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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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판결 논란
2.1. 미성년자 성범죄 감형 논란
2.2. 성폭력 전담 재판장 당시 판결 절반 감형
2.3. 아내 밟아 숨지게 한 남편 감형 논란
2.4. 김학의 사건 재정 신청 기각
2.5. 스토킹 살해범 감형
3. '한국 문화재 보존은 일제 때부터' 발언 논란
4. 재산신고 누락 논란
4.1. 비상장주식 재산신고 누락
4.1.1. 자녀의 비상장주식 취득 경위 관련
4.2. 자녀의 해외 계좌 재산신고 누락
4.3. 부인 땅의 임대보증금 관련 관보 누락 의혹
5. 부인의 비상장 주식회사 이사 등재 논란
6. 농지법 위반 논란
7. 부산·경주 토지 취득 경위 논란
8. 민사판례연구회 소속 논란
9. 아들의 김앤장 인턴 특혜 논란
10. 법원 내 동료 다면평가 최하위권
11. '1948년 건국' 등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
12. 인사청문회 자료제출 불성실 논란


1. 개요[편집]


이균용의 논란 및 사건 사고를 정리한 문서.


2. 판결 논란[편집]



2.1. 미성년자 성범죄 감형 논란[편집]




이균용이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시절 12살 피해자를 세 차례 성폭행하고 가학적인 성행위를 한 혐의를 받은 20대 성폭행 피의자에게 1심의 징역 10년보다 감형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은 재범을 우려해 징역형과 별도로 내려졌기 때문에 감형 사유로 보긴 어렵고,[1] 무엇보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와 가족들은 엄중한 처벌을 원하는 등 1심 선고 당시와 달라진 상황이 전혀 없었는데, 법조계에선 이례적인 판결이란 반응이 나왔다. #

이균용은 "권고형 범위인 징역 4년∼10년 8개월을 고려해 도출한 것"이라고 밝혔다. # 그런데 1심의 징역 10년도 이 범위를 이탈한 형은 아니다.

이후 추가 자료를 내고 "일부 판결의 결론이나 문구만으로 성범죄나 강력범죄에 온정적인 것처럼 보도되는 상황"이라며 "다른 성범죄 사건 등에서 1심보다 높은 형을 선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본인이 2019년~2020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직 당시 1심보다 높은 형을 선고한 판결 5건을 사례로 제시했다. 이 중 성범죄 관련 건은 2건으로, 위협·감금 및 성폭행 시도 사건에 대해 1심 징역 3년 → 2심 징역 4년 6개월 상향 사례,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에 대해 1심 징역 8개월 → 2심 징역 1년 6개월 상향 사례를 제시했다. # #

서울신문이 이균용이 2020년 10월~2021년 2월 사이에 선고한 아동·청소년 대상 음란물 제작 및 성적 학대 행위 등 판결문 6건을 분석한 결과 이 가운데 5건이 원심보다 감경된 것으로 나타났다. #

2021년 2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음란물 제작·배포, 준유사성행위, 강제추행) 위반 혐의로 기소된 미성년 소년범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것이 알려졌다. 징역 장기 2년에 단기 1년 6개월을 선고한 1심 판결을 대폭 감형한 것이다. 이균용은 "범행 당시 14세에 불과한 중학교 3학년의 정신적·육체적으로 미성숙한 소년으로서 잘못된 성적 충동으로 말미암아 범행을 저지르게 됐고,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면서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


2.2. 성폭력 전담 재판장 당시 판결 절반 감형[편집]


2020년 8월~2021년 2월, 이 후보자가 성폭력 전담부인 서울고법 형사8부의 재판장을 맡을 당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사건 판결문 26건을 한겨레가 분석한 결과, 감형한 판결이 13건으로 절반에 해당했다. 항소 기각이 10건, 형량을 가중한 사례는 2건, 그 외는 1건이었다.

