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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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1978년

랄리벨라 암굴 교회군
የላሊበላ ውቅር አብያተ ክርስቲያናት

1979년

파실 게비, 곤다르 지구
ፋሲል ግቢ፣ ጎንደር

1980년

아와시 강 하류 유역
ታችኛው አዋሽ ሸለቆ

1980년

티야
ጢያ

1980년

악숨
አክሱም

1980년

오모 강 하류 유역
ታችኛው ኦሞ ሸለቆ

2006년

하라르 주골 역사 요새 도시
ሐረር ጀጎል፣ የተመሸገ ታሪካዊ ከተማ

2011년

콘소 문화경관
የኮንሶ ባህላዊ የመሬት አቀማመጥ

자연유산

1978년

시미엔 국립공원
የሰሜን ተራሮች ብሔራዊ ፓርክ




파일:곤다르 에티오피아 3.jpg
시가지와 유적지 풍경
파일:곤다르 궁전 에티오피아.jpg
주요 관광지인 파실 게비 궁전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파실 게비, 곤다르 지역
영어
Fasil Ghebbi, Gondar Region
프랑스어
Fasil Ghebi
국가·위치
에티오피아 암하라 주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79년
등재기준
(ii)[1], (iii)[2]
지정번호
19
1. 개요
2. 역사
2.2. 19세기의 부침
2.3. 근현대
2.4. 데브라 베르한 셀라시에 성당



1. 개요[편집]


암하라어 ጐንደር [3]
영어 Gondar / Gonder

에티오피아 북부 암하라 주의 도시.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서북쪽으로 300여 km 떨어져 있고, 2017년 기준 인구는36만명으로 수도에 이은 에티오피아 제2의 도시이다. 제3의 도시 메켈레는 동북쪽 250여 km, 성지 랄리벨라는 동남쪽으로 150여 km 떨어져 있다. 시가지는 청나일강의 발원지로 유명한 타나 호수에서 북쪽으로 25km 떨어진 해발 2133m 고지에 위치해 있다. 도심을 관통하는 안그레브 강은 시가지 서남쪽에서 마게쉬 강과 합류해 타나 호수로 흘러간다. 시내 남부에 곤다르 대학이 있으며, 남쪽으로 연담 도시화가 된 아제조에 곤다르 공항이 있다.

곤다르는 1635년 ~ 1855년까지 에티오피아 제국의 수도였고, 이 시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파실 게비 등 많은 건축물이 지어졌다. 유서깊은 성채와 궁전이 많은 곤다르의 별명은 '아프리카의 카멜롯'이다. 비록 19세기 후반 많은 공격을 당하여 최소 4번이나 파괴를 겪는 아픔을 겪었지만, 20세기 이탈리아 지배기에 다시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독립 이후 곤다르는 베겜베르 주의 주도가 되었지만, 에티오피아 내전 당시 재차 전장이 된 후 현재는 암하라 주의 최대 도시이지만 주도는 아니다. 대부분의 유적지는 시내의 동부와 북부에 몰려있고, 주민 중 8%를 차지하는 무슬림들은 도시 외곽에 거주한다.

2. 역사[편집]


파일:에티오피아 곤다르 4.jpg
파일:에티오피아 곤다르 3.jpg
곤다르 역사지구 풍경

2.1. 에티오피아 제국의 수도[편집]


본래 에티오피아 제국의 수도는 중남부 셰와 지역이었다. 그러던 16세기 무렵 대천사가 '에티오피아의 수도는 문자 G (ጐ)로 시작하는 곳에 세워질 것'이라 예언했다는 설화가 퍼졌고, 에티오피아 북부 구자라와 고르고라 등이 세워졌다. 그리고 1635년 솔로몬 왕조의 파실리데스 (알람 사가드) 황제는 곤다르를 건설, 수도로 삼은 후 농업 & 상업 도시로 발전시켰다. 현지 설화에 따르면 파실리데스가 사냥 중 물소를 추격하다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곳에 도시를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그가 황궁으로 건설한 파실 게비 (계란성)는 기존 악숨, 아랍, 인도 양식에 당시 에티오피아와 동맹국이던 포르투갈을 통해 전래된 바로크 양식이 가미되어 중세 유럽의 성채 느낌을 준다. 이후 6만의 도시로 성장한 곤다르에는 많은 궁전들과 7개의 교회가 있었고, 1668년에는 무슬림 구역인 아디스 알렘이 세워져 대다수 기독교도 주민들과 분리하였다.

2.2. 19세기의 부침[편집]


파일:곤다르 연못 에티오피.jpg
파실리데스의 연못,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세례 의식이 열린다.

번영하던 곤다르는 2세기가 지난 후 1855년 테와드로스 2세가 동남쪽으로 300여 km 떨어진 막달라 (암바 마리암)으로 천도한 후, 1864년과 1866년 두 차례에 걸쳐 도시를 파괴하며 급격히 쇠퇴하였다. 곤다르를 파괴한 테와드로스 2세는 천벌을 받아 1868년 영국군에게 패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고, 다음 황제인 테클레 기요르기스 2세는 곤다르의 왕궁 등을 보수하였다. 그후 수도는 요한니스 4세 때의 메켈레를 거쳐 1889년 아디스아바바로 옮겨져 오늘날에 이른다. 한편 곤다르는 1887년 6월 수단 마흐디국의 2대 칼리파 압둘라히 이븐 무함마드의 침공을 받아 습격당하고, 1888년 1월 23일 수단 인들의 침공 때에는 시내의 거의 모든 성당들에 방화하는 등 연속된 수난을 겪었다. 비록 19세기 말엽 에티오피아 제국이 강성해지며 안정을 되찾았지만 1936년 북쪽으로 150km 떨어진 에리트레아를 식민화한 이탈리아 제국에 의해 점령되었다.

2.3. 근현대[편집]


에리트레아와 가까운 이곳을 에티오피아 북부 지배의 거점으로 삼은 이탈리아의 지배 하에 곤다르는 시가지가 확장되고 근대적인 도로가 세워지는 등 발전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1941년 5월 영국-에티오피아 군이 아디스아바바를 탈환하고 북상하자 에티오피아 주둔 영구군은 11월에 곤다르에서 최후의 저항을 하였다. 그 후로도 이탈리아 군은 일대에서 게릴라 전을 펴며 영국군을 괴롭혔고, 1943년 여름에야 소탕되었다. 에티오피아 내전 때에는 에티오피아 민주 연합군이 베겜데르 주의 대부분을 장악한 후 1977년 곤다르 근교까지 진출하였다. 다만 테와드로스 작전으로 에티오피아 인민 혁명 민주 전선이 반격에 나서 1991년 3월 곤다르를 점령하였다. 한편 곤다르 근교에 모여 살며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의 다수를 이루던 현지 유대인들은 20세기 후반 들어 이스라엘로 이주하였고, 이로써 44개의 교회가 있는 곤다르의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신학 도시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2.4. 데브라 베르한 셀라시에 성당[편집]


파일:데브라 베르한 셀라시에 교회.jpg
18세기 초엽 이야수 2세가 건설한 데브라 베르한 셀라시에 성당. 누추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로 가득하다.

파일:에티오피아 교회.jpg
데브라 베르한 셀라시에 성당의 내부

파일:에티오피아 교회 1.jpg
데브라 베르한 셀라시에 성당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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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줄여서 ጎንደር 라고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