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황후(고려 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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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황후
元貞皇后


캐릭터
지위
고려 황후 (4회~ )
시호
원정왕후
가족
현종 (배우자)
원화황후 (이복동생)
등장 회차
4 ~ 7회, 9회, 11회 ~

배우
이시아

1. 개요
2. 작중 행적
2.1. 4 ~ 5회
2.2. 6 ~ 7회
2.3. 9회
2.4. 11회
2.5. 12 ~ 14회
2.6. 15회
2.7. 16회
2.8. 17회
2.9. 18회
2.10. 19회
2.11. 20회
2.12. 21회
2.13. 22회
2.14. 23회
2.15. 24회
2.16. 25회
2.17. 26회
2.18. 27회
2.19. 28회
3. 인간관계
4. 묘사
5. 총평
6. 어록
7. 여담



1. 개요[편집]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궁궐에서 태어나 궁궐에서 자란 기품 있는 황후. 현종이 황제가 되자 그의 아내가 되었고, 임신한 몸으로 힘겨운 몽진 길에 오른다.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배우는 이시아.

2. 작중 행적[편집]



2.1. 4 ~ 5회[편집]


4회에서 원화황후와 함께 공주 신분으로 등장해 남은 용손은 우리가 전부라고 알려준다.[1][2] 강조의 횡포로 기운을 잃은 현종에게 황제로서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원구단 제사를 권한다. 이후 현종의 황후가 되고 임신한다.

5회에서 현종과 밤길을 걸으며 전쟁과 뱃속의 아이를 걱정한다. 이에 현종이 강조를 비롯한 고려 장수들이 훌륭하다며 안심시키려 하지만 황제를 시해한 역적에게 승리를 가져와달라 매달려야 하냐며 강조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2.2. 6 ~ 7회[편집]


6회에선 궁 밖에서 백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환궁한 현종에게 너무 백성들을 가까이 해선 안 되고, 황제의 위엄을 지키라 충고한다.[3] 회차가 가면 갈수록 배를 잡는 표정으로 보아 출산이 임박한 상태임에도 남편인 국왕에게 직언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편으로는 용손으로서의 자부심과 오만함 역시 드러내며, 특히 강조가 용손 살해라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4] 현종은 거란과의 갈등을 겪으며 한때는 목종을 해쳤다는 이유만으로 적대한 강조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고 용손으로서의 오만함을 반성하게 되었기 때문에 황후의 이러한 태도를 불편해한다.

7회에서는 배가 더 부른 모습으로 남편인 현종과 대화하면서 신하들을 믿지 말고 자기 자신만을 믿으라며 황제는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조언한다.


2.3. 9회[편집]


9회에서는 충신도 역신도 스쳐지나가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으며 땅을 떼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왕실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지만 현종에게 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이해하지 못하냐라는 말을 들으며 외면을 당했다.[5][6]


2.4. 11회[편집]


11회에서 현종이 항복하지도 도망가지도 않고 개경에서 결사항전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상서좌복야 유진을 불러서 황제가 왜 그런 결정을 하게 했냐고 따진다. 그리고 황제를 찾아가 항복을 권유하지만 설득에 실패하고, 뱃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본인이 먼저 떠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말과 달리 차마 본인 먼저 가지는 못하는 대신 아우되는 원화황후를 먼저 보내고, 끝까지 황제를 기다린다. 결국 거란군이 개경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강감찬에게 "무례를 범해서라도 황제를 데려오라."고 명하고[7] 결국 자결하지 못한 현종과 같이 궁을 떠나 몽진을 시작한다.


2.5. 12 ~ 14회[편집]


파일:원정황후-14.jpg

12회에서는 만삭의 몸임에도 힘든 모습을 최대한 보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간신히 도착한 적성현의 어느 마을에서 찬거리 없이 쌀밥과 동치미로 끼니를 때우게 되어 정 상궁이 몸둘바를 모르면서 망극하다 하는데 오히려 위로를 하며 식사를 해결하라고 한다. 하지만, '백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괴로워하면서 밥을 안 뜨려는 현종을 위로하면서 "힘을 내야 백성들에게 사죄 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이에 현종이 놀라 돌아보자, "제 입에서 백성이란 말이 나오니 놀라시는군요. 자결까지 결심하시면서 백성을 구하려고 하시는 분이니... 저도 이제 황제의 안위만을 생각하란 말씀은 그만 드리겠사옵니다. 어서 드시고 기운 내시옵소서. 그리고 다시는 이 황후만 남겨놓고 홀로 떠나시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시옵소서."[8]라면서 현종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적성현 근처까지 거란의 추격대가 오자 현종과 채충순, 양협, 정 상궁과 거친 계곡길을 걷다가 몸의 한계가 오면서 잠시 쉬게 된다. 하지만, 거란군이 추격대를 편성해 뒤쫓는다고 하자 따르던 일부 신료들과 궁인들은 흩어지고, 맞서 싸우던 지채문, 장연우, 황보유의와도 헤어지면서 채충순과 양협, 상궁 1명과 호위병 4명만 대동하고 만삭의 원정황후를 부축하면서 힘들게 계곡을 건넌다.

