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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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t op. 시리즈에 등장하는 음악의 정령에 대한 내용은 아를의 여인(takt op.) 문서 참고하십시오.
Arles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레지옹 부슈뒤론 데파르트망에 위치한 도시. 아비뇽에서 서남쪽으로 30km, 님에서 동남쪽 25km, 엑상프로방스에서 서쪽으로 50km, 마르세유에서 서북쪽 55km, 몽펠리에에서 동쪽으로 60km 떨어진 평원에 입지하고 있다. 론 강 하류를 끼고 있는데, 시가지 바로 북쪽에서 강이 두 갈래로 나뉜다. 도시는 본류를 끼고 있고 지류는 프티 론 강이라 하여 서남쪽으로 흘러간다.
로마 제국 시대의 원형 경기장과 대화가 빈센트 반 고흐 유적이 관광지로 유명하며, 로마 및 로마네스크 건축물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1세 시기에 목욕탕 등 여러 건축물이 지어졌으며, 4세기의 인구는 10만에 육박하였다고 한다. 735년부터 4년간 아랍인의 지배를 받았으며, 855년부터 사실상 독립 왕국인 아를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하지만 9세기에 바이킹과 사라센 해적의 침공을 받으며 쇠퇴하였고, 프로방스의 중심지는 마르세유로 옮겨졌다. 현재 인구는 5만 3천명이다.
1888년 2월부터 1889년 5월까지 고흐가 머물기도 하였으며, 해바라기, 밤의 카페 테라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여인 등 300여개의 작품을 남겼다.
노란 집은 아를에서 머무는 동안 고흐가 실제 거주했던 집이다. 이 집에서 폴 고갱과 1888년 10월부터 12월까지 공동 생활을 하기도 했다. 다만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폭격을 받아 현재는 남아있지 않고 뒤에 배경이 되는 건물들만 남아있다. 구글맵
두 그림 모두 1888년 11월에 그려졌으며 왼쪽은 고흐가, 오른쪽은 고갱이 그린 것이다. 고흐는 자신을 살뜰하게 대해 준 마담 지누에게 인간적 호감을 느꼈고 이후 그녀가 병으로 앓아 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슬퍼하며 자책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마담 지누를 그릴 때 책을 소품으로 써서 교양을 어느 정도 갖춘 부인으로 묘사했다. 반면 고갱은 아를에 온 이후 마담 지누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술잔과 술병을 소품으로 썼고 얼굴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곁눈질을 치는 뇌쇄적인 술집 마담으로 그려냈다. 위의 두 그림은 고갱이 고흐에게 마담 지누의 초상화를 그리자고 제안한 결과물인데 이 두 그림은 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그린 초상화가 화가의 시선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묘사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시로 손꼽힌다.
고갱이 아를을 떠난 후 고흐는 고갱이 그린 그림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그 다음 해에 마담 지누의 초상화를 여러가지 버전으로 그려 고갱, 마담 지누, 남동생 테오 등 주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여담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알려진 잔 루이즈 칼망은 1875년에 아를에서 태어났는데 고흐가 아를에 머무는 동안 그를 직접 본 적이 있으며 고흐를 본 사람들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이었다. 참고로 고흐를 본 소감은 지저분한 옷차림에 불쾌한 인상(Dirty, badly dressed and disagreeable)[3] 이었다고.
Arles
1. 개요[편집]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레지옹 부슈뒤론 데파르트망에 위치한 도시. 아비뇽에서 서남쪽으로 30km, 님에서 동남쪽 25km, 엑상프로방스에서 서쪽으로 50km, 마르세유에서 서북쪽 55km, 몽펠리에에서 동쪽으로 60km 떨어진 평원에 입지하고 있다. 론 강 하류를 끼고 있는데, 시가지 바로 북쪽에서 강이 두 갈래로 나뉜다. 도시는 본류를 끼고 있고 지류는 프티 론 강이라 하여 서남쪽으로 흘러간다.
로마 제국 시대의 원형 경기장과 대화가 빈센트 반 고흐 유적이 관광지로 유명하며, 로마 및 로마네스크 건축물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1세 시기에 목욕탕 등 여러 건축물이 지어졌으며, 4세기의 인구는 10만에 육박하였다고 한다. 735년부터 4년간 아랍인의 지배를 받았으며, 855년부터 사실상 독립 왕국인 아를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하지만 9세기에 바이킹과 사라센 해적의 침공을 받으며 쇠퇴하였고, 프로방스의 중심지는 마르세유로 옮겨졌다. 현재 인구는 5만 3천명이다.
2. 고흐가 사랑한 도시[편집]
1888년 2월부터 1889년 5월까지 고흐가 머물기도 하였으며, 해바라기, 밤의 카페 테라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여인 등 300여개의 작품을 남겼다.
1888년 9월에 고흐가 그린 "노란 집"
노란 집은 아를에서 머무는 동안 고흐가 실제 거주했던 집이다. 이 집에서 폴 고갱과 1888년 10월부터 12월까지 공동 생활을 하기도 했다. 다만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폭격을 받아 현재는 남아있지 않고 뒤에 배경이 되는 건물들만 남아있다. 구글맵
아를에 있는 동안 고흐가 자주 다녔던 카페의 주인이었던 마담 지누(Madame Ginoux)를 그린 그림.
두 그림 모두 1888년 11월에 그려졌으며 왼쪽은 고흐가, 오른쪽은 고갱이 그린 것이다. 고흐는 자신을 살뜰하게 대해 준 마담 지누에게 인간적 호감을 느꼈고 이후 그녀가 병으로 앓아 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슬퍼하며 자책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마담 지누를 그릴 때 책을 소품으로 써서 교양을 어느 정도 갖춘 부인으로 묘사했다. 반면 고갱은 아를에 온 이후 마담 지누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술잔과 술병을 소품으로 썼고 얼굴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곁눈질을 치는 뇌쇄적인 술집 마담으로 그려냈다. 위의 두 그림은 고갱이 고흐에게 마담 지누의 초상화를 그리자고 제안한 결과물인데 이 두 그림은 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그린 초상화가 화가의 시선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묘사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시로 손꼽힌다.
고갱이 아를을 떠난 후 고흐는 고갱이 그린 그림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그 다음 해에 마담 지누의 초상화를 여러가지 버전으로 그려 고갱, 마담 지누, 남동생 테오 등 주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
아를 병원. 지금도 에스빠스 반 고흐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으며 고흐 팬들의 성지이다.
여담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알려진 잔 루이즈 칼망은 1875년에 아를에서 태어났는데 고흐가 아를에 머무는 동안 그를 직접 본 적이 있으며 고흐를 본 사람들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이었다. 참고로 고흐를 본 소감은 지저분한 옷차림에 불쾌한 인상(Dirty, badly dressed and disagreeable)[3] 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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