이 후보자가 감형한 13건 중 4건은 실형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감경됐다. 의붓아버지가 자고 있던 17살 딸의 방에 들어가 유사 성행위를 한 사건에서 징역 3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사례도 있었다. 이 후보자는 감형 이유로 '피해자와 합의'를 들었다.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는 이 판결에 대해 "한집에 사는 아버지가 자녀를 상대로 저지른 성범죄에 대해 엄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확산한 상태"이고 "계속 함께 살아야 하는 딸이 진정으로 원해서 처벌불원서를 써줬는지도 의문"이라며 미성년자 자녀와의 합의가 적절한 감형 사유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헤어진 여자친구가 성관계를 거부하자 폭행 및 강간한 피고인의 형량을"피해자는 만 18살로 성년에 거의 근접했"고, "피고인은 21살의 비교적 젊은 청년으로 교화와 개선의 여지가 남아 보인다"는 이유를 들어 징역 7년에서 5년으로 감형하였다. 당시 피해자의 합의가 없었지만 감형을 선택했다.#


2.3. 아내 밟아 숨지게 한 남편 감형 논란[편집]


이균용, 아내 밟아 숨지게 한 남편 '감형'…"고의 없다"
아내 배 밟아 숨지게 한 남편, 이균용 "살인 고의 증명 안돼" 감형 - KBS

이균용이 가정폭력을 일삼다가 끝내 아내를 때려 숨지게 한 남편을 "살인할 고의가 없었다"며 항소심에서 감형해 준 것으로 확인됐다. 1심에서는 살인죄가 적용되어 징역 10년이 선고됐지만, 이균용은 2심에서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의 형을 가중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법조계에서는 남편이 평소에 때리던 습관을 결과적으로 유리하게 참작하여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은 논리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균용 측은 "하급심의 양형 편차를 최소화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양형기준을 참고해 적절한 형을 선고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범죄와 형벌 사이의 균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권고형의 범위 내에서 신중하게 형량을 정했다"라고 밝혔다.


2.4. 김학의 사건 재정 신청 기각[편집]


김학의 전 차관에 관한 검찰 수사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경찰은 2013년 피해 여성들의 진술, 건설업자 윤중천씨 측근의 진술, 동영상 등을 근거 삼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였으나, 검찰은 당시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리했다. 동영상 속 피해 여성이 자신을 밝히며 김학의 전 차관을 고소한 2014년에도 재차 불기소하였다[2].이에 반발해 고소인은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다. 하지만 재정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를 이균용 후보자가 맡았다.

김학의는 1억 3천만원 가량의 금품수수 및 100여 차례의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2019년 세번째 수사되어 기소됐지만, 윤중천 등 여럿에게서 받은 뇌물과 성관계 접대비는 모두 무죄나 공소시효로 면소 판정을 받아 최종 무죄가 선고되었다.[3] 또한 기소 혐의에 성폭력처벌법은 빠져있었다.

1심 판결문에서 당시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남긴 각주에는, '원주 별장 동영상'에서"동영상의 인물과 이 사건 사진파일의 인물은 같은 인물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하였으며, 2007년 촬영 '역삼동 오피스텔' 사진에 대해 사진 속 인물이 피고인인 것을 특정하며[4]# 피해 여성은 2013년 경찰 수사 과정과 2014년 검찰에서 성접대 사진이 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고 밝혔었다고 적혀있었다. 2015년 검찰의 불기소와 법원의 재정신청 기각이 있었더라도 2019년에는 여러 물증을 알고 있었을 것인데 기소하지 않았다며 재판부는 검찰의 부실기소를 탓한 것이고 검찰은 재판부로부터의 경고와 여론까지한테도 큰 비난을 받은 것이다. 이 후보자도 당시 검찰과 마찬가지로 기각 사유에 피해자가 제출한 증거로는 혐의를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지만 당시 이 후보자는 상대적으로 재정신청을 기각했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2.5. 스토킹 살해범 감형[편집]


[단독] 이균용, 스토킹 살해범도 감형…"치정 범행" 전자발찌도 기각

이균용 후보자가 헤어진 옛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다 살해한 사건에서도 형량을 대폭 깎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자는 직장 동료였던 피해자의 일터에 몰래 숨어들어 살인을 저질렀는데, 이는 신당역 살인 사건과 유사한 범행이었다.