현종이 어느 계곡에서 임신을 하던 중임에도, 몽진길에 동행한 원정왕후의 발을 직접 만져주면서 애틋함을 보이자 원정왕후가 "황후가 아니라 태후가 된 듯 하군요. 천추전에 계시던 태후께서도 이런 대접은 못 받아 보셨을 겁니다." 라고 말하면서 감사를 표하자 현종은 "그 분은 한번도 이런 고난을 겪어보지 않으셨겠지요."[9]라고 답했다.

다행히 13회에서 지채문, 장연우, 황보유의가 구원함으로써 위기를 넘겼고, 이어 통군사 최사위와 충주사록 김종현과 만나 어느 빈 관아에서 머물면서 대책을 듣다가 나주로 갈 것을 현종에게 권했다. 이후 14회에서도 힘든 몽진길 속에서 남쪽 지역의 현실을 파악하고, 이후 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현종 옆에서 자신도 돕겠다고 밝혔다.

2.6. 15회[편집]


15회에서 현종의 부탁으로 따로 일행에서 떨어져 최사위, 김종현, 정 상궁과 함께 공주를 거쳐 나주로 내려가려는 현종과 다른 길로 내려갔다.[10] 이에 본인은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난 더 이상 그대를 지킬 힘이 없다."는 현종의 말에 결국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원정황후를 따로 돌려보냈지만, 공주에 도착한 현종은 목욕을 하면서도 그녀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2.7. 16회[편집]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지만, 워낙 험한 몽진으로 인해서 결국 뱃속의 아이를 사산하게 되었다. 사산했다고 알린 의원에게 다시 팔을 내보이면서 "다시 진맥을 보라."면서 오열했고, 결국 사산된 채 포대기에 쌓인 사내 아이를 안고 "폐하를 닮았구나."라고 말하다가 끝내 정 상궁과 함께 다시 오열하였다.[11]

2차 여요전쟁이 끝난 후에야 개경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아이를 사산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원화왕후와 현종에게 "아마 황후가 없었으면 나는 버티지 못했을거요. 황후마저 잃지 않은 것이 나는 너무나 감사하오" 라고 위로를 받는다.


2.8. 17회[편집]


현종과 함께 개경을 돌아다니다 상경한 공주절도사 김은부와 그의 여식을 만난다. 김은부에게 몽진 중 황제를 잘 챙겨준 것에 감사인사를 전하는 한편, 그의 여식에게는 개경에 빨리 오고 싶어 혼자 온거냐며 온화하게 묻는다.

이복동생인 원화황후에게 현종의 몽진 도중 공주 절도사 김은부의 장녀를 현종에게 들였다는 것을 듣게 된다.[12] 그럼에도 황후 없이 몽진하는 황제를 위해 신하가 따라야 할 당연한 관례라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황손 잉태 가능성을 염려하며 김은부의 장녀를 개경 밖으로 쫓아내야 한다는 원화황후에게 용손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라며 일갈하고, 궐 밖의 여인들은 용손인 자신들과는 다른 천한 핏줄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럼에도, 내심 김은부의 장녀가 신경쓰였는지 내사시랑평장사 유진을 불러서 이와 관련 내용을 떠보듯이 추궁한다. 그리고, 김은부의 장녀가 용손을 잉태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안 물어본 내용을 답한다" 라고 말하는 한편 안심하기도 한다.어쩐지 질투하는게 꽤 귀엽다

2.9. 18회[편집]


신하들의 파업과 강감찬의 반대로 인해 속이 상한 현종이 술에 잔뜩 취해 황후전을 방문하자, 그런 현종을 보듬어준다. 다음 날 술이 깬 현종에게 호족들과의 협력을 통해 삼한통일을 이룩한 태조 대왕의 사례를 예로 들며 태조 대왕처럼 정치를 하라 조언하나 현종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황실에 충성하는 호족들을 이용해 황제를 위협한 불온한 호족들을 제압하려는 원정황후 자신과 모든 호족들을 혁파하려는 현종이 대립하는 순간이다.

원화황후에게서 지난 밤에 형부시랑의 여식이 현종에 침소에 들었으며, 궁궐에 들어설 때도 시어사 황보유의를 비롯한 관군들의 호위를 받았다는 것을 듣는다. 17회에서 김은부의 여식을 천한 핏줄이라 무시하며 용손으로서의 자부심을 보여준 모습과 다르게 상당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내사시랑평장사 유진과 바둑을 두면서 형부시랑 김은부를 조정에서 내쫓기 위한 정치공작을 의뢰한다. 자신이 직접 황제 앞에 나아가겠다는 유진의 의견에 반대하며, 황제가 아끼는 신하인 전(前) 한림학사승지 강감찬을 이용하라고 한다.[13] 이 일로 현종이 크게 흔들리다가 결국 추진력을 잃고 호족 혁파를 그만둘 것을 기대한다. 그러면서 황제의 고통은 자신이 어루만지겠다고 말한다.[14]

여기서 형부시랑 김은부를 내쫓으면 그의 여식도 같이 내쫓아지게 될건데, 여러모로 신경쓰이게 하는 형부시랑의 여식현종에게서 멀리 치워버리려는 정치적 술수가 돋보인다.

