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라크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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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2.1.1. 2000년대
2.1.2. 2010년대
2.1.3. 2020년대
3. 대사관
4. 관련 문서
5. 문화 교류



1. 개요[편집]


일본이라크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2. 역사적 관계[편집]


걸프전쟁 때 일본은 미국을 지원했기에 이라크와 정치적으로 부분적 대립이 있기도 했으나 이후에도 여전히 교류를 했었다. 이라크 전쟁 때에는 자위대를 파견하기도 했었다.

2.1. 21세기[편집]



2.1.1. 2000년대[편집]


2003년 1월 23일과 2월 14일, 이라크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일본은 자국민 30여명에게 이라크를 철수하라고 했다. #, #, #

2003년 2월 20일, 일본은 이라크에 전쟁이 나타날 시 난민에게 4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

2003년 3월 7일, 일본은 이라크주재 대사관을 철수하기로 했다. #

2003년 3월 18일, 일본은 이라크 교민 철수에 자위대 수송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

2003년 3월 22일, 일본 외무성은 일본인 33명에게 이라크를 탈출하라고 촉구했다. #

2003년 3월 26일, 일본은 이라크난민 지원에 정부전용기를 파견하기로 했다. #

2003년 4월 2일, 이라크 전후복구에 참여하기로 했다. #

2003년 4월 11일, 일본은 이라크 재건인도지원처에 정부요원을 파견했다. #

2004년 4월 8일 일본인 3명이 이라크에서 무장단체들로부터 피랍을 당했다. #, #, #

2004년 4월 9일, 일본 정부는 피랍된 일본인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

4월 9일, 동시에 일본인을 피랍한 무장단체들은 미국인과 일본인, 영국인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

4월 11일, 일본인 3명이 이라크에서 석방되기로 했다. #, #, #, #

4월 12일, 인질들을 풀어줄 수 있다고 했던 이라크 무장단체가 번복하고 인질 1명을 죽일 수 있다고 말했다. #

4월 15일, 또다른 일본인 2명이 더 인질로 붙잡혔다. 동시에 피랍되었던 4월 11일에 피랍된 일본인 3명은 석방되었다. #, #, #, #

4월 17일, 추가 피랍된 일본인 2명도 석방되었다. #

2005년 7월 26일, 이라크 남부 사마와에서 군중 7백여명이 자위대 철수를 외치는 시위를 벌였다. #

12월 4일에도 이라크 시위대들이 자위대 장갑차에 돌을 던졌다. #

2.1.2. 2010년대[편집]


2011년 1월 10일, 일본과 이라크는 원전 협의를 맺었다. #

2011년 11월 22일, 일본은 이라크 정유시설에 8억 달러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

또한 이라크 재건에 7억 5천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

2.1.3. 2020년대[편집]


2020년 1월 8일, 솔레이마니가 이라크에서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하여 이라크 일대가 긴장되자 주이라크 일본 대사관이 임시 폐쇄되기로 했다. #

또한 동시에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가 습격당하자 일본 증시가 급락되기도 했다. #

3. 대사관[편집]


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 2004년 바그다드에 재이라크 일본 대사관이 다시 세워졌으며, 아르빌에는 재 아르빌 일본 영사관이 있으며 도쿄에는 주일 이라크 대사관이 세워져 있다.


4. 관련 문서[편집]




5. 문화 교류[편집]


2000년 일본과 이라크 사이에 축구 경기가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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