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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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일요신문사
설립일
1991년
업종명
신문발행업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중소기업
웹 사이트

1. 개요
2. 특징
3. 여담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서울문화사가 발행하는 타블로이드형 주간신문. 1987년 6월에 '일요뉴스'로 창간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타블로이드 주간지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래 타블로이드 주간지의 선도주자로 활약해온 신문이다.[1] 일간지와 달리 심층 취재 보도를 주로 하는 주단위 신문이다. 주간지와는 다르다.[2] 신문발행 허가가 난 때는 1987년이지만, 이때는 전두환 정부 시절인지라 신문을 새로 낸다는 말에 당국이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일요뉴스'라는 명칭으로 창간하게 되었다.

1987년 11월에 언론기본법이 폐지되자, 이듬해인 1988년 3월에 일요신문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창간 초기에는 보기좋게 망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있었지만, 흥미성에 집중한 보도들과, 당시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정치 후일담 기사들을 쏟아내면서 창간 1년만에 흑자를 거둘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로서는 미약하지만 '대안 언론' 형식의 성격을 띄고 있었던 셈. 그러나 1989년 말에 외압으로 돌연 휴간되었고, 이후 전 경영진이 서울문화사에 일요신문을 넘겼다. 서울문화사1991년 (주)일요신문사라는 계열사를 만들어서 1992년에 일요신문이 복간되었다.

젊은 세대에겐 인지도가 과거에 비해 한참 못하지만, 온라인 인프라가 보급되기 전인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타블로이드지의 특별한 위치를 가지고 지하철, 편의점, 버스터미널, 기차역 신문 가판대처럼 유동인구 높은 곳에 비치되어 유통됐기에, 높은 지명도와 판매량을 자랑하고 있었다. 신문 자체의 분량도 꽤 묵직하여,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대중교통 이용시, 명절 또는 연휴철에 이동하면서 버스, 철도를 탈 때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기 좋은 유용한 볼거리이기도 하였다.

2011년 7월 1000호를 발행했다. 일요신문의 자매지로는 경제신문 비즈한국이 있다.

2. 특징[편집]


지금은 존재감이 많이 퇴색되었지만, 한때 과거에는 매체 불문하고, 국내언론 중 고도의 신속성과 신뢰성을 보여주던 탐사보도 전문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창간당시엔 군사독재 및 그 잔향으로 인해 왜곡됐던 한국 언론환경의 특수성 덕택에, 오히려 타블로이드가 가진 언론자유도에 기인하여 주목받은 바가 컸다. 이후 21세기엔 언론사 인플레가 일으킨 기사표절 및 돌려쓰기[3] 및 공급과잉으로 인한 기자들의 질적하락 풍조 속에서, 묘한 선정성과 독특한 탐사취재 사이의 묘한 줄타기를 하는 식의 특수한 이미지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런 이미지나 시장지위는 일요신문 한정이고, '일요시사', '사건과 내막' 같은 다른 황색 타블로이드지들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 물론 일요신문도 지면에 여성 수영복 모델들의 사진을 배치하여 유두만 별표로 적당히 모자이크한 반나체 여성들이 즐비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영국의 더 선이나 데일리 미러, 독일의 빌트 등 외국계 타블로이드지들이 자극, 선정적인 황색언론으로 악명높은 데 반해, 일요신문은 '선정성을 겸비한 탐사 보도'라는, 한국 시장에서는 꽤나 상이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취재에 투입하는 시간적 자원이 풍부한 주간신문이란 특성 탓이었던지, 과거 창간 당시부터 특종을 생산해내던 역사가 있으며[4] 2010년대에도 정주영 현대 회장의 숨겨둔 딸을 찾아내고# 이명박 일가 및 SM다스의 거래를 최초로 밝혀낸다든가#, 최순실이 먹은 곰탕집을 발로 뛰어 찾아서 다닌다는가 하는 내력을 자랑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여타 언론사에선 포착, 구사하지 못하는, 혹은 기성 언론에서 별로 신경쓰기 않던 분야의 탐사보도나 후속보도, 밀접 & 심층취재 덕에 일요신문의 명맥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력들 중에서도 기념비적인 일획이 바로 전두환 비자금의 최초 보도이다# 이렇듯 취재능력 뿐 아니라 예측능력도 발군이라 정확도가 높았다. 일요신문의 가장 대표적인 적중예측이라면 전두환-노태우 사형선고 후 사면이란 시나리오를 1995년에 정확히 예견했던 것을 들수 있다.