2.10. 19회[편집]


현종이 개경 거리를 질주하다가 낙마한 소식을 듣고 달려갔고, 어의에게서 맥박과 호흡이 약하다는 심각한 상태인 점과 앞으로 서너시진이 고비인 점을 듣고 흐느꼈다. 이후 내사시랑평장사 유진과 함께 전정긍긍한다. 둘이 나눈 대화를 보면 전(前) 한림학사승지 강감찬의 형부시랑 김은부에 대한 탄핵상소문이 현종을 흔들리게 할 줄은 알고 있었어도, 그가 현실정치와 이상정치의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낙마해 크게 다치는 것은 바라지 않았던듯 하다. 죄책감 때문인지 지극정성으로 현종을 밤낮으로 간호하였으며, 이전보다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글썽이며 기뻐한다.

내사시랑평장사 유진과 길을 걸으며 그가 현종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자는 말을 하지만 현종이 깨어나기 전까지 해야 될 일이 있다며, 모든 것을 정리해놓아야 겠다고 말한다. 맥락 상 현종의 편에 섰던 재상들과 형부시랑 김은부를 내쳐서 그들이 주도했던 호족혁파를 중단할 뿐만 아니라 이참에 김은부의 여식까지 치워버리려는 야심찬 계획을 품고 있는듯 하다. 이후 모의한대로 내사시랑평장사 유진은 재상회의를 소집해 재상을 남쪽 지방으로 보내 백성들을 다독이려고 했으며, 참지정사 최사위를 행영도통사로서 서북면으로 보낸다. 중추사 채충순과 독대하며 그가 몽진 때 현종과 함께 있으며 개경 이남의 물정을 잘 알아 파견한다는 말(사실상 압박)과 함께 개경의 조정에서 뜻을 펼치려는 야심을 보인다.

형부상서를 이용해 형부시랑 김은부를 잡아 조정으로 끌고 왔으며 이어 재상들의 동의[15]를 받아 신하들 앞에서 그의 죄상을 낱낱이 파헤치고자 한다. 이전에 내사시랑평장사 유진과 상의해서 황제의 권한인 판결과 국문 대신에 죄상을 낱낱이 고하는 방법을 활용해 현종이 깨어나서도 면죄부를 주지 못하게 만들려고 작정했다. 신하들의 변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김은부가 입을 열지 않자 그의 가족들도 하나둘 끌고 와서 그가 억지로라도 입을 열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괴롭힌다. 결국 그의 큰 딸 마저 끌려오고, 이전에 공주에서 몽진온 현종의 침소에 든 일로 크게 문책한다. 거의 화풀이하듯이 강압적으로 몰아붙여 그녀를 한계까지 몰아넣자 드디어 보다 못한 김은부의 억지자백을 받아낸다. 그렇게 홀가분하게 정전을 나가던 중 부상에서 깨어난 현종이 정전으로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어 당황스러워 하다가 현종의 분노에 결국 물러났다. 물러나면서도 집으로 돌아가던 김은부그의 큰 딸를 거만하게 바라본다.

편전에서 조정의 신하들과 무관들이 형부시랑 김은부의 처벌을 소원하는 읍소를 들으며 현종에게 어서 그를 처벌하라 하지만 무시당한다. 그래서 기분이 상했는지 그대로 편전에서 나가버린다.

이후 김은부의 큰 딸 김씨후궁이 되어 정복을 입고 입궁하는 것을 바라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점점 더 분노를 느낀다. 밤새 자신을 간호해 준 아내는 내팽게치고 새 아내를 맞는 고려의 상남자 현종[16]

2.11. 20회[편집]


처벌해야 할 형부시랑 김은부의 큰 딸이 오히려 현종의 아내가 된 것에 놀라 이를 현종에게 따졌지만, '나와 황후는 이제 가는 길이 다르다'는 현종의 말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내사시랑평장사 유진을 불러 따지기도 했지만, 유진 또한 이미 현종에게 설득당한 상태라서 제대로 해명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궁으로 들어온 김씨 부인은 자신을 황비로 책봉하려는 현종의 뜻을 거절하면서 '황후 전하를 상처주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 다음 날 원정황후는 자신을 알현하려 찾아온 김씨 부인에게 황제에게 그처럼 요청한 이유를 묻고, 김씨 부인이 스스로가 용손이 아님을 이유로 황비 자리를 거부했다는 답변을 듣는다. 그러자 김씨 부인을 어느 정도 온화한 표정으로 대하며 그녀에게 황실 의복을 관리하는 일을 맡긴다. 그러나 원화황후가 김씨 부인을 두고 '그래도 자기 분수는 아는 인물 같다'고 평하자 '이미 폐하의 눈에 들었으니 서두를 게 없는 것일 뿐'이라며 경계심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않는다.

