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왕후(송경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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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신덕왕후.연못에 핀 목화-송경별곡.jpg

1. 개요
2. 작중 행적


1. 개요[편집]


연못에 핀 목화 - 송경별곡의 등장인물. 실제 역사에서 조선의 첫번째 왕비 신덕왕후를 모티브로 해서 재창작한 인물이다.

2. 작중 행적[편집]


신덕왕후로, 작중에서는 당시 고증을 따라 현비 강씨로 서술되었다. 남편인 이성계보다 21살이나 연하이며 이씨 가문의 장자 방우보다는 무려 2살이 어리고, 차남 이방과보다는 겨우 한 살이 많다(...) 이방우가 집을 나오게 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

위화도 회군 때 방원이 자신을 안전하게 피신시켜준 것에 감명받아 그가 위험하다는 정도전의 말을 계속 무시하는 등, 방원의 본모습을 파악하지 못해 훗날의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자기 소생의 자식들을 위해 못할 것이 없는 표독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이때문에 혜령과 궁중 암투(?)를 벌이면서 굉장히 히스테리컬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친아들만 중시하고 이성계에게 교태를 부리며 총애를 독차지하는 행태 때문에, 당연히 정처였던 신의왕후 소생의 아들들인 이방우, 이방과, 이방원, 이방간 등은 그녀를 매우 증오한다. 이들 중에서 이방우는 아예 신덕왕후에게 염매[1]라는 주술을 통해 살해당한다.

결국 실제 역사대로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기 직전에야 혜령에게 그동안 자신이 악행을 저지른 이유, 자기보다 나이많은 아들이 딸린 이성계와 결혼해야 했던 불운한 인생에 대한 회한을 털어놓으며 처절하게 병사한다. 악독한 인물이지만 시대에 휩쓸려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의 사후 이성계는 신덕왕후가 혜령과의 궁중 암투 때문에 일찍 죽었다고 생각하고 분노해, 이방과와의 이혼을 명하지만 이미 혜령을 사랑하게 된 방과는 완고히 거부한다. 이후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신덕왕후 소생의 아들 이방석이방번이 모두 살해당하면서 그녀의 혈통은 완전히 끊어져버린다. 이방과가 조선 2대 국왕 정종으로 즉위한 뒤에는 아예 왕비로서의 시호가 아닌 성인 강씨라고만 불리면서 왕비는 커녕 역적으로 취급받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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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 역시 실제로 존재했던 범죄라고 한다(...) 조금 판타지스러운 부분이라 많은 독자들이 설정으로 오해하기도 했으나 놀랍게도 이것은 꽤나 행해지던 저주술이라고. 실제 정종실록에 염매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아주 끔찍한 범죄로 여기에 사용된 죽통은 폐기할 수도 없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작가 블로그에 나오니 궁금하면 참조 바람.[2] 실제 역사에선 정종이 아닌 태종이 신덕왕후의 위패를 종묘에서 치워버리고 그녀의 기일에도 조회를 파하지 않고 진행했고, 제사마저 그나마 태조의 체면을 생각해 왕비가 아니라 후궁의 예로 지낼 정도로 신덕왕후를 증오했다. 결국 태조 사후엔 아예 신덕왕후에 대한 예우를 완전히 왕비에서 후궁격으로 격하시켜버리고, 능에 사용되었던 12지상들마저 청계천을 치수한 김에 광교의 석재로 사용해 물 속에 거꾸로 처박아버리까지 했다. 이후 사실상 평민의 무덤으로 전락해 제대로 된 관리도 받지 못하다가, 한참이 지난 현종 때 겨우 다시 위패가 종묘에 모셔지고 무덤도 왕릉으로 수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