2020년 12월, 서울고법 형사8부 재판장이었던 이 후보자는 살인·특수건조물침입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ㄱ씨(65)의 항소심을 맡아 1심을 깨고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1심은 ㄱ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착용하도록 명령했다. 1심 재판부는 ㄱ씨가 반성은커녕 '꽃뱀인가 생각도 하고 있다며 피해자를 탓하며, '성인 위험성 평가척도' 점수도 12점으로 '높음' 수준에 해당해 재범 위험성이 크다고 봤다.

하지만 항소심의 재판장을 맡은 이 후보자는 ㄱ씨가 계획 살인을 부인하고 피해자 유족에게 용서받지 못했는데도 "영구히 격리해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지나치게 (형량이) 무거워 부당하다"며 징역 25년으로 감형했다. ㄱ씨가 65살의 고령이고 강도 등 강력범죄 전력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이민갔다 이혼하고 귀국한 ㄱ씨가 (앞서 사기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수형 생활 뒤 경제적으로 어렵고 소외된 생활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 의식을 가진 채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검찰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청구도 기각했다. 그리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참고로 신당역 살인 사건의 범인 전주환은 1심에서 총 징역 49년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는 최대 형량이 더 높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살인)'을 적용받아 무기징역으로 더 높은 형이 선고되었다. 마찬가지로 데이트 폭력 이후 벌어진 보복살인 사건인 서울 중구 오피스텔 살인사건의 범인 김병찬도 징역 40년을 선고받았다.


3. '한국 문화재 보존은 일제 때부터' 발언 논란[편집]


한국 문화재 보존은 일제 때부터? '일본통' 이균용 발언 논란

대전고등법원장 재직 시절 법원사무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 문화재가 잘 보존된 것은 일제의 영향"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한국일보의 단독보도를 통해 알려져 역사 인식 논란이 일었다. 이에 이균용 측은 한국일보에 "조선시대 왕릉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문화재 보호라는 개념이 일제시대에 도입됐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언급한 적은 있지만 우리 문화재의 보존이 일본의 관리 덕분이라는 얘기는 한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고 해명했다.


4. 재산신고 누락 논란[편집]





[오늘 이 뉴스] "아니, 뭔 판사님이 법을 몰랐다는 얘기를 이렇게 자주 하세요!" (2023.09.19/MBC뉴스)



4.1. 비상장주식 재산신고 누락[편집]


이균용 부부와 두 자녀는 2000년부터 처가가 운영하는 회사의 비상장 주식도 보유하고 있는데, 현재 가액은 총 9억8900여 만원이다. 그러나 그동안 공직자 재산 신고에서 비상장 주식을 누락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이균용과 그의 가족이 3년간 받은 배당금은 세후 기준 1억2690만원에 달한다. 비상장주식 배당 내역 전체는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5], 비상장주식을 취득한 2000년 이후부터 따져보면 더 많은 배당수익을 올렸을 가능성이 있다. #

이균용은 "2020년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의 비상장주식 평가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이나 법령상 재산등록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변경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서 "공직 후보자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 관련 법령 개정 사실을 몰랐다는 이균용의 해명에 대해, 한국일보는 당시 법원은 해당 법령 개정 사실을 법관 재산신고 홈페이지에 매년 눈에 띄도록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

이균용의 해명이 법령이나 인사혁신처 지침과 다르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군용이 최초 재산을 신고한 2009년 당시에도 비상장주식을 등록하도록 명시되어 있어, 2009년부터 누락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서동용 의원은 2020년 시행령 개정으로 바뀐 것은 신고액 가액 기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2023년 3월 재산공개 때 "재산 누락 등 불성실 신고자에 대해 공직자윤리법이 규정하는 경고, 징계요구 등 조치를 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