마침 현종과 대신들, 특히 장군인 김훈과 최질의 원망과 멸시의 대상이 된 우간의대부 탁사정이 찾아와 자신이 황후를 돕겠으니 자신을 배척하는 무장들을 쫓아내달라 청하자 이에 응하면서도, 겨우 탁사정 정도의 위인이 자신을 찾아오는 것을 보고 황실에서 자기의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또한 김은부 부녀 대신 탁사정이 벌을 받고 유배를 가면서 본인의 입지만 더 난처해졌다.[17]

2.12. 21회[편집]


방에서 단장하던 중 후다닥 달려온 원화황후에게서 현종이 강씨 호족의 본거지인 금주로, 그것도 달랑 기병 10여기만을 이끌고 갔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해 뛰쳐나간다. 다행히 현종은 막 돌아온 참이었고, 저잣거리에서 현종을 만나 모셔온 뒤 걱정했다며 한숨을 돌리고, 어쩌자고 그 위험한 곳에 소수만 데리고 다녀왔냐고 한마디 한다.

하지만 현종은 오히려 '황제의 한마디에는 백만 군사가 숨겨져 있다는 황후의 말을 믿은 것'이라 대답하며 강씨 호족의 회합이 있었다는 사실, 안무사들이 오히려 쫓겨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냐고 역으로 추궁한다. 원정황후는 숨기지 않고 그렇다고 답하고, 지금이야 우리가 대립하지만 곧 다시 같은 곳으로 같이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종은 모르겠다며 황후를 내보낸다.

유진과 바둑을 두며 거란 사행길과 관련된 대화를 하다 다음 사행길에 갈 사람은 거란주가 죽일 것이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러면 황실사람인 형부시랑을 보내라고 말한다. 유진이 외부의 적이 쳐들어오면 내부의 싸움은 멈춰야한다고 만류하지만 본인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고려는 강한 나라이고 이번에도 승리할 것이라고 말한다.[18] 그리되면 황제의 권위는 강해지게 되고 막을 수 없을 것이고 그에 따라 유진이 원하는 재상정치와 자신이 원하는 황실의 법통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유진을 설득한다.[19]

2.13. 22회[편집]


한밤 중 김씨 부인과 같이 길을 걷는다. 형부시랑황제의 장인이고, 거란은 문명대국임을 자처하고 있는 점을 들어 적국에 사신으로 아버지를 떠나보낸 그녀를 위로한다. 아버지의 안위를 걱정하며 초조해하는 김씨 부인이 정말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것이냐 묻자, 형부시랑은 무사히 돌아올 것이니 너무 마음 졸이지 말라고 온화하게 답변한다.

현종이 다가오자 그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러 온 것이라 생각해 김씨 부인과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려 한다. 하지만 아직 현종을 향한 마음이 복잡한 김씨 부인이 먼저 자리를 뜨고, 정말 오랜만에 남편과 언성을 높이지 않으며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렇게 마음 써줄줄 몰랐다며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남편의 말에 "황후니까요."라고 답하며, 현종의 아내들을 보살피는 것도 황후의 몫이라 말한다. 이는 20화에서 현종이 그녀에게 황후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부터 황실이 아닌 고려를 위하는 사람이 되었어야 했다고 일갈했던 점을 의식한 듯하다.

현종새로운 아내를 들인 것이 상처가 되는 것이었다고 사과하며 잘 받아들여줘서 고맙다는 말에 그녀도 쉽지는 않았다며,자신의 사내다른 여인에게 내어주고도 평온한 여인은 없다며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내면을 비춰준다. 그러면서도 한낱 여인에 머무를 수 없는 황후이기에 앞으로도 김씨 부인을 잘 돌볼테니 걱정말고 거란과의 일에만 전념하라는 말을 전한다. 현종과 몇 화를 내리걸쳐 싸우다 극적으로 화해하는 순간이다.

이후 원화황후와 만난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시 황제의 마음을 얻어가야 한다는 동생의 말에 속으로는 증오하면서도 겉으로는 아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남편이 품은 여인을 보살피는 것만이 다시 남편과 가까워지는 길이라는 사실에 초라해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20]

2.14. 23회[편집]


길을 걷다가 현종이 울고 있는 김씨 부인을 안아주며 위로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대사 한 마디 없었지만 을 지켜보는 눈빛에서 씁쓸함, 분노 등의 복잡한 감정을 내비쳤다. 그러고는 다시 길을 걷는데, 이는 남편의 마음이 점점 더 에게 향하는걸 용손으로서 자존심이 강한 자기자신도 결국 인정하는 순간이다.

