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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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
우해왕(于海王)

불명

우해(于海)?
신장
약 165cm 초과[1]
생몰 기간
? ~ ?
재위 기간
? ~ ?[2]

1. 개요
2. 행적
3. 가족관계
4. 여담


1. 개요[편집]


설화로 전해지는 우산국 국왕.

울릉도 설화에 따르면 "우해왕은 기운이 장사요, 신체도 건장하여 바다를 마치 육지처럼 주름잡고 다녔다."라고 전해진다.


2. 행적[편집]


울릉도 설화에 따르면 우산국이 가장 왕성했던 때가 우해왕이 다스리던 때인데 우산국은 작은 나라였지만 바다에서는 근처의 어느 나라보다 힘이 세었다라고 설화에서는 전해졌다.

어느 날 우해왕은 군사를 이끌고 대마도로 가서 대마도수장을 만나 담판을 지어 대마도수장에게 앞으로 다시는 우산국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항복 문서를 받고 대마도를 떠나 올 때 우해왕은 대마도수장의 셋째 딸인 풍미녀를 왕후로 삼았는데.

우해왕이 풍미녀를 왕후로 맞은 후 우해왕은 백성들을 다스리는 일을 멀리하였고 사치를 좋아하는 풍미녀를 위해 신라에서 몰래 노략질을 해오는 일도 있었고 부당한 일이라고 항의한 신하를 목을 배거나 바다에 수장시키면서 신하들과 백성들은 우해왕이 무서워 한 마디도 못했고 풍미녀는 더욱 사치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라가 망하겠구나!, 풍왕후는 마녀야, 우해왕이 달라졌어라는 소문이 온 우산국에 퍼지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신라가 쳐들어오리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우해왕은 그런 소문을 전했다는 이유만으로 신하를 수장시켰고 이를 본 신하들은 되도록 왕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결국 풍미녀가 왕후가 된 지 몇 해 후 우산국은 신라에 망하고 말았다.라고 울릉도 설화에서 전해지고 있다.


3. 가족관계[편집]


본인 : 우해왕
아내 : 풍미녀
장남 : 하발
그 외 자식들 : 현우 외 6명

4. 여담[편집]


  • 조선 인조 임금 시절에 조여적이란 사람이 쓴 책인 청학집에 의하면,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되고 나서 우산국 왕자인 하발은 7명의 동생과 함께 고구려로 달아나서 계루부 대형의 벼슬을 받았다가, 나중에 하발의 형제 중 7명은 중국의 북위로 도망쳤고 그들 중 1명인 현우는 지금의 함경남도 비백산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하여 현우의 자손들이 각각 현씨와 우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3]

  • 현재 울릉도 주민들은 우산국 시절부터 살았던 사람들이 아닌 조선말 전라도 및 경상도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의 후손으로 고려 중기 여진 해적들과 여말 선초 시기의 왜구들로 인해 울릉도가 조선말까지 무인도 상태였기에 우해왕 설화 또한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설화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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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체가 건장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당시 삼국시대 평균키인 165cm보다 크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2] 512년에 이사부에게 항복했지만 신라의 직할령에는 편입되지 않고 존속되어 조공을 바치는 제후국으로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돼서 정확한 마지막 재위는 불명이다.[3] 출처: 한국기인전/ 이석호 지음/ 명문당/ 2010년 0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