물론 이러한 탐사보도와 심층취재, 특별인터뷰와 기고는 다른 국내의 시사주간지나 주요 월간지도 행하는 바가 있지만, 이념지향성과 정치성향이 뚜렷한 사회적 분위기, 혹은 한국 언론들의 지형상, 매체의 이념 지형을 넘어서기는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참고로 한때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 언론의 자유가 대폭 확충되기 시작한 90년대 중후반 즈음까지는 과거 수십년 간의 권위주의 독재 시대에 묻혔던 이야기들에 대한 '시사 후일담 보도'가 월간지와 주간지에서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 시절에 신동아월간조선 등의 월간지 등이 이러한 류의 특종을 많이 했다. 하여튼 주류의 언론 잡지들은 취재한 내용이 지면보도로 이어지기까지는 수많은 제약이 산재해 있고, 설령 보도를 하더라도 매체의 논조에 맞추고, 고정구독층을 만족시키는 취사선택적 악마의 편집을 일삼는다는 인식과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상황의 역설 덕분에 되려 정치색이 상대적으로 희미한 일요신문이 소구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요신문에선 각 주요 일간지 및 신문사 계열의 시사잡지가 각자의 성향에 따라 발언창구로 애용하는 정치, 사회평론 및 사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3. 여담[편집]


  • ABC협회가 발표한 '2017 주간신문 445개지 인증 결과'에 따르면 일요신문은 발송매수 10만 1499부였으며 주간신문 가운데 전체 3위를 기록했다. 한국교육신문과 중앙SUNDAY 등이 1위와 2위를 다투는데 특수성있는 이들 매체를 제외하고 가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블로이드형 주간신문 가운데에는 독보적 1위이다. 일요신문 다음으로 일요서울 2만 7667부, 일요시사 2만 4042부, 주간현대 1만 799부, 사건의내막 1만 13부 순이었다.

  • 윤준환의 시사만화 <세상만사> 의 연재처이기도 하다. 이전에도 <물대포>,<블랙박스>를 연재한 적이 있다.

  • 예전 주간 모닝에 연재(83년부터 92년)까지 연재한 작품이자 서울문화사에서 출간했던 성인용 만화잡지 <빅점프>에 수입연재해 온 일본 만화 시마 과장이 이 잡지 폐간 후 매체를 이동하여 완결을 맺었다. 이미 일본에서 연재가 끝난 '시마 과장'을 빼면 당시 <빅점프> 대부분 연재작들은 이 잡지 폐간 후 웹진 <남자야닷컴>으로 옮겨 완결을 맺었다.

  • 시사IN 주진우 기자가 본지 출신이다. 사실 시사in의 과거 모체 시사저널이나 일요신문이나 둘다 서울문화사 계열이긴 하다. 자매지가 아님에도 일요신문이 촬영한 사진자료를 시사저널이 사용할 정도였고 물론 2010년대 중반 이후 타 매체간 이용권 계약을 맺는건 흔하나 90,2000년대로선 희귀 사례였다.

  • 중앙‧아경‧조선.CBS 등 16강 진출 2016년 기자협회축구대회에서 7:0으로 패배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2022년 아주경제와의 경기에서 3:2로 역전승을 하며 1승을 거둔 뒤 기권을 했는데 이듬해인 2023년에는 일간스포츠와의 경기에서 무승부 후 승부차기로 승리, 경향신문과도 무승부를 이뤘으나 승부차기에서 패배했다.

  • 2011년부터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을 실시하고 있고, 처음으로 지면에 연재되는 영광을 누린 작품은 2019년 실사영화화가 된 롱 리브 더 킹.

  • 한국의 타블로이드 판형 언론으로서는 나무위키에서 유일하게 독립문서가 작성되었으나, 2020년 1월 9일 일요시사 문서가 생김으로써 유일등재의 기록이 깨졌다.

  • 한국의 서브컬쳐 평론가인 서찬휘가 <서찬휘의 만화살롱>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기도 하였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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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민주화 이후로 타블로이드 주간지의 선구자라고 할만한 언론은 여기보단 토요신문에 더 가깝다.[2] 주간지는 A4 용지 크기에 발행되는 주간 잡지이다. 주간조선, 뉴스위크, 한겨레21, 시사저널, 시사IN 등이 여기에 속한다.[3] 이른바 '우라까이'라고 한다. 돌려쓰기의 경우 보통은 연합뉴스같은 뉴스통신사의 기사를 1차로 해서 이리저리 우려먹는 경우가 많다.[4] 한때 여성지가 매우 두꺼운 페이지수를 자랑하며 잘 나가던 90년대까지는 여성지 편집장들이 시사 분야 쪽 기사거리를 선별하기 위해 일요신문을 뒤진다는 카더라도 돌았다. 여성지에도 실을 만한 적당한 선정성을 겸비한 적당한 이슈를 일요신문이 잘 다루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