2.15. 24회[편집]


김씨 부인의 상침원에서 지어올린 자신의 옷의 마감이 미흡하자 김씨 부인을 나무라며 옷을 직접 다시 지어올리라고 무리한 명을 내린 동생에게 명을 거두라고 말한다.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말하는 한편 김씨 부인이 밤마다 음식을 해서 현종 찾아가는 등 보란듯이 현종의 아내로 행세하고 있다며 울분을 토하는 동생의 말을 가만히 듣는다. 하지만 눈빛이 흔들리며 애써 진정시키던 내면이 더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침원에서 황비의 옷을 짓고 있는 김씨 부인과 그녀에게 감사인사를 전할 겸 시간을 보내러 간 현종이 서로 히히덕 대는 소리를 문밖에서 듣는다. 문 앞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양협은 덤 기분이 상할대로 상했는지 그대로 돌아와 손까지 떨려가며 술을 마신다. 옆에서 눈치보던 동생에게 더는 못 버티겠다며 결국 겉으로도 괜찮다고 못할 만큼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온 모습을 보인다.

질투를 느끼지도, 한낱 여인으로 머물고 싶지도 않아서 이를 악물고 황후로서 대적하려 애썼지만 점점 더 자신의 남편에게 가까워져가는 김씨 부인에 대한 분노와 질투심이 극에 달한 듯 하다. 김씨 부인을 죽여서라도 남편과의 사이를 갈라 놓기를 갈망하며 눈물까지 흘리자 결국 그것이 한이 되었음을 보여준다.[21]

이후 개경 본궐이 중건되자 현종, 원화황후, 김씨 부인과 정전 앞으로 나아간다.

2.16. 25회[편집]



2.17. 26회[편집]



2.18. 27회[편집]



2.19. 28회[편집]





3. 인간관계[편집]


  • 현종 -

  • 원화황후 - 이복동생으로 서로 용손이란 자부심이 있어 늘 협력하며 붙어다니는 모습이 자주 연출된다. 원성황후가 후비로 책봉된 이후로 그 빈도가 점점 많아지는데, 원성황후를 내치기 위한 계략을 함께 모략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둘 다 현종과의 태자를 보지 못했다.

  • 김은부와 그의 큰 딸(후에 원성황후 김씨) - 초반엔 황실 밖의 여인이 황제를 모시는 게 큰 일이 아니라는 말도 했었으나 점점 견제를 하더니 원화황후 앞에서 김씨를 죽이고 싶을 만큼 강한 질투심을 고백하게 된다. 물론 단순히 같은 여자로서의 질투심만 있는 건 아니고 김은부와 현종의 갑작스런 개혁에 대한 반발심도 섞인 결과이다.

  • 유진 - 정사를 논의하며 유진이 김은부 견제에 힘써줄 것을 부탁했고 결국 원정황후 말을 따라 유진이 김은부를 거란 사신으로 보내야 한다고 처음으로 주장한다. 실제로 김은부가 사신으로 갔으나 이 일 이후에 더 이상 자신을 찾지 말라며 유진이 선을 긋게 된다.

4. 묘사[편집]


원작 소설에서는 대사도 없을 정도로 비중이 적었다. 드라마에서는 살아 생전 '현덕왕후'라는 존호를 받았던[22] 명실상부한 현종의 제1후비로서 단순한 배우자가 아니라 강조의 협박에 좌절한 현종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임금만이 할 수 있는 정치 수단을 알려주며 성장시키는 동반자 역할이다. 하여 현종을 최대한 격려하고 지지하지만, 한편으로는 황족으로서의 선민의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전형적인 지배층의 표상이기도 하다.

물론 종실의 입장을 대변하는 그녀의 태도를 단순히 선민의식으로만 치부할 것은 아니다. 전근대시대의 왕조 국가에서 왕실 혈통에 신성함이 사라지게 되면, 힘이 있는 유력자들의 난립으로 세력이 분열되어 난세의 시대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 입장에서는 단순히 왕건이 혼란했던 후삼국의 난세를 수습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쳤으니 도리어 민중을 핍박한 궁예나 견휜과는 다른 정당성이 있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중세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왕실이 지닌 혈통의 신성함과 정통성이었다.[23]

그녀가 그토록 말하는 바는 '고려 왕씨 왕조의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건 왕건의 핏줄이자 정통성이고 이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일반인'이라고 선을 긋는 것이다. 이는 현종이 몽진을 떠나는 도중에 호족들이 현종을 위협하는 모습을 봐도 이를 알 수 있는데, 군왕을 신성한 존재로 여긴다면 감히 왕을 위협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즉, 권위가 아직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호족들은 반기를 들고 이것이 고려의 단합을 저해하는 요소로도 이어지는 것이다. 계속 왕실을 지켜야 한다는 말은 그런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주의적 때문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적 인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런데 17회를 기점으로 작가의 갑작스러운 각색으로 인해 캐릭터가 붕괴 되기 시작한다. 20회가 끝나고 역사왜곡 논란이 터지기 시작한 뒤 주연인 현종과 강감찬을 제외하면 사실상 무리한 각색으로 인한 최고 피해자인 셈. 특히 18~19회부터는 개혁에 반대하는 호족의 입장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기 시작하고 여기에 원성황후에 대한 질투심까지 더해지며 사실상 현종과 완전히 대립관계가 됐다. 특히 19회에서 현종이 의식불명인 틈을 타 직접 정전에 나가서 섭정황후로서 신하들을 휘어잡는 장면은 시청자들 뿐만이 아니라 유진이나 최항 같은 오래된 재상들에게도 영락없이 태후 폐하가 떠오를 수밖에 없을 장면이었다.[24]

