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미군기 추락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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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발생일
1977년 9월 27일
유형
엔진 불량
발생 위치
요코하마 상공
기종
RF-4B 팬텀II
운영주체
주일 미 공군
기체 등록번호
611호기
출발지
아츠기 해군 비행장
탑승 인원
조종사 2명
사망자
초등학생: 2명
주민 1명
부상자
6명
생존자
승무원 2명 전원 생존

1. 개요
2. 경위
3. 사고 이후
4. 기타


横浜米軍機墜落事件

1. 개요[편집]


1977년 9월 27일 오후 1시에 미합중국 공군의 팬텀기가 기지에서 이륙해 미드웨이함으로 향했다가 민가에 추락해서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건.


2. 경위[편집]



연료를 가득 채우고 출발한 전투기는 돌연 공중에서 엔진에 이상이 생겨서 불이 붙어버렸고, 조종사 2명은 사출 좌석으로 탈출했다. 파일럿이 없이 추락하던 기체는 주택가에 곤두박질치면서 터져버렸고 주변의 20여개의 주택을 불태우고 초토화시켰다.

이 사건으로 9명이 크게 다쳤으며, 특히 그 중에서 3살, 1살 남자아이와 어머니가 큰 부상을 입었다.


3. 사고 이후[편집]


부상자들은 즉시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남자아이들은 전신화상이라 가망이 없었다. 뜨거움과 격통에 견디다 못해 물을 달라고 울부짖는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고, 장남은 "파파. 마마. 안녕."이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차남은 평소에 자주 부르던 노래를 부르다가 사망했다.

어머니인 26세 여성도 전신화상을 입어서 70여차례에 걸친 피부이식 수술을 받으며 온갖 고생을 해야만 했다.[1] 몇년동안의 수술을 꾸준히 받아서 재활치료도 했으나 결국 가정은 무너지고 남편과는 이혼했다. 4년 4개월 후 1982년 1월 26일, 어머니도 숨을 거두었다.

한편 파일럿들은 무사히 구조되었으며 주일미군은 사건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미일지위협정을 구실로 삼아서 조사 현장에서 사람들을 밀어내고 엔진을 비롯한 증거품들을 수거해갔다. 당시 주일미군 중에는 사진 촬영하면서 웃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미군은 일본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조사를 진행했으며 미군에서는 엔진 조립을 하다가 오류가 나서 전투기가 추락한 것이라고 발표. 정비반도 조종사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흐지브지 넘어갔다.


4. 기타[편집]


세 모자가 비참하게 사망한 후 사람들은 모자를 기리기 위해 공원에 추모비를 세웠다.

파파 마마 바이 바이는 이 사건을 재구성해서 집필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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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때 피부조직이 부족하자 약 1,500여명이 자발적으로 피부조직을 기증하겠다고 응모했다. 이 주에 42명에게서 피부를 이식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