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탈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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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뤼사이 제2대 국왕
시탈케스
Σιτάλκης

출생
생년 미상
사망
기원전 424년 (향년 ?세)
재위기간
오드뤼사이 국왕
기원전 445년 ~ 기원전 424년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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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테레스 1세
어머니 미상
배우자
미상
자녀
사도크
형제자매
스파라도코스[1]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오드뤼사이 왕국 2대 국왕.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확장 정책을 이어갔으나 트레발리족과의 전쟁 도중 전사했다.


2. 생애[편집]


오드뤼사이 왕국 초대 군주 테레스 1세의 아들이다. 기원전 445년 아버지가 전쟁을 이어가던 중 사망하면서 왕위를 물려받았다. 스키타이 군주인 옥타마사데스가 형제 스퀼레스디오니소스의 비의에 입문해 의식을 치러 스키타이인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는 이유로 반란을 일으켜 몰아내자, 그는 스퀼레스를 복위시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스트로스 강변으로 진군했다. 스키타이군과 오드뤼사이군은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는데,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그가 스퀼레스를 돌려보내는 대신 스키타이로 망명했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형제를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옥타마사데스는 받아들였고, 양자는 곧 군대를 돌렸다. 스퀼레스는 스키타이로 돌아간 뒤 처형당했다.

그는 아버지의 확장 정책을 물려받아 영토를 지속적으로 넓힌 끝에 남쪽의 압데라에서 북쪽의 다뉴브 강 어귀, 동쪽의 흑해에서 서쪽의 스트라이몬 강의 발원지까지 이르렀다.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자, 아테네와 동맹을 맺고 용병대를 지원해줬다. 기원전 429년 디오스, 파오니안, 아그리안, 레오스 등 독립 트라키아 부족들을 포함하는 대병력을 이끌고 페르디카스 2세가 다스리던 마케도니아 왕국으로 쳐들어갔다.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그가 이끄는 병력은 15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에 따르면 보병 12만 명에 기병 5만 명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명백한 과장이지만, 마케도니아군에 비해 수적으로 우월한 건 분명하다. 이 침공은 자신들과 맞서 싸우는 코린토스를 은근히 지원하는 마케도니아를 응징하려는 아테네의 사주로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군대는 악시아 강을 돌아 마케도니아 각지를 돌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미그도니아, 안테문트, 그리고 크레스토니아를 약탈했으며, 다수의 정착촌을 파괴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안가서 식량난에 시달렸고, 아테네가 함대를 보내주지 않은데다, 마케도니아군의 거센 반격에 시달리다 1개월여 만에 본국으로 퇴각했다. 이후 페르디카스 2세가 누이 스트라토니케를 그에게 시집보내면서, 양국은 화해했다. 기원전 424년, 북마케도니아 북부와 불가리아 서부의 평야를 지배했던 트리발리 족을 침공했지만 전투에서 패배하고 목숨을 잃었다. 사후 조카 세우테스 1세가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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