17~20회 논란 이후 21~24회까지 극 중 유일하게 붕괴된 캐릭터를 회복하지 못했다. 역사적 사실대로라면 3차 여요전쟁 직전에 퇴장해야하는데 역사에 기록된 표현이 아닌 작가의 무리한 각색으로 좋지 않은 모습으로 퇴장할 확률이 높은 상황. 이쯤되면 작가가 원정황후를 사극 기획부터 안 좋게 본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25]


5. 총평[편집]


초반엔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현종의 아내이자 황실을 지키는 황후, 조언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캐릭터였으나 갑자기 캐릭터 붕괴가 되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현종이 직접 현화사에 초상화까지 걸어줄 만큼 사랑했고 전쟁 도중 아이를 유산하고 일찍 죽은, 안타까운 인물인데 도대체 이해 안되는 각색이라는 평이 다수.
또한 분명 용손의 신성함과 정통성을 강조하던 원정황후인데, 용손의 정점인 황제 앞에서 호족들은 모두 신하에 불과함에도 그들의 권익을 중시하고 되레 황제의 권한을 꺾으려는 점에선 역사성은 고사하고 작품 내의 캐릭터도 유지 못한 설정 오류가 아닐 수 없다.[26]

다만 캐릭터 붕괴와 별개로 배우 이시아의 연기는 호평이 대부분이라[27] 연기 잘하는 배우 데려다가 무슨 짓을 하는 거냐는 비판이 많은 편이다.

19화의 모습은 현재도 역사왜곡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다만 그와 별개로 원정황후가 악역으로서 욕먹기보다 오히려 더 동정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반응도 공존한다. 실제 역사와 반대로 정작 궁내 여인들간의 권력 다툼이 나타난것은 고려가 아닌 거란이었고, 야율융서가 죽은후 거란은 야율융서의 첩이었던 소누근이 자신의 아들이 황제가 되자 황후였던 소보살가를 모함하여 죽였다. 원정황후의 일은 실제로는 있었던 일도 아니었거니와 이는 역사적 배경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 드라마 작가와 제작진들의 문제가 더 크기 때문이다.

6. 어록[편집]


기운 내시옵소서. 폐하는 이 고려의 황제시옵니다. 지금 아무 힘도 없다 하여 좌절하지 마시옵소서. 황제라는 이름 속에는 백만의 군사들이 숨겨져 있사옵니다. 언젠가는 그 힘으로 진정한 황제가 되실 것이옵니다. 날을 잡아 원구단에 오르시옵소서. 온 고려의 백성들을 향해 폐하가 이 고려의 황제임을 보여주시옵소서.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마시옵소서. 폐하께서는 이 고려의 황제시옵니다.

어서 가서 폐하를 모셔오시오! 오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면, 무례를 범해서라도 모셔오시오! 어서!

어서 드시고 기운 내시옵소서. 그리고 다시는 이 황후만 남겨놓고 홀로 떠나시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시옵소서.


7. 여담[편집]


  • 담당 배우인 이시아는 본작이 4번째 사극 출연(정통 사극 기준으로는 첫 출연)이다.

  • 비록 짧게 등장했지만, 현종 역의 김동준과의 케미로 인해 2023 KBS 연기대상에서 '베스트 커플상'을 기대했고, 시상식 전 레드카펫에서도 김동준과 같이 등장했지만, 결과적으로 김동준과 강감찬 역의 최수종이 '베스트 커플상'을 받았다. 이에 수상한 두 사람 모두 놀랐고, 특히 최수종은 김동준이 이시아가 아닌 자신과 상을 받자 "기가 막힌다"면서 눈물까지 글썽여 웃음을 자아냈다. 18회에서 원정황후가 강감찬을 이용해 현종에게 정신적 대미지를 주려고 획책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 본작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제3차 여요전쟁 이전에 퇴장할 가능성이 높은데, 실제 원정왕후는 거란이 세 번째로 고려를 공격하기 직전인 1018년 4월에 사망하기 때문이다.[28][29]

  • 배우가 유튜브 활동을 통해 '스타크래프트 고수 이미지'로 큰 화제가 되어서 몽진에 대하여 '현종을 오버로드에 태운다'는 식으로 관련된 드립들이 올라오곤 한다. 아예 19회에서는 배우 본인이 직접 케리건 드립을 쳤다.#