서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 팀장은 "이 후보자의 재산신고 누락은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며, 법 위반이기에 대법원장 후보자로서 큰 결격 사유"라며 "대법원이 징계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

과거 이균용이 재산 신고를 누락했던 한 우석제 전 안성시장에게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던 걸로 확인됐다. 이균용은 판결문에서 "공직자윤리법이 등록재산 신고서를 제출토록 한 것은 부정한 재산 증식을 방지하고,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직자 윤리를 확립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


4.1.1. 자녀의 비상장주식 취득 경위 관련[편집]


이균용의 자녀들이 9세, 11세 때 (주)옥산, (주)대성자동차학원의 주식 250주를 취득한 것으로 보여 취득 경위나 증여세 납부 여부가 소명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녀들에게 비상장주식을 증여했는지, 증여세를 냈는지 등에 대한 자료는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균용 측은 언론에 후보자 가족이 ㈜옥산 주식 250주를 증여받을 때 증여세 신고를 했고, 그 무렵 증여세를 모두 납부했다고 설명했다. #


4.2. 자녀의 해외 계좌 재산신고 누락 [편집]


서동용 의원실에 따르면 이균용이 최초 재산 신고한 2009년부터 미국에서 장기간 생활한 아들·딸의 현지 계좌 내역이 사실상 통째 누락돼 온 것으로 나타났다. 임명동의안 첨부 서류에 따르면 이균용의 아들은 미국 소재 부티크 투자은행에서 일하면서 3억 5000만원에 달하는 근로소득이 현지 계좌로 입금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해당 기간 국내 계좌만 등록하고 해외 계좌는 신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

두 자녀의 거주지 임대차 계약 내역을 2009년 이후 한 번도 재산신고 때 포함하지 않았다. 이균용은 임대차보증금이 없는 월세 계약을 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해명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승남 의원실에 따르면 외환거래유형별 거래금융기관 자료를 제출해달라는 요구에 가족은 개인정보 활용에 동의하지 않았고 본인에 대해서만 '해당사항 없음'으로 회신했다. #

공직자 윤리법상 자녀의 해외계좌는 신고 대상이다. 이균용 측은 자녀들이 해외에 머무는 동안 사실상 독립적으로 생계를 꾸렸다고 해명했지만, 독립 생계를 이유로 고지거부 허가는 받지 않았고, 자녀들이 아버지와 주민등록을 같이 해왔기 때문에 고지거부 대상도 아니다. #


4.3. 부인 땅의 임대보증금 관련 관보 누락 의혹[편집]


이균용은 최초 재산 신고한 2009년부터 부인이 소유하고 있는 덕포동 토지 및 공장 용지 임대보증금 명목으로 매년 2850만을 신고했다. 2010년 부인이 처남에게 토지를 매각했지만, 2016년 관보에도 동일한 액수의 임대보증금을 신고했다. 임대 보증금 액수가 변동 없는 것에 대한 의혹이 일자, 이균용 측은 "관보에 정확하지 않게 기재된 적은 있지만 재산 신고 누락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5. 부인의 비상장 주식회사 이사 등재 논란[편집]


이균용의 부인이 부친이 대표로 있던 비상장 주식회사에 2011년부터 2016년까지 5년여간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균용 측은 배우자가 이사로 등재됐던 점은 인정하면서도 "실제 회사 운영에 참여한 적도, 주식을 보유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소규모 가족 회사일수록 임원이 주주를 겸하는 경우가 있어 주주명단과 배당금 수령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받았지만, 이균용은 해산된 지 7년이 지나 관련 자료를 확보할 수 없는 상태임을 양해해 달라면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


6. 농지법 위반 논란[편집]


대법원장 후보 부산·경주 '투기' 정황…아내는 증여받고 매매 신고
이균용, 땅 35년 방치…"주인 알아요? 나라도 사서 농사짓게"

서울에 거주하면서 부산 지역의 논을 사들여 농지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균용은 1987년 12월31일 장인과 처남 등 3명 등과 함께 지분 4분의 1씩을 나눠 부산 동래구 명장동 땅을 구입했다. 해당 땅의 지목은 ''으로 등의 식물을 재배해야 하는 농지다.

