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계 유대인의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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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4. 음지의 협력자
5. 형제 작전
6. 모셰 작전
7. 여호수아 작전
8. 솔로몬 작전
8.1. 배경
8.2. 작전 개시
8.2.1.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탑승시킨 비행기
8.3. 여담
9. 베타 이스라엘들의 이스라엘 정착 이후
10.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에티오피아 본토의 유대인 공동체들(예멘계 유대인들과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은[1] 1949년부터 2022년까지 이스라엘 정부가 치밀하게 구상한 일련의 탈출 작전에 연속으로 참가하여 귀순이민(알리야)을 실행했다.

한국인들의 관점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실행한 1949년의 중화민국 탈출1975년의 남베트남 탈출1991년의 소말리아 탈출2021년의 아프가니스탄 탈출을 연상할 법한데 이는 재외교민의 긴급피난에 중점을 뒀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 즉 본국의 영토에 도착하면 그것으로 종료한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 여비의 지급이 있었을 뿐이다.

반면 예멘계 유대인들과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의 탈출 작전은 이스라엘국의 민방위체계사회복지정책을 거국적으로 총동원하는 대규모의 귀순이민 프로그램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2] 그들의 행적은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 또는 동독을 탈출한 탈동자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고, 당연히 이스라엘 국민으로서 다양한 사회복지 혜택(아파트제공, 보건의료, 산업기술훈련)을 누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스라엘 정부가 평소의 능력을 최장거리에 최대한도로 투사한 덕택에 새로운 대세(탐관오리 후진국 아랍연맹 VS 권선징악 선진국 이스라엘)를 자연스럽게 연출하면서 유엔 총회反이스라엘 결의안아주 확실하게 뒤엎었을 만큼 무형의 국익을 편리하게 쟁취했다.


2. 영국령 팔레스타인 시절[편집]




3. 마법의 양탄자 작전[편집]




4. 음지의 협력자[편집]




5. 형제 작전[편집]




6. 모셰 작전[편집]




7. 여호수아 작전[편집]




8. 솔로몬 작전[편집]


솔로몬 작전
מבצע שלמה
파일:opsolomon.jpg

1991년 5월 24일 에티오피아에서 살고 있던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15,000여명+α을 피난시킨 탈출 작전.

1단계 탈출작전, 2단계 탈출작전, 3단계 탈출작전이 있었는데 2단계 탈출작전이 가장 유명하다. 1단계 작전은 멩기스투 정권과 거래하는 대신 이산가족 상봉사업을 내세워서 성사했으며 3단계 작전은 새로운 정부를 세운 멜레스 제나위와 담판하여 아디스아바바곤다르와 쿠아라 지방의 '길 잃은 어린 양'을 싹쓸이로 모셔온 뒤 이스라엘행 비행기에 태워서 모조리 귀국시켰다.


8.1. 배경[편집]


1974년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정권은 내전과 이따른 정책 실패로 1991년 5월에는 수도 아디스아바바가 티그라이 반군와 에리트레아 반군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1991년 3월 7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이스라엘 정부와 미국 정부는 에티오피아 내의 유대인들을 구출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가장 먼저 에티오피아 내의 유대인들을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소집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들의 구출을 대가로 에티오피아에 3500만 달러를 지불했다.[3] 또 반군들과도 교섭해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받아냈다.


8.2. 작전 개시[편집]


1991년 5월 24일 이스라엘 정예군 200여명을 태운 이스라엘 공군 소속의 보잉 707 6기와 C-130 18대가 아디스아바바 볼레 국제공항에 착륙했는데 이들은 대사관에서 공항까지의 호위를 맡았다. 이후 36시간 동안 엘알보잉 747과 이스라엘 공군의 C-130 34대가 14,325명의 유대인들을 이스라엘의 벤 구리온 국제공항까지 실어 날랐다. 작전에 참가한 대부분의 비행기들은 더 좌석들을 탈거했으며 비행기에 타려는 사람들도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기내에 탑승해 최대한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다. 덕분에 48시간으로 예상됐던 작전 시간은 36시간까지 단축되었다.

파일:c130 opsol.jpg
파일:b707 opsol.jpg
벤 구리온 국제공항에 착륙한 이스라엘 공군 소속의 C-130
벤 구리온 국제공항에 착륙한 이스라엘 공군 소속의 보잉 707


8.2.1.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탑승시킨 비행기[편집]


파일:기네스 세계기록 로고.svg
Guinness World Records

Most passengers on an aircraft
가장 많은 승객이 탑승한 항공기

대상
기록
장소
등재 시일
엘알 보잉 747
1088명
에티오피아(아디스아바바)
1991년 5월 24일
기네스 등재 기록 링크

파일:4x-axd.jpg
1995년 10월 5일, 취리히 국제공항에서 찍힌 4X-AXD

엘알 카고 소속의 보잉 747-258C(등록기호 4X-AXD)는 당초 760명의 사람들을 태울 예정이었다. 이미 보잉 747-200의 최대치인 480명을 훨씬 넘긴 상태였으나 대부분의 탑승객들은 영양실조저체중이었다. 이에 1086명의 승객들이 747기에 탑승했으며 이스라엘로 비행 도중 2명의 아이가 태어나면서 총 1088명이 747기에 탑승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들은 무사히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파일:b747 opsol.webp
승객들을 태우는 4X-AXD


8.3. 여담[편집]


1088명을 실어 나른 진기록을 세웠던 4X-AXD는 2000년 남아공의 하이드로 에어로 팔려나가 ZS-OOS로 운항하다 2003년 11월 29일 나이지리아 라고스 공항에서 활주로를 이탈하며 파괴되었다.


9. 베타 이스라엘들의 이스라엘 정착 이후[편집]


이스라엘에 도착한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의 삶은 에티오피아에서보다는 물론 나았지만 순탄치 못했다. 가장 먼저 이들은 히브리어를 할 줄 몰랐으며 이스라엘에서의 인종차별 문제로 인해 2006년 기준 80%가 무직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 개선되어 2016년 기준으로 남성은 20%, 여성은 26%까지 실업률을 낮췄다.

10.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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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탈리아계 유대인 공동체도 있는데 평소에 언급을 생략할 정도로 인구가 매우 적은 편이다. 에티오피아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은 3개의 유대인 공동체들을 상대하는 것이다.[2] 러시아계 유대인, 이라크계 유대인, 모로코계 유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재정착을 뒷받침하는 맞춤형 귀순이민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3] 해당 금액은 미국의 유대계 자선단체가 모금했으며 불과 3일만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