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모도원

덤프버전 :

고사성어




날 일
저물 모
길 도
멀 원

1. 개요
2. 의미
2.1. 곁 뜻
2.2. 속 뜻
2.3. 함축적 의미
3. 출전
4. 유래
5. 의도



1. 개요[편집]


오자서'일모도원 도행역시(日暮途遠 倒行逆施)' 중 하나.

'임중도원'을 직역한 것과 유사하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을 때 흔히 쓰이는 고사성어다.


2. 의미[편집]



2.1. 곁 뜻[편집]


해는 지는데 갈 길은 멀다.


2.2. 속 뜻[편집]


할 일이 많으므로, 사소한 일 따위에 신경 쓰느라[1] 중요한 일을 그르칠 수 없음


2.3. 함축적 의미[편집]


오운(伍員)이 의도한 '일모도원'의 의미는 본 문서 하단에 설명되어 있다.


3. 출전[편집]


사기(史記)오자서(伍子胥) 열전(列傳), 십팔사략 등


4. 유래[편집]


본래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이었다. 초나라 평왕이 간신 비무기의 모함을 믿고 자신의 아버지와 두 형을 죽이자, 오자서는 복수를 결심하며 오(吴)나라로 도망쳤다. 오자서는 오(吴)에서 오나라 합려의 모사가 되었고, 합려가 왕이 되는 데 공헌했다.

후에 오(吴)군이 초나라를 공격하여 초나라의 수도 영을 함락시키자,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찾아 헤맸다. 이때 평왕의 무덤을 만들던 석공들은 무덤의 위치를 안다는 이유로 몰살당했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은 석공 한 명이 오자서에게 평왕의 무덤 위치를 알려줬다. 그 덕분에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찾아갈 수 있었다. 무덤을 찾아간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쳤다. 오자서는 그 후 관을 꺼낸 뒤 "충신과 간신도 구분 못 하는 네놈의 눈을 뽑아주마!"라며 두 눈알을 파내고, 평왕의 시체를 꺼내어 구리 채찍(鞭)으로 그것을 매우 쳤다. 300대를 후려치고서야 겨우 그만둘 정도였다고 한다. (굴묘편시; 掘墓鞭尸)[2]

한편, 오자서의 절친한 친구였던 신포서[3]는 초나라를 구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가 있었는데, 오자서가 평왕의 시체를 꺼내서 매질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하여 편지를 보냈다. "자네의 복수는 너무 지나치지 않는가!"라고 꾸짖는 신포서의 편지에 오자서는 "날은 저물고 길은 멀어서(日暮途遠)"라는 답장을 보냈다.


5. 의도[편집]


일모도원(日暮途遠)과 뒤에 나오는 도행역시(倒行逆施)를 함께 보면 '일모도원'에 담긴 오자서의 표현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오자서의 의도는 바로 도행역시에 '당위성(當爲性)'을 부여하는 것이다. 즉,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4](倒行逆施)를 당장 해야만 했다(日暮途遠)'라는 함축적 표현을 통해 '굴묘편시(掘墓鞭尸)'가 자신의 숙명적 임무였다는 것을 명문화(明文化)한 것이다.

당시 시대상을 고려했을 때, '일모도원'을 오자서의 자기합리화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므로, 그것을 당장 해야만 했다'라는 것이 오자서가 의도한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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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or 해가 지는 듯한 자연스러운 일 때문에[2] 사서마다 다르다. 사마천의 사기나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 300대, 십팔사략이나 기타 사서에서는 300~500대[3] 판본에는 오자서가 초나라에서 도주할때 보내주었고 오자서가 초나라를 반드시 멸망시킨다고 했을때 자신이 부활시킨다고 대담했다고 한다. 이 둘은 그 말을 지켰다.[4] = 굴묘편시(掘墓鞭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