이후 이 땅은 명장동 동일아파트 지구단위계획구역에 포함됐으며, 이균용은 이 땅을 2013년 11월 3억6천여만원에 팔았다. 인근에 6필지를 소유한 부인은 24억6810만원에 팔았다. #

전국적으로 땅 투기가 휩쓸면서 사회적 문제가 불거졌던 1980년대에 사법연수원을 갓 수료한 사회초년생이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수천평의 땅을 샀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명장동 땅 투기 의혹에 대해 이균용은 "장인이 자동차운전면허학원과 부대시설로 실제 이용한 것"이라고 했다. # 이에 한겨레는 "농지로 회복 가능한 땅은 농지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과거 판결을 언급하면서 이 후보자가 해명과 반대되는 판결을 했다고 보도했다. #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건설사는 이균용 후보자 부부가 지분을 갖고 있던 논을 사들인 뒤 농지보전부담금 7천 6백만원을 내고 땅의 용도를 변경했다. 부산 동래구청도 "건설사 사업 승인 이전에 해당 농지를 다른 용도로 쓰도록 허가하거나 농작이 불가능한 농지로 판단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목이 농지지만 잡종지로 쓰면 잡종지로 봐야한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냐는 질문에 "현행법상 지목이 전·답·과수원인 경우에는 농지로 판단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농지를 잡종지로 쓰면 잡종지로 봐야 한다는 해석은 어렵다"고 밝혔다. #


7. 부산·경주 토지 취득 경위 논란[편집]


수십년 전 구입한 경주 땅 1만1806㎡(3578평)과 관련하여 이균용은 '부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장인이 구입한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이균용은 부산에 이어 경주 땅 역시 장인 등 타인이 땅 매매를 주도해 본인은 취득 경위를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


8. 민사판례연구회 소속 논란[편집]


이균용은 민사판례연구회(민판연)의 회원으로 소속되어 있는데, 민판연에는 현직 법관, 법학 교수뿐 아니라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23명 등 다수의 전관 변호사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민판연을 통한 현직 법관과 전관 변호사 간 교류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불공정한 외관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법관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나온다. #

이균용은 위 사실을 보도한 경향신문 측에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후 민판연을 탈회했다"고 밝히면서 "지방법원 판사 시절 가입해 순수하게 학술적 성과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정기 세미나에서 발표를 한 적은 있지만 최근 10년 이상 실질적 활동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


9. 아들의 김앤장 인턴 특혜 논란[편집]


2009년 7월 이균용의 아들이 김앤장에서 인턴으로 활동했었는데, 이 시기에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었으며 김앤장의 인턴 프로그램에서 요구되는 기본 조건인 법학전문대학원생이 아니었음에도 인턴 활동을 한 것이 경향신문 취재를 통해 알려져,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

이균용은 경향신문 측에 "아들이 군 입대를 앞두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김앤장에 인턴을 지원해 근무한 것이고 그 과정에 관여하지 않아서 어떤 경위로 선발된 것인지는 정확히 모른다"면서, 아들이 김앤장에 지원한 경위에 대해서는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인수합병 등의 업무가 진행되는 현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다수의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이 근무하는 김앤장에 지원을 한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다. 이후 추가 입장문을 내어 "아들이 기억하기론 당시 김앤장에서 학부생 인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고 자신 외에도 10명 이상의 학부생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한다"면서 '법학전문대학원생만을 대상으로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서 이균용의 아들이 특혜를 받은 것이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김앤장에서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인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로스쿨생을 대상으로 한 인턴은 채용과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을 받고, 학부생은 다른 절차가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9월 14일 김회재 의원이 받은 답변서에서는 별도 공고 없이 인턴 채용을 한다고 답변하여, 특혜 채용이 아니냐는 의혹이 다시 제기되었다.#