[1] 이 드라마에서 '용손'은 고려 왕손을 말하는 게 아니라 부계와 모계 모두 왕건의 후손이라는 설정으로 신라의 성골과 유사한 개념이다. 원화·원정왕후는 선왕 성종의 왕녀란 고귀한 신분이지만 모계가 왕건의 후손이 아닌 만큼 '용손'은 아니다. 왕녀이긴 해도 혈통의 순수성과 그에 따른 정통성의 우위는(용손 경종부부의 적통이자 선왕의 조기 후계자 낙점, 용손 왕후)인 고종사촌 오빠 목종은 물론 사생아 출신인 현종보다도 못하다. 성종은 3촌인 광종의 딸 문덕왕후와 결혼하지만, 문덕왕후가 전 남편과 낳은 용손 선정왕후는 목종의 왕후가 됐으며, 또다른 성종의 딸 원화·원정왕후는 각각의 어머니가 지방 호족의 딸로 용손이 아니며, 원정왕후의 어머니인 문화왕후는 고려사 최초로 족외혼으로 왕후가 된 사례이다.[2] 다만 문화왕후의 모계도 왕씨인 점으로 보면, 왕가와 연계될 가능성도 있다. 또 김치양은 죽기 직전 엄마만 용손인 자신의 아들을 '용손'이라고 호칭했다. 어찌되었든 본 드라마에서는 극 초반의 대사들을 통해 '용손'은 부계와 모계 모두 왕건의 후손이어야한다고 명확히 정의했으면서도 스스로 배치되는 진행을 보이고 있다.[3] 퓨전사극에 익숙한 일부 시청자들은 이 장면으로 원정황후가 꼰대 아니냐는 의혹을 가질 수도 있으나, 정도전정몽주가 이성계에게 "신하의 소임은 군주를 빛내는 것이지 백성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현재와는 다른 당시 사람의 사고방식을 잘 드러낸 장면이다. 신분제, 왕정국가에서 힘이 약한 군주는 소탈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계속 백성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전령이 올 때마다 황제인 본인이 직접 나와서 전파를 한 탓에 8회에서 패전 소식이 당도했을 때 제대로 곤란해지는 상황이 왔다. 황제가 기껏 직접 나서서 백성들의 희망을 끌어올렸지만 정작 거기에 책임을 지지 못할수도 있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8회에서는 동요하여 피난가려는 백성들을 설득하며 일단은 민심이반을 막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후 여요전쟁에서 현종의 행적을 고려해 본다면...[4] 정작 원정왕후 본인은 강조가 살해한 목종과는 정치적으로는 대척점에 있던 관계라서 목종의 승하 자체가 본인의 정치적 출세에는 도움이 되기는 했다. 비록 어느정도 대립관계에 놓여져 있어도 원정왕후 본인은 목종의 승하를 안타깝게 여기면서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로 생각하고 있는 듯.[5] 현종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그의 내관 '양협'을 제외하면 사실상 없다. 강감찬도 믿을 신하보다는 의지하는 사람이고, 현명하고 똑부러진 황후는 냉혹하리 만큼 현실을 주입시키기에 그녀에게 실망했을 것이다.[6] 사실 황후의 이러한 태도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비관적인 태도에 가깝다. 그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신하로 중용된 덕분에 현재까지 역대급 성군으로 추앙받는 것임에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7] 사실 이 대사는 뒤에 도열해 있던 중신들에게 내린 말이었는데, 멀찍이 뒤에 있던 강감찬이 이를 듣고 전황을 보고하러 온 황보유의와 함께 현종을 찾으러 갔다.[8] 그런데 아래에 후술되듯이 현종보다 원정황후가 먼저 1018년 4월에 사망한다. 뿐만 아니라 몰년을 알 수 없는 원화황후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드라마에 등장한 현종의 후비인 김은부의 세 딸(원성황후(1028년 7월 사망)와 원혜황후(1022년 7월 사망), 원평황후(1028년 10월 사망))도 현종보다 먼저 사망했다.[9] 이를 두고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KBS가 사극 천추태후를 가지고 자학 개그를 친 것 같다는 농담까지 나왔다. 실제로 천추태후는 전쟁터에서 장수로 활약한 인물이 전혀 아니었으며, 사극 천추태후에서의 내용은 무슨 여전사처럼 묘사했으니 사실이 아닌 왜곡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분은 이런 고생을 안 했다" 라고 이야기하는게 고증에 맞는 것이다.[10] 실제 기록을 보면, 고향(정확히는 외할아버지인 김원숭(선산 김씨)의 고향)인 선주(善州, 현 경상북도 구미시)로 내려갔다.[11] 밖에서 경계하던 최사위와 김종현도 원정황후의 오열과 함께 출산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멈췄는데도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무슨 상황인지 직감을 하면서 같이 오열했다.[12] 물론 원화황후가 전한 위 내용은 실제 기록에는 맞지만, 드라마에서는 잘못 알려진 것이다.