집]



6.1. 생명과학과 77번 사물함 2억원 발견 사건[편집]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생명과학과 77번 사물함에서 현금 5만원권 9천만원 가량과 100달러짜리 천여 장 등 2억 원 상당이 발견된 사건이다. 학생회 측은 새학기 개강을 앞두고 사물함 정리를 공지한 뒤 잠겨져 있는 사물함을 열어 정리하는 과정에서 돈을 발견해 대학과 경찰에 신고했다. 해당 건물 안에는 사물함 쪽으로 향한 CCTV가 없으며, 돈의 주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충격적인 반전이 숨어있었으니..

이 돈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을 연 최유정 변호사의 100억원 부당 수임 사건과 관련된 범죄수익금인 것으로 드러난 것. 최씨의 남편인 성균관대 교수 한씨가 부인 최씨의 부탁을 받고 본인이 숨겨놓은 것이라고 자백했다. 뉴스기사. 17년 4월 19일 한씨는 검찰에 송치되었고, 돈을 발견하고 신고한 학생회장 등에게는 신고보상금 100만원이 지급될 예정이다. 뉴스기사

이후 해당 교수를 징계 또는 해임해야 한다는 교내 여론이 일기도 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되었다. 해당 교수는 여전히 강의 진행과 학생 지도를 하고 있다.

여담으로 당시 2억원은 최유정의 남편 교수가 대여 금고에 돈을 보관했으나 금고가 13억여원(한화·미화 8억여원, 수표 5억여원)으로 꽉 차서 더이상 돈이 들어가지 않아서 연구실에 돈을 숨겼다가 이후 해당 장소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이후 검찰에서 13억원을 압수하였다.

2억원이 발견된 이후, 아직 무슨 돈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페이스북 익명 게시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었다해당글링크.

처음에는 흥미진진한 소설로만 여겨진 글이였으나, 이후 정말로 박근혜와 관련된 일이란 것이 밝혀져 화제가 되었었다.


7. 2018년[편집]



7.1. 인문사회캠퍼스 총여학생회 폐지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2. 송명빈 교수의 직원 폭행 및 자살 사건[편집]


'잊혀질 권리' 송명빈 직원 폭행···"죽을때까지 맞아"
‘잊힐 권리’ 송명빈, 폭행 영상 공개…“5억이면 네 가족 죽인다” KBS뉴스(News)


2015년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 저자로 유명세를 떨친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송명빈이 본인 회사의 직원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며 청부살인을 언급하는 협박을 했다는 것이 폭로되었다. 이후 녹취록이 경향신문에 의해 공개되었다. 송명빈 폭행영상 #1 무차별 폭행· 둔기로도 때려

결국 3월 13일 자택에서 투신해 사망하였다.


7.3.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살인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살인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8년 12월 31일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성균관대 의대 임세원 교수가 환자의 칼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


8. 2019년[편집]



8.1. 이공계 학생들의 인문계 조롱 사건[편집]


이공계 학생들이 친선 행사에서 문과는 졸업하고 잘 논다며 인문계 학생들을 조롱하는 현수막을 걸어 논란이 되었고 총학이 사과하는 소동까지 빚어졌다. #1 #2 #3


8.2. 공인회계사 시험 부정출제 사건[편집]


금융감독원은 2019년 8월 28일, 2019년에 치러진 공인회계사 2차 시험에서 부정 출제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출제위원 A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2차 시험 출제위원이었던 A씨는 출제위원으로 선정되기 전인 5월 2일 성균관대학교에서 공인회계사 시험 특강을 하고, 성균관대 고시반 모의고사를 출제한 B씨로부터 그 문제지를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전달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결정적으로, 해당 모의고사와 실제 시험 문항간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동일성·유사성이 인정됐다. 이 사건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뒤 #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공론화되었고, 금감원은 7월부터 조사에 착수했으나 # 수험생의 불이익을 줄이기 위해 해당 문제는 전원 정답 처리했다. 금감원은 A씨에게 휴대전화 제출 등을 요청했으나, A씨가 거부함에 따라 강제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검찰에 사건을 의뢰했다. #
[1] 해당 항목에서는 ‘지원자격 위반, 허위사실 기재 및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한 경우는 입학 후라도 합격 및 입학을 모두 취소한다’고 명시하고 있다.[2] 이 학생이 평소 몸이 건강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고, 평소에는 건강하다가도 가끔 이렇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술을 못 받아내는 사람이 있다. 소주 3~4잔이면 사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다. 하지만 체질적으로 알코올 분해를 못하거나, 너무 급하게 들이마시면 쇼크로 사망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천천히 마시도록 하자.[3] 중앙학술정보관 4열람실은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들만이 이용하는 열람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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