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료구소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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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평가
4. 논란


1. 개요[편집]


一領具足, 일령구족
일본 센고쿠 시대시코쿠쵸소카베 가문이 활용하던 반농반병 정책을 뜻한다.

2. 상세[편집]


이들은 매우 작은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농민들로 평화 시에는 농민으로써 농업에 종사한다. 그러나 전시에는 다이묘의 소집 명령이 떨어지면 항상 논밭 옆에 비치해놓는 갑옷과 무기, 병량 등을 챙겨 모이는 반농반무사들이다. 농사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신체가 건강한 이들이 많고, 또 협동심이 높기 때문에 군인으로서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그 특성상 농번기의 동원은 어렵고 전쟁이 길어질 경우 불리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농지에서 멀어지는 장거리 원정에 쓸 수 없다는 결점도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일반적인 '중세시대 유럽'의 반농반병과 별 다를바 없어보이고, 이런 반농반병의 결점을 타파하려는 오다 노부나가 등을 시작으로 유행한 병농분리책에 역행하는 쵸소카베 영지만 시행했던 구닥다리 정책이긴 했지만, 모토치카의 이치료구소쿠는 이들의 대우를 확실히 해서 대표자를 뽑아 격이 낮을지언정 자신의 가신들과 동등한 위치에 놓아주었고, 회의를 할 때는 군인들의 의견도 함께 들어주었다. 아와 공략 당시 군인들의 이야기를 들어 전략을 수정하기도 했다. 이런 대우에 '이치료구소쿠'들의 충성심은 대단했다고 한다.

쵸소카베 쿠니치카가 고안하여 쵸소카베 모토치카시코쿠 통일 전쟁에서 맹활약하였다. 그러나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의 패배로 쵸소카베 모리치카가이에키를 당하자, 쵸소카베에 충성하던 이들은 반발해 우라도 성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모리치카 대신 토사를 지배하게된 야마우치 카즈토요에 의해 진압되었고 카즈토요는 이들을 학살하는 등 잔인하게 숙청했다. 이들은 이후 야마우치 가문의 하급 무사로 흡수되었다.


3. 평가[편집]


이치료구소쿠들을 수식하는 말은 생사조차 신경쓰지 않는 들 무사.[1] 이치료구소쿠들의 용맹함을 나타내는 말이자 그들을 대표하는 이미지이다. 이들은 쵸소카베 가문 시코쿠 통일의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그러나 센고쿠 시대의 트렌드였던 오다 노부나가 등의 병농분리에는 부합하지 않아 구시대적인 군대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4. 논란[편집]


이치료구소쿠는 당대의 사료나 쵸소카베 가문의 문서에서의 언급이 거의 없고, 주로 에도 시대 소설이나 가계도 등의 사료에서 언급이 되고 있다. 또한 쵸소카베 가문만이 운용하던 독창적인 제도였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있다.

관련 글 1 [2]
관련 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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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도 시대의 소설 <토사모노가타리>의 표현이다. 원문은 死生知らずの野武士なり[2] 카페 게시글이라 로그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