10. 법원 내 동료 다면평가 최하위권[편집]


이균용, 법원장 시절 구성원 다면 평가서 하위권
[단독] 내부서 본 '이균용 법원장' 점수, 뒤에서 5등→3등→2등

이균용은 서울남부지법원장(2017년 2월~2019년 2월)과 대전고등법원장(2021년 2월~2023년 2월)으로 재임한 4년간 이뤄진 8차례의 '법원장 이상 다면평가' 결과에서 모두 최하위권 점수를 받았다. 이균용은 2022년 상반기 전국 법원장 다면평가에서 법원장 40명 중 39등이었으며, 하반기 같은 평가에서도 39명 가운데 38등을 했다. # '재판권 간섭 여부'와 '대법관 적합성 여부'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으로서 자질을 갖췄는지 의구심이 크다"면서 "법원 내부 구성원들과 재판에 참여하는 변호사들의 평가에 따르면 대법원장으로서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 첫해인 2017년 하반기 0.953점을 받았지만, 올해 상반기엔 0.323점까지 떨어진 상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2012년 상반기 당시 0.540점을 받았지만, 퇴임 직전인 2017년 상반기엔 0.111점을 받았다. 법원노조는 이를 언급하면서 "처음부터 낮은 점수를 가진 사람이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됐다는데 법원 내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


11. '1948년 건국' 등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편집]


2023년 9월 19일 인사청문회 도중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임시정부가 설립된 1919년이 아닌 "1948년 8월15일"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확인되면서, 뉴라이트와 유사한 역사관을 갖고 있다는 논란이 일어났다. #

다만 그는 "대한민국이 1948년 8월15일에야 비로소 건국됐지만,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때로부터 수많은 항일투사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으로 이어진 일련의 독립 투쟁이 대한민국 건국을 가능케 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같은 청문회에서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을 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실제로 사건을 처리해 본 적이 없어서 아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기사가 나간 이후 이균용 후보자는 "질문의 취지를 알지 못해 답변을 못했을 뿐"이라며 해명했다.

심상정 의원은 이 문제에 대해서 대체 어떤 교과서로 공부하셨냐는 반응을 보였다.


12. 인사청문회 자료제출 불성실 논란[편집]




2023년 9월 14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가족의 환전, 외화거래내역 등 외환거래유형별 거래금융기관 자료, 1980년 이후 후보자와 배우자·직계존비속의 부동산 거래내역, 후보자 가족이 상속·증여받거나 상속·증여한 재산 내역, 상속·증여세 세부내역, 2000년 이후 본인을 비롯한 가족의 주식거래 내역 등의 자료제출을 요구받았지만, 이균용 측은 제출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균용 후보자가 국회 요구자료에 대해서 하루빨리 성실하게 제출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으면, 이균용은 재산 신고와 관련해 문제 제기가 계속되자 뒤늦게 "인사청문 과정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자료 제출과 검증에 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인사청문회을 앞두고, 10년 치 자료 제출 요구에도 임의로 5년 내 기록만을 정리해 제출하고, 해명 과정에서 또 다른 의혹이 발생하는 등 전반적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대하는 자세가 불성실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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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착명령의 선고는 특정범죄사건의 양형에 유리하게 참작되어서는 아니 된다(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7항).[2]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강해운)[3] 윤중천에게 받은 3,100만 원 상당 접대비도 2008년 이후 11년 지나 기소되어 공소시효로 면소[4] "이 사건 사진 상의 남성은 피고인이라 봄이 상당하고, 다른 가능성은 지극히 합리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5] 2023년 9월 17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