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토막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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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건 경위
3. 재판 결과
3.1. 이케다 히로유키: 실행범
3.2. 그 외 공범
4. 범인에 관하여
5. 기타



1. 개요[편집]


横浜港バラバラ殺人事件[1]

2009년 일본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재판원 재판(한국의 국민참여재판에 대응) 제도 도입 이후 최초의 사형선고 확정 판례로 화제가 되었으며,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전기톱으로 절단하는 엽기적이고 잔인한 범행 수법으로 일본 사회를 경악하게 했던 사건이다.


2. 사건 경위[편집]


콘도 타케로(近藤剛郎)[2]도쿄도 신주쿠구 가부키초의 한 마장 경영자(이하 A)로부터 마장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두 사람 사이에는 경영권을 두고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때 원 경영자에게 모종의 약점을 잡혀 입장상 불리한 처지였던 콘도는 A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콘도는 2009년 6월 18일에서 19일에 걸쳐 동료 8명[3]과 함께 A와 공동 경영자인 남성(이하 B)을 치바현 후나바시시의 한 호텔로 불러내 감금했다. 이들 중 피해자를 직접 살해한 사람은 이케다 히로유키(池田容之, 체포 당시 31세)로, 이 자는 "움직이면 안 되지, 못 자르잖아"라면서 전기톱으로 A의 목을 산 채로 절단해 버리는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게다가 이케다는 여기서 한술 더 떠서 이런 만행을 저질러 놓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공범들에게 "어때, 인형 같지?"라고 태연하게 말했다고 한다. 이후 콘도 일당은 B마저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두 사람의 시신을 토막내 요코하마항과 야마나시현의 산 속에 유기했다.

이후 9명 중 이케다를 포함한 8명은 마약단속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되었고, 이케다는 2009년 10월 15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재체포되었다. 또한 A와 B를 살해하고 이들 중 한 명으로부터 1340만엔을 강탈한 혐의로 2009년 11월 강도살인 용의가 추가되었다. 그러나 주범 격이었던 콘도는 이 시점에서 이미 국외로 도피[4]한 상태였다.

2009년 12월 가나가와 현경 수사본부는 해외로 도피한 콘도에 대해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체포영장을 신청하였고, 동년 12월 15일자로 인터폴을 통해 국제 수배령을 내렸다. 콘도는 사건 발생 1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수배중으로, 행방을 알 수 없다.


3. 재판 결과[편집]



3.1. 이케다 히로유키: 실행범[편집]


재판원 재판으로 진행된 사건 공판에서는 우선 2010년 10월 마약 밀수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하는 부분 선고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재판원들의 부담 경감을 위해 구분심리제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2010년 11월 요코하마 지방법원에서 이케다 히로유키의 살인 및 사체유기에 관한 공판이 열렸다. 이케다는 법정에서 살해 동기에 대해 '사리사욕 때문이었다'라고 진술하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검찰은 이케다에게 사형을 구형, 11월 16일에 열린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검찰의 구형을 받아들여 사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판결 이후 아사야마 요시후미 재판장이 이례적으로 피고인 이케다에게 항소를 권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케다는 선고 이후 요코하마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자신을 면회하러 온 변호인단에게 항소 의사가 없음을 밝혔으나 변호인들의 설득으로 항소 기간 만료를 하루 앞둔 2010년 11월 29일 항소했다. 그러나 이듬해 2011년 6월 16일자로 이케다 본인이 항소를 취하하면서 사형이 확정되었는데, 이 판결은 일본에 배심원제(재판원 재판)가 도입된 이후 최초로 사형이 확정된 사례로 화제가 되었다. 또한 이케다가 항소를 취하했기 때문에 재판원 재판의 심리만으로 사형이 확정된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5]

이케다는 사형수 신분으로 도쿄구치소에 수감중이다.


3.2. 그 외 공범[편집]


공범들 중 사체유기 및 체포감금죄가 적용된 시가현 출신의 공범 3명(당시 21~22세)은 2010년 5월 17일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되었다. 또한 강도치사 및 사체유기, 체포감금죄로 기소된 1명(선고 당시 28세)에게는 2011년 1월 27일 징역 12년이 선고되었다.


4. 범인에 관하여[편집]


실행범이었던 이케다 히로유키는 중학교 때 학생회장을 맡았을 정도로 유소년기에는 성실한 모범생이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조선소, 자동차 공장 등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끝에 점차 소위 말하는 '뒷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는 2004년 폭력조직 '이나가와카이(稲川会)' 계열의 하부 조직에 가입했다가 1년여만에 그만두고, 이후 야마구치구미 계열의 산하 조직으로 들어갔다. 이 당시 이케다는 대규모 사기집단이 운영하던 회사에서 잠시 근무했는데, 이마저도 1년 남짓 일하다 그만두었다.

이케다는 도쿄에서 일하다 대규모 보이스피싱 조직의 간부였던 콘도 타케로를 알게 되어 그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 발을 들였다. 이후 콘도가 마약 밀수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이케다도 이 밀수 조직에 가담했다. 그리고 콘도가 마약 밀매 장소로 이용했던 곳이 바로 문제의 마장이었던 것이다.


5. 기타[편집]


콘도 타케로 일당이 마약 밀매 등에 손을 댔다는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들이 소위 한구레가 아니었느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으며, 관동연합과의 커넥션을 의심하는 의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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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코하마항 토막 살인사건. 이 명칭이 붙은 이유는 후술되듯 사체 유기 장소 중 한 곳이 요코하마항이었기 때문이다.[2] 후술된 바와 같이 아직 검거되지 않은 상태로, 생년월일 등 정확한 신상은 밝혀지지 않았다.[3] 아래에도 언급되지만 이들은 평소 베트남 등지에서 마약 밀수를 하던 자들이었다.[4] 태국으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5] 이케다의 변호인이 항소 취하가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도쿄고등법원에 심리 계속 신청을 했기 때문에 2011년 8월 말 시점에서는 판결이 미확정된 상태였으나, 2012년 7월 이후 이케다가 수감된 도쿄구치소가 그에 대한 처우를 '사형 확정자'로 변경함에 따라 재판원 재판에서 최초로 사형이 확정된 사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