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냐스 코발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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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gnace Kowalczyk.png
이름
이그나츠 코발치크
(Ignatz Kowalczyk)
생년월일
1913년 12월 29일
사망년월일
1996년 3월 27일 (향년 82세)
국적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출신지
독일 제국 카스트로프
포지션
포워드, 하프백
신체조건
180cm | 77kg
소속팀
발랑시엔 FC (1933-1936)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36-1937)
FC 메스 (1937-1939)
랭스샹파뉴 (1943-1944)
스타드 드 랭스 (1944-1945)
FC 메스 (1945-1949)
국가대표
5경기 1골 (1935-1938)
감독
FC 메스 (1949-1950)



1. 개요
2. 생애[1]
2.1. 어린 시절
2.2. 선수 생활
2.3. 감독
3. 수상
3.1. 선수
3.1.1. 클럽



1. 개요[편집]


프랑스의 전 축구 감독.


2. 생애[2][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코발치크라는 성에서 알 수 있듯 그는 폴란드계 혈통으로 원래 이름은 이그나츠(Ignatz)였다. 어린 시절에 그는 가족과 함께 북프랑스로 이주했다.

코발치크는 RC 랑스에서 축구를 배웠다.


2.2. 선수 생활[편집]



2.2.1. 클럽[편집]


코발치크의 정식 데뷔팀은 발랑시엔 FC였다. 코발치크의 데뷔 무렵인 1933년에 발랑시엔은 디비지옹 2 소속이었지만 1935년, 디비지옹 2위로 디비지옹 1 승격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때 코발치크는 프랑스에 귀화해 이름도 프랑스식인 이냐스(Ignace)를 쓰게 되었다. 하지만 발랑시엔은 공격은 되지만 수비가 약한 모습을 보이다 골득실 -30을 기록하며 1시즌 만에 다시 강등되었다.

1936년에 코발치크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이적했고 이곳에서 단 1년만 머물렀지만 디비지옹 1 우승을 맛볼 수 있었다. 1937년에 FC 메스로 재이적한 코발치크는 당해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에서 공교롭게 직전 소속팀 마르세유를 만났다. 그러나 메스는 연장전 끝에 1대2로 마르세유에 패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코발치크는 잠시 축구계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1943년에 EF 랭스상파뉴(Reims-Champagne)에 복귀했다. 이 해에도 랭스샹파뉴가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우승에는 실패했다.

1945년, 다시 메스로 복귀한 코발치크는 1949년까지 메스에서 선수로 뛰었다.


2.2.2. 국가대표[편집]


1935년 11월 10일에 있었던 스웨덴전이 코발치크의 프랑스 대표팀 데뷔전이었다.

코발치크는 1938년 1월 30일, 그의 5번째 A매치였던 벨기에전에서 후반 33분에 그의 대표팀 마수걸이골이자 쐐기골을 넣었다. 프랑스는 벨기에에 5대3으로 승리를 거뒀고 그는 1938년 월드컵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선호하는 위치인 인사이드 포워드에는 오스카르 에세레가 버티고 있어서 그의 자리는 나지 않았고 월드컵에서 코발치크의 출전 기회 또한 없었다.

이 벨기에전이 코발치크의 마지막 A매치가 되었다.


2.3. 감독[편집]


코발치크는 선수에서 은퇴하자마자 잠시 FC 메스의 감독을 맡았다.


3. 수상[편집]



3.1. 선수[편집]



3.1.1. 클럽[편집]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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