[13] 이후 전개를 보아 굳이 부추기지 않아도 강감찬이 알아서 나설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14] 일각에선 이런 원정황후의 모습에서 무시무시한 얀데레스러움을 보았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15] 다만, 정당문학 최항은 이에 반발하여 결국 참석하지 않고 금주에 머물고 있던 강감찬을 찾아뵜다.[16] 사실, 이 부분은 현종이 몽진을 갔을 때, 김은부 일가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뒤에 은혜를 갚는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드라마와는 달리 실제로는 현종과 원정황후, 원화황후 모두 공주까지 같이 몽진에 동행했다.[17] 물론, 현종이 탁사정이 올린 소의 배후에 원정황후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탁사정만 벌한 것으로 처리했다.[18] 역사를 다 아는 우리야 고려가 끝내 승리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저 시대 기준으로는 상당히 무책임한 변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19] 유진은 고민하다가 조회 중 형부시랑을 사신으로 보내자 말을 한다. 문제는 이 타이밍이 강감찬이 자기가 가겠다고 말을 한 직후였다는 것. 누가봐도 반대파를 없애기 위해 꺼낸 발언 같아보였기에 현종과 대부분의 주요 관료들이 표정이 굳어버리며, 강감찬 뒤에 서 있어 초점이 나가있던 최질, 장연우도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거지 라는 듯 유진 방향을 쳐다본다. 현종이 경은 이 와중에도 정쟁이냐며 다그치는 건 덤. 물론 명분은 제후국 군주의 장인이니 거란 황제도 쉽게 죽이진 않을 것이다였고, 그를 보내기 힘들다면 재상단의 수장인 자신을 보내달라 청한다. 이후 유진은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었는지 황후와의 정치적 협력을 청산한다.[20] 작품 외적, 내적으로 여러모로 현 시점 가장 불쌍한 인물이다. 내적으로는 유산이라는 슬픈 경험을 했음에도 전쟁 후에 현종한테 하루아침에 찬밥 취급되지, 외적으로는 실제 정사에 따르면 하지 않았을 갈라치기를 작가 때문에 해서 억지로 비호감캐가 됐지... 자세한 내용은 후술 참조.[21] 추측이지만 이후 전개는 정사대로라면 황후가 점점 김씨 부인에게 가까이 가는 현종을 처소에서 계속 그리워하다가 병으로 숨을 거두고, 현종이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슬퍼하며 황후를 위패에 올리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아니면 작가 때문에 갈라치기 한 것 때문에 현종한테 자신이 죽은 뒤에도 철저하게 버림받는 더 비참한 전개가 될 위험성도 없잖아 있다.[22] 원작 소설에서도 이로 인해 '현덕왕후'로 표기된다. 참고로 원화왕후도 살아생전 '대명왕후'라는 존호로 불렸다.[23] 그리고 현종 역시 절에 있을 때에도 자신이 용손이라 말하고 다닌 사람이기에 황후의 심정을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인 통치만 하려는 모습이 강하다. 다만, 황후는 현종을 따라 몽진에 오르면서 자신의 눈으로 백성들의 참상을 보고 들으며 현종의 생각을 조금씩 이해를 하게 된 듯하다.[24] 그리하여 실제로 작중에서도 황후가 정사를 돌보는 것에 대해 재상들이 상당히 반대하거나 불편해하는 묘사가 나온다. 아무리 고려 시대에 여성 지위가 높았다고 해도 정치판에서 목소리를 내는 건 어색한 부분.[25]덕종의 출생에 관해 여러 연출이 나올수 밖에 없는데 24회까지 기준으로는 갈등 해소는 고사하고 우려스러운 반응이 나올 확률이 높다.[26] 때문에 이 전개 말고 황후가 김씨 부인이 들어온 뒤에도 그녀에게 조언자나 황가의 핏줄을 이을 만한 사람이라고 좋게 봐 주는 전개가 더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다.[27] 아들을 잃고 오열할 때나 원성황후를 정신적으로 몰아붙일 때의 표독스러운 연기 등등. 아이러니하게 캐릭터가 망가지며 온갖 감정연기를 하다보니 배우의 연기력은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오죽하면 한 드라마 안에서 1인 다역을 연기하는거 같다는 의견도 있을정도. 그 전에는 현종에게 조언하는 모습이 주로 나오다보니 연기력을 드러낼 장면이 없었다.[28] 실제로 원정왕후 사망 한 달후인 5월 강감찬이 서경 유수 겸 내사시랑평장사에 임명되며 본격적인 전쟁 준비에 착수하게 된다.[29] 여담으로 극 중 인물 중 현종과 원정왕후를 호위했던 장연우는 1015년, 후에 원성왕후를 비롯한 세 딸을 현종에게 보낸 김은부는 1017년에 사망한다. 게다가 이 두 사람도 원정왕후 못지 않게 말년에 큰 위기를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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