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고리 시스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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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고리 시스터즈
파일:저고리 시스터즈.jpg
조선여가수 도쿄왕궁앞 촬영사진. 왼쪽부터 홍청자, 왕숙랑, 박향림, 이난영, 서봉희, 김능자, 장세정, 이화자.
그룹명
저고리 시스터즈
장르
?[1]
리더
이난영
활동 기간
1939년 ~ 1945년
데뷔
1939년(85주년)
소속사
조선악극단[2]
1. 개요
2. 멤버
3. 활동
4. 여담



1. 개요[편집]


1939년에 데뷔한 한반도 최초의 걸그룹이자 대한민국 걸그룹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단체다.[3]


2. 멤버[편집]


  • 역대 멤버들을 모두 작성한 표다.
  • 멤버 상당수가 생몰년도가 불분명하며 이에 따라 미군정이나 대한민국 건국까지 생존했는지도 알 수 없다.
  • 몰년이 확실한 표 내의 멤버들 중에서는 장세정만 유일하게 21세기까지 생존했으며 현재 저고리 시스터즈의 멤버 중 생존하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성명
생몰년도
포지션
기타
이난영
1916년 6월 6일~1965년 4월 11일
리더
김해송과 결혼
장세정
1921년 5월 28일~2003년 2월 16일


박향림
1921년~1946년


이화자
1916년~1946년/1950년


김능자
1916년~?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
서봉희
?~?


홍청자
1920년[4]~?
메인댄서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
이준희
?~?



그 외에도 신카나리아, 김백희, 심연옥, 백설희, 옥잠화, 나성려, 왕숙랑도 저고리 시스터즈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3. 활동[편집]


멤버의 상당수가 김해송과 남성 동료들의 '조선악극단'의 멤버로서 중복활동을 하였다.

멤버가 계속 고정되면서 활동한 것은 아니고 이난영과 장세정만 고정 멤버였고 여러 멤버들이 그룹을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했다. 김능자와 홍청자는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이며 홍청자는 1940년에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퇴단하면서 그룹에 들어왔다.

정식 앨범을 하나도 내지 않았다.

무대 의상으로 저고리를 입고 나와[5] 당시 나라 잃은 한민족에게 민족의식을 환기했다.

한반도와 일본 본토에서 공연을 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광복 이후 해체되었다.


4. 여담[편집]


  • 이 그룹의 리더였던 이난영은 본인의 딸 김숙자, 김애자와 조카 이민자를 데리고 김시스터즈로 데뷔시켰다.

  • 저고리 시스터즈의 활동 기간 연도인 1939년~1945년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진행되었던 연도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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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식 앨범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장르는 불명이나, 트로트일 가능성이 높다.[2] 엄밀히 말하자면 소속사의 개념은 아니고 당시 조선 음반업계의 큰손중 하나였던 오케(OKEH) 레코드사(원래는 제국축음기회사의 경성지부 혹은 서브레이블 개념으로 시작했지만 그쪽 사장이 조선인인 이철이라 자연스레 조선 음반시장의 큰손이 되었다) 산하에 있는공연단이며, 당시 오케 사장이던 이철에 의해 결성되었다. 저고리 시스터즈는 이 조선악극단의 여러 팀들 중 하나였다.[3] 대한민국 최초의 걸그룹은 1953년에 데뷔한 김시스터즈다.[4] 혹은 1922년[5] 저고리 시스터즈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되었다.